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월의 밤
밤하늘에 떠오른 달은 이전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루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통해 그것을 보는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은빛이 순수한 하얀색을 넘어 거의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밝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 달 뒤에서 손전등을 비추는 것처럼. 그 빛이 닿는 순간, 루나의 귀에는 수십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엄마. 엄마. 엄마.*
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겹겹이 쌓인 목소리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벨의 맑은 울음, 아이리스의 깊은 음성, 루나가 아직 정면으로 만나지 못한 정령들의 목소리까지. 모두가 동시에, 모두가 절박하게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루나의 손가락이 떨렸다. 어제의 그 은색 빛이 다시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제와 달랐다. 어제는 통제할 수 있는 범위였다면, 지금의 빛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루나의 손가락을 뚫고 나오려고 했다.
*내려와. 내려와. 내려와.*
루나는 자신이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이미 발이 차디찬 바닥에 닿아 있었다. 동쪽 누각의 복도를 통과하고,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 언제부터인지 그녀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존재가 그녀의 몸의 줄을 당기고 있는 것처럼.
밤중의 황궁은 고요했다. 하지만 루나의 세상은 고요하지 않았다. 정령들의 울음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들은 루나를 원했다. 루나는 그들을 원했다. 이것이 충돌하는 순간, 세상은 진동했다.
지하 7층의 봉인실에 도달했을 때, 루나의 손에서 나오는 은색 빛은 이미 손가락 너비를 넘어서 있었다. 손목을 감싸고, 팔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봉인실의 문이 열렸다. 누가 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열렸다.
정령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왔다.
벨이 가장 먼저 루나의 품에 안겼다. 그 작은 몸뚱이가 루나를 안을 때, 루나의 정신에 폭포처럼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벨의 탄생. 벨이 처음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황태후의 차가운 얼굴. 벨을 만드는 데 사용된 무언가. 벨이 받은 명령. 벨이 느낀 고독.
루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나타났다. 아이리스는 루나보다 크고 강했다. 아이리스가 루나를 안으려 할 때, 루나는 아이리스의 기억도 받아들였다. 더 오래된 기억. 더 깊은 상처. 아이리스가 감내한 수십 년의 고독.
"안 돼. 안 돼."
루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는가, 아니면 정령들의 울음이었는가.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았다.
봉인실의 다른 정령들도 나타났다. 루나의 손을 만지려고 했다. 루나의 옷자락을 잡으려고 했다. 루나의 몸에서 나오는 은색 빛이 그들을 치유했고, 동시에 그들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수백 년의 기억. 수백 개의 상처. 수백 번의 절망.
루나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반투명해졌다. 팔이 흐릿해졌다. 루나는 자신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루나는 자신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였지? 루나? 벨? 아이리스? 모두가 맞고, 동시에 모두가 틀렸다. 루나는 정령이 되고 있었다. 정령들의 집합체로.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
누가 울고 있는가. 루나인가. 정령인가. 봉인실 전체가 울음으로 진동했다.
그 순간, 따뜻한 무언가가 루나를 감쌌다.
벨이다. 벨이 루나를 품에 안았다. 벨의 작은 몸이 루나의 반투명한 몸을 감싸면서, 벨의 빛이 루나의 빛과 섞였다. 벨의 목소리가 울음이 아닌 노래가 되어 울려 퍼졌다.
*내가 있어. 엄마, 내가 있어.*
노래는 단순했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벨의 존재 자체가 루나의 정령화를 멈추게 했다. 벨의 따뜻함이 루나의 흩어지는 정체성을 다시 모았다.
루나가 돌아왔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루나의 몸이 다시 불투명해졌다. 반투명한 팔이 다시 살색으로 돌아왔다. 루나는 벨을 안았다. 벨을 정말로, 진정으로 안았다. 루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고마워. 고마워, 벨."
루나의 목소리는 부러질 것 같았다. 벨은 루나의 머리를 쓸어주며 노래를 이어갔다. 다른 정령들은 서서히 물러섰다. 마치 그들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봉인실을 나올 때쯤, 루나는 자신의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계단을 오르며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벨은 루나의 팔에 감겨 있었다. 작고 따뜻하고, 루나가 지금 이 순간 확실히 루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무게.
"루나."
카이가 복도의 모퉁이에서 나타났다. 그의 눈은 루나의 상태를 재빨리 훑었다. 반투명했던 피부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루나의 눈은 여전히 흐릿했다.
"만월이 되면 주의하라고 했잖아."
카이의 목소리는 낮았다. 마치 아무도 듣지 못하게, 루나만 들을 수 있게.
"만월의 밤에는 당신의 능력이 통제 불가능해진다. 당신이 받는 모든 정령의 감정이 한 번에 쏟아진다. 그리고 당신은 정령화된다. 지금처럼."
루나의 눈이 흐려진 채 카이를 바라봤다. 카이의 말이 맞다. 루나는 방금 그것을 경험했다. 그런데 왜 이 말이 위협처럼 들렸을까.
"황제 폐하께서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거다."
카이가 계속했다.
"다음 만월은 한 달 뒤다. 그 전에 당신은 정령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한다."
루나의 뇌가 그 말을 되씹었다. *보호.* 정말로 보호일까. 아니면 감시일까. 루나는 카이의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마치 그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는 듯이.
"하지만 정령들은 당신을 원할 것이다. 특히 벨은."
카이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루나는 벨을 더 꽉 안았다. 벨이 루나를 구했다. 벨이 루나를 정령으로 사라지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카이는 루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 벨을 떨어뜨리라고? 정령들을 외면하라고?
*보호.*
그 단어가 루나의 뇌에서 자꾸만 돌았다. 한 번 의심이 시작되니 모든 것이 의심으로 보였다. 황제가 루나를 보호한다고? 루나를 감시하는 것 아닐까. 루나를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닐까.
"황제 폐하는 당신을 보호하려는 거다."
카이가 다시 말했다. 목소리에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이것은 감시가 아니다. 당신을 위한 것이다."
루나는 카이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진심이 있었다. 하지만 루나는 이미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상처받은 자의 자기기만으로.
"알겠습니다."
루나의 목소리는 카이의 그것처럼 낮았지만, 의미는 정반대였다. 루나는 알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거부했다. 루나는 알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카이의 경고를 황실의 음모로 해석했다.
카이의 얼굴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후회? 안타까움?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다. 카이는 루나의 등 뒤로 한 발을 물러섰다.
"동쪽 누각으로 돌아가십시오. 황제 폐하께서 명하셨습니다."
루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봉인실에서 나온 후, 이제 루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동쪽 누각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있을 것인가. 한 달을 기다릴 것인가. 벨을 안지 않고 있을 것인가.
불가능했다.
루나는 카이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복도 끝에서 황제의 관리인이 나타났다. 루나는 그를 보자마자 알아챘다. 이 사람은 황제의 눈이다. 황제는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 황제는 자신을 위협으로 본다.
"황제 폐하께서 즉시 동쪽 누각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관리인의 목소리는 정중했다. 하지만 루나의 귀에는 사슬 소리로 들렸다.
루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벨은 루나의 팔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마치 벨이 루나를 지켜내야 한다고 결심한 것처럼.
복도를 걸어가며, 루나의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자신이 이 황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황제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황실은 자신을 위협으로 본다. 정령들은 자신을 원하지만, 자신과 함께 있으면 상처를 입는다.
벨이 루나의 팔에서 울음을 냈다. 작고 슬픈 울음.
"괜찮아, 벨. 우리가 함께니까."
루나의 목소리는 거짓이었다.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다. 루나는 점점 정령이 되어가고 있었다. 루나는 점점 자신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동쪽 누각의 침대에 누워, 루나는 천장을 바라봤다. 벨은 루나의 가슴 위에 작게 웅크리고 있었다. 루나의 손가락에서 아직도 은색 빛이 약하게 피어올랐다.
*한 달. 한 달을 견디면 된다.*
루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나오는 순간, 다른 생각이 밀려들었다.
*벨이 아니라면?*
*다음 만월에 벨을 구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루나는 벨을 더 꽉 안았다. 벨의 울음이 루나의 목에 닿았다. 벨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순간, 황궁 어딘가에서 시온 황제는 루나의 도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펴져 나갔다. 주먹을 푸는 것처럼. 마치 어떤 것을 놓아주는 것처럼.
황제의 얼굴은 어두웠고, 그의 눈은 멀리 있었다.
"폐하."
황태후의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울렸다.
"루나가 봉인실로 내려갔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거하시겠습니까?"
황제는 손가락을 완전히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주먹을 다시 쥐었다.
"두고 보자."
그것만이 그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무언가 더 있었다. 루나를 보호하려는 의지인지, 아니면 루나를 시험하려는 의도인지. 황태후는 알 수 없었다.
한 달 뒤, 다음 만월이 뜨는 밤. 루나는 더 이상 자신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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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갔다.
벨은 루나의 팔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작은 정령의 몸이 루나의 품 속에서 떨리고 있었다. 복도의 촛불이 그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놨다. 황제의 관리인은 무표정한 얼굴으로 앞을 걸었고, 루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감시다. 이것은 감시다.*
동쪽 누각까지의 길은 길었다. 황궁의 복도는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벽마다 황실의 초상화들이 루나를 재판하듯 내려다봤다. 루나는 눈을 돌렸다. 자신의 혈연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침실에 도착했을 때, 관리인은 루나에게 절을 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시길 바랍니다. 내일 아침 루엘 선생님께서 오실 예정입니다."
루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그 순간 루나는 확실히 느꼈다. 자신이 감옥에 들어갔다는 것을.
침대에 누워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벨은 루나의 가슴팍에 웅크리고 있었다. 작은 정령은 루나의 심장 박동을 들으려는 듯 귀를 붙였다.
"벨."
루나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속삭임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끝날 거야?"
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더욱 몸을 웅크렸다. 루나는 벨의 등을 쓸어내렸다. 따뜻한 털 같은 감촉이었다. 정령의 몸은 온기를 발산했다.
천장을 보고 있으니, 천장의 패턴이 계속 변해 보였다. 한 번은 감옥 격자처럼, 한 번은 거미줄처럼. 루나의 마음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한 달. 한 달을 견디면 된다.*
하지만 그 생각이 나오는 순간, 다른 생각이 밀려들었다.
*벨이 아니라면?*
루나는 눈을 떴다. 벨을 바라봤다. 작은 정령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벨, 괜찮아?"
"…"
벨은 울음 대신 진동만 냈다. 루나의 몸이 그 진동을 받았다. 벨도 무서워하고 있었다. 벨도 자신이 루나를 소모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나는 벨을 더 꽉 안았다. 그렇게 하면 벨이 안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도 안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심은 오지 않았다. 대신 뜨거운 것이 루나의 뺨을 타고 흘렀다. 울음이었다. 루나는 자신이 우는 것을 깨달았다.
밤이 더 깊어갔다.
언제쯤 잠이 들었는지 루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벨의 체온이 사라졌고, 루나는 혼자가 되었다.
루나는 깰 수 없었다. 꿈 속에서, 루나는 자신이 정령이 되어가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했다. 손가락이 은색 빛으로 변해가고, 몸이 투명해져 가고, 마음이 여러 개로 쪼개져 가는 경험. 그 속에서 루나는 비명을 질렀다.
"루나!"
벨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벌떡 일어났다. 침대 위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만월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만월까지는 한 달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루나의 몸은 아직도 만월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 같았다.
벨은 루나의 옆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괜찮아, 벨. 꿈이야."
"아니야. 루나, 들어 봐."
벨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무언가 다급했다.
루나는 귀를 기울였다.
복도에서 발걸음이 들렸다. 여러 명의 발걸음이었다. 그들은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루나의 침실 쪽으로.
"누구야?"
루나가 중얼거렸을 때, 문이 열렸다.
밤의 어둠 속에서, 황실의 내시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는 횃불이 들려 있었다. 그 불빛 뒤로,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루나 마님."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루나는 그 목소리를 알아챘다. 루엘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당신의 상태를 점검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루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벨은 루나의 어깨로 몸을 날렸다.
"이 시간에?"
"만월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루엘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 그의 얼굴이 횃불에 비추어졌다. 루엘의 눈은 차갑고 명확했다. 그것은 학자의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냥꾼의 눈이었다.
루나는 벨을 더 강하게 안았다.
"점검이라니…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당신의 정령 감응 능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 측정하려고 합니다."
루엘이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 빛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루나의 은색 빛과는 다른 색이었다. 그것은 억압하고 통제하는 빛이었다.
"여기 있는 정령을 안아 보시겠습니까?"
루엘의 뒤에서 내시가 한 명 더 나아왔다. 그 내시의 팔에는 작은 새장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금색의 작은 정령이 갇혀 있었다.
루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신이 그 정령을 안으면, 그 정령의 상태 변화를 통해 당신의 능력이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저 정령은…"
루나가 말을 시작했지만, 루엘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것은 황제의 명령입니다. 거부하실 수 없습니다."
침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루나는 새장 속의 정령을 바라봤다. 그 정령은 루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냈다. 고통스러운 울음이었다.
벨이 루나의 귀에 속삭였다.
"루나, 하지 마. 그 정령은… 위험해. 루엘의 손에 가두어진 거야. 함정이야."
루나는 알고 있었다. 벨의 말이 맞다는 것을. 하지만 새장 속의 정령의 울음이 계속 들렸다. 그것은 루나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루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루나!"
벨이 비명을 질렀다.
"괜찮아, 벨."
루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차분함 아래에는 절망이 있었다.
루나는 새장 속으로 손을 내밀었다. 루엘이 새장의 문을 열었다. 금색의 정령이 루나의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루나가 그 정령을 안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정령의 기억이 루나의 뇌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벨의 기억과는 달랐다. 벨의 기억은 슬픔이었다면, 이 정령의 기억은 고통이었다. 반복되는 고통. 루엘의 손에 의한 고통. 정령을 억압하는 푸른 빛의 고통. 그리고 더 깊은 것—이 정령이 루나에게 접촉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 루엘의 강압으로 강제되었다는 것.
"아악!"
루나가 비명을 질렀다.
루엘은 침착하게 기록을 시작했다. 그의 손에서 필기구가 나왔다.
"흥미롭습니다. 고통의 전이 속도가 빨라졌네요. 만월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루나!"
벨이 루나에게 달려들었다. 벨이 루나를 안으려고 했지만, 루나의 몸에서 나오는 은색 빛이 벨을 밀어냈다. 루나는 이미 그 정령과의 접촉으로 인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도 기록하겠습니다. 다른 정령과의 상호작용 시 충돌 현상."
루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해부학자가 표본을 관찰하듯이.
루나는 그 정령을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놓을 수 없었다. 정령이 루나의 팔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깊이 루나에게 흡수되어가고 있었다. 그 정령이 필사적으로 루나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구해줘. 구해줘. 구해줘.*
정령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루나의 손이 떨렸다. 루나는 이제 알았다. 루엘의 함정을. 루엘이 일부러 고통받는 정령을 루나에게 보낸 것. 루나가 그 정령을 구하려고 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루나의 호흡이 가빠졌다. 루나의 눈이 흔들렸다.
루나의 팔은 정령을 놓으려고 했지만, 루나의 마음은 정령을 구하고 싶었다. 정령의 울음이 루나의 모든 이성을 압도했다. 루나는 정령을 더 꽉 안았다. 정령이 루나에게 더욱 깊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루나의 손가락이 다시 반투명해졌다. 팔이 흐릿해졌다. 루나는 자신이 다시 정령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벨이 루나를 구하지 않았다. 벨은 루나의 은색 빛에 의해 밀려나 있었다.
"저것을 빼앗아 가시면 안 됩니다."
루나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루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령들의 목소리였다. 루나의 입에서 나오는 정령들의 합창이었다.
루엘의 펜이 멈췄다.
"흥미롭다. 정령화의 조짐입니다."
루엘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신호에 내시들이 루나를 에워쌌다. 루나는 새장 속의 정령을 계속 안고 있었다. 그 정령과 루나는 이제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벨이 다시 루나에게 달려들었다. 작은 정령이 루나의 정령화를 멈추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벨의 목소리가 루나의 귀를 찢었다.
"루나, 돌아와. 루나! 제발!"
벨의 울음이 루나를 관통했다. 루나의 정령화가 멈췄다. 루나는 벨을 바라봤다. 벨의 얼굴이 보였다. 벨이 루나를 구하려고 하고 있었다. 벨이 루나를 잃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루나는 천천히 정령을 내려놨다. 은색 빛이 사라졌다. 루나의 눈이 다시 루나의 눈이 되었다. 루나의 몸이 다시 불투명해졌다.
"이제 충분합니다."
루엘이 말했다.
"당신의 능력은 예상 이상으로 불안정합니다. 당신은 자신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을 도와야겠습니다."
루엘이 손을 들었다. 내시들이 루나의 양팔을 잡았다.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루나가 저항했지만, 루나의 몸은 이미 지쳐 있었다. 루엘이 루나의 손목에 무언가를 차웠다. 찬 금속 같은 것. 그것은 루나의 정령 감응 능력을 억압하는 도구였다.
루나의 손에서 은색 빛이 사라졌다.
"이것은 당신의 능력을 제어하기 위한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거짓이야!"
루나가 외쳤다. 벨이 루나의 옆에서 울음을 냈다.
루엘과 내시들이 침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문이 잠겼다.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손목의 밴드를 바라봤다. 그것은 루나의 피부에 차갑게 닿아 있었다. 루나의 능력을 완전히 억압하고 있었다. 루나의 손가락이 밴드의 모서리를 더듬었다. 빼낼 수 있을까. 루나는 손목을 비틀었다. 밴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벨이 루나의 팔에 올라탔다.
"루나, 괜찮아? 루나?"
"벨."
루나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깨진 목소리였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루나의 목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밤의 어둠 속에서, 루나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루나의 귀에는 계속해서 새장 속의 정령의 울음이 들렸다.
그 울음은 루나를 부르고 있었다.
*구해줘. 구해줘. 구해줘.*
루나의 손이 손목의 밴드에 닿았다. 벨이 루나의 손을 안으려 했지만, 루나는 이미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벨이 자신을 구했듯이, 저 정령도 구해야 한다는 생각. 저 정령도 누군가의 벨이 아닐까. 루나는 밴드를 빼려고 했다. 하지만 빠지지 않았다.
"루나, 하지 마."
벨의 목소리가 나왔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그 정령은… 위험해. 루엘의 함정이야."
"알아."
루나가 속삭였다.
"하지만 우리가 구하지 않으면 누가 구할 거야?"
루나의 손이 밴드를 계속 더듬었다. 손목을 비틀고, 당겨보고, 흔들었다. 밴드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루나의 노력이 헛되었다. 루나는 밴드를 벗길 수 없었다. 하지만 루나는 계속 시도했다. 마치 그것이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벨은 루나의 손 위에 자신의 몸을 올렸다. 작은 정령이 루나의 손을 감싸려고 했다.
"루나, 제발. 제발 하지 마."
벨의 울음이 루나의 심장을 찢었다.
루나는 손을 멈췄다. 벨을 바라봤다. 작은 정령의 얼굴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괜찮아, 벨."
루나가 벨을 안았다.
"우리가 함께니까."
하지만 루나의 마음은 여전히 새장 속의 정령에게 향해 있었다. 루나는 밴드를 빼려고 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언젠가는 빼낼 것이었다. 정령을 구할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루나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때, 루나는 선택해야 할 것이었다.
황제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저 정령을 구할 것인가.
벨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다른 정령을 구할 것인가.
밤이 깊어갔다. 루나는 벨을 안은 채 천장을 바라봤다. 손목의 밴드는 여전히 루나를 속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루나의 뇌 속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벨의 목소리. 그리고 새장 속의 정령의 목소리.
*구해줘. 구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