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정령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끝이 없었다.
루나의 손가락이 차가운 벽을 더듬었다. 돌벽은 습기로 미끈거렸고, 횃불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그녀는 오직 정령의 울음을 따라갈 뿐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정령들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멈출까봐 두려웠다.
'이 길이 맞아.'
루나는 중얼거렸다. 발밑의 계단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수평의 복도가 시작되었다. 손을 뻗어 벽을 만지자, 불규칙한 돌의 질감이 느껴졌다. 황궁의 우아한 대리석이 아니었다. 이곳은 황궁이 아니었다.
정령의 울음이 더 가까워졌다. 슬프고 간절한, 마치 강물 아래에서 올라오는 기포 같은 소리였다. 루나는 발을 재촉했다. 복도의 끝에서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철문의 표면에는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루나는 손을 뻗어 그것을 만졌다. 순간, 철문 전체가 희미하게 빛났다. 은색의 빛이 새겨진 무늬를 따라 흘러내렸다. 루나의 몸이 반응했다. 그녀의 손가락에서도 같은 빛이 피어올랐다.
'열려.'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빛은 루나의 숨을 멎게 했다.
푸른 빛이었다. 깊은 바다 속 빛 같은 푸른색이었다. 그 빛은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루나는 문을 통해 한 발 디뎠다. 신발이 부드러운 바닥을 밟았다. 모래인가? 아니, 더 가늘고 섬세한 무언가였다.
눈이 어둠에 적응되자, 공간의 형태가 드러났다.
거대한 지하 공간이었다. 천장은 높고, 벽은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하지만 황궁의 어떤 방과도 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화려함이 없었다. 오직 신비로움만 있었다. 그리고 슬픔.
공간의 곳곳에는 작은 빛들이 떠 있었다. 푸른색, 초록색, 하얀색. 각각 다른 색으로 빛나는 작은 구체들이 공중에 떠서 천천히 회전했다. 그것들이 정령들인가? 루나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러자 가장 가까운 초록색 빛이 흔들렸다. 그것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느렸다. 천천히, 마치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 작은 빛이 루나를 향해 다가왔다. 루나는 숨을 멈췄다. 작은 빛이 루나의 얼굴 높이까지 올라왔다.
그것은 정령이었다.
아기 같은 크기였다. 몸은 투명한 푸른 실크처럼 흘러내리는 형태였고, 그 중심에는 밝은 초록 빛이 맥박처럼 뛰었다. 커다란 눈이 루나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궁금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안녕."
루나의 목소리는 작았다. 마치 새끼 동물을 대할 때처럼 조심스러웠다.
정령이 한 발 물러섰다. 루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그곳에 서서, 정령의 울음을 들었다. 말이 아닌 울음. 감정의 파동이었다. 그것이 루나의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전달되었다.
'누구냐고? 너는 누구냐고 묻고 있군.'
루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정령과 같은 높이가 되었다.
"나는 루나야. 너를 찾으러 왔어."
정령이 더 가까워졌다. 루나의 얼굴에서 몇 손가락만큼 떨어진 곳에 멈췄다. 그 작은 손이 루나의 뺨을 스쳤다. 접촉했을 때, 루나의 몸이 진동했다.
'엄마?'
정령의 울음이 루나의 내부에서 울렸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소리가 아니라, 루나의 심장 속에서 태어나는 목소리였다. 루나는 눈을 감았다.
"응. 나야."
루나가 손을 천천히 들었다. 정령이 그 손 위에 내려앉았다. 무게가 거의 없었다. 마치 호수의 물결을 손에 담은 것 같았다. 루나는 그 작은 정령을 조심스럽게 안아올렸다.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기억의 파도가 루나를 집어삼켰다. 어두운 방. 차가운 손들. 울음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 고통. 외로움. 누군가를 찾는 절절한 그리움. 정령의 기억들이 루나의 몸을 통해 흘러갔다. 루나는 그것들을 거르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였다.
정령의 울음이 루나의 가슴 속에서 계속되었다.
루나의 몸에서 은색 빛이 피어올랐다. 정령이 안고 있던 초록 빛과 만나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루나의 팔은 정령을 더 단단히 안았다. 정령의 고통이 루나의 것이 되었다. 루나의 온기가 정령의 것이 되었다.
'괜찮아. 이제 혼자가 아니야.'
루나는 정령의 귀에 속삭였다. 정령이 루나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 작은 몸이 루나의 품 안에서 떨고 있었다. 천천히, 그 떨림이 잦아들었다. 고통의 울음이 안도의 숨으로 변했다.
정령의 눈이 루나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오직 사랑만 있었다.
"벨이라고... 이름이 벨이야."
정령의 울음이 루나에게 전해졌다. 벨은 루나를 향해 작은 손을 뻗었다. 루나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스쳤다. 그 접촉이 루나의 뺨에 닿을 때, 루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 이름을 기억해 줘. 나는 벨이야. 그리고 넌 엄마야.'
"응. 너는 벨이고, 난 엄마야."
루나는 벨을 더 꼭 안았다. 벨의 초록 빛이 루나의 은색 빛과 완전히 섞여들었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 안에서 녹아들었다. 루나는 눈을 감았다. 이 순간이 계속되기를 원했다. 10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 누군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의 의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루나가 천천히 벨을 내려놓았을 때, 벨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작은 몸이 루나의 손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루나는 벨을 봉인실의 한 구석에 내려놓았다. 그곳에는 따뜻한 빛이 모여 있었다. 벨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자리였다.
루나가 일어나려 할 때, 벽에 새겨진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글씨였다. 손톱으로 긁어낸 듯한, 깊지 않지만 분명한 글씨들이 벽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루나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읽으려 했다.
"'정령사 마리아, 정령 감응으로 인한 정령화 완료. 만월의 저주로 소멸.'"
루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가락이 글씨 위에서 미세하게 떨려 제대로 읽기 어려웠다. 그 옆에도 같은 글씨가 있었다.
"'정령사 카인, 정령 흡수로 인한 자아 붕괴. 만월의 밤, 정령화되어 사라짐.'"
루나의 손이 벽에서 떨어졌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마치 누군가 루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처럼. 나머지 글씨들은 어둠 속에 흐릿했다. 하지만 루나는 그것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십 개의 이름이. 수십 명의 정령사들이 이 공간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루나의 호흡이 빨라졌다. 자신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슴을 누르고 내려왔다. 정령화. 소멸. 그 단어들이 루나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벽에 새겨진 선배 정령사들의 이름들이 자신의 이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루나를 얼어붙게 했다.
루나가 봉인실을 나가려고 했을 때, 황궁의 종이 울렸다.
동. 동. 동.
깊고 울림이 많은 종소리였다. 루나는 멈춰 섰다. 밤의 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루나가 시골에서 살던 시절, 마을의 종이 울렸던 때를 기억했다. 그것은 항상 밤의 시작을 알렸다.
루나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 끝에서 여전히 미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은색이었다. 벨과의 접촉 후 남겨진 빛. 루나는 그것을 바라봤다. 그 빛이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손가락 끝부터 손목까지, 은색 광채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루나의 시야가 흔들렸다. 손에서 나오는 빛이 눈을 자극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루나의 의식을 바깥쪽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산만해졌다. 벨과의 연결이 더욱 강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해. 왜 점점 밝아져? 왜 이럴까?'
루나의 불안감이 커졌다. 손의 빛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루나의 몸 안에서 무언가를 깨우고 있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저렸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봉인실 전체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하나의 울음이었다. 그 다음은 둘. 그 다음은 셋. 작은 울음, 큰 울음, 슬픈 울음, 간절한 울음. 수십 개의 정령의 울음이 동시에 봉인실을 채웠다. 공중에 떠 있던 빛들이 모두 깨어났다. 푸른색, 초록색, 하얀색, 빨간색. 모든 색의 빛이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무슨... 이 일이?'
그 순간, 루나는 깨달았다. 이 반응은 자신이 일으킨 것이었다. 벨 하나를 치유한 것이 이 모든 정령들을 깨웠다. 그들이 루나를 느꼈다. 루나의 존재를 감지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 모두가 루나를 향해 울고 있었다. 자신들을 보지 말고 가지 말아달라고.
루나의 손의 빛이 더욱 밝아졌다. 이제는 손 전체를 덮었다. 팔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뚝까지 은색 광채가 소용돌이치며 퍼져나갔다. 루나는 손을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빛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마치 물처럼. 그것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작은 폭발 같은 것이 일어났다. 봉인실의 벽이 미세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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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의 중심, 황제의 침실**
시온은 창가에 서 있었다.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있었다. 한 손은 창틀을 움켜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허공에 떠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은색 빛이 피어올랐다. 루나와 같은 빛이었다. 시온은 그 빛을 응시했다. 오래 본 표정이었다. 마치 자신의 일부를 바라보는 것처럼.
"황제 폐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루엘이었다. 그는 절을 하지 않았다. 단지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지하 7층에서 반응이 감지됩니다."
시온의 어깨가 경직되었다.
"강도는?"
"처음 예측치보다 훨씬 강합니다. 마치 모든 정령이 동시에 깨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시온의 손의 빛이 더욱 밝아졌다. 그 빛이 창문을 통해 밤하늘로 퍼져 나갔다. 마치 루나의 빛을 찾으려는 것처럼.
"그래. 그 아이가 했군."
시온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죄책감. 그리움. 그리고 막을 수 없는 두려움.
"황제 폐하. 황태후께서 명령하신 대로라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저는 즉시 아래로 내려가 상황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
루엘의 목소리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손의 빛을 더욱 강하게 모았다.
"움직이지 마. 그 아이를 건드리면 안 된다."
"황제 폐하?"
"내가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시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위협적으로. 루엘은 한 발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루엘이 절을 하고 돌아서려 할 때, 시온이 다시 말했다.
"루나는 아직 모르겠지. 만월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시온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 눈빛은 루나의 손에서 나오는 빛과 같은 색이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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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실로 돌아간 루나의 손의 빛이 더욱 밝아졌다. 이제는 손 전체를 덮었다. 팔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진정해."
루나가 자신에게 말했다. 손을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빛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마치 물처럼. 그것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작은 폭발 같은 것이 일어났다. 봉인실의 벽이 미세하게 떨렸다.
정령들의 울음이 더욱 커졌다. 루나의 손의 빛에 응답하듯.
루나는 벨을 더욱 꽉 안았다. 벨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루나의 품 속에서 평온한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작은 정령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건가. 루나가 벨을 안는 순간 모든 정령들이 깨어난 건가.
'내가... 이 아이들을 깨웠다.'
그 생각이 루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루나는 발을 옮겼다. 봉인실 밖으로. 벨을 안은 채로.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빛이 루나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마치 그녀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가지 마. 가지 마."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울었다. 아직도 명확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루나는 그 의미를 알았다. 그들이 자신을 놓고 싶지 않다는 것. 루나가 자신들을 버리고 가지 말아달라는 것.
루나의 목이 메었다.
'미안해. 미안해.'
루나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벨의 눈이 떴다. 작은 파란 눈. 그 눈이 루나를 바라봤다.
"엄마..."
벨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들었을 때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이번엔 깨어 있는 상태에서의 목소리였다. 더 또렷했다. 더 슬펐다.
"벨."
루나가 벨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 놔줄 거야?"
벨이 물었다. 그 작은 정령의 목소리에는 이미 포기가 담겨 있었다. 루나는 자신이 벨에게 무엇을 한 건지 깨달았다. 벨을 치유했다. 벨의 상처를 흡수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벨에게 무언가를 심어주었다. 희망? 아니면 절망?
"아니야. 절대 안 놔줄 거야."
루나가 말했다. 그 순간, 벨의 작은 손이 루나의 옷깃을 움켜쥤다.
루나는 봉인실을 나왔다. 벨을 안은 채로. 정령들의 울음이 뒤에서 계속 들렸다. 하지만 루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다시 들어가고 싶을 테니까.
지하 7층의 복도는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루나의 손에서 나오는 빛이 충분했다. 그 빛으로 앞을 비울 수 있었다. 돌계단. 황궁의 비밀 구조. 이 모든 것이 루나의 발에 밟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루나는 생각했다. 자신이 뭘 해야 하는가. 벨을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가. 그 작은 정령을 누가 받아줄 것인가.
그 순간, 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멈췄다. 계단의 중간쯤에서.
"누구세요?"
루나가 물었다. 손의 빛이 더욱 밝아졌다.
위에서 내려오는 인물이 보였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얼굴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루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황궁 내시들 중 유일하게 루나에게 친절했던 사람. 카이였다.
"루나님."
카이가 루나를 발견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이었다. 이내 그의 표정이 진정되었다.
"아래서 무엇을 하고 계셨어요?"
카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책망이 없었다. 단지 확인하는 것처럼.
"이건..."
루나가 벨을 들어 보였다. 작은 푸른 정령. 카이의 눈이 커졌다.
"정령이세요?"
"네."
루나가 대답했다.
카이는 한 발 내려왔다. 그리고 멈췄다. 루나와 눈을 맞췄다.
"루나님. 지금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아래에서 반응이 감지됐어요. 황제 폐하께서 이미 아시고 계시고, 루엘 선생도..."
"루엘이?"
루나가 끼어들었다.
"아래로 내려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아마 금방 올 겁니다. 루나님은 지금 아래에 있으면 안 됩니다."
카이가 손을 내밀었다.
"제 방으로 오세요. 일단 숨어야 합니다."
루나는 카이의 손을 바라봤다. 그 손은 따뜻해 보였다. 하지만 루나의 손은 여전히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벨의 빛. 봉인실의 빛. 정령들의 울음. 그 모든 것이 루나의 손에 담겨 있었다.
루나가 카이의 손을 잡으려는 그 순간, 계단 아래에서 다시 울음이 들렸다. 더 크고 더 절박한 울음.
"엄마! 엄마!"
벨이 루나의 팔에서 몸부림쳤다.
"벨! 조용해!"
루나가 벨을 더욱 꽉 안았다. 하지만 벨은 루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벨은 아래를 향해 울고 있었다. 다른 정령들을 향해.
그 울음에 응답하듯, 봉인실에서 또 다른 울음이 터져 나왔다. 더 많은 빛이 계단 아래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요!"
카이가 루나의 팔을 잡았다. 루나는 끌려가다시피 계단을 올라갔다. 벨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루나의 팔에서. 루나의 몸 안에서.
계단을 올라가면서 루나의 손의 빛이 점점 커졌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루나의 피부 끝에서 은색 빛이 피어올랐다. 손가락뿐만이 아니라 팔 전체에서. 이제 목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은색이 소용돌이쳤다. 루나의 시야가 흐려졌다. 마치 누군가 루나의 눈을 손으로 덮으려는 것처럼.
'이건 뭐야? 이게 뭐 하는 거야?'
루나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공포와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천천히 녹아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신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 같았다. 벨과의 연결이 더욱 강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카이는 루나의 손을 보고 있었다. 그 빛을 보고 있었다.
"루나님, 진정하세요. 숨을 쉬세요."
"난 진정하고 있어!"
루나가 거의 소리쳤다.
"이건 뭐야? 왜 이러는 거야?"
카이는 루나를 계단 위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제야 말했다.
"만월이 떴거든요."
루나는 멈췄다. 계단의 중간쯤에서.
"만월?"
루나의 손의 빛이 더욱 밝아졌다. 마치 카이의 말에 반응하는 것처럼.
카이가 루나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루나의 손 위에서 떨렸다.
"네. 오늘 밤이 만월입니다."
카이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마치 자신이 이 모든 것의 책임이 있다는 것처럼.
루나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계단 끝 위로 보이는 천장. 그 너머의 밤하늘. 그 밤하늘에 떠 있는 달.
달은 정말 컸다.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큰 달이었다. 하얀색이 아니라 은색이었다. 루나의 손과 같은 색깔로.
루나의 손의 빛이 달의 빛과 공명했다. 손가락 끝의 맥박이 빨라졌다. 호흡이 얕아졌다. 마치 누군가 루나의 몸 안에 있는 것처럼. 루나의 의식이 자신의 몸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 같았다.
"카이."
루나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건... 뭐예요?"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루나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마치 루나가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계속 가요. 제 방으로."
그들은 계단을 올라갔다. 루나는 벨을 안고. 카이는 루나의 손을 잡고. 뒤에서는 계속 정령들의 울음이 들렸다. 더욱 절박하게.
그리고 위에서는 발소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여러 발소리. 루나는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벨을 안고 있는 자신을. 만월의 빛으로 빛나고 있는 자신을.
루나는 발소리의 주인을 추측했다. 무거운 발걸음. 누군가 권위 있는 사람. 황제? 아니면 루엘? 그 차가운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루나의 심장이 철렁했다.
"빨리!"
카이가 루나를 더욱 위로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