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래의 진실
수술실의 형광등이 꺼졌다.
이준호는 운전대를 내려쳤다. 주차장에 경적음이 울렸다. 손가락을 입에 물어뜯었다. 금속 냄새. 손끝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환자를 살릴 때마다. 누군가가. 죽는다."
목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지하 주차장에 메아리쳤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대의 자동차 안에서 한 명의 의사가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뜯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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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을 나오면서 이준호는 손을 물로 헹굴 때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떨리는 게 아니라 맥박을 치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 끝에서 감지되는 것—지금 막 수술대 위에서 눈을 감은 환자의 맥박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맥박들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개. 병원 어딘가에서, 병원 밖에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에서.
"안 됐어."
한석우가 일회용 마스크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뭐가?"
"모르겠어. 뭔가 안 됐다는 느낌. 이상해."
이준호는 수술 기록지를 확인했다. 환자 박준영, 48세, 급성 경막외혈종. 원래 예상 수술 시간 2시간 30분. 실제 소요 시간 1시간 52분. 혈종 제거, 혈관 재건, 뇌압 감소. 모든 항목이 정상 범위 내였다.
그런데 손가락이 멈춰 있지 않았다. 맥박이 계속 울렸다.
"이준호. 정말로 뭐가 잘못됐어."
한석우가 수술 모니터링 기록을 들었다. 환자의 생체신호 추이, 마취 깊이, 산소포화도—모두 정상이었다. 수술 중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한석우의 눈은 뭔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환자 상태는 정상이야. 하지만 난 마취 깊이를 조절한 사람이야. 우리가 마취 깊이를 올렸다 내렸다 한 횟수를 봤어? 평소의 3배야. 그리고 회복실에 가기 전에 환자 얼굴이… 이상했어. 죽는 사람의 얼굴이었어."
이준호는 한석우를 보지 않았다.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 끝이 여전히 맥박을 치고 있었다. 여러 개. 겹쳐진 맥박들. 그 중 가장 명확한 것은—
'내일 밤 11시 14분.'
누군가의 죽음이 그 시간에 찾아올 것이었다.
"48시간 지나봐야 알 수 있어. 회복실 체크."
이준호가 수술 기록지를 제출 칸에 밀어넣었다.
"이준호."
"가자."
한석우는 따라가지 않았다. 수술실 문이 닫혔을 때 그는 여전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환자 박준영의 생체신호. 완벽히 정상이었지만, 뭔가 죽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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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준호는 휴대폰을 켰다. 뉴스 알림이 쌓여 있었다. '세인트 의료원 외과 의사, 응급 환자 생존율 98% 달성', '신의 손이라 불리는 천재 의사의 기적', '불가능한 수술을 가능으로 만드는 이준호 의사'.
그 아래로 더 내려갔다. 사망 소식들. 배우 정해인, 사업가 김기호, 대학원생 박민준.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자신의 수술 직후, 8~12시간 사이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
손가락이 맥박을 쳤다.
엘리베이터가 4층에 멈췄을 때, 이준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환자 박준영의 맥박을 일부러 잡지 않았다는 것을. 수술 중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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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이었다.
응급실의 환자. 교통사고, 흉부 외상, 생존율 7%.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번호로 기억되었다.
그 날 이준호는 수술을 예정했을 때 생각했다. '만약 내가 맥박을 잡지 않으면?'
환자의 죽음을 감지하지 않으면, 내 손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가 죽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내 능력이 없어지는 걸까?
이준호는 마취 직전에 환자의 맥박을 일부러 피했다. 손을 대지 않았다. 한석우가 의아해했지만, 이준호는 "진찰 완료"라고 말했다. 거짓이었다.
수술은 진행됐다. 표준 술식. 흉강 재건, 폐 손상 부위 처리, 혈관 재연결. 모든 것이 교과서적이었다. 이준호는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어딘가 비어 있었다. 감지가 없었다. 죽음의 맥박이 들리지 않았다.
수술 중 예상치 못한 이차 출혈이 발생했다. 응급 대응으로 혈액을 추가 수혈했다. 그 혈액이 오염되어 있었다. 이준호의 손이 감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환자는 수술 완료 후 48시간 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그 시간, 병원 밖의 누군가는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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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주차장은 조용했다.
이준호의 차 안. 운전대 위에 양손을 얹고 앉아 있었다. 손가락이 맥박을 치고 있었다. 여러 개. 겹쳐진 리듬.
자신의 손이 환자를 살릴 때마다, 다른 누군가가 죽었다.
그런데 자신의 손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러면 그 환자는 죽지 않는가?
아니다. 교통사고 환자가 증명했다. 자신의 능력이 없으면, 의료 행위는 표준이 될 뿐이고, 표준은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없다. 환자는 결국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아무도 막지 못했다. 그저 표준 의료의 실패일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살았다.
이준호는 손가락을 입에 물어뜯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의 맥박이 더 가까워졌다. 많은 맥박들. 그 중 가장 명확한 것은 내일 밤 11시 14분. 병원 3층 중환자실. 그 다음은 모레 오전 3시 47분. 그 다음은—
손가락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이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서 나는 피의 맛. 금속 냄새. 그 속에서 들리는 것—죽음의 시각들이 비명처럼 겹쳐졌다.
'내가 환자를 살릴 때마다. 누군가가. 죽는다.'
손가락에서 더 많은 피가 흘렀다. 운전대 위에 떨어졌다. 주차장의 불빛 아래서 그 피는 검게 보였다.
이준호는 운전대를 내려쳤다. 경적음이 울렸다. 지하 주차장에 메아리쳤다.
"내가 아니면 누가 살리냐고!"
목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손가락의 통증이 손목까지 타고 올라왔다. 신경이 타는 듯한 감각. 그것이 실제 통증인지, 아니면 죽음을 감지하는 능력의 반발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주차장은 고요했다. 다만 한 대의 자동차 안에서 한 명의 의사가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뜯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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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우는 밤 11시에 이준호의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들어와."
현관 안에서 한석우는 자신의 신발을 벗지 않았다. 오래 머물 생각이 없다는 신호였다. 이준호는 그를 거실로 안내했다. 한석우는 소파에 앉지 않고 섰다.
"최근 몇 달간 우리가 함께한 수술들. 그 직후에 사망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왔어. 넌 느끼지 못했어?"
이준호는 침묵했다.
"나는 마취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그걸 가장 가까이서 봤어. 환자들의 생체신호가 정상이면 정상이었는데, 그 환자들 직후에 다른 사람들이 죽어 나갔어.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패턴이 있어. 규칙이 있어."
"넌 뭘 원해?"
"너한테 묻고 있는 거야. 혹시 우리가 뭔가 잘못된 걸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준호는 한석우의 눈을 마주쳤다. 친구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진짜 고통. 죄책감의 고통.
"그럴 리 없어."
"거짓말 하지 마."
이준호의 입술이 떨렸다. 손가락이 맥박을 쳤다. 한석우의 맥박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맥박. 많은 맥박들. 그의 손가락은 친구의 가슴 위에서 더 빠르게 떨렸다. 심장음이 아니라 죽음의 신호를 감지하는 손.
"거짓말 아니야."
한석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웃음이 아니었다. 울음이었다. 목이 메인 울음.
"내가 알아, 이준호.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모든 수술 직후에 누군가가 죽어. 그리고 그들은 다 무고한 사람들이야.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들. 그들이 왜 죽어야 해? 왜?"
이준호는 한석우를 밀어냈다. 손이 나갔다. 친구의 가슴을 밀었다. 한석우가 뒤로 물러났다. 이준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손가락 끝의 통증이 심해졌다. 맥박이 더 빨라졌다.
"내가 아니면 누가 그들을 살리냐고!"
목이 터질 듯 울음이 나왔다. 침묵이 아니라 울음. 분노가 섞인 울음. 하지만 분노 아래에는 절망이 있었다.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는 의사의 절망.
"내가 아니면 누가!"
한석우는 현관 쪽으로 돌아섰다.
"이건 살인이야, 이준호."
문이 닫혔다.
이준호는 남겨졌다. 거실의 소파, 창밖의 야경, 자신의 떨리는 손. 손가락 끝에서 여전히 맥박이 울리고 있었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그리고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다른 누군가의 맥박이 아니었다. 자신의 맥박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세는 손.
'살인.'
그 단어가 반복됐다. 거실 안에서, 자신의 뇌 안에서, 손가락 끝의 맥박 속에서. 살인. 구원. 살인. 구원. 그 둘 사이에서 이준호는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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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록실의 지하 2층. 조명이 어두운 공간에서 이민지는 폴더를 정리했다. 종이에 손글씨로 기록한 내용들. 수술 시간. 환자 이름. 사망자 이름. 시간 간격. 패턴.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 3개월 전부터 차근차근 모아온 증거들. 그런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준호는 그녀가 존경하는 의사였다. 신의 손이라 불리는 의사. 그런데 그의 손이 누군가의 죽음을 초래한다면?
그것을 폭로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침묵하는 것이 옳은가?
이민지는 폴더를 책상 아래 서랍에 넣었다. 잠금장치를 했다. 그리고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폴더의 모서리를 만지고 있었다. 그 안의 증거들. 그 증거들이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병원의 천장. 그 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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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실의 문은 무겁게 닫혔다.
박영미는 이수진에게 폴더를 건넸다. 그 안에는 통계 자료가 들어 있었다. 엑셀 시트. 숫자들의 행렬. X축은 시간, Y축은 사건. 점들이 촘촘히 표시되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지난 3개월간 이준호 의사의 수술 완료 시간과 병원 내외 사망 사건 발생 시간의 관계도야."
이수진은 그래프를 따라 눈을 움직였다. 점들이 일직선상에 가까웠다. 8시간에서 12시간 사이의 간격. 거의 편차가 없었다. 완벽한 규칙성. 손으로 그은 직선처럼 정확한.
"이건... 의료 기록상 직접적 연관성은 없습니다. 법적으로 증명할 수 없어요."
"직접적 연관성이 필요 없어. 통계적 패턴으로 충분해."
박영미는 그래프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점들을 따라가며 무언의 압박을 드러냈다.
"이 정도의 편차 없는 패턴이 우연일 확률은?"
이수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래프를 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저주를 보는 눈.
"0.003%입니다."
박영미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했다.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박영미는 창밖을 내다봤다. 병원의 야경. 수많은 창문. 그 안에서 누군가는 살고 있고,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었다.
"이민지를 조사팀으로 불러. 그리고 강철준 의료윤리위원회 회장에게도 연락해."
"의료기록실의 이민지 말입니까?"
"그래. 그 여자도 이미 뭔가를 알고 있어. 우리보다 먼저. 그리고 강철준 회장은 이준호의 스승이야. 그는 알아야 한다."
이수진은 박영미의 얼굴을 봤다. 병원장의 눈은 냉정했다. 하지만 그 냉정함 아래에는 무언가 다른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죄책감인지, 아니면 책임감인지. 이수진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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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위원회 회장실은 조용했다.
강철준은 밤 1시에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여러 폴더가 놓여 있었다. 의료 기록들. 통계 자료들. 그리고 한 장의 편지.
편지는 손으로 쓴 것이었다. 서명은 없었지만, 강철준은 누가 썼는지 알고 있었다.
'교수님께. 우리가 뭔가 잘못된 것을 하고 있습니다. 제발 멈춰주세요.'
강철준은 그 편지를 여러 번 읽었다. 필체는 한석우의 것이었다. 그의 제자의 제자. 마취과 의사. 이준호의 가장 가까운 동료.
강철준은 그 편지를 책상 위에 놓고 오래 바라봤다. 한석우의 손글씨. 그 속에 담긴 고뇌.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을 향한 절규.
강철준은 휴대폰을 들었다. 이준호에게 전화했다.
"지금 어디야?"
"집에 있습니다."
"내일 아침 7시. 우리 병원 옥상에서 만나자."
"뭔 일입니까?"
"내가 너를 키웠던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시간이 됐어. 그리고 너는 내게 진실을 말해야 해."
전화가 끊겼다. 강철준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새벽의 도시. 그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살아나고 있었다. 그 균형을 유지하는 손. 자신이 길러낸 손.
강철준의 얼굴은 창에 비쳤다. 늙은 스승의 얼굴. 그 얼굴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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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47분. 박영미 병원장의 사무실.
박영미는 이준호를 불렀다. 이준호는 수술 가운을 입은 채 들어왔다. 응급 대기 중이었다.
"축하해, 이준호. 너의 최근 수술 성공률 기록이 98.2%에 도달했어. 의료계 역사상 최고 기록이야. 정말 대단해."
"감사합니다, 병원장님."
"하지만 동시에 말이야. 지금 병원 내에서 몇 가지 의료 사고 조사가 진행 중이야."
박영미는 책상 위에 통계 자료를 펼쳤다. 그래프. 점들이 일직선상에 가까운 그 그래프. 이준호는 그것을 보는 순간 호흡이 멈췄다.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통계상 0.003% 확률의 패턴을 발견했어."
박영미의 말이 계속되었지만, 이준호는 그것을 듣지 않았다. 그래프만 봤다. 자신의 죽음의 패턴. 시각화된 악마. 그 위에 박영미의 손가락이 올라갔다. 이준호의 손가락도 반응했다. 통증이 심해졌다. 손가락 끝에서 무언가가 새어나오는 듯한 감각.
"너의 수술 완료 시간과 외부 사망 사건 발생 시간의 관계. 이건 우연이 아니야. 이건 인과관계야."
이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손가락이 책상 위에서 맥박을 쳤다. 박영미는 그 손을 봤다. 떨리는 손. 그 손이 감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박영미는 알고 있었다.
"당신은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박영미는 이준호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에는 연민이 없었다. 오직 확신만 있었다.
"너의 손이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의 대가가 무엇인지. 모두가 안다."
이준호는 사무실을 나갔다. 문을 닫을 때, 그는 깨달았다. 박영미가 알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비밀을. 그리고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을.
이준호는 병원 복도에서 멈춰 섰다. 손가락이 맥박을 치고 있었다. 여러 개. 가장 가까운 맥박은 오늘 오후 3시 22분. 병원 5층. 그 다음은 내일 새벽 4시 51분. 그 다음은—
복도의 공기가 달라졌다. 누군가의 호흡음. 누군가의 발걸음. 병원 5층에서 내려오는 누군가. 이준호의 손가락이 그것을 감지했다. 목소리. 아직 들리지 않는 목소리. 하지만 손가락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인지.
강철준.
옥상에서 만나기로 했던 그 사람.
응급실에서 호출음이 울렸다. 중증 환자 입실. 생존율 4%.
이준호는 응급실로 내려갔다. 환자의 맥박을 잡아야 했다. 죽음을 감지해야 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연장해야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의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의사는 환자를 살려야 했다.
하지만 그 환자를 살리면 누가 죽을 것인가?
응급실의 침대 위에는 이미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손가락이 감지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맥박. 그 사람의 죽음의 시각. 오늘 오후 3시 22분.
그리고 이준호가 이 환자를 살리면, 그 사람은 죽을 것이었다.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환자의 맥박을 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멈췄다. 손가락이 공중에서 맴돌았다.
만약 자신이 손을 대지 않으면?
그러면 이 환자는 죽을 것이다. 표준 의료로는 생존율 4%인 환자. 죽을 확률이 96%인 환자. 그리고 병원 5층의 누군가는 살아날 것이다.
이준호는 환자의 맥박을 잡았다. 손가락이 죽음을 감지했다. 오늘 오후 3시 22분. 병원 5층. 그 사람의 이름이 들렸다.
강철준.
자신을 키웠던 교수.
옥상에서 만나기로 했던 그 사람.
손가락의 통증이 극에 달했다. 신경이 타는 듯한 감각. 뼈를 관통하는 고통.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그 고통 속에서 들리는 것—죽음의 시각. 강철준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손이 그것을 선택했다는 사실.
비로소 이준호는 알았다.
거래의 진실을.
그리고 그 거래는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