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프로필의 정교함

차가운 형광등 아래 이준호는 깨어 있었다. 72시간째.

손가락이 떨렸다.

책상 위에 5명의 피해자 사진이 시간 순서대로 펼쳐져 있었다. 강남역 지하상가의 28세 여성. 강북 아파트 단지의 34세 여성. 한강 공원의 31세 남성. 폐쇄 빌딩 옥상의 25세 여성. 도심 숙박업소의 29세 남성. 각 사진 옆에는 손으로 쓴 메모가 붙어 있었다. 접근 방식. 통제 수준. 사후 처리의 정교함.

이준호는 노트북 화면을 켰다. 엑셀 파일. 행 1부터 행 847까지. 각 행에는 수치가 있었다. 피해자 1호의 질식 시간. 피해자 2호의 칼 상처 개수. 피해자 3호의 타격 부위별 강도. 모두 자신이 현장에서 직접 측정한 것들이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패턴이 보였다. 72시간을 깨어 있으면서 뇌의 표층이 벗겨지니 패턴이 드러났다. 5명의 피해자 선택에는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이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명확했다. 여성 피해자들은 모두 남성 피해자보다 먼저 선택되었다. 여성 3명, 남성 2명. 그리고 남성 피해자가 선택되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히 여성 피해자 3명 살해 이후였다. 범인이 뭔가를 깨달았다. 자신의 욕구가 여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준호는 노트에 단 한 문장을 썼다.

"범인은 여성 혐오를 통해 통제를 경험했으나, 그것이 해결책이 아님을 학습했다."

다음 단계는 더 깊었다. 왜 여성인가. 왜 처음 선택은 강남역 지하상가인가. 왜 그곳에서 직설적인 목졸림을 선택했는가. 왜 나중으로 갈수록 더 정교해지는가.

이준호는 현장 사진을 다시 들었다. 피해자 1호의 목에 남은 자국. 흔적이 일정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시작했다가 왼손으로 마무리했다. 손가락의 깊이에서 드러났다. 이는 범인이 처음에 확신이 없었음을 의미했다. 주저했다. 그리고 중간에 결정을 내렸다. 계속하기로.

왜. 무엇이 그 순간 그의 결정을 바꿨는가.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범인이 되었다.

강남역 지하상가. 밤 11시 47분. 피해자 여성이 지나간다. 흰색 코트, 검은 바지, 귀에 이어폰. 범인의 눈에는 무엇이 들어오는가. 그녀의 얼굴이 아니다. 그녀의 목이다. 목에서 보이는 피부. 그것을 누르고 싶은 욕망. 하지만 누르기 전에 선택이 필요하다. 지금 해야 하는가. 지금이 맞는가.

그 순간 피해자가 뒤돌아본다. 눈이 마주친다. 범인은 그 눈에서 무엇을 본다. 공포. 인식. 대항. 그 순간 범인의 손이 움직인다.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반사. 욕망이 제어를 벗어난 순간.

이준호는 눈을 떴다.

노트에 다시 썼다.

"초기 범행의 격렬함은 통제의 상실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 범인은 자신의 욕망이 통제 불가능함을 깨달았고, 그것을 분노로 표현했다. 그 분노는 여성에게 향했다. 왜인가. 범인은 어머니로부터 거부당했을 것이다. 심각한 거부. 존재 자체의 거부."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빨라졌다.

피해자 2호. 사전 추적 흔적. 이는 범인이 학습했음을 의미한다. 첫 번째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웠다.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피해자 3호. 남성. 범인이 처음 남성을 선택한 이유. 여성 혐오는 거짓이었나. 아니다. 범인은 학습 중이다. 여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통제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피해자 4호. 추락사로 위장. 이제 범인은 정교하다. 그의 욕망이 조직화되었다. 계획, 실행, 은폐. 삼단계 프로세스가 완성되었다.

피해자 5호. 질식. 처음 살해 방식의 반복. 왜 돌아왔는가. 범인이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또는 자신감 과다. 처음 방식이 자신에게 가장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준호는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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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목 팀장은 오후 3시에 도착했다. 회의실 문을 닫고 이준호의 프로필을 읽기 시작했다. 20페이지. A4 용지 양면. 손글씨와 타이핑이 섞여 있었다.

"범인은 어린 시절 심각한 애정 결핍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특히 모성적 관심의 결핍. 이는 프로필의 기초입니다."

이준호는 서 있었다. 책상 반대편에 서서 자신의 분석을 설명했다.

"5명의 피해자 중 3명이 여성입니다. 여성 피해자 선택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모두 도시 외곽의 반은폐 공간에서 선택되었습니다. 강남역 지하상가, 강북 아파트 단지, 폐쇄 빌딩 옥상. 범인은 '보이지 않는 곳'을 선호합니다. 이는 그의 행동이 은폐되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박상목은 페이지를 넘겼다.

"범인의 살상 방식도 진화합니다. 초기에는 격렬합니다. 목졸림, 무분별한 칼 상처.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정교해집니다. 타격 부위의 정확성, 추락사 위장, 시체 은폐의 신중함. 이는 범인이 자신의 행동을 학습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박상목은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프로필을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용의자 소환 단계까지 갈 수 있겠습니다."

박상목이 읽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페이지를 덮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준호는 마지막 페이지를 가리켰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범인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거부당했을 것입니다. 심각한 거부. 존재 자체의 거부. 이 거부감이 모든 여성 피해자 선택의 근원입니다. 범인은 어머니를 반복해서 살해하고 있습니다. 매번 다른 여성의 몸으로."

박상목의 손이 멈췄다. 그는 이준호를 올려다봤다.

"당신의 프로필이 정확해서 가끔 섬뜩합니다."

그의 표정이 불편했다. 칭찬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불안감. 의심.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상목은 프로필을 덮었다. 그리고 이준호를 마주봤다.

"이 정도면 용의자 소환 단계입니다. 하지만 증거가 필요합니다. 프로필만으로는 법정에 설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최근 3주간 증거 열람이 많습니다. 시스템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상목은 일어났다. "계속 진행하세요. 하지만 절차를 지키세요. 나에게 보고하고, 그 다음에 행동하세요. 다음 단계가 뭔지 먼저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박상목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손가락이 책상 모서리를 움켜잡았다. 마치 자신을 붙잡으려는 듯.

박상목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이미 복도로 나가고 있었다.

이준호는 혼자 남았다. 프로필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그는 손을 들었다. 펼쳤다. 다시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 사이에 흰색 분말이 묻어 있었다. 책상 모서리의 석고.

그는 손을 들었다. 들었다 놨다. 다시 들었다.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다봤다. 무언가가 손가락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서연우는 수사팀의 신입이었다. 3개월 차. 그는 이준호를 마주 앉혔다.

"프로파일링 완료되셨습니까?"

이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네. 박상목 팀장에게 제출했습니다."

서연우는 노트를 펼쳤다. 손에 들린 것은 차량 추적 기록이었다.

"혹시 이거 보셨습니까? 용의자 이준호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 말입니다."

이준호의 몸이 경직됐다.

"블랙박스 영상?"

"네. 피해자 2호 사건 당일 오전 1시 14분 구간이 결손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30분. 카메라가 먹통이었어요. 정비 기록도 없고요. 그런데 이상한 게, 그 30분 전후로는 정상 작동합니다."

서연우의 눈이 이준호를 향했다. 호기심이 가득했다.

"의도적으로 조작한 거 아닐까요?"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책상 아래에서 움직였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아, 그리고 피해자 3호 사건 당일 오후 8시 23분 구간도 마찬가지입니다. 30분 결손. 정확히 같은 길이. 확률이 낮지 않습니까?"

서연우는 다시 노트를 넘겼다.

"이런 패턴이 5건 모두에서 나타납니다. 매번 30분. 매번 범행 발생 시간대. 이건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준호는 창문을 봤다. 밖의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좋은 지적입니다. 수사팀에 보고하세요."

"이미 했습니다. 박상목 팀장이 당신에게 먼저 알리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프로파일링을 완료했으니까요."

서연우는 일어났다. 그리고 이준호를 마주봤다.

"혹시 당신이 뭔가 알고 계신 건 아닙니까?"

"무엇을 알겠습니까?"

"용의자가 누군지."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연우는 문을 향해 갔다. 그리고 멈췄다.

"프로파일이 정확하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의 프로파일이. 그럼 용의자는 당신이 묘사한 그런 사람이겠네요. 어머니로부터 거부당한. 통제 욕구가 강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서연우는 나갔다. 문이 닫혔다.

이준호는 혼자 남았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책상 위의 펜을 들었다. 놨다. 다시 들었다. 손가락이 펜을 집으려다 멈췄다. 그것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손인 것처럼.

---

김민서는 경찰청 자문 심리사였다. 과거에는 이준호의 치료사였다. 4년 전까지.

"당신 언제 마지막으로 잤습니까?"

그녀는 이준호를 마주 앉혔다. 사무실 책상 위에 현장 사진들이 여전히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보고 눈을 찡그렸다.

"어제 밤 11시쯤."

"지금 몇 시입니까?"

"오후 4시입니다."

"그럼 17시간입니다. 그 이전은?"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민서는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파일을 켰다. 이준호의 이름이 제목이었다.

"당신의 수면 패턴을 분석했습니다. 지난 3주간 평균 수면 시간은 3.2시간입니다."

"사건이 진행 중입니다."

"당신의 심박 수도 분석했습니다. 경찰청 건강 검진 데이터입니다. 3주 전 평균 심박 수는 분당 72회였습니다. 현재는 분당 94회입니다."

이준호는 창문을 봤다. 서울의 오후 햇빛이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당신이 범인의 심리에 너무 깊이 침잠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범인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뇌가 범인의 뇌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책상 위의 펜을 잡았다. 놨다. 다시 잡았다.

김민서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계속했다.

"당신의 프로필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고 있습니다. 80% 이상의 명중률. 하지만 그 정확성이 어디서 오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심리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문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그것이 전문적인 의견입니다. 당신은 4년 전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당신이 충분히 회복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이 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준호는 일어났다. "당신은 이 사건과 무관합니다."

"나는 당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신의 정신 상태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무언가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그것이 분노로 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진단은 끝났습니까?"

"아직입니다. 당신의 최근 행동을 보면—"

"저는 전문 심리 상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건을 해결해야 합니다."

김민서는 일어났다. 그리고 이준호를 마주봤다. 그녀의 눈에는 동정이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

"당신은 67번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3주간. 그 중 42번은 공식 기록에 없습니다. CCTV 영상으로만 확인됩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몇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혼자."

이준호의 호흡이 변했다. 깊어졌다. 김민서는 그것을 봤다.

"당신이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녀는 말을 멈췄다. 침묵이 흘렀다. 길고 무거운 침묵. 이준호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게 무슨—"

"당신의 기억에 공백이 있다는 뜻입니다."

김민서의 목소리가 낮았다. 마치 확인하듯.

이준호는 창문을 봤다. 손가락을 펼쳤다. 다시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작은 흙가루 같은 것. 또는 갈색 자국.

그는 손을 들었다. 들었다 놨다. 다시 들었다.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사이에 묻은 무언가를 보고 경악했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당신이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김민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준호는 손을 닫았다.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책상 아래로 내렸다.

"이것은 전문 치료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거부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에게."

"아니입니다."

"당신의 상태가 악화되면 당신은 위험해집니다. 그리고 당신 주변의 사람들도 위험해집니다."

이준호는 이미 문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했다.

"당신이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당신 자신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무엇을 발견할 것 같습니까?"

이준호는 문을 열었다. 닫혔다. 김민서는 혼자 남았다.

---

밤 10시, 이준호의 아파트.

벽에는 현장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자신의 얼굴 사진이 있었다. 3년 전 신분증 사진. 표정이 없었다.

이준호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위에는 엑셀 파일이 떠 있었다. 그의 출근 기록. 시스템에 기록된 모든 출근 시간.

그는 다른 탭을 열었다. 범행 발생 일시.

피해자 1호. 23일 전, 오후 11시 47분. 그의 출근 기록: 오전 9시 12분.

피해자 2호. 17일 전, 오전 1시 14분. 그의 출근 기록: 오전 8시 37분.

피해자 3호. 11일 전, 오후 8시 23분. 그의 출근 기록: 오전 7시 59분.

피해자 4호. 5일 전, 오전 3시 41분. 그의 출근 기록: 오전 10시 22분.

피해자 5호. 1일 전, 오후 10시 19분. 그의 출근 기록: 오전 9시 14분.

모두 맞지 않았다. 범행 시간에 그는 집에 있었다. 또는 다른 곳에 있었다. 출근 기록은 출근 시간만 기록했다. 그 이전은 기록되지 않았다.

이준호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했다. 차량 위치 추적 데이터를 켰다. GPS 기록. 지난 3주간.

공백이 있었다. 여러 개. 각 범행 발생 시간대에.

그는 손가락을 멈췄다. 화면을 들었다 놨다. 다시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일기장을 폈다. 손으로 쓴 기록들. 지난 3주간.

"내가 그를 만들었는가, 아니면 그가 나를 드러냈는가."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 있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다시 반복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새로운 문장들이 끼어 있었다.

"그가 나라면 나는 누구인가."

"기억이 없다. 그 시간들이 없다."

"손가락이 떨린다. 왜 떨리는가."

이준호의 손이 멈췄다. 펜을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문장을 썼다.

"만약 그가 나라면."

펜을 멈췄다. 손가락이 떨렸다.

"만약 그가 나라면, 나는 누구인가."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키보드를 향해. 그는 노트북을 켰다. 증거 관리 시스템에 접속했다. 자신의 권한 레벨로. 프로파일러 권한. 거의 모든 증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

그는 검색창에 입력했다.

"이준호. 범행 일시 위치 기록."

시스템이 로딩했다. 그리고 결과를 표시했다.

"검색 결과 없음."

이준호는 다시 검색했다. "이준호. 범행 현장 방문 기록."

"검색 결과 없음."

그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 사진을 보고 있는 벽을 봤다.

손이 움직였다. 펜을 들고. 일기장에.

"내가 그를 만들었는가, 아니면 그가 나를 드러냈는가."

펜이 멈췄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아니면 우리가 같은 사람인가."

손이 떨렸다. 펜이 떨어졌다. 종이 위에 잉크 자국이 남았다. 검은 얼룩.

이준호는 손을 들었다. 들었다 놨다. 다시 들었다. 그리고 노트북의 검색창을 다시 켰다.

이번에는 다른 검색어를 입력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 증상. 기억 공백."

화면이 로딩했다. 결과가 떴다.

그는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면을 끄지 못했다. 손가락이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증상 목록. 사례 연구. 기억 상실. 인격 분리. 트라우마 반응.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그는 화면을 끄려고 손을 들었다.

그 순간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침실 벽에 붙은 작은 거울. 그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

이준호는 거울을 봤다. 그리고 멈췄다.

거울 속의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손과 다르게. 천천히, 의도적으로. 거울 속의 손가락이 펼쳐졌다 모아졌다를 반복했다. 자신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준호는 눈을 깜빡였다. 다시 봤다.

거울 속의 자신이 현재와 다른 시간대에 있었다.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어두운 복도 같은 곳에서.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형태가 명확하지 않았다. 마치 기억이 흐릿한 것처럼.

손가락이 떨렸다. 노트북이 무릎에서 떨어졌다. 화면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거울만 남았다.

그리고 거울 속의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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