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창밖의 만월이 침실을 가득 채웠다. 루나는 침대에 누워 그 거대한 은색 원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여전히 희미한 빛이 피어났다. 시간의 흐름이 불분명했다. 벨이 루나의 팔 위에 작은 몸을 구부려 안기고 있었고, 그 체온만이 루나를 현재의 세계에 붙들어 두고 있었다.

"루나. 루나."

벨의 목소리가 깨어 있는 것과 꿈 사이의 어딘가에서 들렸다. 루나는 눈을 떴다. 벨의 큰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 있어."

벨은 루나의 팔을 더 꽉 안았다. 그 작은 팔에서 느껴지는 절박함이 루나의 가슴을 쥐어짰다. 루나가 손을 들어 벨의 등을 쓸어내렸다. 은색 빛이 벨의 몸을 따라 흘렀다. 벨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이리스는?"

루나가 물었다. 벨은 창 너머를 가리켰다. 봉인실 쪽이었다. 정령들의 울음이 여전히 들려왔다. 비명처럼, 부르짖음처럼.

루나의 몸이 일어났다. 의지와 무관하게. 마치 누군가 그녀의 팔과 다리를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 벨이 루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면 안 돼."

벨의 목소리가 떨렸다. 루나는 벨의 손을 풀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루나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은색 빛이 이제 손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침실 문이 열렸다. 아이리스가 나타났다. 그 뒤로 봉인실의 정령들 울음이 더 크게 터져 나왔다. 아이리스의 눈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엄마. 제발."

아이리스가 루나에게 달려왔다. 루나는 아이리스를 안았다. 그 순간, 세상이 흔들렸다.

*정령 실험실. 차갑고 하얀 벽. 아이리스의 작은 몸이 석영 상자에 갇혀 있다. 누군가가 루나의 머리를 누르고 있다. 아이리스를 보게 하려고. 아이리스를 구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직면하게 하려고.*

루나의 눈이 떠졌다. 침실이었다. 아이리스가 루나의 팔에 안겨 있었다. 아이리스의 몸은 차가워지고 있었다. 정령화되고 있었다. 루나 때문에.

"안 돼. 안 돼."

아이리스가 루나를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루나의 팔은 의지와 무관하게 아이리스를 더 꽉 안았다.

"엄마가 너를 고쳐줄게."

루나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더 깊고, 더 낡고, 더 절박했다. 봉인실의 정령들이 루나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었다.

벨이 울음을 내질렀다. 그 울음이 루나를 깨웠다. 루나는 아이리스를 놓았다.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던 은색 빛이 순간 꺼졌다. 아이리스는 루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 작은 정령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다.

"가지 마. 가지 마."

루나가 아이리스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이미 침실 문을 통해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리스!"

루나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떨렸다. 벨이 루나의 치마자락을 붙잡았다.

"가지 마. 제발.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루나는 벨을 보았다. 그 작은 정령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루나의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더 큰 것이 루나를 부르고 있었다. 봉인실에서. 정령들의 울음이. 아이리스의 비명이.

루나는 침실을 나갔다.

복도는 어두웠다. 촛불 하나가 멀리서 타고 있었다. 루나는 그 불빛을 따라 내려갔다. 계단이 나타났다. 그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졌다. 손가락의 은색 빛이 다시 피어났다. 이번엔 더 밝았다.

루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한 층. 두 층. 세 층.

봉인실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루나가 알던 봉인실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작은 창문 달린 문들. 그 안에 정령들이 갇혀 있었다. 루나는 처음으로 그들을 제대로 보았다.

첫 번째 문. 그 안에는 금색 정령이 있었다. 루엘이 가져왔던 그것이었다. 루나는 문을 열었다. 정령은 루나에게 달려왔다. 루나는 그것을 안았다.

*황제의 침실. 누군가가 황제의 옷을 벗기고 있다. 금색 정령이 황제의 가슴 위에 올려진다. 정령의 비명. 황제의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 황제는 칼을 들었다. 정령을 자신의 손으로 지져 태웠다.*

루나는 정령을 놓았다. 은색 빛이 정령의 상처를 닫았다. 루나의 머리는 무거워졌다. 마치 누군가 돌을 얹은 것처럼. 루나의 손이 떨렸다. 루나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루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잠깐 잊었다. 정령의 고통이 루나의 고통이 되었다. 손가락이 함께 타들어갔다.

두 번째 문. 루나는 그것을 열었다. 그 안에는 검은색 정령이 있었다. 루나는 그것을 안았다.

*황태후의 방. 황태후가 칼을 들고 있다. 칼 끝에 검은 정령의 피가 묻어 있다. 황태후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것이 질서다." 정령은 비명을 지른다. 황태후는 웃는다.*

루나는 정령을 놓았다. 루나의 눈이 한순간 초점을 잃었다. 루나는 옆에 있는 벨을 보지 못했다. 루나는 벨의 이름을 잊었다. 루나는 자신의 이름도 잠깐 잊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루나의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정령의 절망이 루나의 절망이 되었다.

세 번째 문. 루나는 그것을 열었다. 그 안에는 초록색 정령이 있었다. 루나는 그것을 안았다.

*정령 실험실. 어린 루나가 있다. 루나의 손에서 은색 빛이 피어난다. 누군가가 정령을 루나에게 던진다. 루나는 정령을 안는다. 정령의 고통이 루나를 집어삼킨다. 루나는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아무도 루나의 울음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루나의 눈이 떠졌다. 루나는 여전히 정령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루나의 눈은 이미 어린 루나였다. 루나의 손은 이미 초록색 정령의 손이었다. 루나는 자신의 이름을 완전히 잃었다. 루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루나는 오직 정령들의 고통만 느꼈다. 루나의 입에서는 인간의 말이 아닌 정령들의 울음이 흘러나왔다.

루나는 네 번째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은색 정령이 있었다. 루나는 그것을 안았다.

*루나의 침실. 벨이 루나의 팔에 안겨 있다. 아이리스가 루나의 다리에 기대어 있다. 모든 정령이 루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한다. "엄마." 그리고 루나는 웃는다. 루나는 행복하다. 루나는 사랑받는다.*

루나의 눈이 떠졌다. 루나는 은색 정령을 안고 있었다. 루나는 더 이상 루나가 아니었다. 루나는 정령들이었다. 루나의 몸은 거의 투명해졌다. 루나의 손은 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루나는 다섯 번째 문을 열려고 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루나의 손은 이미 투명해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멈춰."

목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돌아봤다. 아이리스가 서 있었다. 아이리스의 눈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엄마. 제발 멈춰.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아이리스가 루나에게 달려왔다. 루나를 안았다. 아이리스의 팔이 루나의 투명해진 몸을 붙잡았다. 따뜻한 손이 루나를 감쌌다. 루나는 그 온기를 느꼈다.

루나의 눈이 떠졌다. 루나는 아이리스를 안고 있었다. 아이리스가 루나를 안고 있었다. 루나는 한 순간, 자신의 이름을 기억했다. 루나. 루나는 루나였다.

"미안해. 미안해."

루나가 중얼거렸다. 루나는 아이리스를 놓았다. 아이리스는 루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루나의 팔에서 은색 빛이 다시 피어났다. 루나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에서 손목까지, 그리고 이제 팔꿈치까지 은색 빛이 올라와 있었다.

루나는 봉인실의 벽을 짚었다. 벽 한쪽에 책장이 있었다. 루나는 그곳으로 몸을 옮겼다. 책들이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루나는 한 권을 꺼냈다.

'정령 관리 기록. 황제 제1대부터 현대까지.'

루나는 책을 폈다. 그 첫 페이지에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정령사 아르테미스. 만월의 저주로 정령화. 기원 47년.'

'정령사 엘리아. 만월의 저주로 정령화. 기원 124년.'

'정령사 마리아. 만월의 저주로 정령화. 기원 201년.'

'정령사 루나. 만월의 저주로 정령화. 기원...'

기원 다음이 비어 있었다. 적힐 날짜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었다. 루나의 손이 떨렸다. 책이 루나의 손에서 떨어져 내렸다. 모든 정령사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루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루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의 은색 빛이 책장을 물들였다. 루나는 책을 옷 속에 숨겼다.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 했다. 이 진실이 드러나야 했다. 루나는 책을 가슴 깊숙이 품었다.

루나는 봉인실을 나가야 했다. 이 기록을 카이에게 전해야 했다. 카이라면 황제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었다. 루나는 침실로 향했다. 벨을 찾아야 했다. 벨이 있는 곳이라면 카이도 있을 것이었다.

복도를 걷는 루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손가락의 은색 빛이 복도 벽을 물들였다. 루나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기록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루나를 움직이게 했다.

"정령사님."

목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멈췄다. 황태후의 시종이 복도 모퉁이에서 나타났다. 그 얼굴은 무표정했다.

"황태후께서 동쪽 누각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루나의 손가락에서 은색 빛이 폭발했다. 봉인실 전체가 밝아졌다. 정령들의 울음이 비명으로 변했다. 손가락이 이제 손바닥까지 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루나는 책을 더 깊이 품었다. 이 기록을 지켜야 했다.

루나는 시종을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루나의 눈은 여전히 침실 쪽을 향하고 있었다. 벨. 카이. 누군가에게 이 책을 전해야 했다.

동쪽 누각이 보였다. 황태후가 창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이제 끝내자, 루나."

황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갔다. 손가락에서 은색 빛이 계속 흘러나왔다. 루나는 더 이상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루나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은색 빛이 이제 손목을 넘어 팔꿈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손가락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곧 루나는 정령이 될 것이었다.

루나는 황태후를 향해 걸었다. 한 발, 한 발. 발바닥이 돌 위에서 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희미했다.

"루나."

황태후가 칼을 들어올렸다. 햇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루나의 눈을 찔렀다. 루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 순간, 루나의 시야가 두 개로 갈라졌다. 한쪽은 황태후와 칼을 보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봉인실의 어두운 공간을 보고 있었다. 루나는 동시에 두 곳에 있었다.

"당신이 우리 황실의 안정을 위협한다."

황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것은 황태후의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리스의 울음이었다. 그것은 벨의 신음이었다. 그것은 봉인실의 모든 정령들이 동시에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루나는 손을 들었다.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은색 빛이 더욱 밝아졌다. 그 빛이 동쪽 누각 전체를 밝혔다. 벽이 은색으로 물들었다. 창문이 은색으로 변했다. 황태후의 얼굴까지 은색으로 빛났다.

황태후가 칼을 휘둘렀다. 칼날이 루나의 팔을 스쳤다. 은색 빛이 칼날 위에서 폭발했다.

황태후가 비명을 질렀다. 칼이 손에서 떨어졌다. 손가락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게... 뭐야?"

황태후가 손을 흔들었다. 루나는 그것을 보았다. 동시에 루나는 봉인실에서 금색 정령이 고문당하던 기억을 보고 있었다. 그 정령의 손가락이 태워지던 때. 루나는 그 고통을 느꼈다. 루나의 손가락이 동시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루나는 비명을 질렀다. 정령들의 울음과 루나의 울음이 섞여 하나가 되었다. 루나의 의지와 정령들의 의지가 충돌했다. 루나는 황태후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령들은 복수를 원했다. 루나의 몸은 정령들의 손에 있었다.

"엄마!"

벨의 울음이 들렸다. 루나는 돌아봤다. 벨이 동쪽 누각의 문 앞에 서 있었다. 벨 뒤에는 아이리스가 있었다. 그 뒤에는 다른 정령들이 있었다. 루나가 안아줬던 모든 정령들이 있었다.

"제발 돌아와. 엄마, 제발!"

벨이 울음을 내질렀다. 그 울음이 루나를 부르고 있었다. 루나는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에서 은색 빛이 더욱 폭발적으로 흘러나왔다. 그 빛이 벨을 감쌌다. 벨의 몸이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루나가 손을 거두었다. 루나의 의지가 정령들의 의지를 밀어냈다. 손가락의 빛이 수그러들었다. 벨의 몸이 다시 형체를 갖기 시작했다. 벨은 숨을 쉬었다.

루나는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다. 루나는 아직 루나였다.

"루나."

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돌아봤다. 카이가 황태후를 붙잡고 있었다. 황태후의 손은 이제 검게 타버린 상태였다. 황태후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카이는 어제 황제 시온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루나의 정령화를 막으라는 명령이었다. 그 지시를 받은 카이는 밤새 황궁으로 향했고, 동쪽 누각에 도착한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며.

카이는 즉시 행동에 나섰다. 카이의 손에서 파란 빛이 피어났다. 고대 봉인술. 카이는 루나 주변의 공기를 얼려 정령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루나의 은색 빛이 카이의 봉인술을 녹여냈다. 카이의 기술은 너무 약했다. 루나의 정령화 진행 속도가 너무 빨랐다.

"루나, 정신을 차려!"

카이가 루나의 팔을 잡았다. 루나의 팔은 이미 반투명했다. 카이의 손이 루나의 팔을 통과할 뻔했다. 카이는 루나의 팔을 꽉 붙잡았다. 카이의 손에서도 은색 빛이 흘러나왔다. 카이는 고통을 참으며 루나를 붙들었다.

"봉인실로 돌아가. 지금 당신의 상태는..."

카이가 말을 잇지 못했다. 루나를 보는 카이의 눈이 흔들렸다. 루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루나는 정령들의 집합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루나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팔은 이제 투명했다. 가슴도 투명해지고 있었다. 루나는 자신의 심장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은색으로 뛰고 있었다.

"정령 관리 기록..."

루나가 중얼거렸다. 루나의 옷 속에 숨겨진 책이 은색 빛으로 물들었다. 그것이 떨어져 내렸다. 책장이 열렸다. 그 안에 적힌 이름들이 보였다.

정령사 아르테미스. 정령사 엘리아. 정령사 마리아.

그리고 루나.

"이제 끝이야."

루나가 말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루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령들의 목소리였다. 루나의 자아는 거의 사라졌다. 루나는 더 이상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다.

루나는 황태후를 바라봤다. 황태후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황태후가 루나를 죽이려 한 이유는 명확했다. 루나의 정령화가 완성되면, 루나는 황실의 최고 권력자가 될 것이었다. 루나는 황태후의 지배를 벗어날 것이었다. 루나는 황실의 모든 비밀을 드러낼 것이었다. 황태후는 루나를 제거해야 했다.

"당신이 우리를 가둔 사람이다."

루나가 말했다. 손가락에서 은색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 빛이 황태후를 향해 뻗어나갔다. 황태후는 비명을 질렀다.

"멈춰라! 루나, 멈춰라!"

황태후가 외쳤다. 하지만 루나는 더 이상 황태후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루나는 오직 정령들의 울음만 들었다. 그 울음이 루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울음이 루나를 정령 세계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카이가 루나의 팔을 더 꽉 잡았다.

"루나! 정신을 차려!"

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카이를 보았다. 그 눈은 루나의 눈이 아니었다. 루나는 카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루나는 오직 정령들의 목소리만 들었다.

"루나, 제발. 제발 돌아와."

벨의 울음이 들렸다. 루나는 벨을 보았다. 벨이 루나에게 달려왔다. 벨이 루나를 안았다. 루나의 투명한 몸을 붙잡았다. 벨이 울고 있었다.

벨의 울음이 루나의 마지막 희미한 의식에 닿았다. 루나는 벨을 느꼈다. 루나는 아직 루나였다. 벨의 눈물이 루나의 투명한 팔에 떨어졌다. 그 눈물이 루나의 정령화를 일시적으로 멈추게 했다. 루나의 손이 다시 형체를 갖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겠어."

루나가 말했다. 루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루나는 동시에 여러 명이었다. 루나는 동시에 여러 시간대에 있었다. 루나는 동시에 여러 감정을 느꼈다. 루나는 동시에 여러 고통을 받고 있었다. 루나는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벨의 울음만이 루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황궁의 어딘가에서 발걸음이 들렸다. 빠르고, 무거운 발걸음. 누군가가 황궁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황제의 발걸음이었다.

"2일이 남았다."

카이가 중얼거렸다. 카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제 황제로부터 받은 지시를 떠올렸다. 루나의 정령화가 완성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명령. 하지만 카이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나의 정령화는 이미 90% 진행되었다. 루나의 몸은 거의 완전히 투명했다.

"만월이 뜨면, 루나는..."

카이가 말을 잇지 못했다. 카이는 루나를 바라봤다. 루나의 몸은 이제 절반 이상이 투명했다. 루나의 가슴은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루나의 눈은 더 이상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정령들의 고통과 분노가 담겨 있었다.

루나는 손을 들었다. 손가락에서 은색 빛이 폭발했다. 그 빛이 동쪽 누각 전체를 밝혔다.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창문이 산산조각 났다. 황태후는 비명을 질렀다.

루나는 한 발을 내디뎠다. 그 발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루나의 발은 공중에 떴다. 루나의 몸 전체가 이제 투명했다. 루나의 몸 전체가 이제 은색 빛이었다.

"루나!"

벨의 비명이 들렸다.

"루나, 돌아와! 제발, 돌아와!"

벨이 루나의 투명한 손을 잡으려고 했다. 손가락이 루나의 손을 통과했다. 루나는 더 이상 물질이 아니었다.

루나는 위로 떠올랐다. 동쪽 누각의 천장을 뚫고 올라갔다. 루나는 하늘을 향해 상승했다. 만월이 루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붉은 달이 루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황궁의 대문이 부서졌다.

황제 시온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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