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 속의 피의자
서울 경찰청 중앙수사부 프로파일링팀 사무실. 오후 2시 47분.
박상목 팀장은 이준호의 책상 위에 폴더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폴더를 누르는 순간, 사무실의 공기가 변했다.
"3주 동안 5건."
박상목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강남역 지하상가, 강북 아파트 단지, 한강 공원, 폐쇄 빌딩 옥상, 도심 숙박업소. 피해자는 모두 20대에서 30대 초반. 살해 방식도 다르다."
이준호는 폴더를 열지 않았다.
"첫 번째 피해자는 23일 전. 여성, 28세. 목 졸림으로 추정되는 질식. 현장에서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17일 전. 여성, 34세. 칼로 찔린 상처가 9군데. 세 번째는 11일 전. 남성, 31세. 둔기로 맞은 흔적.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상목이 일시 멈췄다. 이준호는 폴더를 집어 들었다.
"네 번째는 5일 전. 여성, 25세. 폐쇄 빌딩 옥상에서 추락사로 신고됐는데, 부검 결과 추락 전에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다섯 번째는 어제. 남성, 29세. 도시락 배달 기사가 발견했다."
이준호가 폴더를 열었다. 현장 사진들이 나왔다.
첫 번째 사진. 강남역 지하상가. 피해자의 얼굴은 약간 부어 있었고, 눈이 반쯤 떠 있었다. 혀가 튀어나와 있었다.
칼 자국. 9군데의 관통상. 상처의 깊이가 일정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깊었고, 중반으로 갈수록 얕아졌다가 마지막 상처들은 다시 깊어졌다. 번복. 흔들렸다가 다시 확신했다는 뜻.
둔기 폭행. 얼굴의 골격이 함몰되어 있었다. 반복해서 내려친 흔적. 통제 불능의 분노.
추락사. 피해자는 깔끔하게 누워 있었다. 계획적이었다. 신중했다.
질식. 목 주변의 압박 자국. 정확한 흔적. 반복되는 패턴.
이준호는 다섯 장의 사진을 모두 펼쳐 놓고 한눈에 들었다.
"범인은 학습하고 있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초기 범행은 충동적입니다. 거친, 통제되지 않은 분노.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집니다. 네 번째 사건을 보십시오. 추락사로 위장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폭력이 아닙니다. 이건 계획입니다."
박상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번째. 다시 질식으로 돌아왔습니다. 초기 방식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그 방식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이준호가 노트북을 켜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피해자 선택에는 일관성이 없지만, 살해 방식의 진화에는 명확한 패턴이 있습니다. 초기 충동 → 중기 계획 → 후기 숙련. 범인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 체계를 구축했을 겁니다."
박상목이 의자에 앉았다.
"당신의 프로필을 믿겠습니다. 얼마나 필요합니까?"
"현장을 봐야 합니다. 모든 현장을요."
박상목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우 형사가 준비 중입니다. 내일 아침 첫 번째 현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준호가 일어섰다. 박상목도 일어났다. 둘 사이에 몇 초의 침묵이 있었다.
"당신의 프로필이 정확할 때가 있습니다. 가끔 그게 섬뜩합니다."
이준호가 박상목을 바라봤다. 박상목의 표정에는 뭔가가 있었다. 불안감. 혹은 의심.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준호가 사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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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은 오후 6시 12분이었다. 하지만 이준호가 사무실을 떠난 시간은 오후 7시 34분이었다.
박상목의 사무실로 돌아가 현장 사진 원본을 다시 확인했다. 강남역 지하상가의 CCTV 각도. 사각지대. 피해자의 위치. 저항 흔적의 부재.
강북 아파트 단지. 칼 자국. 9군데. 왜 멈췄나. 왜 다시 시작했나. 분노에서 계산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이준호는 노트에 기록했다.
"범인이 아홉 번째 칼을 내려칠 때 느꼈을 것. 해방감. 두려움이 해방감으로 변하는 순간. 자신이 한계를 넘었다는 확인.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자유라는 왜곡된 만족감."
손가락이 멈췄다.
마치 자신이 그 칼을 들고 있었던 것처럼.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그 심리 상태가 명확했다. 너무 명확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자신의 손이 맞나? 글씨가 자신의 필체가 맞나? 의문이 밀려들었다. 손이 여전히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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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214호. 밤 8시 47분.
이준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실의 벽은 비어 있었다. 흰색 벽지. 한 달 전만 해도 그 벽에는 이전 사건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모두 떼어냈다.
그런데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이준호는 노트북을 열고 현장 사진들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다섯 장. 프린터가 작동했다.
용지가 나왔다. 사진들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테이프를 집었다. 벽에 붙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왜 이러고 있지?
손이 계속 움직였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다섯 장의 사진이 벽의 중심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며 붙여졌다.
이준호는 노트북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신원증 사진. 표정이 없는 얼굴. 검은 정장.
인쇄했다.
거실로 돌아왔다. 다섯 장의 현장 사진들의 정확히 중심. 그곳에 자신의 사진을 붙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준호는 한 발 물러섰다. 벽을 바라봤다.
현장 사진들이 자신의 얼굴을 중심으로 원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그 모든 범행이 자신에게서 방사되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이 멈출 수 없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형사님."
음성이 변조되어 있었다. 전자음성 합성.
"누구십니까?"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당신이 이미 알고 있어요. 당신이 쓴 프로필이 있잖아요. 그 프로필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거기 있어요. 전부."
"지금 누구와 통화 중입니까?"
"당신과."
전화가 끊겼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화면을 켜서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발신 번호가 없었다. 기록 자체가 없었다. 마치 그 전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벽을 다시 봤다. 자신의 얼굴이 현장 사진들의 정중앙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흡이 빨라졌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내려놨다. 다시 집어 들었다.
박상목 팀장을 호출했다. 신호음이 울렸다.
"이준호?"
"팀장님. 방금 전화를 받았습니다. 알 수 없는 번호에서. 제 프로필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침묵. 통화 중 잡음만 들렸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집입니다."
"나가세요. 지금 당장. 사무실로 오세요."
"팀장님, 통화 기록이 없습니다. 휴대폰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뭐라고?"
"발신 번호도 없고, 통화 시간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침묵. 박상목의 호흡음.
"그럼 어떻게 알았는데요? 그 전화가 있었다는 걸."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좋은 질문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형사님?"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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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중앙수사부. 프로파일링팀 사무실. 밤 9시 23분.
박상목은 이미 와 있었다. 서연우 형사도. 그리고 팀의 다른 프로파일러 두 명도 모여 있었다.
"당신은 그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박상목이 말했다.
"네?"
"통화 기록이 없다는 것은 당신이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팀장님, 저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당신이 들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당신의 뇌가 그런 신호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서연우가 움직였다. 박상목을 바라봤다.
"혹은 당신이 전화를 했습니다. 당신이 자신에게."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형광등이 윙윙거리고 있었다.
"프로파일을 다시 검토하셨습니까?"
박상목이 파일을 내밀었다. 이준호가 작성한 범인 심리 분석 보고서.
이준호는 페이지를 넘겼다. 자신의 필체. 자신의 분석. 하지만 읽으면서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이것을 자신이 썼나? 페이지를 다시 읽었다. 마치 처음 보는 글처럼.
"범인이 피해자 선택에 일관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박상목이 지적했다.
"그런데 일관성이 있습니다. 모두 당신이 자주 방문하는 지역입니다. 강남역. 강북 아파트 단지. 한강 공원. 폐쇄 빌딩. 도심 숙박업소. 당신의 이동 기록을 보면 이 지역들을 주 3회 이상 방문합니다."
침묵.
"당신의 방문 기록 중 일부는 공식 기록에 없습니다. CCTV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보고서에는 없습니다."
박상목이 파일을 펼쳤다.
"피해자 2호의 범행 시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오후 2시 35분부터 3시 17분. 42분간의 범행."
박상목이 모니터를 돌렸다. 타임스탬프가 표시된 CCTV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사무실 CCTV입니다.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 당신이 없습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당신의 휴대폰 위치 추적 데이터도 확인했습니다. 피해자 2호 범행 시간대에 당신의 휴대폰 신호가 사무실 근처에서 현장 근처로 이동했습니다. 이동 거리 약 8.3km. 소요 시간 약 12분. 차량으로 이동 가능한 거리입니다."
박상목이 또 다른 파일을 꺼냈다.
"피해자 2호 현장의 CCTV입니다. 범행 시간 15분 전. 당신과 동일한 체형의 인물이 현장 근처에 나타났습니다. 검은 정장. 표정 없는 얼굴. 당신의 신원증 사진과 거의 동일합니다."
박상목이 사진을 내밀었다. 이준호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당신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도 확인했습니다. 피해자 2호 범행 시간대의 영상이 결손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42분간."
박상목이 모니터를 다시 조작했다. 타임스탬프 표시가 보였다.
"14:35부터 15:17까지. 그 시간에 당신의 차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그건..."
"당신의 휴대폰 위치 데이터도 그 시간에 공백이 있습니다. 신호 손실이 아닙니다. 데이터 자체가 삭제되었습니다. 누가 삭제했을까요?"
서연우가 일어났다.
"팀장님, 이건 너무..."
"조용히 하세요."
박상목이 손을 들었다.
이준호는 테이블을 짚고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저는... 저는..."
"당신은 무엇입니까?"
박상목이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범인을 알았는데요? 당신의 프로필이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데요? 당신이 범인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당신 안에 범인이 있기 때문입니까?"
이준호는 사무실 문으로 향했다. 서연우가 막아섰다.
"형사님, 진정하세요."
이준호는 그를 밀어냈다. 약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저는... 가야 합니다."
"어디로?"
박상목이 물었다.
이준호는 멈춰 섰다.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그는 돌아섰다. 박상목의 눈을 마주쳤다. 박상목의 눈에는 연민이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
이준호는 문을 열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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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중앙수사부. 프로파일링팀 사무실. 밤 9시 23분.
이준호는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불이 꺼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책상 위의 물건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노트북. 펜. 그리고 자신이 작성한 범인 심리 분석 보고서.
이준호는 의자에 앉았다.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했다.
"범인은 학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글이 맞나? 페이지를 넘겼다. 다음 문장. 그 다음 문장.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낯설었다.
"범인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범행 후 자신을 정상인으로 유지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일상을 반복한다. 그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 결과 기억 공백이 발생한다."
이준호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따라갔다.
"의도적 기억 억압이 아닌 무의식적 단절. 그는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오후 2시 35분부터 3시 17분까지.
사무실에 있었다. 분명히 사무실에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에 있었을 수도 있다. 42분. 화장실에서 42분.
아니다. 사무실에 있었다. 자신의 책상에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기억이 없다.
이준호는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손이 여전히 떨렸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통화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자신은 분명히 박상목과 통화했다. 그리고 박상목은 분명히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록이 없다.
이준호는 일어섰다. 사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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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주차장. 밤 9시 47분.
이준호는 자신의 차에 올랐다. 엔진을 켰다. 핸들을 잡았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얼굴. 자신의 얼굴. 표정이 없었다. 눈이 검었다.
이준호는 거울을 조정했다. 거울이 움직였다. 다시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그 얼굴이 입술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준호는 거울을 돌렸다. 거울이 떨어졌다. 바닥에서 깨졌다.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엔진만 울렸다.
휴대폰에 문자가 들어왔다. 발신인 없음.
"당신의 프로필이 정확한 이유를 아세요? 당신이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우리기 때문입니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창밖을 봤다. 밤거리. 사람들. 자동차. 모두가 정상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오직 자신만이 아니었다.
자신만이 벽에 자신의 얼굴을 중앙에 붙이고 있었다.
자신만이 거울 속에서 자신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
자신만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만이...
아니.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