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단신공
새벽 4시 3분, 응급실의 형광등이 환자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췄다.
"교통사고, 26세 남성, 뇌출혈 의심, 폐 손상, 다발성 골절입니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이민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긴장이 배어 있었다. 혈압 87/52, 맥박 142, 산소포화도 83%. 수치들이 말하는 것은 명확했다. 이 환자는 한 시간을 버티기 어려웠다.
"담당의는?"
외과 중환자실 팀장 이준호가 응급실 입구에서 나타났다. 새벽 4시의 응급실 복도는 불빛과 기계음으로 가득했지만, 그의 발걸음만 유독 빨랐다. 밤샘 수술을 마친 직후였지만 피로는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다.
"응급의학과 주임이 보존적 치료를 권장 중입니다. 뇌출혈 규모가 크고, 폐 손상이 심해서..."
이민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준호가 이미 침대 옆으로 다가가 환자의 손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맥박을 감지하는 순간, 세계가 변했다.
이준호의 눈이 반쯤 감겼다. 의식이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느낌이었다. 맥박의 리듬 하나하나가 음악처럼 들렸고, 그 음악의 끝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보였다. 마치 악보를 읽듯이. 아니, 그보다 더 명확했다.
**오후 2시 47분.**
시간이 숫자가 아닌 색깔로 다가왔다. 붉은색이었다. 어두운 붉은색이 점점 더 짙어져 검은색이 될 때까지의 거리. 그것이 10시간 44분이었다.
이준호가 환자의 손목을 놓았다. 의료진들이 그를 바라봤다.
"수술실 준비하세요. 즉시."
"선생님, 생존율이..."
"5% 미만이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절대성이 있었다. 응급의학과 주임이 복도에서 나타났고, 이준호를 향해 손을 들었다.
"이 환자는 응급실에서 편히 가시게 하는 게..."
"편히 간다는 게 뭡니까?"
이준호가 돌아섰다. 그의 눈동자가 주임의 얼굴에 고정됐고, 주임은 무언가 거대한 것 앞에 선 느낌을 받았다.
"우리 병원에 응급실이 있는 이유가 뭡니까? 생존율이 낮으니까 포기하라는 겁니까?"
응급의학과 주임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옆에 서 있던 이민지도 숨을 죽였다.
이준호가 다시 환자의 손목을 잡았다. 다시 한 번, 그 붉은색의 끝을 확인했다. 오후 2시 47분. 확실했다.
"수술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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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의 형광등이 환자의 몸을 비췄다. 마취과 팀장 한석우가 튜브를 삽입하며 체크리스트를 읽어 내려갔다.
"마취 유도 시작합니다."
환자는 의식을 잃었다. 생명 유지 장치들이 일제히 신호음을 내기 시작했다. 심전도, 혈압계, 산소포화도 센서. 이들이 만드는 합주는 병원의 가장 기본적인 리듬이었다.
이준호가 수술복을 입으며 손을 멸균했다. 그의 동작은 느렸지만 정확했다. 마치 의식 의례를 치르는 사제처럼. 간호사들이 수술 기구를 준비했고, 이민지는 이준호의 왼쪽에 섰다.
"메스."
칼이 피부를 가르는 순간, 이준호의 의식은 또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
맥박이 들렸다. 손 끝에서, 메스를 잡은 손가락에서. 환자의 맥박이 울려 퍼졌고, 그 울림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뇌출혈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두개골을 열고 혈종을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폐 손상도 심했다. 혈관이 파열되면 출혈로 인한 쇼크가 올 수 있었다.
이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혈관 우회로 설정해야 합니다."
한석우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우회로? 이 상황에서? 그렇게 하면 수술 시간이 훨씬 늘어나는데..."
"맥박을 봐야 합니다."
이준호는 계속 절개했다. 그의 눈은 수술 부위에 고정돼 있었지만, 손과 뇌는 다른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맥박의 리듬을 따라 메스가 움직였다. 정상적인 외과 수술이라면 불가능한 결정들이 연달아 나왔다.
"신경 박리. 이 정도면 신경 손상 위험이..."
이민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위험은 내가 판단합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 절박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 이 접근법은 교과서에서..."
"교과서는 평균을 다룹니다. 이 환자는 평균이 아닙니다."
이민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한석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준호의 손을 따라가기만 했다.
시간이 흘렀다. 1시간, 2시간, 3시간.
한석우는 마취 수치를 계속 모니터링했다. 혈압이 떨어지고 있었다. 정상적인 마취 깊이를 벗어나고 있었다. 한석우가 이준호를 쳐다봤다.
"혈압 65/40입니다. 이 정도면..."
"유지해주세요."
"이 상태면 뇌손상 위험이..."
"혈압이 올라가면 뇌출혈이 악화됩니다. 지금 이 수치가 정확합니다."
한석우는 이준호의 얼굴을 봤다. 그의 이마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수술실의 온도는 18도였다. 한석우가 일해온 20년의 수술실 경험에서, 이준호 같은 상태는 처음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손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아니, 그의 손 자체가 의지를 가진 무언가처럼.
손가락 끝의 불안감이 이준호를 짓누르고 있었다. 메스를 잡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누군가의 생명이 자신의 손 위에 올려져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생명을 연장시키는 매 순간, 어딘가 다른 곳에서 누군가의 맥박이 끊기고 있다는 확신.
이준호는 그 감각을 밀어냈다. 집중했다. 메스가 움직였다.
4시간, 5시간, 6시간.
"폐 복원 시작합니다."
이준호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혈관을 봉합하는 그의 손놀림은 거의 기계적이었다. 하지만 기계는 이렇게 섬세할 수 없었다. 마치 악보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처럼, 각 음표의 무게와 길이가 완벽하게 조절돼 있었다.
7시간, 8시간.
응급실 전체가 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의료진들은 복도에서 떠돌고 있었고, 박영미 병원장은 중환자실 모니터 앞에 앉아 생체 신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후 1시 42분.
"마지막 봉합합니다."
이준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9시간이 지났다. 그의 수술복은 피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 손가락의 떨림이 거의 없었다. 마지막 봉합사가 피부를 연결했다.
심전도 모니터가 울렸다.
정상 리듬.
생체 신호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혈압 98/60. 맥박 88. 산소포화도 97%. 숫자들이 생명을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준호가 환자의 손목을 놓았다.
손가락에서 맥박이 사라졌다.
동시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빠져나갔다. 마치 방 안의 모든 공기가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 이준호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수술실의 형광등이 갑자기 너무 밝아 보였다.
손가락 끝이 따끔거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다른 맥박이 끊기는 느낌이었다.
아주 먼 곳에서. 응급실의 다른 환자, 아니면 더 멀리.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가 끝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악보의 마지막 음표가 울려 퍼지고 난 후의 침묵처럼.
이준호가 눈을 떴다.
"좋은 수술이었습니다."
한석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마취 기록지를 보면서도, 한석우는 이준호의 얼굴만 바라봤다.
"어제는 뭔가... 달랐어. 그 신경 박리 결정은 어디서 나온 거야? 교과서에 없는 결정들이었어."
이준호가 수술복을 벗으며 대답했다.
"환자 상태를 봤습니다."
"맥박으로? 그렇게 정확하게 알 수는..."
이준호가 수술실을 나가고 있었다. 한석우의 말은 공중에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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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은 술렁이고 있었다.
"신의 손이 또 기적을 만들었다더라."
간호사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이준호가 탈진실을 나올 때, 의료진들의 시선이 그를 따라다녔다. 경외와 두려움이 섞인 표정이었다.
박영미 병원장이 중환자실의 모니터 앞에서 일어섰다. 수술 영상을 다시 재생하고 있었다. 9시간 연속 수술의 기록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의료사고조사팀 팀장 이수진이 그 옆에 서 있었다.
"이상합니다."
박영미가 중얼거렸다.
"어떤 점이요?"
"수술 결정들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혈관 우회로와 신경 박리는... 통상적인 교과서에서는 이 상황에서 권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했습니다."
이수진이 화면을 자세히 봤다.
"결과가 좋으면 괜찮지 않나요?"
"결과가 좋은 것과 방법이 정상인 것은 다릅니다."
박영미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지난 3개월간 수집한 자료를 꺼내 들었다. 엑셀 시트가 화면에 떴다.
"지난 3개월간 이준호 수술 직후 원인불명 사망 사건, 5건. 통상적 평균은 0.3건입니다."
박영미가 마우스로 특정 행들을 지적했다. 각 행에는 이준호의 수술 시간과 사망 시각이 기록되어 있었다.
"3월 15일, 이준호 수술 완료 오후 1시 12분. 응급실 밖의 한 환자 사망 시각 오후 11시 8분. 시간차 9시간 56분."
박영미가 다음 행을 지적했다.
"3월 22일, 수술 완료 오후 2시 34분. 환자 사망 시각 오전 12시 18분(다음날). 시간차 9시간 44분."
이수진이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패턴이 명확했다.
"모두 약 10시간 간격입니다."
"정확합니다. 4월 3일, 4월 11일, 4월 19일. 모두 동일한 패턴을 보입니다."
박영미가 마우스를 내려 다음 항목을 클릭했다. 새로운 데이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정해인. 배우. 어제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사망 시각 오후 11시 34분."
이수진이 시간을 계산했다.
"이준호 수술 완료가 오후 1시 42분이면... 9시간 52분입니다."
"정확히 패턴과 일치합니다."
박영미의 손가락이 화면을 가리켰다. 여섯 개의 빨간 동그라미. 모두 같은 간격. 마치 음악의 박자처럼 규칙적이었다.
"이제 증명해야 합니다."
박영미가 휴대폰을 들었다. 의료윤리위원회 회장 강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저 박영미입니다. 이준호에 대해 긴급 협의가 필요합니다. 수술 직후 사망 기록의 비정상적인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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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11시 23분, 이준호는 집의 소파에 누워 있었다.
피로가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9시간의 수술은 신체적 소모였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손가락 끝의 감각이었다. 계속 따끔거리는 느낌. 마치 누군가의 맥박이 끊기는 것을 감지하는 듯한...
이준호가 휴대폰을 집었다. 뉴스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배우 정해인,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사망**
사진 속 정해인은 웃고 있었다. 기사에는 사망 시각이 명시되어 있었다. 오후 11시 34분.
이준호가 계산했다.
수술 완료: 오후 1시 42분. 정해인 사망 시간: 오후 11시 34분.
9시간 52분.
정확히 자신의 손목에서 느꼈던 붉은색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과 거의 같았다.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휴대폰이 떨어질 뻔했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반사된 그의 얼굴이 보였다. 눈동자가 확대돼 있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우연이다. 단순한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연은 너무 정확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이준호가 일어나 앉았다. 창밖을 봤다.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백만 개의 불빛. 그 중 하나가 꺼지는 순간, 자신의 손 위의 빛이 사라진다는 느낌.
그는 손가락을 펼쳤다. 손가락 끝을 들여다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 끝의 불안감이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9시간 동안 맥박을 따라다니며 느꼈던 그 감각. 자신이 환자의 생명을 자신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 생명이 늘어나는 순간, 다른 누군가의 생명이 끝난다는 불가해한 느낌.
"이게... 정말 우연인가?"
손가락이 떨렸다. 마치 그 질문 자체가 답이라는 듯이.
이준호는 화장실로 향했다. 욕실의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눈이 충혈돼 있었다. 입가가 떨리고 있었다. 손을 씻으려고 수도를 틀었다.
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손을 비벼 씻었다. 하지만 손가락 끝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신호인 것처럼.
욕실을 나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어둠 속에서 손가락 끝의 맥동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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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병원 회의실에서 응급의학과 전체 회의가 열렸다.
김민준의 회복 상황이 주제였다. 담당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참석했다. 이준호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놀라운 회복입니다. 뇌 손상 여부를 확인하는 신경학적 검사를 진행했는데, 예상과 달리 정상 범위입니다. 폐 기능도 좋습니다."
의료진들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경외와 의구심이 섞인 표정.
"이준호 선생님, 어떤 기법을 사용하셨나요?"
회의 주관자가 물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읽고 그에 맞춰 수술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신경 박리 결정은... 통상적이지 않습니다. 교과서에서는 이 상황에서 그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됩니다."
이준호의 대답은 간결했다. 하지만 그 단어들에는 자신감 같은 것이 가득했다. 아니, 자신감을 넘어선 무언가. 마치 자신이 뭔가 다른 차원의 의료를 하고 있다는 확신.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의료진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이준호를 봤다. 누군가 입을 열려고 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회의가 끝났다. 의료진들이 나가며 이준호를 바라봤다. 시선의 무게가 달라져 있었다. 존경. 두려움. 의심.
"신의 손."
누군가가 또 그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이준호 자신도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거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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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모니터 앞에서 박영미와 이수진이 기록을 검토하고 있었다.
"강철준 회장님과 통화했습니다. 의료윤리위원회에서 이준호에 대한 공식 조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수진이 보고했다. 박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 수집이 시급합니다. 특히 그의 수술 중 의료 기록과 환자의 생체 신호 변화를 추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해인의 사망 기록도 확보했습니다."
이수진이 파일을 내밀었다. 정해인의 부검 결과. 심근경색 진단. 하지만 원인은 불명.
박영미가 파일을 봤다. 그리고 컴퓨터의 엑셀 시트를 다시 봤다. 다섯 개의 빨간 동그라미에 여섯 번째가 추가되고 있었다.
"패턴은 명확합니다. 이제 인과관계만 증명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의학적 근거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증거."
박영미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이미 이준호의 다음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수술이 끝나면, 분명 또 다른 사망 사건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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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0시, 이준호는 다시 소파에 누워 있었다.
손가락 끝의 떨림은 여전했다. 마치 신경이 쓰인 채로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그는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정해인의 기사를 다시 읽었다. 배우. 32세. 건강했던 사람. 그런데 갑자기 심근경색.
그리고 자신이 김민준을 살린 정확히 9시간 52분 후.
이준호가 일어나 앉았다. 창문 앞에 섰다. 서울의 야경을 봤다. 수백만의 생명들이 이 도시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자신의 손에 의해 살아났고, 다른 한 명이 죽었다.
우연이 아니라면?
그 생각이 들었을 때, 손가락 끝의 맥동이 더 강해졌다. 마치 자신의 신체가 그 질문에 답하고 있는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응급실에서의 전화였다.
"선생님, 새로운 중증 환자가 들어왔습니다. 교통사고. 생존율이 매우 낮습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지금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그는 창을 통해 서울을 봤다. 누군가는 응급실로 실려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중 누군가는 죽을 것이었다.
이준호는 옷을 입고 집을 나갔다. 손가락 끝의 맥동이 계속됐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환자는 이미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30대 남성. 머리 손상. 폐손상. 복부 출혈.
이준호가 맥박을 잡았다.
순간, 다시 그 감각이 돌아왔다. 붉은 빛. 정확한 시각. 오전 8시 23분. 정확히 14시간 후.
그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수술실로 들어가는 외과의가 되는 순간, 인간에서 다른 무언가로 변신하는 것처럼.
"수술을 준비하세요."
이준호가 말했다.
한석우가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생존율이 매우 낮습니다. 보존적 치료를 권장합니다."
"수술을 합니다."
이준호의 대답은 확정적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은 직후, 그는 멈췄다.
손가락이 떨렸다. 맥박을 잡은 손가락이. 마치 그 손가락이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오전 8시 23분.
그것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손목에서 느꼈던 그 정확한 시각. 붉은색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그 순간.
"이게... 정말 우연인가?"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손가락 끝의 떨림이 더 강해졌다.
한석우가 이준호의 얼굴을 봤다. 그의 표정이 변했다. 결정적인 확신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것으로.
"선생님?"
"수술을..."
이준호가 말을 멈췄다. 환자의 손목을 다시 봤다. 맥박이 느껴졌다. 그 맥박의 끝. 오전 8시 23분. 확실했다.
그리고 그 시각에 누군가의 생명이 끝날 것이었다.
"수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준호는 자신에게 물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응급실의 의료진들이 그를 바라봤다. 이민지, 한석우, 간호사들. 모두 그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준호는 환자의 손목을 놓았다.
"수술실 지금 당장."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손가락 끝의 떨림이 멈췄다.
마치 선택이 확정되었다는 신호인 것처럼.
그리고 서울의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생명이 그 시각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오전 8시 23분까지.
정확히 14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