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응급실의 알람음이 울렸다. 심정지. 다발성 외상. 교통사고 환자.
이준호는 응급 차량 사운드를 듣는 순간 몸이 반응했다. 손가락이 저절로 펴졌다. 응급실 문이 열렸고, 들것 위의 환자가 보였다. 30대 남성. 얼굴은 피로 범벅이었고,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BP 60/40, HR 불규칙. 기흉 의심. 복부 외상 심각합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이준호는 이미 수술실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손을 씻으며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번엔 하지 말자. 맥박을 잡지 말자. 감지하지 말자.
그 환자를 살리지 말자.
가슴이 철렁했다. 의사로서 자신에게 그런 생각이 들다니. 하지만 지난 몇 시간 동안 알게 된 것은 명확했다. 자신의 손이 환자를 살릴 때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죽는다. 그 죽음은 자신이 초래한 것이다. 한석우가 말했다. 살인이라고.
수술복을 입으며 이준호는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
"준호, 빨리!"
마취과 의사 한석우가 문을 두드렸다. 목소리에 긴장이 가득했다. 지난 며칠간 그의 목소리는 항상 그랬다. 두려움. 이준호는 한석우를 보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섰을 때, 환자는 이미 마취 상태였다. 한석우가 무언의 시선으로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말했다. 이번엔 하지 말자고. 제발.
이준호는 수술대 옆에 섰다. 환자의 가슴이 열려 있었다. 내장기가 손상되어 있었다. 폐가 찢어져 있었다. 심낭액이 고여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 환자는 2시간 안에 죽을 것이었다. 생존율 12% 미만. 그 수치는 이준호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이 환자의 맥박.
"메스."
이준호가 손을 펼쳤다. 간호사가 메스를 건넸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메스가 닿는 순간, 손가락이 멈췄다.
"심박수?"
"62에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준호는 손가락을 환자의 경동맥에 대려 하다가 멈췄다. 하지 말자. 감지하지 말자. 그저 수술만 하자. 기술만 사용하자. 능력은 사용하지 말자.
하지만 그 환자는 죽고 있었다.
"심박수 40. 내려갑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석우가 무언가를 주입했다. 아드레날린. 응급약물.
이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환자의 경동맥에 손가락을 대었다.
순간, 세상이 멈췄다.
맥박이 들렸다. 약해진 맥박이. 그리고 그 맥박 속에서 시간이 보였다. 내일 오후 3시 28분. 그 시간, 이 환자는 죽을 것이었다. 생존 가능성 없이.
하지만 이준호의 손이 그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일주일을 더할 수 있다. 한 달을 더할 수 있다.
대신, 누군가가 죽을 것이다.
"준호? 뭐하고 있어?"
한석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준호는 손가락의 떨림을 의식했다. 그 떨림이 환자의 맥박을 따라갔다. 맥박 속으로 들어갔다.
"심박수 올라갑니다!"
간호사가 외쳤다.
이준호는 메스를 들었다. 손가락은 계속 환자의 경동맥에 있었다.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환자의 죽음을 연장하고 있었다. 동시에, 누군가 다른 사람의 죽음을 앞당기고 있었다.
9시간 28분. 그 시간 동안 이준호의 손은 기적을 만들었다.
환자는 살았다.
중환자실로 옮겨질 때, 이준호는 환자의 손을 만지지 않았다. 손가락을 접었다. 주머니에 넣었다. 그 손가락들이 누군가를 죽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복도를 걸어가며 이준호는 휴대폰을 봤다. 오후 1시 47분. 어머니가 보낸 카톡이 있었다.
"오늘 저녁에 집에 와. 반찬 많이 해놨어."
이준호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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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52분.
응급실 알람이 울렸다.
"뇌출혈 의심! 60대 여성! 의식 없음!"
이준호는 로커를 닫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손가락이 움찔했다. 본능적으로.
들것이 응급실을 통과했다.
이준호는 그 들것의 옆으로 걸어갔다.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설명했다. "내원 30분 전 갑작스러운 두통. 의식 급격히 저하. CT 준비 중입니다."
이준호는 들것 옆을 걸으며 환자의 얼굴을 봤다.
손가락이 멈췄다.
회색 단발머리. 주름진 얼굴. 왼쪽 손목의 점.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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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는 응급실 치료실로 뛰어갔다. 아버지가 옆에 있었다. 어머니를 안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준호야!"
아버지가 외쳤다.
이준호는 어머니의 경동맥에 손가락을 대었다. 감지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맥박이 들렸다.
내일 오전 10시 15분.
그 시간, 어머니는 죽을 것이었다.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그것은 지난 4시간 동안의 떨림과는 달랐다. 손가락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준호? 뭐 하는 거야?"
아버지가 물었다.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맥박을 따라가며 계산하고 있었다. 자신이 방금 전 수술을 끝낸 시각. 오후 1시 47분. 그리고 어머니가 응급실에 온 시각. 오후 3시 52분.
정확히 2시간 5분.
자신의 수술 직후, 2시간 5분 뒤, 누군가가 죽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일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니, 어머니가 죽을 시간이 내일 오전 10시 15분이라는 것은, 이미 자신의 능력이 그 죽음을 정해놨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그 환자를 살렸으니까.
"응급 CT 준비됐습니다!"
간호사가 외쳤다. 어머니가 CT실로 이동했다. 이준호는 따라갔다. CT 이미지가 나왔다. 뇌출혈. 지주막하출혈. 응급 수술이 필요했다.
이준호는 응급실 의사에게 말했다. "내가 수술한다."
"이준호? 너 현재 과로 상태잖아. 다른 의사를 불러야—"
"내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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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이준호는 어머니의 머리를 열었다. 손가락을 어머니의 경동맥에 대었다. 감지했다. 내일 오전 10시 15분. 그 죽음을 연장해야 했다.
"BP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석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준호는 한석우를 보지 않았다. 어머니의 맥박에만 집중했다.
능력을 사용했다.
손가락에서 빛이 나왔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실제로는 없는 빛이었지만, 이준호에게는 보였다. 그 빛이 어머니의 뇌실질로 들어갔다. 지혈을 멈추게 했다. 뇌압을 낮췄다.
하지만 동시에, 그 빛이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생명을 빼앗았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메스를 들고 있는 손이 떨렸다.
"준호? 괜찮아?"
한석우가 물었다.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수술을 계속했다. 7시간 42분. 그 시간 동안 이준호는 어머니의 죽음을 연장했다.
어머니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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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이준호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깊은 수면 상태였다. 하지만 맥박이 느껴졌다. 약한 맥박이지만, 계속 뛰고 있었다. 내일 오전 10시 15분까지.
그때까지만.
이준호의 손가락이 어머니의 손을 누르고 있었다. 마치 그 손을 놓으면 어머니가 죽을 것처럼. 마치 자신의 손가락만이 어머니의 죽음을 붙잡고 있을 것처럼.
병원의 모니터가 울렸다.
"응급 환자 사망."
중환자실 간호사가 확인했다. 복도의 스피커에서 음성이 나왔다. "응급실 베드 4번, 환자 사망. 의료진 철수."
그 환자는 오후 3시 47분 응급실에 들어온 교통사고 환자였다. 삼십대 여성. 이준호가 거부했던 그 여성이었다.
이준호의 손이 어머니의 손에서 떨어졌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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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우가 중환자실 복도에서 이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너는..."
한석우가 말을 시작했다가 멈췄다.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배신감이 가득했다.
"어머니를 살리려 했지?"
한석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 누군가를 죽인 거야. 너는... 너는 자신의 어머니를 살리려고 또 누군가를 죽였어."
한석우가 한 발 물러섰다. 이준호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너를 믿었어. 의사로서. 친구로서. 하지만 지금 너는..."
한석우가 말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다만, 그가 돌아서며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이준호의 귀에 박혔다.
"괴물이야."
한석우의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도 이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피가 묻어 있었다. 어머니 손을 잡았을 때 묻은 피였다. 아니면 자신의 피였을까.
구분할 수 없었다.
'괴물이야.'
그 말이 자신을 정의했다. 한석우의 입에서 나온 그 한 마디가 자신을 완전히 재구성했다. 의사가 아니라. 천재가 아니라. 단지 괴물.
그리고 그 괴물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죽였다.
수술실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뇌출혈 부위. 모세혈관이 터져 흐르는 혈액. 그 혈액의 온기. 손가락 끝이 감지한 죽음의 신호. 내일 오전 10시 15분. 그 정확한 시각.
그리고 응급실 베드 4번의 여성이 바로 그 시각에 죽었다.
이준호는 그 죽음을 붙잡았다. 손가락으로 맥박을 누르고, 메스로 혈관을 봉합하고, 지혈제를 주입하며 연장했다. 7시간 42분의 수술. 그 모든 시간 동안 그는 단 하나의 생각만 했다. 어머니를 죽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
의료인으로서의 신념이 아니었다. 아들로서의 본능이었다.
그리고 그 본능이 또 누군가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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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로 내려가는 복도. 이준호의 발걸음이 멈췄다. 응급 환자 사망. 베드 4번.
누구였을까.
응급실은 이미 정리되고 있었다. 베드 4번의 몸은 시체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이준호는 그 얼굴을 보려 했다. 하지만 시트가 덮여 있었다. 나이는 대략 삼십대로 보였다. 여성. 외상이 있었던 것 같았다.
누가 그를 죽게 했는가.
이준호가 죽게 했다.
응급실 간호사가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의사님, 이 환자는 응급입원 당시 생존율이 매우 낮았습니다. 다행히 외과에서..."
이준호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간호사의 눈을 봤다. 그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신의 손이라 불리는 의사. 그 의사의 수술 직후마다 죽음이 따라온다는 의심.
이준호는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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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시 47분.
박영미 병원장이 의료기록실을 열었다. 이민지가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확인했습니다. 이준호 의사의 수술 직후 사망 환자 수가 다시 증가했습니다."
이민지의 목소리도 떨렸다. 그녀는 지난 48시간 동안 수백 개의 의료기록을 대조했다. 통계를 계산했다. 패턴을 찾았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 명확해서 두려워했다.
"지난 6개월간 통계입니다."
태블릿 화면에 숫자들이 떴다. 박영미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직관이 맞았다는 것을 숫자가 증명했다.
"이준호 의사 수술 후 원인 불명 사망 환자: 총 29명. 평균 사망 시간 간격: 2시간 3분. 편차: ±18분."
박영미의 얼굴이 굳었다. 0.00002%.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입니다."
이민지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거의 들릴 정도로 작았다.
"오후 1시 42분, 이준호 의사가 중증 외상 환자 수술을 시작했습니다. 오후 3시 47분, 이준호 의사의 어머니가 응급입원했습니다. 뇌출혈. 원인 불명. 의료기록에는 최근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박영미가 눈을 감았다.
"오후 11시 16분, 응급실 베드 4번의 환자—삼십대 여성, 교통사고 환자—가 원인 모를 다장기 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민지가 화면을 끄고 박영미를 봤다.
"첫 번째 수술 직후 11시간 49분. 두 번째 수술 직후 2분."
박영미는 의자에 앉았다. 창문을 통해 병원 밤하늘을 봤다. 어둠이 깊었다.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민지가 말했다.
"초기에는 무작위였습니다. 낯선 사람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그 패턴이 변했습니다. 응급실 간호사. 행정직원. 그리고 오늘은 응급입원 당시 생존율이 극히 낮았던 환자. 마치 죽음이 이준호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향해 수렴하고 있는 것처럼."
박영미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그것이 어머니에게까지 미쳤습니다."
박영미는 일어섰다. 의료윤리위원회 회장 강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11시가 넘었지만 상관없었다.
"강 회장님, 박영미입니다. 내일 새벽 5시에 임시 회의를 소집해 주십시오. 이준호에 대한 긴급 조사가 필요합니다."
전화 너머에서 강철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입니까?"
"죽음의 패턴입니다. 그것이 명확해졌습니다."
박영미는 전화를 끊었다.
이민지가 여전히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화면에는 여전히 데이터가 떠 있었다. 29명의 죽음. 그 죽음 뒤에 있는 한 명의 의사. 한 명의 손가락.
"의료윤리위원회에서 뭔가 할 수 있을까요?"
이민지가 물었다.
박영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이미 어머니가 죽음의 경계에 있었다. 그리고 이준호는 그 죽음을 붙잡고 있었다.
"만약 이준호가 자신의 어머니를 계속 살리려 한다면?"
이민지가 계속 물었다.
"누가 죽을 것입니까?"
박영미는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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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47분.
이준호는 어머니의 병실 밖 복도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을 물어뜯고 있었다. 피가 났다. 손가락 끝이 빨갛게 되었다.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 물어뜯었다.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시야가 흐려졌다.
내일 오전 10시 15분.
어머니는 그때까지 살아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그 죽음을 붙잡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는?
손가락에서 더 많은 피가 흘렀다. 이상했다. 피가 자신의 것인지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응급실 베드 4번의 여성. 그녀의 피가 이미 자신의 손에 묻어 있는 것은 아닐까.
복도의 모니터가 시간을 알렸다. 새벽 2시 48분.
22시간 27분이 남았다.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그리고 그 죽음을 붙잡기 위해 또 누군가가 죽을 것이다.
이준호는 손가락을 놨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그 떨림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신경계가 거부하는 느낌. 자신의 의지를 거부하는 손가락들.
어머니의 병실에서 모니터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심박음. 생명의 신호. 그 신호도 거짓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이 만든 거짓이었다.
이준호는 일어섰다. 복도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단지 움직여야 했다. 멈추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았다.
중환자실을 나왔다. 외과 병동을 걸었다. 밤의 병원은 다르게 보였다. 어둠이 더 짙었다. 복도의 불빛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응급실로 내려갔다.
응급실은 여전히 바빴다. 밤 시간도 환자들은 들어왔다. 외상. 흉통. 의식 소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환자들.
그 중 한 명이 이준호를 봤다. 젊은 남성. 삼십대. 심근경색.
"의사님!"
그 남성이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살려주세요. 제발."
이준호는 그 손을 뿌리쳤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 손을 잡으면 자신이 그 남성의 죽음을 감지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죽음의 시각을 알면, 자신은 그것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누군가가 죽을 것이다.
"다른 의사를 찾으세요."
이준호가 돌아섰다.
응급실 의료진이 이준호를 이상한 표정으로 봤다. 신의 손이라 불리는 의사가 환자를 거부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준호는 병원 밖으로 나갔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그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신경의 거부. 자신의 선택을 거부하는 몸.
어머니.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22시간 27분.
그리고 그 22시간 동안 또 누군가가 죽을 것이다.
혹은 어머니를 살리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이다. 의료인으로서의 양심이. 아들로서의 본능이.
이준호는 손가락을 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피가 흘렀다.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시야가 흐려졌다.
병원 입구의 표지판이 밤빛에 반짝였다. 서울 세인트 의료원. 그곳은 생명의 전쟁터였다. 그리고 그 전쟁터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었다.
한 명의 의사. 한 명의 손가락. 한 명의 죽음 거래인.
이준호는 병원 문을 밀었다. 들어갈지 돌아설지 선택의 순간이 왔다. 병원 안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병원 밖에는 자신이 거부한 남성 환자가 있었다. 그 남성이 죽으면, 어머니는 살 것이다.
그것이 거래였다.
이준호는 병원으로 다시 들어갔다.
중환자실로 올라가며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내일 오전 10시 15분.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남은 시간.
그리고 그것을 연장하기 위해 또 누가 죽어야 할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병실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자고 있었다. 산소마스크가 얼굴을 덮고 있었다. 모니터에서 규칙적인 심박음이 들렸다.
이준호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맥박을 느꼈다.
죽음의 시각. 내일 오전 10시 15분.
그것을 연장하기 위해 또 누가 죽을 것인가.
이준호는 손가락을 놨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새벽 3시 15분.
어머니가 눈을 떴다.
"준호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약했다.
"너... 괜찮니?"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술이 성공했대. 의사들이 말했어. 넌 정말 훌륭한 의사구나."
어머니가 웃었다. 그 웃음이 이준호의 가슴을 짓눌렀다.
"엄마는 넌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어. 어렸을 때부터. 그런 너를 본 적이 없었어."
어머니가 손을 움직였다. 이준호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고마워. 내 생명을 다시 준 거."
이준호의 눈이 감겼다. 침묵이 병실을 채웠다. 어머니의 손이 자신의 손을 계속 누르고 있었다. 그 온기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거짓 위에 세워진 감사. 22시간 27분의 거짓. 그리고 그 거짓을 지탱하기 위해 또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마비되었다. 호흡이 얕아졌다.
"고마워."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준호는 눈을 떴다.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는 감사만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엄마도 고마워."
이준호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 말이 자신을 더욱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22시간 27분을 더 살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그 대가로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병실의 모니터가 새벽을 알렸다.
새벽 3시 16분.
19시간 59분이 남았다.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이준호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손가락이 떨렸다. 마치 그 손을 놓으면 어머니가 죽을 것처럼. 마치 자신의 손가락만이 어머니의 죽음을 붙잡고 있을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