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정해인의 시신은 강남 삼성 의료원 응급실에서 발견되었다. 배우 정해인, 서른두 살. 드라마 촬영장에서 쓰러졌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병원 내부는 술렁거렸다.

그 몇 시간 전, 수술실.

이준호의 손가락이 환자의 팔목에 닿았다. 맥박을 잰다. 9시간의 수술 동안 그의 손가락은 계속해서 그것을 느껴왔다. 심장의 리듬.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떨리는 신호. 일반 의사들은 모니터로 읽는 수치를 이준호는 손끝의 감각으로 읽었다. 맥박이 약해진다. 혈압이 떨어진다. 환자가 죽음으로 미끄러진다. 그 순간, 이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메스. 봉합. 그리고 다시 맥박. 죽음을 붙잡아 다시 삶으로 끌어올리는 손.

오후 1시 42분. 수술 완료.

환자는 살았다.

오후 11시 34분. 정해인의 사망 신고.

---

박영미 병원장은 저녁 열한 시 반, 아직도 사무실 불을 끄지 않고 있었다.

전산실 화면 위의 숫자들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오후 1시 42분—이준호의 수술 완료. 오후 11시 34분—정해인의 사망 시각.

손가락이 움직였다. 계산. 9시간 52분.

박영미의 호흡이 얕아졌다. 손이 떨렸다. 마우스를 놓고 자판을 만졌다. 엑셀에 새로운 열을 만들었다. 간격들을 입력했다. 9:32. 9:48. 9:52. 그 사이에 다른 사망 기록들. 8:34. 10:15. 9:27.

모두 8시간에서 11시간 사이.

의료사고조사팀 팀장 이수진이 옆에 섰다.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강남삼성에서 처음 발견된 건 아니고, 촬영장에서 쓰러진 후 우리 병원 인근의 삼성 의료원으로 이송된 거라고 합니다. 부검이 시작되려고 합니다."

박영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화면의 빛이 얼굴에 반사되었다. 입술이 다물어졌다 열렸다. 다시 다물어졌다.

"아직 말하지 말아라."

박영미의 목소리는 낮았다.

"누구에게도. 이것이 무엇인지 확실해질 때까지."

박영미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손가락을 쥐었다. 모니터 앞에서 5분을 더 있었다. 혹시 자신이 본 것이 착각이 아닐까. 혹시 다른 설명이 있을까. 그러나 화면의 숫자들은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수진."

"예."

"이준호 선생의 최근 수술 기록을 모두 모아라. 그리고 그 시간대에 병원 내에서 발생한 모든 사망 사건—의료사고 기록, 병동 기록, 응급실 기록 가릴 것 없이.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이수진의 눈이 커졌다. 그러나 그녀는 묻지 않았다.

"본인이 해라.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이수진이 돌아서 나갔다. 박영미는 다시 모니터를 봤다. 9시간 52분. 그 숫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

응급실 대기실. 뉴스는 정해인의 사망을 보도하고 있었다. 배우의 얼굴이 화면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다시 떠올랐다.

한석우가 이준호를 찾아와 서 있었다. 커피를 들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 손가락이 컵에 흰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정해인이 심근경색이래. 갑자기."

이준호는 휴게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대답이 없었다.

"이상하지 않아? 배우는 보통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잖아. 심근경색 전조증상 같은 게 있을 텐데, 갑자기?"

이준호가 눈을 떴다. 눈빛이 흐릿했다. 피로. 9시간의 수술 후 남은 것은 피로뿐이었다.

"유명인은 스트레스가 많아. 촬영 스케줄, 여론, 그런 것들."

"그래도…"

한석우는 말을 이었지만, 이준호는 이미 눈을 다시 감았다. 한석우는 커피를 마셨다. 마시면서 이준호를 봤다. 이준호의 표정은 흐릿했다. 거기에 없었다. 오직 수술실의 이미지만 남아 있었다. 9시간의 맥박. 죽음의 시각. 그것을 연장한 손가락의 감각.

그 외의 모든 것은 소음이었다.

"최근 수술들이 자꾸 불안해."

한석우가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이준호의 눈이 순간 떠졌다. 손가락이 컵 테두리를 긁었다. 입을 열었다.

"왜 불안한데?"

목소리가 낮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한석우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눈동자의 움직임. 입술의 떨림. 한석우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재는 듯한 눈빛.

"모르겠어. 그냥… 느낌."

한석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있었다.

이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눈을 뜨지 않았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그것을 감추려고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손가락의 떨림은 주먹 안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피로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안감의 떨림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떨림.

한석우는 컵을 내려놨다. 이준호의 얼굴을 더 오래 봤다. 그리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복도의 소음이 들렸다가 사라졌다.

이준호는 혼자 남았다. 천장을 봤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주먹을 펼쳤다 움켜쥐었다. 맥박을 재는 손가락. 자신의 맥박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맥박을 재는 손가락. 그 손가락이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인가. 아니면 죽음을 연장하는 자신의 능력인가.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손가락의 떨림은 계속되었다.

---

병원 의료진 커뮤니티. 익명 게시판. 새벽 한시 반.

**[공개] 최근 이준호 선생 수술 후 사망 사건 증가?**

**글쓴이: 응급의학과 3년차**

정해인 배우 사망이 뉴스에 떴는데, 혹시 누구 수술이었어? 우리 병원에서? 사실 최근 몇 달간 좀 이상하지 않나? 이준호 선생 수술 성공률은 미친 수준인데, 그 이후로 원인 모를 사망 사건들이 자꾸 생기는 것 같은데. 우리 병원 사망률이 통계적으로 증가했다는 거 아무도 들었어?

**댓글 1: 외과 2년차** 음… 그냥 통계적 우연 아닐까? 이준호 선생이 하는 수술들이 원래 고난도 수술이니까. 그리고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데 그럴 리가.

**댓글 2: 내과 전공의** 근데 진짜 좀 이상하긴 해. 내가 야간 당직 서는 날이면 자꾸 심근경색 같은 게 터져. 그게 다 이준호 선생 수술 직후 시간대 아니야? 혹시 내가 착각인가 싶었는데, 다른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네.

외과 교수 강철준은 그 글을 보고 10분을 더 읽었다. 댓글들을 하나씩. 그리고 프로필을 닫았다.

강철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밤 두시. 그는 잠을 자지 않았다. 대신 책상 위의 의료 기록들을 봤다. 이준호의 기록들. 그 아래 병원 사망 기록들. 강철준은 이미 그 패턴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강철준의 손이 마우스 위에 있었다. 댓글 창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댓글을 찾았다.

**댓글 4: 외과 교수 (강철준 계정 추정)** 이런 식의 추측은 의료 현장의 신뢰도를 훼손합니다. 증거 없는 의심은 의료 윤리를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게시글 삭제를 권장합니다.

강철준의 손가락이 삭제 버튼 위에서 멈췄다. 손이 떨렸다. 가벼운 떨림이 아니었다. 손목까지 흔들리는 떨림. 그 손가락으로 자신은 수많은 환자를 살렸다. 그리고 지금 그 손가락으로 자신의 제자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강철준은 클릭했다. 댓글이 사라졌다. 화면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강철준의 손은 계속 떨렸다. 삭제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 떨림 속에는 죄책감이 있었다. 그리고 공모의식이 있었다.

---

의료기록실. 새벽 세시. 이민지는 파일 캐비닛 앞에 서 있었다. 손이 떨렸다. 의료기록실 접근 권한이 있었다. 외과 레지던트로서 필요한 기록들을 열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하고 있는 것은 그런 정당한 접근이 아니었다.

이민지는 이준호의 수술 기록들을 모았다. 날짜, 시간, 환자명. 그리고 그 옆에 병원 내 사망 기록들을 나열했다. 노트에. 손으로 직접 쓰면서.

8시간 34분. 9시간 15분. 9시간 52분. 8시간 47분. 10시간 3분.

손가락이 멈췄다. 패턴이 보였다. 분명한 패턴. 이민지의 심장이 두드렸다. 이것은 도둑질이 아니었다. 그러나 배신처럼 느껴졌다. 이준호를 존경했기 때문이다. 신의 손이라 불리는 그를 존경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은 그를 고발하는 것이었다.

이민지는 노트를 덮었다. 손이 떨렸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뒤섞였다. 정말 이것이 맞는 일인가. 그러나 숫자들은 거짓이 아니었다. 패턴은 명확했다.

이민지는 노트를 들고 의료기록실을 나왔다. 복도는 조용했다. 누구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민지의 심장은 계속 두드렸다. 자신이 방금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박영미 병원장 사무실. 새벽 다섯시.

박영미는 강철준을 불렀다. 전화로. 강철준은 이미 깨어 있었다. 사무실에서 기록들을 보고 있었다.

"교수님, 시간이 늦었지만 와주시겠습니까?"

강철준은 10분 후 도착했다. 얼굴이 창백했다. 안경 아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박영미는 강철준을 보자마자 알았다. 그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최근 외과 수술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영미의 질문이 직설적이었다.

강철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박영미의 사무실 책상 위의 기록들을 봤다. 엑셀 시트가 놓여 있었다. 시간대들이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강철준의 손이 떨렸다.

"이…"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박영미가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모르겠습니다."

강철준이 답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제자를 키웠습니다. 10년을 함께했습니다. 그 아이의 손이 죽음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철준이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초래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박영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를 켰다. 시간들이 화면에 떴다.

"아직 증거는 불충분합니다. 그러나 패턴이 있습니다."

박영미가 말했다.

"그 패턴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강철준은 화면을 봤다. 시간들을 봤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안경을 벗은 손이 떨렸다.

"당신이 이것을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조용히 수집합니다. 증거를. 아직 공식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증거가 충분할 때까지."

"그리고 증거가 충분해지면?"

박영미는 한 박자 멈췄다. 그 침묵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모니터 화면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밝혔다. 입술이 움직였다. 말하려다 멈췄다. 다시 입술이 움직였다.

"의료 윤리위원회에 보고합니다."

박영미의 손이 책상 위에서 떨렸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은 그 아이를 죽인다는 것과 같습니다."

강철준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의료 경력은 끝나고, 의료계는 떠들 것이고, 그의 면허는 박탈될 것이고, 그가 구한 생명들은 모두 의문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병원의 명성도 함께 추락할 것이고요."

박영미는 강철준의 눈을 봤다. 그의 눈에는 절망이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 죄책감인가. 아니면 공모의식인가.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박영미의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이 책상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그녀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모니터의 불빛이 흔들렸다. 아니, 흔들리는 것은 불빛이 아니라 박영미의 손이었다. 책상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강철준은 그것을 봤다. 말과 몸이 다른 여인. 윤리를 말하지만 손은 떨리는 여인. 그 떨림 속에는 이 결정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가 담겨 있었다.

강철준은 일어섰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박영미는 다시 모니터를 봤다. 시간들이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9시간 52분. 8시간 34분. 10시간 3분.

그 숫자들은 거짓이 아니었다.

---

이준호는 휴게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새벽 여섯시. 수술실로 가야 했다. 오늘도 예정된 환자들이 있었다.

수술복을 입었다. 마스크를 썼다. 손가락을 펼쳤다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의 신호인가. 아니면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갈증인가.

이준호는 수술실로 향했다. 복도는 아침으로 밝아오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어제의 9시간 52분이 여전히 손가락에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이 일어났는가. 자신의 손이 연장한 생명 뒤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가속화되었다.

병원의 어딘가에서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심장이 멈추는 순간까지 몇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준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손가락 끝의 미세한 떨림으로. 맥박의 리듬으로.

수술실 문 앞에서 이준호는 멈췄다. 손가락이 떨렸다.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해인의 심장 박동이 뇌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9시간 52분 전, 수술실에서 자신의 손가락 끝으로 느꼈던 그 맥박. 그 맥박이 지금 다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아니라 온몸으로. 신경계 전체를 타고 흐르는 공포의 파동.

그것은 단순한 예감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각의 떨림이었다.

어제 수술실에서 자신의 손이 연장한 그 생명이 정해인이었다. 그리고 정해인은 죽었다. 9시간 52분 후에. 자신의 손이 죽음을 붙잡았던 그 시간만큼 떨어진 후에.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그 떨림은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