릴로

# 범인과의 동일시

경찰청 심문실 밖. 오후 2시 18분.

박상목이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손가락이 소매를 관통할 정도의 압력이었다.

"당신은 더 이상 수사관이 아니다."

말이 끝나기 전에 박상목의 목에 흉터가 보였다. 전날 밤 반창고로 덮여 있던 자리. 칼날이 피부를 스쳤던 깊이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벌어져 있었다.

"용의자다."

이준호는 박상목의 눈을 마주했다. 팀장의 홍채가 수축되어 있었다. 신뢰한 대상이 무언가 다를 수 있다는 인식이 만드는 공포였다.

"알겠습니다."

이준호가 팔을 빼냈다. 박상목은 저항하지 않았다.

"증거 실은 봤나?"

"네."

"자신의 것 맞나?"

"모릅니다."

대답이 정직했기에 더욱 불안감을 자극했다. 박상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용의자는 보통 부인하거나 변명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모른다고 했다. 그 모름 자체가 가장 위험한 상태였다.

"나가."

박상목이 문을 열었다.

이준호는 복도를 걸었다. 형사 3명이 양옆에서 그를 감시했다. 팔을 잡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경찰청 건물 자체가 감옥이었다. 모든 출입구에 CCTV가 있었고, 모든 층에 순찰관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연우가 있었다.

"가는 거냐?"

"네."

"어디로?"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서연우가 손을 뻗어 문을 막으려 했으나 늦었다. 문이 닫혔다.

1층에 내렸을 때 출입구에 경비가 두 명 더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준호를 막지 않았다. 그를 체포할 영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증거는 많았다. 너무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프로파일러의 집에서 발견된 장갑, 칼, 신발. 모두 살인 현장과 일치했다. CCTV 영상에는 이준호와 동일한 외모의 인물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이건 말이 안 됐다. 그래서 박상목도 확신이 없었다.

경찰청 광장으로 나갔다.

햇빛이 눈부셨다. 오후의 강한 빛이 아스팔트를 데우고 있었다.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몇몇 경찰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일상이었다. 아무도 이준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의 차가 지하 주차장에 있었다. 키를 누르면 차가 울릴 것이다. 그러면 경비들이 기록할 것이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이준호가 걷기 시작했다. 건물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이준호!"

서연우가 뒤에서 목소리를 질렀다. 경찰청을 나가지 말라는 의도였다. 이준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나가면 도주다!"

그 말이 맞았다. 하지만 이준호는 계속 걸었다. 서연우가 뛰어왔다. 팔을 잡으려 했다.

이준호가 몸을 돌렸다.

"저는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서연우의 손이 멈췄다.

"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뭐?"

"증거들이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 누가 그것들을 그곳에 놓았는지. 그리고 왜."

이준호의 눈이 선명했다. 공포도, 혼란도 없었다. 오직 분석만 있었다.

"강남역 지하상가. 피해자 1호가 발견된 곳."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그곳에는 내가 놓지 않은 흔적이 있을 거야. 내가 하지 않은 행동의 증거. 내 프로필에는 없는 디테일."

서연우가 총을 꺼냈다. 허리춤에 있던 것을 꺼내 손에 들었다.

"움직이지 마."

이준호가 서연우를 보았다. 형사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쏘려는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서의 생리적 반응이었다.

"나를 쏠 수 있나요?"

"멈춰."

"제 자신을 쏠 수 있나요?"

이준호의 입이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말이 계속 흘러나왔다. 서연우의 눈이 흔들렸다.

"증거를 보셨으니 아실 겁니다. 제가 두 곳에 동시에 있었다는 것을. 제가 범인이라면, 저는 누구인가요?"

서연우의 호흡이 빨라졌다. 총의 조준선이 이준호의 가슴팍을 향했다.

그 순간 이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이준호'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발신자였다.

이준호가 전화를 받았다.

"네."

음성이 왜곡되어 들려왔다. 전자음이 섞인, 하지만 분명히 이준호의 목소리였다.

"당신이 나를 찾고 있군."

"네."

"좋아. 그럼 내가 당신을 도와주지."

통화가 끝났다.

서연우가 이준호에게 다가갔다. 총을 겨눈 채로. 한 손으로는 수갑을 꺼냈다.

"손을 뒤로."

이준호가 손을 뒤로 했다.

그 때 경찰청 건물 내부에서 비명이 들렸다. 경찰청 광장 전체에 울렸다. 그다음 경보음이 울렸다.

서연우의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남구청 인근에서 시체 발견. 남성, 30대 후반. 목에 칼 상처. 신원 미상."

서연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시 한 번."

"강남구청 주차장. 시체 발견. 확인 결과 중앙수사부 부장 최준혁입니다."

서연우의 손이 떨렸다. 총의 조준선이 흔들렸다.

이준호가 말했다.

"저는 강남구청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누가..."

"제 자신입니다."

이준호의 표정이 변했다. 처음으로 무언가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공포와 해방감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제 자신이 제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경찰청 건물에서 또 다른 비명이 들렸다. 여성의 비명.

무전기에서:

"경찰청 옥상. 여성 시체. 신원 확인 중."

서연우가 뒷걸음질을 쳤다. 이준호를 보는 대신 건물을 보고 있었다.

"그게 누구죠?"

이준호가 물었다.

무전기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신원 확인됐습니다. 경찰청 자문 심리사 김민서입니다."

이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얼굴의 근육이 모두 멈춰 섰다.

서연우가 총을 낮췄다. 이준호를 겨누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이.

"왜... 왜 그러는 거야?"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왜 나를 완성하려고?"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준호의 입에서 나왔는데, 이준호가 말한 것이 아니었다. 같은 음성이지만 다른 톤.

"넌 날 알아야 하니까."

이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제 프로필이 맞았습니다."

그는 서연우를 보았다.

"제 분석이 정확했기 때문에, 그 분석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제 프로필이 범인을 창조했습니다. 또는 제 프로필이 제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서연우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제가 강남역에 간 적이 없다면, 제 자신이 갔습니다. 제가 한강 공원에 없었다면, 제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그런데 제 자신은 제가 아닙니다. 제 자신은 제 억압된 모든 것입니다. 제가 인정하지 않던 분노. 제가 숨겨온 욕망. 제가 거부한 자유."

서연우가 손목을 잡았다. 이번에는 총이 아닌 맨손으로.

"경찰청 옥상으로."

이준호가 말했다.

"제 자신이 거기에 있을 겁니다."

경찰청 건물을 향해 함께 걸었다. 서연우가 손목을 잡은 채로. 이준호는 저항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 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렸을 때 바람이 들었다. 높이의 바람.

옥상에는 두 명이 서 있었다.

같은 얼굴. 같은 체격. 하지만 다른 눈. 한 쪽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한 쪽은 해방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 명은 옥상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다른 한 명은 그의 뒤에.

서연우가 총을 들었다.

"누가 누구지?"

벽에 글이 새겨져 있었다. 손톱으로 긁어낸 글자들.

"너를 찾기 위해 나는 존재했다."

가장자리에 선 인물이 입을 열었다.

"맞다. 너는 이제 안다. 너는 나를 만들었고, 나는 너를 완성하고 있다."

이준호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준호가 아니었다.

"여긴 어디야?"

뒤에 선 인물이 물었다. 공포에 찬 목소리로. 이것이 진짜 이준호였다.

"강남역, 강북, 한강, 빌딩, 숙박소. 모두 내가 만든 공간들. 그리고 이제 여기. 경찰청 옥상. 너의 공간. 너의 중심."

가장자리의 인물이 웃음을 흘렸다.

"나가."

뒤의 인물이 말했다.

"안 돼."

가장자리의 인물이 한 발을 물렸다. 공중으로.

"잠깐!"

서연우가 달려갔다. 하지만 발이 바닥에 닿았을 때 이미 아무도 없었다.

옥상 아래 경찰청 광장에서 비명이 울렸다.

서연우가 가장자리로 달려갔다. 아래를 봤다. 한 구의 신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또 다른 신체.

두 개의 이준호.

같은 얼굴. 같은 옷. 하나는 옥상의 동쪽 끝에서, 하나는 서쪽 끝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동시에.

서연우는 구분할 수 없었다.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 둘 다 떨어진 건지.

무선 교신이 울렸다.

"서형사! 사망 확인됐습니다. 두 구 모두!"

박상목의 목소리였다.

"신원 확인이?"

서연우가 물었다.

"둘 다 이준호입니다. 신분증, 경찰 신분증, 모든 게. 똑같습니다."

침묵.

서연우는 옥상에 혼자 남았다. 벽에 쓰인 글자를 다시 봤다.

"너를 찾기 위해 나는 존재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준호의 번호였다.

서연우가 받았다.

"누구세요?"

음성이 들렸다. 이준호의 목소리. 하지만 다른 톤으로.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형사. 우리는 옥상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럼 지금 누구입니까?"

"우리가 시작한 수사. 범인을 찾는 수사. 하지만 범인은 처음부터 우리 안에 있었어요."

전화가 끊겼다.

서연우는 경찰청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광장에는 이미 법의학팀이 도착해 있었다. 두 구의 신체 위에 검은 천을 덮고 있었다. 박상목이 서연우를 보고 달려왔다.

"뭐가 일어났어?"

"모르겠습니다."

서연우가 말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떨어졌습니다. 또는 한 사람이 두 번 떨어졌습니다."

박상목이 시신들을 바라봤다. 두 구 모두 완전히 같은 얼굴로 누워 있었다.

"신원 확인을 다시 해야 합니다. DNA, 지문, 모든 것."

박상목이 말했다.

"네."

서연우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결과가 무엇일지.

경찰청 내부. 증거실.

박상목이 법의학팀의 보고서를 받았다. 두 시신의 DNA 검사 결과. 지문 검사 결과. 모든 생체 정보.

둘 다 이준호였다. 동일한 유전자. 동일한 지문. 동일한 신분증.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박상목이 김민서 심리사를 불렀다.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 목에 밴드를 한 채로.

"이준호의 의료 기록을 봐야 합니다."

김민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박상목 팀장. 전문가 비밀유지..."

"사람이 죽었습니다. 두 명의 이준호가. 우리는 왜 두 명인지 알아야 합니다."

침묵.

김민서가 파일을 꺼냈다. 두꺼운 파일. 20년 분량.

"그는 8살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와 함께 살았어요. 아버지는 그를 극도로 통제했습니다. 정서적 표현을 억압했고, 감정을 약함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준호는 그 환경에 적응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감정을 억압하고, 오직 분석과 논리만으로 세상을 봤습니다."

"그게 다?"

"아니요. 16살 때 처음 자해 시도가 있었습니다. 팔목에. 그 이후 10년간 정기적인 자해 행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자신이 정상이라고 주장했어요. 대신 프로파일링에 몰입했습니다. 타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으로 자신의 심리를 억압했습니다."

박상목이 파일을 읽고 있었다.

"그럼 이중인격은?"

김민서가 잠시 침묵했다.

"공식 진단은 없습니다. 하지만 극도로 억압된 환경에서 형성된 개인이 특정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억압된 자아가 분리될 수 있습니다. 이준호의 경우 프로파일링 과정 자체가 그 촉발제였을 가능성이 있어요."

"범인 프로필을 만드는 과정이?"

"범인의 심리에 깊이 침잠해야 하니까요. 자신의 억압된 부분을 범인에게 투영하면서, 그 투영이 실제 행동으로 구현되는 악순환이 생겼을 수 있습니다."

박상목이 파일을 내려놨다.

"그럼 지금 죽은 두 사람은?"

"모두 이준호입니다."

김민서가 말했다.

박상목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의료 기록은 명확했다. 이중인격의 의학적 증거는 없었다. 단지 극도로 억압된 환경이 만든 심리적 분열만 있었다. 그리고 그 분열이 프로파일링이라는 행동을 통해 현실화되었다. 기록상 하나의 신체, 하나의 정체성. 그런데 두 구의 시신. 동일한 DNA. 의학은 설명할 수 없었다.

강북 상계동. 폐쇄된 건물.

서연우가 혼자 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기록이 맞지 않았다. 기록은 항상 맞지 않았다.

건물 지하실로 내려갔다. 이준호가 수사 과정에서 여러 번 방문했던 장소.

지하실 벽에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손톱으로, 칼로, 피로.

"나는 너다."

"너는 나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둘이다."

"나를 찾아줘."

"나를 죽여줘."

"나를 완성해줘."

서연우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증거. 아니다. 증거가 무슨 소용인가.

손전등 불빛이 한 곳에 멈췄다. 벽의 한 구석. 거울.

깨진 거울. 하지만 여전히 반사하고 있었다. 서연우의 모습을.

그리고 거울 속에서 다른 얼굴이 보였다. 이준호의 얼굴. 하지만 서연우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연우가 돌아섰다. 아무도 없었다.

다시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이준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이준호.

서연우가 받았다.

"형사. 우리를 찾아주셨네요."

"넌 죽었다."

"네. 우리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살아있어요. 우리가 남긴 기록 안에서."

"뭘 원하는 거야?"

"당신도 알고 있어요. 당신도 자신 안에 또 다른 자신을 가지고 있어요. 모두가 그래요. 우리가 보여준 것처럼."

전화가 끊겼다.

서연우는 지하실에서 나왔다. 햇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그림자가 벽에 떨어졌다.

그림자는 하나였다.

경찰청 회의실.

박상목이 최종 수사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이준호: 연쇄살인 용의자. 사망.

이준호(분신): 연쇄살인범. 사망.

범행 해결. 사건 종료.

하지만 박상목은 계속 읽고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이상 현상: - CCTV 영상에서 동일인물이 동시에 두 위치에 나타남. 영상 타임스탬프 불일치 확인. 블랙박스 영상 결손 구간 다수 발견. - 위치 추적 데이터의 반복적 불일치. 신호 중복 기록 미해결. -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심리 메시지의 정교한 구성. - 이중인격의 의학적 증거 부재. 동일 유전자를 가진 두 시신. 의학적 설명 불가능.

결론: 수사의 과학적 설명 불가능. 심리학적 영역으로 분류 권장."

박상목이 보고서를 덮었다.

그의 목에 있는 상처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밴드가 헐겁다는 신호.

그는 손으로 목을 눌렀다. 따뜻한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거울을 봤다. 사무실의 거울.

거울 속 자신의 목에는 밴드가 없었다.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깊고 붉은.

박상목의 손이 떨렸다.

그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이준호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제 모두에게 전염되고 있었다.

서연우도. 김민서도. 박상목도.

모두가 자신 안의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울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이 웃고 있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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