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경찰청 증거 관리실

경찰청 증거 관리실의 형광등이 일렬로 켜져 있었다. 온도는 섭씨 18도, 습도는 55%로 유지되었다. 이준호는 복도의 유리창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봤다. 서연우가 그의 아파트에서 수거한 물건들이 증거 봉투에 담겨 금속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검은색 장갑 한 켤레. 칼 세 자루. 로프. 검은색 운동화. 그리고 신분증.

박상목이 옆에 섰다.

"들어가."

이준호는 출입 카드를 긁고 문을 열었다. 실내 공기가 차갑고 건조했다. 증거 관리자 김 대리가 컴퓨터를 들여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프로파일러님. 이 물건들은 당신 집에서 나온 겁니다."

이준호는 테이블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거리를 둔 채로 물건들을 봤다. 검은색 장갑의 내부는 하얀색 솜으로 덮여 있었다. 칼의 손잡이는 테이프로 감싸져 있었다. 운동화는 신발 크기 280밀리미터. 그의 사이즈였다.

"이것들을 어디서 구했는가."

박상목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내 소유물이 아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신체 일부가 떨리고 있었지만 음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당신의 집에 이것들을 놓았는가."

박상목이 한 발 더 가까이 섰다.

"모른다."

"칼의 손잡이를 들어봐."

이준호는 손을 뻗지 않았다. 박상목이 증거 봉투를 들고 칼을 꺼냈다. 증거 봉투의 밀봉을 푸는 행위는 절차 위반이었지만 박상목은 신경 쓰지 않았다.

"피해자 3호의 현장에서 발견된 칼이 이것과 같은 모델이다. 손잡이의 테이프 감싸는 방식도 같다. 우리가 현장에서 발견한 칼의 손잡이에는 피해자의 혈액 패턴이 있었다. 혈액형은 AB형. 이것, 당신 집에서 나온 칼의 손잡이는?"

김 대리가 리포트를 읽었다.

"DNA 검사 결과 대조할 수 있는 DNA가 없습니다. 혈액 자체는 있는데, 손잡이 내부 섬유에 묻어 있네요. 그런데 현장 칼과는 다른 혈액형입니다. O형."

이준호의 눈꺼풀이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신경 신호의 전달이 약간 지연되었다.

"당신의 혈액형은?"

박상목이 물었다.

"O형이다."

"그렇다. 당신의 혈액형이다. 그런데 손잡이 내부에 묻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칼을 휘둘렀을 때 손가락이 벗겨진 것인가, 아니면 장갑이 찢어진 것인가."

이준호는 자신의 손가락을 들여다봤다. 손톱 아래는 깨끗했다. 3일 전부터 매일 손톱 사이를 꼼꼼히 닦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손가락 끝이 경련했다. 약하지만 분명한 수축. 시각이 흔들렸다. 테이블 위의 칈이 잠깐 초점을 잃었다가 다시 맺혔다.

"장갑을 확인해봐."

박상목이 검은색 장갑을 가리켰다. 김 대리가 장갑 안쪽을 비추는 조명을 켰다. 내부는 흠집 없이 깨끗했다.

"바깥쪽 표면에서는 피해자 3호의 혈액이 검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검출된 것이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이준호가 말했다.

"무엇이?"

"장갑을 끼고 칼을 휘둘렀다면, 손가락에서 피가 나든 안 나든 장갑 안쪽에도 흔적이 있어야 한다. 손가락의 땀, 피부 세포, 혈액의 미립자. 최소한 미량의 유기물이 남는다. 내부가 완전히 깨끗하다는 것은 장갑이 범행 후에 그 내부를 세척했다는 뜻이다. 또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장갑이다."

박상목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약간 움직였다.

"당신이 그 장갑을 사용했다면, 왜 안쪽을 세척했는가."

"나는 세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테이블 위의 물건들을 다시 봤다. 운동화의 밑창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다. 강북 지역 토양의 특성상 적갈색이 섞여 있었다. 상계동 폐쇄 건물 주변에서 발견되는 진흙과 일치했다.

"검사 결과를 전부 말해봐."

이준호가 김 대리에게 말했다.

김 대리가 리포트를 넘겼다. 이준호는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검은색 장갑: 바깥쪽에서 피해자 3호 혈액 검출. 안쪽에서는 검출 안 됨. 칼 손잡이: 테이프 감싼 부분에서 O형 혈액 미량 검출. 운동화: 밑창에서 강북 지역 토양 검출. 신발 내부: 발 냄새 흔적, 이준호의 땀 성분 검출.

신발 내부. 그는 그 신발을 신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 신발을 신고 어디를 갔는가? 상계동인가? 다른 곳인가?

"당신의 집에서 이 물건들이 나왔다. 당신의 침실 벽에 피해자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당신의 손톱 아래에서 혈흔이 나왔다. 당신의 신용카드로 범행 지역 근처 편의점에서 물건을 샀다. 당신의 차량이 범행 시간대에 현장 근처에 있었다."

박상목이 하나씩 나열했다.

"모두 상황 증거다."

이준호가 말했다.

"상황 증거도 증거다."

"상황 증거는 구성될 수 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나를 가리키도록."

"그렇다면 누가."

박상목의 목소리에 긴장이 스며들었다. 이준호는 그 긴장을 감지했다. 박상목도 의심하고 있었다.

"모른다."

박상목은 증거 관리실을 나갔다. 복도에서 그가 휴대폰을 들었다. 이준호는 유리창을 통해 그의 입 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최 부장님. 네, 이준호의 집에서 나온 증거들이 확인되었습니다. ... 네, 맞습니다. ... 그런데요, 증거가 너무 명확합니다. 손잡이 내부의 혈액 패턴, 장갑 안쪽의 완벽한 청결. 이것들이 자연스러운 범행의 흔적이라기보다는... 네. 의도적으로 구성된 것처럼 보입니다."

박상목이 잠시 침묵했다.

"그런 가능성도 있을까요? 누군가 이준호를 함정에 빠뜨렸다는 것이요? ...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박상목이 통화를 끝냈다. 그는 다시 증거 관리실로 돌아왔다.

"당신의 필체를 감식해봐야겠다. 수사 노트가 정말 당신이 쓴 것인지 확인하자."

박상목이 말했다.

# 경찰청 복도

경찰청 복도에서 이준호는 서연우와 마주쳤다. 서연우는 새 파일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72시간 동안 자지 않은 피로가 깊게 패여 있었다.

"당신이 진범인가."

서연우가 직접 물었다. 그 질문은 형사의 질문이 아니었다. 동료의 질문이었다.

"나도 모른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서연우의 얼굴이 변했다. 그녀의 눈이 이준호의 얼굴을 스캔했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마에서 턱으로. 그리고 다시 눈으로.

"당신은 지난 48시간 동안 거울 속 자신과 대화했다고 했다."

"네."

"거울 속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자신. 내 모습."

"정말로?"

서연우가 한 발 가까이 섰다. 그녀의 호흡이 들렸다.

"CCTV 영상을 다시 검토했다. 거울 속 자신과 대화하던 당신의 영상을 봤다. 그 영상에서 거울 속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당신과 같은 얼굴이지만, 움직임이 달랐다. 표정이 달랐다."

이준호가 말을 잃었다.

"당신이 그 CCTV 영상을 본 적 있는가."

서연우가 물었다.

"없다."

이준호의 대답이 자동적이었다.

"그 영상에서 당신은 거울 속 자신과 대화하지 않았다. 당신은 거울 속의 다른 사람과 대화했다. 당신과 같은 얼굴이지만, 움직임은 전혀 달랐다."

서연우가 파일을 펼쳤다. 인쇄된 스틸 사진. 거울 앞에 선 이준호의 뒷모습.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얼굴. 같은 얼굴이었지만, 눈의 초점이 달랐다. 입가의 긴장이 달랐다.

"당신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도 확인했다. 지난 3주간 당신의 차가 동시에 두 곳에 있었던 기록들이 있다. 당신이 경찰청에 있을 때 당신의 차가 강남역에 있었던 기록. 당신이 집에 있을 때 당신의 차가 한강 공원에 있었던 기록. GPS 위치 정보가 겹친다."

이준호는 사진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의 얼굴.

"당신이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 또는 당신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도 모르는 범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누군가 당신을 조종하고 있다. 당신 자신이든, 아니면 당신 밖의 누군가든."

서연우가 돌아섰다. 그녀의 뒷모습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 광장

이준호는 경찰청 건물을 나갔다. 밤 10시 42분. 광장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서 있었다. 자신과 같은 얼굴. 자신과 같은 키. 자신과 같은 검은색 코트. 하지만 움직임은 달랐다. 그 인물은 천천히 손을 들어 이준호를 향해 손가락으로 인사했다. 손가락 사이에는 검은색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증거 관리실에서 본 장갑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의 신발은 검은색 운동화였다. 신발 크기 280밀리미터.

이준호는 광장을 건너가려고 했다. 그 순간 자신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이준호.

이준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의 발신자 정보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준호'였다.

"누구냐."

그가 물었다.

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정확히 자신과 같은 음색, 같은 톤, 같은 호흡 리듬.

"넌 누구냐는 질문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목소리가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야 답할 수 있다. 지금 당신 앞에 서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준호는 광장을 건너는 것을 멈추었다. 건너편의 인물은 여전히 손을 들고 있었다. 검은색 장갑을 낀 손. 그 손가락들이 천천히 구부렸다 펼쳤다를 반복했다.

"증거실의 물건들. 당신이 소유하지 않았던 물건들. 당신의 집 벽에 붙어 있던 피해자들의 사진. 당신의 손톱 아래에 있던 혈흔. 모두 누군가의 선물이었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계속했다.

"당신은 범죄자가 아니다. 당신은 관찰자였다. 분석자였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분석을 현실로 만들었을 뿐이다."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휴대폰을 쥔 손가락들이 일정한 리듬으로 진동했다.

"왜."

"왜냐고 묻는가. 당신이 왜인지 이미 알고 있다. 당신의 프로필에 다 있다. 범인의 심리. 범인의 동기. 범인의 욕망. 그 모든 것이 당신이 쓴 글에 있다. 당신이 범인을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신 자신이 그렇기 때문이다."

"내가 범인이 아니라면,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이 되고 싶었던 자. 당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 당신의 어머니 앞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자. 당신의 동료들 앞에서 숨겼던 자."

이준호는 경찰청 건물 벽에 등을 기댔다. 콘크리트의 차가움이 척추를 따라 내려왔다.

"당신을 증거로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모든 증거가 당신을 가리키지만, 그 증거들은 모두 위장된 것이다. 당신의 집에 놓인 물건들. 당신의 손톱 아래의 혈흔. 당신의 위치 기록의 공백. 모두 내가 만든 것이다. 당신의 필체로 쓴 노트. 당신의 신용카드로 구매한 기록. 모두."

이준호는 광장을 다시 바라봤다. 건너편의 인물은 이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는 것처럼.

"당신은 나를 빠져나가게 해주려는 건가."

"아니다. 나는 당신을 빠져나가게 해주지 않는다. 나는 당신을 증거 위에 놓는다. 증거 아래에 놓는다. 증거 안에 놓는다. 당신은 증거가 되고, 증거는 당신이 되고, 모든 것이 뒤섞인다. 그 혼란 속에서 당신은 자신이 범인인지 피해자인지 분석자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전화 너머의 숨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숨소리와 정확히 같은 숨소리. 하지만 그것은 균등했다. 차분했다. 두려움이 없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당신 앞에 서 있는 것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 거울 속의 나인지, 아니면 거울 밖의 나인지. 그리고 그것을 확인할 때 당신은 이미 범죄자가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자신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협박인가."

"아니다. 이건 선택지의 제거다."

전화가 끊어졌다.

이준호의 귀에는 여전히 그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 그러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

그는 광장을 건너갔다. 천천히. 한 발씩. 건너편의 인물은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색 코트. 검은색 장갑. 검은색 운동화. 그리고 자신과 같은 얼굴.

거리가 10미터로 줄었다.

5미터.

3미터.

그 순간 인물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준호는 그 웃음을 들었다. 자신의 웃음이 아니었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자유로운 웃음이었다.

"당신이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물이 말했다. 목소리가 아닌 입으로 직접.

"나는 당신이다. 당신은 나다. 당신이 나를 잡는 것은 당신이 자신을 잡는 것이고, 나를 죽이는 것은 당신이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이준호는 손을 뻗었다. 그 인물을 붙잡으려고.

인물의 윤곽이 흐릿해졌다. 마치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이준호의 손은 공중을 헤맸다. 손가락이 무언가를 스쳤지만 그것은 실체가 아니었다.

동시에 경찰청 건물 뒤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구급차 사이렌. 경찰차 사이렌. 여러 대가 동시에.

이준호는 돌아섰다. 경찰청 건물로 뛰어갔다. 입구에서 경찰들이 뛰어나오고 있었다. 누군가를 들고.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데는 1초가 걸렸다.

박상목이었다. 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깊은 상처. 칼로 그은 자국. 그리고 박상목의 손에는 여전히 검은색 장갑이 쥐어져 있었다.

"이준호다. 이준호가 했다."

박상목이 피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봤다. 유리창에서. 내가 봤다."

하지만 그의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이준호는 경찰들과 마주쳤다. 경찰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손에는 총이 있었다.

"움직이지 마."

경찰이 외쳤다.

이준호는 손을 들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이준호.

경찰들의 얼굴이 변했다. 그들의 손이 총으로 향했다. 사이렌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경찰청 광장의 모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사이렌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박상목은 계속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당신의 뒤에 있는 것이 보이는가."

경찰이 외쳤다.

이준호는 천천히 돌아섰다. 경찰청 건물의 유리창. 그 유리창에 비친 형상이 두 개로 분열되어 보였다. 겹쳐 있었다. 마치 같은 자리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처럼. 그것은 증거 관리실의 사진과 같은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형상 중 하나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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