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증거와 선택

조사실의 형광등이 지저귀며 켜졌다. 시간은 오전 9시 42분.

이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응급실 베드 4번에 누워 있는 어머니.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흘러가는 2시간 3분. 그 시간이 끝나면 어머니는 죽을 것이다. 자신이 손을 놓는 순간.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앉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몸은 여기 있고, 정신은 저기 있고, 죽음의 감지는 양쪽을 동시에 재고 있었다.

박영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따라 이민지, 강철준, 이수진이 차례로 입장했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이 놓였다.

"의료윤리위원회의 공식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박영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이미 모든 게 정해진 사람의 무게가 있었다.

이민지가 노트북의 트랙패드를 터치했다. 화면에 표가 나타났다.

**수술 기록 vs 병원 사망 사건**

| 날짜 | 수술 시각 | 환자명 | 사망 시각 | 사망자명 | 시간차 | |------|---------|--------|---------|--------|--------| | 6.14 | 14:22 | 김민준 | 16:25 | 정해인(배우) | 2h 03m | | 6.18 | 09:15 | 박소영 | 11:18 | 이정수(무직) | 2h 03m | | 6.22 | 16:40 | 최준영 | 18:43 | 김미라(간호사) | 2h 03m |

표는 계속 스크롤되었다. 줄은 23개까지 늘어났다. 23번의 수술. 23번의 사망. 23번의 정확히 2시간 3분.

이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반박할 말이 있었다. 하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이민지가 마우스를 움직여 다른 파일을 열었다. 응급실 침대 위의 시신들이 화면을 채웠다. 정해인의 얼굴. 60대 남성의 얼굴. 30대 여성의 얼굴. 각각의 사진 옆에는 의료 기록이 붙어 있었다.

"정해인, 1982년생, 배우. 건강 검진 기록상 심장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데이터를 모으면서 몇 밤을 새웠을 것이다. 자신이 존경하던 의사가 정말로 이런 일을 했다는 증거를 모으면서.

"이정수, 1945년생, 무직. 응급실 내원 전 신체 이상 신고 기록 없음. 김미라, 1987년생, 간호사. 이 병원 직원입니다."

이민지가 다시 표로 돌아갔다.

"이 사람들이 모두 이준호 의사의 수술 정확히 2시간 3분 후에 사망했습니다. 통계학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숫자가 화면에 떠올랐다. 천억분의 일. 조사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준호의 손이 테이블 아래에서 떨렸다. 반박해야 했다. 이 모든 게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하지만 그 말들도 이미 들었을 것이다. 조사실 안의 모두가.

"이것은 의료 과실이 아닙니다."

박영미가 입을 열었다. 숨을 고르는 듯 말을 이었다.

"의료 과실이라면 적어도 의학적 오류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통계는 의학을 초월합니다."

박영미의 눈이 이준호를 향했다. 그 시선이 모든 것을 말했다.

"이것은 거래입니다."

그 단어가 조사실에 떨어졌다. 돌처럼 무거운 단어.

"거래라고요?"

이준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인 것 같지 않았다.

"의료 윤리위원회는 당신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강철준이 처음 입을 열었다. 그의 손가락이 경련하듯 움직였다.

"당신은 환자의 죽음의 시간을 감지하고 연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정확히 2시간 3분 후 다른 누군가가 죽습니다. 이것도 의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강철준이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내가 당신을 키웠습니다. 의료계의 윤리를 가르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 능력을 처음 드러냈을 때, 나는 당신을 제어하려고만 했습니다. 제어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철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제자를 제어할 수 없듯이, 죽음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이 능력은 의료의 본질을 왜곡시킵니다.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 죽음을 초래한다는 모순 속에서, 의사로서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강철준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당신을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스승의 책임입니다."

침묵이 조사실을 채웠다. 이준호는 그 침묵 속에서 스승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아니, 반박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내 능력은 순수한 재능이었습니다. 의도하지 않고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계속 수술을 했습니까?"

이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왜냐하면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수술 이후 다른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민지가 화면을 다시 켰다. 23명의 사망자 사진들이 한 줄로 나열되었다. 각각의 얼굴 옆에는 그들의 가족 정보가 있었다. 배우자, 자녀, 부모. 죽음이 남긴 빈자리들.

"당신이 한 명을 살릴 때마다, 이들이 죽었습니다."

이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 의도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왜 계속했습니까? 왜 멈추지 않았습니까?"

그 질문이 이준호의 가슴을 찔렀다. 왜 멈추지 않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자신의 모든 변명이 무너졌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도, 환자를 살리고 싶었다는 말도. 결국 자신은 알면서도 계속했다. 23번을 알면서도.

이준호의 입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박영미가 폴더를 열었다. 그 안에는 병원 행정 기록들이 있었다.

"이 능력이 의료계 전체에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박영미가 묻지 않고 말했다.

"의료 신뢰 체계가 붕괴됩니다. 모든 의사가 의심받습니다. 모든 수술이 의심받습니다. 사람들은 병원에 가기를 두려워합니다."

박영미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손가락이 딱딱 울렸다.

"따라서 이것은 공식적으로 의료 과실로 기록됩니다. 환자 사망의 원인 불명은 진단 오류로, 당신의 수술 성공은 의료 실수의 결과로. 의료 신뢰를 지키기 위해, 진실은 묻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준호가 물었다.

"의료 윤리 위반으로 면허 정지 1년. 그 이후 재교육과 재심사를 거쳐 복직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수진이 서류를 내밀었다.

"서명하십시오."

이준호는 펜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펜이 종이 위에서 미끄러졌다.

"내 능력을 포기하면 환자들은 누가 살리나요?"

이준호가 물었다.

"다른 의사들이 합니다."

박영미가 답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이 의료의 본질입니다. 기적이 아니라 노력. 완벽함이 아니라 최선."

"그렇다면 내 능력은 의료가 아닌가요?"

이준호가 반문했다. 그 질문 속에는 저항이 있었다. 마지막 저항.

박영미가 일어섰다. 조사실의 창문 너머로 병원의 중정이 보였다. 응급실 입구. 앰뷸런스. 의료진들.

"당신의 능력은 의료가 아닙니다. 의료는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능력은 생명을 거래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대가가 있습니다. 의료에는 그런 대가가 없어야 합니다."

박영미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당신은 의사가 아닙니다. 당신은 죽음의 중개인입니다."

그 말이 이준호의 가슴을 뚫었다. 아니, 이미 뚫려 있던 곳을 다시 한 번 뚫었다. 이번에는 더 깊게.

이준호는 박영미를 바라봤다. 스승의 말도, 동료의 눈물도 외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자신이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강철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의 능력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당신의 어머니도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능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철준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그것은 스승의 목소리가 아니라 의료윤리위원회 위원장의 목소리였다.

펜을 들었다. 서명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펜은 움직였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종이 위에 기록되었다.

조사실을 나왔을 때, 시간은 오후 1시 47분이었다.

이준호는 복도를 걸었다. 계단을 내려갔다. 3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응급실로 향했다.

왜 응급실로 가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발은 응급실로 향했다. 마치 자석처럼.

응급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교통사고. 중증 복부 손상. 생존율 12%.

새로운 외과의가 환자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손목을 잡으려고.

이준호의 발이 멈췄다.

응급실의 의료진들이 그를 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들은 알았다. 그가 더 이상 그들의 동료가 아니라는 것을.

새로운 외과의가 환자의 손목을 잡았다. 손가락이 맥박 위에 내려앉았다. 요골동맥 위의 정확한 지점. 일반적인 방식으로 맥박을 재기 시작했다. 죽음을 감지하지 않은 채로.

모니터 화면에 심박수가 떴다. 분당 48회. 낮지만 아직 신호가 있었다.

이준호는 그 장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 의사는 환자의 죽음의 시간을 모른다. 따라서 저 환자는 죽을 수도 있다. 또는 살 수도 있다. 그것은 의료의 영역이다. 확률의 영역이다. 노력의 영역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저 맥박을 잡으면, 저 환자는 살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2시간 3분 후, 어딘가의 누군가는 죽을 것이다.

이준호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움직이고 싶었다. 환자를 살리고 싶었다. 그것이 의사의 본능이었다. 하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알았기 때문이다. 그 선택의 대가를.

이준호는 응급실 벤치에 앉았다. 손을 내려다봤다. 신의 손이라고 불렸던 그 손.

그 손을 뒤로 감싸 안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수진의 전화였다.

"의사 이준호입니까?"

"네."

"현재 당신의 초감각 능력에 관련된 정보가 정부 기관에 보고되었습니다. 이미 질병관리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그리고 국방부 방위사업청에 보고되었습니다."

이준호의 귀가 울렸다.

"무슨 말씀을?"

"당신의 능력은 더 이상 병원 내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국가 차원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앞으로 정부의 조사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의료 윤리 위반을 넘어서 말입니다."

"그건..."

"조용히 있으십시오. 변호사를 선임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어떤 환자도 만지지 마십시오. 이해하십니까?"

전화가 끊겼다.

응급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의료진들은 새로운 환자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준호를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않기로 했다.

이준호는 일어섰다. 응급실을 나갔다. 병원 로비로. 그리고 병원 밖으로.

서울의 늦가을 햇빛이 얼굴을 비췄다. 따뜻했지만 따뜻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준호."

음성이 먼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 하지만 이곳에서 들릴 리 없는 목소리.

이준호가 뒤를 돌았다.

병원 정문 옆, 벤치에 앉아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약해 보였다. 어제 오전 10시 15분까지 연장받은 죽음의 시간 덕분에 살아 있는 어머니.

"어머니가 어떻게..."

"의사선생님이 말했어. 내가 나가도 된다고."

어머니가 일어났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아들, 이제 쉬어라."

그 말이 이준호의 입을 닫게 했다.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고 있어?"

이준호가 물었다.

"알고 있어."

어머니가 대답했다.

"내가 너를 낳았을 때, 다른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이를 잃었어. 그건 항상 그런 거야. 생명은 항상 무언가와 맞바뀌는 거야."

"그래도..."

"네 손이 정말 신의 손이라면, 신은 지금 너에게 말하고 있는 거야. 멈추라고."

어머니가 이준호를 안았다. 병원 정문 앞에서. 의료진들이 오가는 곳에서.

이준호는 어머니의 등을 쓰다듬었다. 따뜻한 등. 살아 있는 등.

하지만 그 따뜻함 뒤에는 23명의 시체가 있었다.

그 순간, 응급실 내부에서 모니터 경보음이 울렸다. 새로운 환자의 심박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생존율 12%의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생명을 다투고 있었다.

새로운 외과의가 손을 움직였다. 일반적인 기술로. 죽음을 모른 채로.

이준호의 왼손이 떨렸다. 어머니를 놓고 응급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환자의 손목을 잡을 수 있었다. 그 맥박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죽을 것이다.

이준호는 어머니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손가락이 어머니의 손목에 파고들었다. 어머니의 맥박이 느껴졌다.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살아 있음이 느껴졌다.

응급실의 문이 닫혔다.

이준호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놓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선택 속에서, 응급실 어딘가의 모니터가 일직선이 되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하지만 분명히 들렸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손가락이.

"준호?"

어머니가 물었다.

"괜찮아."

이준호가 대답했다. 거짓이었다.

그는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괜찮지 않을 것이었다.

이준호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거리로 걸어 나갔다. 살아 있는 손을 잡은 채로. 그리고 죽음의 감지는 여전히 그의 왼손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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