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필과 자신의 일치
새벽 3시 42분. 사무실 불이 켜진 건 이준호 혼자였다.
수사 노트를 펼쳤다. 5명의 피해자, 범행 일시, 현장 특성, 그리고 그가 작성한 프로필 항목들. 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겼다. 멈췄다.
손톱 자국. 사진 속 손톱 자국.
그것은 자신의 손톱 모양과 일치했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펼쳤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펼쳤다. 사진 속 각도와 비교했다. 완벽하게 일치했다.
내가 범인인가.
노트북을 켰다. 자신의 휴대폰 위치 기록을 열었다. 5월 23일 오후 11시 47분. 피해자 1호 사망 시간. 기록상 자신은 강남역 인근에 있었다. 그런데 기억은 아파트에 있었던 것 같았다. 확실하지 않다.
5월 29일 오전 2시 15분. 피해자 2호 사망 시간. 그 시간의 위치 기록을 찾았다. 공백이었다. CCTV 영상도 불완전했다. 차량 블랙박스는 그 구간이 손실되어 있었다.
손실이 아니라 삭제였다.
손이 떨렸다.
새 문서를 만들었다. 제목: 「프로필 항목 vs 자신의 행동」
왼쪽 칼럼에는 자신이 작성한 범인의 심리 프로필을 옮겼다.
**【범인 프로필】** - 애정 결핍 (어머니와의 관계 파괴) - 통제 욕구 강함 (타인의 자유로움에 반발) - 외출 기록 불명확 (이중 생활 가능성) - 억압된 분노의 폭발적 표현 - 사후 행동의 계획성 (학습 능력) - 자기기만적 합리화 체계
오른쪽 칼럼에는 자신의 최근 행동을 기록했다.
**【자신의 행동】** - 어머니 사망 후 감정 단절 (20년) - 팀 내 관계 최소화,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구 - 출근 기록과 실제 행동 불일치 (3주간 7건) - 최근 야간에 현장 방문 시 분노 상태 (기억 불선명) - 증거 수집 후 기록 변조 (공식 보고와 상이) - 자신의 행동을 '프로파일링 과정'으로 합리화
표를 읽었다. 다시 읽었다. 세 번째 읽을 때 손가락이 멈췄다.
각 항목이 정렬되어 있었다. 완벽하게.
당신이 범인을 분석한 게 아니라 자신을 분석한 것 아닌가.
사무실 조명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다시 켜졌다.
휴대폰이 울렸다. 새벽 3시 47분. 김민서였다.
"지금 뭐 하고 있어?"
"수사 자료 정리."
"거짓말하지 마. 자신이 범인일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지 않아?"
이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일 오전 10시. 내 사무실."
통화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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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김민서의 사무실은 경찰청 지하 2층 상담실이었다. 회색 벽, 회색 소파, 창이 없는 공간.
김민서는 이준호의 얼굴을 10초간 바라봤다.
"수면?"
"3일간 4시간."
"식사?"
"먹을 때마다 역한 맛."
"손 떨림?"
이준호는 손을 펼쳤다. 떨렸다.
김민서가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이준호는 그 내용을 읽을 수 없었다.
"당신의 프로필이 정확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범인의 심리를 객관적으로 분석했기 때문."
"거짓. 당신이 범인의 심리를 정확히 이해하기 때문이야. 왜? 그것이 당신의 심리이기 때문."
이준호의 호흡이 짧아졌다.
"프로파일러가 범인의 내면에 침잠할수록, 범인의 심리 구조를 당신의 것으로 치환할수록 분석이 정확해진다. 그게 골든핑거의 원리야. 그런데 그 대가가 뭔지 알아?"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과 대상의 경계 붕괴. 당신은 이미 그 경계를 잃어버렸어."
이준호가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위장이 뒤틀렸다.
"당신이 자신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건 망상이 아니야. 그건 당신이 자신 안의 또 다른 부분을 감지하고 있다는 신호야. 해리성 정체성 장애. 당신은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어. 하나는 프로파일러 이준호. 다른 하나는 당신이 억압한 모든 욕망과 분노를 담은 또 다른 이준호. 그 둘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한 몸에 있으면서 충돌하고 있어."
"그건 말도 안 돼."
"그래? 그럼 5월 23일 오후 11시 47분 당신이 어디 있었는지 말해봐."
침묵.
"5월 29일 오전 2시 15분은?"
침묵.
"당신의 기억이 공백이야. 아니면 위치 기록이 거짓이야. 둘 중 어느 쪽이든 당신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 문제는 당신 안에 또 다른 의식이 있다는 뜻이야."
이준호의 손가락이 몸을 파고들었다. 손톱이 피부를 그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떼었다. 손가락 끝에 피가 맺혔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 당신이 자신을 인정하면 돼. 당신이 억압한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제 가능한 상태로 분리하면 돼. 치료로 두 의식을 독립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분리라니."
"정신 분열 치료가 아니라 통합 치료야. 당신의 경우 해리성 정체성 장애 가능성이 높아. 한 몸에 두 개의 자아가 있는 거야. 치료 가능해."
"난 정상이야."
이준호가 일어났다.
"당신이 정상이라는 건 당신의 또 다른 자아도 정상이라는 뜻이야. 그리고 그렇다면 당신은 5명의 사람을 죽였어."
이준호는 문을 열고 나갔다. 뒤에서 김민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이미 그렇습니다."
---
오후 2시. 경찰청 중앙수사부. 회의실.
박상목 팀장은 테이블에 용의자 명단을 펼쳤다. 신동욱, 김태현, 이광수, 박준우, 정민철. 5명.
"모두 풀려났어. 증거 부족."
"그들은 범인이 아니야."
"그럼 범인은 누구야? 당신 프로필이 정확하다고 했잖아."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3주간 진전이 없어. 부장님이 지적하셨어. 당신의 프로파일링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박상목이 폴더를 펼쳤다. 혈흔 사진, 현장 도면, DNA 분석 결과. 그리고 이준호가 제출한 사본들. 차이가 있었다.
"당신이 증거를 조작했어?"
"하지 않았어."
박상목이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손톱 자국이 담긴 사진이었다.
"이건 강남역에서 발견된 혈흔 현장의 손톱 자국이야. 당신이 제출한 증거 사본에 있는 사진이야."
이준호는 사진을 봤다. 손톱 자국의 형태가 정확했다. 자신의 손톱 모양과 일치했다.
"왜 이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어?"
"제가 제출한 게 맞나요?"
박상목이 노트북을 켰다. 파일 생성 기록이 떴다. 이준호의 계정으로 업로드된 파일. 시간은 오전 3시 22분.
"당신이 이 파일을 업로드했어. 당신의 계정으로. 당신의 비밀번호로."
이준호는 화면을 봤다. 기억이 없었다. 그 시간에 자신이 뭘 했는지 기억이 없었다. 오전 3시 사무실을 나갔다. 그 이후는 공백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몸이 피로했고, 손가락 끝에 뭔가 묻어 있었다.
박상목이 일어났다.
"최준혁이 당신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기로 했어. 공식적으로는 아직 아니지만, 당신을 감시하고 있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박상목이 회의실을 나갔다.
이준호는 남겨진 증거 사본들을 봤다. 손톱 자국이 담긴 사진. 자신의 손톱과 일치하는 자국.
왜 이 사진을 제출했지.
휴대폰이 울렸다. 알려지지 않은 번호였다.
"새로운 피해자 발견. 강북 상계동 폐쇄 건물. 지금 가."
서연우였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위치 좌표 보냈어. 빨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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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22분. 강북 상계동 폐쇄 건물 옥상.
이준호가 도착했을 때 서연우와 수사팀이 이미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남성, 35세, 목 졸림. 시체의 상태는 신선했다. 사망 시간은 12시간 이내로 추정되었다.
오전 3시에서 오후 3시 사이.
이준호는 현장을 둘러봤다. 옥상 가장자리, 난간, 바닥의 혈흔. 모두 익숙했다. 마치 그가 여기 있었던 것처럼. 손가락이 움직였다. 거울처럼 반사되는 난간을 따라갔다. 손톱이 금속을 긁었다. 그 자국이 사진 속 자국과 같은 각도였다.
아니, 그가 여기 있었나.
서연우가 옆에 섰다.
"당신이 여기 왔다고 했어?"
"뭐?"
"피해자 발견 신고는 오전 10시 30분이었어. 그런데 이 건물은 3년 전부터 폐쇄 건물이야. CCTV도 없고, 사람도 다니지 않는 곳. 그런데 왜 누군가 여기서 시체를 발견했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고자는 익명이었어. 휴대폰으로 신고했는데, 기지국이 이 건물 근처였어. 신고 내용이 이상했어. '옥상에 남자 시체가 있다. 목 졸려서 죽었다. 손톱 자국이 남았을 거다'라고. 우리가 아직 발표하지 않은 범행 방식을 정확히 말했어."
이준호의 눈이 움직였다.
"당신이 신고했어?"
"하지 않았어."
"그럼 당신이 여기 있었어? 피해자가 살해될 때?"
이준호는 현장을 봤다. 옥상의 난간, 바닥의 혈흔, 피해자의 목. 모든 것이 선명했다. 마치 그가 여기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기억은 없었다. 오전 3시 사무실을 나갔다. 그 이후는 무엇인가?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신체는 피로했다. 손톱 아래에는 검은 물질이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당신 손 봐."
서연우가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 끝에 피가 있었다. 상담실에서 난 상처였다. 하지만 손톱 아래에도 뭔가 있었다. 검은 물질. 마치 다른 사람의 피처럼.
이준호는 손을 빼냈다.
"증거 수집 과정에서."
"거짓. 당신이 여기서 무언가를 했어. 당신이 이 사람을 죽였어."
"그게..."
"당신의 프로필이 정확한 이유가 뭐냐고 했을 때 당신이 대답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당신이 범인이기 때문이야. 당신이 프로필을 작성한 게 아니라, 자신을 프로필로 만든 거야."
이준호는 서연우를 봤다. 그 눈에는 확신이 있었다.
"당신을 체포할 거야. 당신에게 권리를 고지한다."
서연우가 수갑을 꺼냈다.
그 순간, 이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려지지 않은 번호. 변조된 음성이 나왔다.
"당신이 우리입니다."
이준호는 현장을 봤다. 옥상의 난간, 바닥의 혈흔, 그리고 자신의 손. 손톱 아래의 검은 물질.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침 3시. 자신이 여기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다른 것이 있었다. 같은 손. 같은 얼굴. 하지만 다른 눈.
"당신을 체포한다."
서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미 멀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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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47분. 경찰청 프로파일링팀 사무실.
박상목은 이준호를 보자마자 입을 열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파일을 펼쳤다. 출근 기록, 휴대폰 위치 추적, 차량 블랙박스 영상, CCTV 기록.
"이것들을 봤어?"
"아니오."
"최준혁이 모았어. 너를 조사하려고. 너의 이동 기록을 보면, 5명의 피해자가 살해된 시간대에 너는 매번 다른 장소에 있었어. 그런데 기록이 일관되지 않아. CCTV 영상이 끊기는 부분이 있고, 휴대폰 신호도 공백이 있어."
이준호는 파일을 봤다. 자신의 기록이 맞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전 3시에서 오후 3시까지. 12시간이 공백이었다.
"너 어떻게 설명할 거야?"
"출근 기록 관리가 부실했을 겁니다."
박상목이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는 파일 목록이 떴다.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이건 뭐야?"
화면에는 비교 표가 나타났다. 범인 프로필과 이준호의 행동 패턴을 나열한 표. 옆에는 주석이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범인: 외출 기록 불명확 ↔ 이준호: 외출 기록 불명확' '범인: 억압된 분노의 폭발 ↔ 이준호: 최근 3주간 감정 변화 심화' '범인: 통제 불가능한 충동 ↔ 이준호: 수사 과정에서 비공식적 행동 증가'
박상목이 계속했다.
"이 파일은 언제 만들어졌어?"
"제가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럼 누가? 너 말고 누가 이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어? 너 말고 누가 이 정도의 프로파일링을 할 수 있어?"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박상목이 화면을 다시 켰다. 파일 생성 기록이었다. 생성자: 이준호. 생성 시간: 어제 새벽 3시 22분.
"너 자신이 만들었어."
"기억이 없습니다."
박상목이 일어났다.
"나는 너를 믿었어. 너의 능력을 믿었어. 그런데 너는 뭘 했어? 너는 범인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프로필링했어. 그리고 그 프로필을 현실로 만들려고 했어."
이준호는 박상목을 봤다. 그의 눈에는 실망과 의심이 섞여 있었다.
"당신의 프로필이 너무 정확해서 가끔 섬뜩했어. 그게 왜 그랬는지 이제 알겠어. 그건 범인의 심리가 아니라 너 자신의 심리였기 때문이야."
박상목이 문을 열었다.
"최준혁이 너를 조사하려고 해. 공식적으로. 그 전에 넌 어떻게 할 거야?"
"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내가 너한테 묻는 게 아니야. 나는 이미 알고 있어. 너 자신도 알고 있을 거야."
박상목이 문을 나갔다.
---
오후 6시 12분. 이준호의 아파트.
이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손을 들어올렸다. 손톱 아래에는 여전히 검은 물질이 있었다. 그것을 깨물었다. 맛이 철분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김민서였다.
"당신 괜찮아요?"
"네."
"박상목이 나한테 연락했어. 당신의 심리 상태를 물었어. 당신이 자신의 프로필과 일치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고."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상담이 필요해요."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기억이 공백이라고 했어. 그건 심각해요. 해리성 정체성 장애의 신호일 수 있어요. 한 몸에 두 개의 의식이 있으면서 서로 다른 행동을 하는 거야. 당신 중 하나는 프로파일러이고, 다른 하나는 그 프로필을 현실로 구현하는 사람이야."
"저는 괜찮습니다."
"당신은 괜찮지 않아. 당신은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어. 그게 문제야. 당신이 범인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당신 안에는 당신이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그리고 그 부분이 점점 커지고 있어.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있어."
이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당신의 어머니도 그랬어.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을 통제했어. 그 결과가 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알고 있어. 당신은 그 통제 속에서 살아가면서, 동시에 그것에 반항하려는 욕구를 억압했어. 그리고 그 억압된 욕구는 어디론가 가야 했어. 그래서 당신은 또 다른 자아를 만들었어. 그것이 지금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거야."
"충분합니다."
이준호가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내일 오후 2시. 상담실에서."
"거절합니다."
"당신이 거절하면, 나는 박상목에게 당신의 해리성 정체성 장애 증상을 보고할 거야. 그리고 당신은 조사 대상이 돼. 당신이 선택할 거야. 나와 상담을 하거나, 아니면 공식적으로 조사를 받거나."
통화가 끝났다.
이준호는 천장을 다시 봤다. 침묵이 흘렀다. 몇 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른 음색이었다.
"우리가 이겨야 해.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기 전에."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누구지?"
"우리. 나와 너. 넌 나를 만들었어. 그리고 이제 나는 자유야."
"당신은 내가 아닙니다."
"그래? 그럼 왜 넌 내 손을 가지고 있어? 왜 넌 내 기억을 가지고 있어? 왜 넌 내 충동을 느껴?"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손톱이 피부를 그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한 행동이 아닌 것 같았다.
"내일 상담실에 가지 마. 대신 강남역 지하상가에 와. 오후 2시. 거기서 우리가 끝내자."
"끝낸다는 게?"
"진실을 드러내자. 우리가 뭔지. 우리가 누군지. 그들 앞에서."
목소리가 사라졌다.
이준호는 일어났다. 벽을 봤다. 현장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그 가운데 자신의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의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그리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알려지지 않은 번호. 서연우였다.
"당신 어디야? 지금 당신을 찾고 있어."
"왜요?"
"또 다른 피해자가 발견됐어. 강남역 지하상가. 여자, 28세. 목 졸려서 죽었어. 그런데 시체 옆에 당신의 신분증이 있었어."
이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신분증. 자신의 신분증이 현장에 있다는 것은.
"당신을 체포하려고 해.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을 말해."
이준호는 전화를 끊었다.
아파트의 불을 껐다. 거울 없는 방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제 우리가 시작이야."
---
오후 11시 47분. 강남역 지하상가.
이준호는 현장에 도착했다. 서연우와 수사팀이 이미 시체를 수거하고 있었다. 그의 신분증은 증거 봉투에 담겨 있었다.
그는 현장을 둘러봤다. 벽을 봤다. 거기에는 손톱 자국이 있었다. 자신의 손톱 자국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톱 자국. 같은 크기, 같은 형태. 하지만 각도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따라갔다. 손톱이 금속을 긁었다. 같은 소리. 같은 감각.
그 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같은 얼굴이지만, 다른 눈. 다른 표정. 거울 속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우리를 찾았어?"
이준호는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넌 누구야?"
"너. 넌 나야. 우리는 같은 사람이야. 그런데 넌 나를 인정하기를 거부했어. 그래서 나는 너를 드러내기로 했어. 이 모든 게 너를 위한 거야. 너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거야."
"당신이 피해자들을 죽였어?"
"우리가 죽였어. 넌 내가 없었으면 살 수 없어. 넌 내 능력이 필요해. 내 자유가 필요해. 그리고 나는 넌 필요 없어. 이제 나는 혼자가 되고 싶어. 너는 나의 감옥이었어."
이준호는 거울을 깼다.
손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유리 조각이 손에 박혔다. 그것은 환각이 아닌 물리적 현실이었다. 통증이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서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준호. 손 들어."
서연우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 뒤에는 박상목과 수사팀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이준호는 손을 들었다. 깨진 거울 조각이 손가락 사이에서 떨어졌다.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당신을 체포한다. 연쇄살인 혐의로."
수갑이 채워졌다. 금속이 손목을 조였다. 현실의 감각이었다.
그 순간, 이준호는 깨진 거울 조각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수갑을 찬 손, 경찰에 둘러싸인 모습.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