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본문

포구의 냉기가 뼈를 훑고 지나갔다. 주경은 류해가 건넨 주소를 손에 쥔 채 뒷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신호탄의 빛이 아직도 하늘 끝에서 맴돌고 있었다. 석혜가 숨을 고르며 옆에 섰다.

"류해 형이 남았어요."

주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의 마비감이 점점 팔뚝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초침을 사용한 지 얼마나 되었나. 몇 시간? 아니면 며칠? 시간의 감각이 흐릿했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월의 목소리였다. 어두운 골목 입구에서 그가 나타났다.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공상의 피인지, 자신의 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하 인쇄소는 위험합니다. 철천이 이미 포진했을 겁니다."

"그럼 어디로?"

"경성 북쪽. 사찰 계곡 아래 집이 있습니다."

주경이 고개를 들었다. 류해가 말해준 주소와 같은 장소였다.

"그곳에 무엇이 있습니까?"

신월은 주경을 오래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죄책감, 연민,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당신이 찾아야 할 것입니다."

신월이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 주경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신월은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돕고 있었다.

경성 북쪽으로 가는 길은 길었다. 석혜는 포구의 상인들을 통해 외진 길을 확보했다. 주경과 석혜는 밤새 이동했다. 말 위에 몸을 싣고, 산길을 넘고, 시냇물을 건넜다. 돌아오는 길이 가까워질수록 주경의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새벽이 밝아올 때, 그들은 사찰 계곡 아래 집에 도착했다.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다. 창문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문고리는 녹이 슬어 있었다. 주경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마비된 손가락이 문을 밀어냈다.

안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먼지 냄새. 나무의 썩은 냄새. 그리고 기름과 금속의 냄새.

주경의 눈이 어두움에 익숙해지자, 형체들이 드러났다. 공작대. 공구들. 그리고 벽장에 가지런히 정렬된 시계들.

수십 개의 시계들이었다. 모두 다른 크기, 다른 디자인. 하지만 모두 같은 손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정밀함을 지니고 있었다.

주경이 한 걸음씩 들어갔다. 공작대 위에는 도면들이 펼쳐져 있었다. 손으로 만진 도면들이었다. 향로골목 공방에서 발견했던 그 도면들이었다.

그리고 메모가 있었다.

필체는 주경 자신의 것이었다. 예리하고 정확한, 흔들림이 없는 필체. 하지만 주경은 이것을 쓴 기억이 없었다.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직 쓰지 않은 것이었다.

주경이 천천히 도면을 들었다. 손가락이 메모를 더듬었다. 미래형으로 쓰인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만들 것', '시도할 것', '시험할 것'.

그것은 미래가 아니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전생에서.

주경이 메모를 읽으며 천천히 이해했다. 전생의 자신이 남긴 기록. 시침의 귀향을 완성하려던 계획. 그리고 그 계획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당신은 누구인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주경이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의 인영이 드러났다. 철천이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주경을 관통했다.

"당신은 암투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철천의 입에서 나온 말이 주경의 귀를 스쳤다.

"전생의 일을 아는가?"

주경이 입을 떼었다. 목소리가 나왔다. 낮고, 떨리고 있었다.

"정치 암투에 휘말려 죽었습니다."

철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 움직임 하나마저 절대 권위를 담고 있었다.

"아닙니다. 당신의 가문은 황실의 시간 측정 기술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당신 자신도 그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시간을 조작할 수 있는 자는 곧 권력을 조작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것이 황실이 두려워한 것입니다."

철천이 한 발 다가섰다. 그의 신발이 먼지를 밟으며 작은 구름을 일으켰다.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죽었습니다. 나는 그 실패를 막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주경의 눈이 도면으로 돌아갔다. 메모를 다시 읽었다. 손가락으로 글씨를 더듬으며 그 의미를 되짚었다. 자신의 필체. 자신의 계획. 자신의 욕심이 남긴 흔적.

아버지의 기술. 그것을 이용해 권력을 손에 넣으려던 야심.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죽음.

"당신의 아버지는 위대한 기술자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기술을 이용해 권력을 손에 넣으려 했습니다."

철천의 목소리가 계속됐다.

"그것을 나는 막아야 했습니다."

주경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철천의 눈과 만났다. 그 눈 속에는 정당성이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을 옳다고 믿는 자의 눈.

"그래서 내 가문을 멸문했습니까?"

"그래서 황실의 안정을 지켰습니다."

철천이 검을 뽑았다. 금속음이 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그 음파가 벽의 시계들을 울렸다. 시계들이 울음을 내기 시작했다. 똑딱, 똑딱.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포구에서 주경을 도와줬던 신월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손에는 기관총이 들려 있었다. 그 뒤로 신기관의 전사들이 따라왔다.

"철천. 당신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신월의 목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 목소리 아래에는 죄책감, 속죄, 그리고 동정이 흐르고 있었다.

철천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웠다.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신월이 한 발 다가섰다.

"과거는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미래가 중요합니다."

그 순간, 천장이 부서지며 공상이 내려왔다. 그의 검이 신월을 향해 쏟아졌다. 신월의 기관총이 울음을 냈다. 신월의 전사들이 흩어졌다.

주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 쥔 도면이 떨렸다.

지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서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당신이 받은 비무는 과거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현재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경의 눈이 떠졌다.

그는 이제 알았다. 자신이 자신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 자신의 욕심, 자신의 야심, 자신의 계획이 자신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것. 철천이 한 것은 단지 그 욕심을 꺾은 것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을 복수해야 하는가?

손에 쥔 초침이 따뜻해졌다. 아니, 뜨거워졌다. 마치 생명이 그것을 태우고 있는 것처럼.

주경이 입을 열었다.

"제 비무는 당신들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 공상이 검을 날렸다. 천장을 가로지르는 섬광. 신월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공상의 목표는 신월이 아니었다.

공상의 검이 주경을 향했다.

동시에 철천이 움직였다. 그의 검이 공상의 검과 만났다. 금속음이 울렸다.

"공상. 당신이 여기 있었군요."

철천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신기관의 고위층이 신혈맹의 우두머리와 대면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공상은 신기관 내에서 철천의 개혁을 방해해온 자였다.

공상이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막을 수 있을까요? 주경이 시침의 귀향을 완성하면 모든 것이 바뀔 텐데."

"그것을 막기 위해 내가 여기 있습니다."

철천의 검이 다시 공상의 검과 부딪혔다. 두 검이 교차할 때마다 공간이 떨렸다. 신월의 기관총이 울음을 냈지만, 공상의 부하들이 그것을 막았다. 신기관의 전사들과 신혈맹의 병사들이 건물 안에서 충돌했다.

주경은 그 혼란 속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 철천이 자신을 죽이려던 것도, 신월이 자신을 지키려던 것도, 공상이 자신을 노리는 것도 모두 하나의 계획 속에 있었다는 것.

신월이 주경을 건물 안으로 끌어당겼다. 석혜가 어깨의 상처에 천을 눌렀다. 손가락의 마비는 더 깊어져 있었다.

"당신은 미쳤습니다."

신월이 주경의 앞에 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공상의 검이 신월의 옷자락을 태웠다. 몇 치 더 깊었다면 심장을 관통했을 것이다.

"당신이 방금 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월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간을 멈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생명을 멈춘 것입니다."

신월이 주경의 팔을 잡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도 부상을 입고 있었다.

"주경, 들으십시오."

신월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고백처럼.

"당신의 전생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주경이 신월을 바라봤다.

"당신의 가문은 황실의 시간 측정 기술을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권력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당신도 그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시침의 귀향을 완성하려고 했고, 당신은 그 실험체였습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도 그것을 원했습니다. 더 강해지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주경의 손이 떨렸다.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황실은 그 기술을 통제할 수 없었고, 오히려 위협으로 느꼈습니다. 철천은 그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당신의 가문을 멸문한 것은... 정치적 결정이었습니다."

신월이 주경의 눈을 맞췄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당신이 죽임을 당한 것은 철천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당신이 원했던 권력 때문입니다."

주경의 몸이 흔들렸다. 석혜가 그를 받쳐 앉혔다.

"향로골목 공방에서 발견했던 도면이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썼습니다. 전생에서. 당신의 필체입니다. 당신의 계획입니다. 그 메모는 당신이 남긴 것입니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계획이 이어지도록."

주경이 일어섰다. 비틀거렸다. 석혜가 팔을 잡았다.

"당신은 자신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신월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는 모든 것도 같은 길입니다."

주경은 신월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필체. 자신의 계획. 자신의 욕심이 남긴 흔적들이 모두 그것을 증명했다.

포구 위에서 철천과 공상의 검이 교차했다. 금속음이 울렸다. 두 검이 만날 때마다 공간이 일그러졌다. 신월의 기관총이 울음을 냈지만, 공상의 부하들이 그것을 막았다.

철천이 공상을 밀어냈다. 공상의 검이 부러졌다. 철신공. 신체를 강화하는 내공의 극치. 전생에서 주경이 경험했던 그 힘이었다.

공상이 물러났다. 그의 눈에는 공포가 들어차 있었다. 철천은 강했다. 너무 강했다.

하지만 철천은 공상을 죽이지 않았다. 대신 주경을 바라봤다. 포구 위에서. 어둠 속에서.

지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받은 비무는 과거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주경이 고개를 돌렸다. 지법사는 건물의 그림자 속에 있었다. 언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현재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법사가 한 발 나왔다. 그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공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철천이 그를 바라봤다. 두 절대강자가 마주보고 있었다.

"무상검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철천의 목소리가 굳었다. 신월의 기관총이 울음을 멈췄다. 신기관의 전사들이 물러섰다. 이것은 더 이상 신월과 철천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것은 두 절대강자가 벌이는 대면이었다.

"시간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법사가 대답했다.

"그 아이가 초침으로 하려던 것이 무엇인지 보셨습니까? 시간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통해 자신을 정지시키려던 것입니다. 과거에 갇혀. 복수에 갇혀."

철천이 움직였다. 그의 검이 지법사의 검과 부딪혔다. 불꽃이 튀었다. 두 검이 교차했을 때, 공간이 일그러졌다.

"당신도 알고 있습니다."

지법사의 목소리가 철천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당신도 그 아이처럼 과거에 갇혀 있습니다. 당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으면서, 과거의 죽음을 반복하려 합니다."

철천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검이 더 빨라졌다. 지법사의 검이 그것을 막았다. 아니, 막은 게 아니라 그냥 있었을 뿐인데, 철천의 검이 멈춰 있었다.

포구 위의 어둠 속에서 두 절대강자가 대치했다. 철천의 검과 지법사의 무상검. 한쪽은 과거를 지키려 했고, 한쪽은 현재를 말하고 있었다.

주경은 건물 밖으로 나갔다. 석혜가 따라왔다. 포구의 밤하늘은 여전히 검었다.

신월이 주경의 옆에 섰다. 언제 왔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했다.

"당신이 죽는 것이 정해진 일이 아닙니다."

신월이 말했다.

"당신이 살아가는 것이 정해진 일입니다."

주경이 신월을 바라봤다. 신월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저는 전생에서 당신의 아버지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생에서는 다릅니다."

신월이 고개를 숙였다. 황실의 개혁파 지도자가. 신기관의 최고 지휘관이. 무릎을 꿇었다.

"제가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주경은 신월의 말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켜지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손가락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초침을 쥘 수 없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초침을 의도적으로 놨다. 복수의 길을 버렸다. 과거를 놨다.

그 순간, 주경의 가슴 속에서 뭔가가 부러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복수의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자신이 죽인 자신. 자신의 욕심이 초래한 죽음. 그것을 복수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아버지의 시계를 꺼냈다. 그것이 따뜻하게 빛났다. 시계의 추가 움직였다.

천천히. 정확하게. 절대로 멈추지 않으면서.

포구의 동쪽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포구 위에서 철천과 지법사의 검이 다시 교차했다. 불꽃이 튀었다.

"당신이 그 아이를 죽이면, 과거가 반복됩니다."

지법사가 말했다.

"당신이 그 아이를 살리면, 미래가 시작됩니다."

철천이 움직였다. 그의 검이 지법사의 검을 밀어냈다. 두 절대강자가 포구의 새벽 속에서 대치했다.

"그 아이의 욕심이 모든 것을 시작했습니다."

철천이 말했다.

"전생에서도. 이 생에서도."

"그렇습니다."

지법사가 인정했다.

"하지만 욕심을 꺾는 것과 목숨을 빼앗는 것은 다릅니다. 당신은 그것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철천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지법사의 무상검이 그것을 막았다. 아니, 막은 게 아니라 그냥 있었을 뿐이었다.

포구 위의 새벽이 점점 밝아졌다.

공상이 손을 들었다. 그 손에는 작은 기계가 들려 있었다. 시간 측정 장치였다. 아니, 더 정확히는 폭발 장치였다.

"당신들이 모두 죽을 것입니다."

공상이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시침의 귀향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불완전한 비무입니다.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것을 완성시키겠습니다."

공상이 손을 날렸다. 폭발 장치가 주경을 향해 날아왔다.

주경이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초침을 쥘 수 없었다.

신월이 몸을 날렸다. 폭발 장치가 신월의 가슴에 박혔다.

"신월!"

주경이 외쳤다.

폭발음이 울렸다. 포구의 밤이 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신월이 쓰러졌다. 흰 연기 속에서. 가슴에서 피가 흘렀다. 눈이 떠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철천이 공상을 향해 검을 들었다.

"당신의 야심이 모든 것을 망쳤습니다."

공상이 웃음을 터뜨렸다.

"야심? 당신의 집착이 모든 것을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주경의 가문을 멸문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이 없었습니다!"

두 검이 교차했다. 금속음이 울렸다.

주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초침을 쥘 수 없었다. 시간을 멈출 수 없었다.

석혜가 주경의 곁에 있었다. 그녀의 다리도 절렸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였다.

"주경, 보십시오."

석혜의 목소리가 작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주경이 석혜를 바라봤다.

"복수가 아닙니다.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경이 손에서 초침을 완전히 놨다. 그것이 포구의 돌 위에 떨어졌다. 맑은 소리를 내며.

초침을 놓는 순간, 주경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복수의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자신이 죽인 자신. 자신의 욕심이 초래한 죽음. 그것을 복수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아버지의 시계를 꺼냈다. 손가락이 마비되어 있었지만, 그는 시계를 들었다. 아버지가 남긴 시계를. 복수가 아닌 삶의 도구로.

그 시계가 따뜻하게 빛났다. 시계의 추가 움직였다.

천천히. 정확하게. 절대로 멈추지 않으면서.

포구가 밝아지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철천이 공상을 밀어냈다. 공상의 몸이 포구의 벽에 부딪혔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철천이 주경을 바라봤다.

"당신이 선택했습니까?"

철천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신기관 입단. 또는 죽음."

주경이 일어섰다. 다리가 흔들렸다. 석혜가 팔을 잡았다.

"저는 선택하지 않습니다."

주경의 목소리가 명확했다.

"저는 살아갑니다. 당신의 명령에도. 신월의 명령에도. 누구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으면서."

철천의 눈이 좁혀졌다.

"그렇다면 당신은 죽습니다."

철천이 검을 들었다. 포구의 새벽을 가르며.

하지만 지법사가 그 검을 막았다.

"당신도 알고 있습니다."

지법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과거가 반복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철천이 움직였다. 그의 검이 지법사의 검과 만났다. 불꽃이 튀었다.

두 절대강자가 싸우고 있었다. 포구의 새벽 속에서.

주경은 그들을 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신월을 향해 걸어갔다.

신월이 흰 연기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상처가 깊었다. 가슴에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눈이 떠 있었고, 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지켜주신 것... 감사합니다."

주경이 말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지켜지고 싶지 않습니다."

신월이 주경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있었다.

"당신이 살아가는 것을 지켜주겠습니다.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입니다."

주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철천이 지법사를 밀어냈다. 그리고 주경을 향해 검을 들었다.

"당신의 선택은 죽음입니다."

철천이 말했다. 그의 검이 내려왔다. 포구의 새벽을 갈라내며.

주경이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움직였다.

아버지의 시계가 손에서 빛났다. 그 빛이 철천의 검을 막았다. 아니, 막은 게 아니라 시간을 바꿨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변했다. 철천의 검이 느려졌다. 아니, 철천이 느려졌다.

주경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철천의 검이 빗나갔다.

공중에서, 포구의 새벽 속에서.

"이것이... 시침의 귀향의 진정한 의미입니까?"

철천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시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철천이 다시 검을 들었다.

"당신이 현재 속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것입니까?"

주경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버지의 시계를 다시 들었다.

그 시계가 울음을 냈다.

똑딱, 똑딱.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절대로.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강함이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