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법사의 시험
사찰 계곡의 새벽은 침묵으로 시작된다.
주경은 석혜와 함께 돌계단을 올랐다. 신월은 이미 한 시간 전에 도착했고, 계곡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경의 손가락은 여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초침을 만지고 나서 사흘이 지났지만,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움직일 때마다 통증 대신 무언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조금씩 분해되고 있는 것처럼.
"여기가 정말 사찰일까?"
석혜가 물었다. 계곡 깊숙한 곳에는 건물이라 할 것이 없었다. 오직 돌을 깎아 만든 작은 전각과, 그 앞에 서 있는 한 노승뿐이었다.
노승은 주경을 보자마자 일어섰다. 움직임은 천천했지만 정확했다. 그의 눈은 흐릿했지만, 주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명확했다. 마치 수십 년을 기다린 사람처럼.
"당신이 왔군요."
노승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주경이 꿈에서 들었던 것이다. *그 능력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주경은 그 말을 꿈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 그 목소리를 다시 들으니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왔다.
신월이 주경 앞에 섰다. 그녀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지법사."
신월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것은 경칭이 아니었다. 오히려 존경의 형태에 가까웠다.
"이 아이가 지금까지 지켜낸 초침입니다."
신월이 주경을 가리켰다. 주경은 자신이 초침처럼 취급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불편했지만, 동시에 정확했다. 그는 이미 초침이 되어버렸다. 시간을 조작하는 도구. 가문을 복구하기 위한 수단. 복수를 위한 칼.
지법사는 천천히 내려왔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려고 주경이 눈을 감았다. 그러면 더 잘 보인다고 생각했다. 전생의 습관이었다. 눈을 감고 상대의 내공의 흐름을 읽는 것. 하지만 지법사에게서는 아무것도 읽혀오지 않았다. 오직 고요함만이 있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지법사가 주경 앞에 섰다. 거리는 3보 정도. 칼싸움의 거리였다.
"당신은 왜 그 능력을 사용합니까?"
주경은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사용하는가? 복수. 가문 복구. 강호의 정점. 이 모든 것이 거짓처럼 들렸다.
"복수합니다."
주경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리고 우리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지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움직임은 느렸지만 명확했다. 마치 오랜 시간을 기다린 사람이 결국 틀린 대답을 받은 것처럼.
"거짓입니다."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 말은 주경의 가슴을 꿰뚫었다.
"당신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그 능력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초침을 만질 때마다, 당신은 자신이 강해진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소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경의 주먹이 떨렸다. 손가락 끝이 파고들었다. 이미 마비된 손가락이 더 깊게 파고들어 혈흔이 맺혔다. 그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은 거짓입니다. 저는 강해야 합니다."
주경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강함이 아니다. 약함이다. 자신의 약한 몸.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 현생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그 절망.
"강함이란 무엇입니까?"
지법사가 다시 물었다.
"칼을 휘두르는 것입니까? 아니면 상대를 죽이는 것입니까?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몸은 약합니다. 전생의 내공은 30% 정도만 발휘됩니다. 당신이 절대강자들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주경은 입을 열려다가 닫았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받은 능력은 칼이 아닙니다. 저주입니다."
지법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매번 사용할 때마다 3개월의 생명이 깎여나갑니다. 월 3회 제한. 이것이 보호책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당신이 그 능력을 남용하면, 당신의 정신은 완전히 붕괴됩니다. 영혼마저 소멸합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석혜가 주경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주경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청말 강호의 역사를 알고 계십니까?"
지법사가 계속했다.
"시간을 조작하는 비무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은 다섯 사람은 모두 소멸했습니다. 첫 번째 사용자는 100년 전 강호에서 가장 위대한 무인이었습니다. 그는 시간을 멈추고, 역행했습니다. 5년이 지나자 그의 정신은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시간 속에 갇혔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멈추는 순간마다, 그는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칼로 자신의 목을 찔렀습니다."
주경의 손이 떨렸다.
"두 번째 사용자는 시간을 역행하여 죽은 자를 살리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달마다 3회씩 능력을 사용했습니다. 2년 후, 그녀는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죽은 자들과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영혼은 과거로 소멸했습니다."
지법사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당신은 여섯 번째입니다. 앞의 다섯 사람은 모두 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그들은 그 능력이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험입니다. 당신의 약함을 받아들이는지를 시험하는 저주입니다."
주경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신의 진정한 강함은 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법사가 말했다.
"당신이 이 능력을 받은 이유는 복수를 위함이 아닙니다. 당신이 자신의 약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다른 길을 찾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길은 칼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입니다. 시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주경은 그 말을 거부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것은 거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복수합니까?"
그 질문 자체가 주경의 변화였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길을 의심했다.
지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은 허공을 그었다. 마치 시계의 바늘처럼.
"당신이 정답을 찾으면 모든 것을 말하겠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계곡의 밤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신월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석혜가 주경을 밀어냈다. 지법사는 여전히 서 있었다. 마치 그 일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공상이 나타났다.
그는 계곡의 입구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떨어져 내렸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천풍검법. 신기관의 기계 무기들이 그의 등에 매달려 있었다.
"지법사."
공상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당신은 강호의 역사를 너무 오래 점유했습니다."
지법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공상은 한 걸음씩 내려왔다. 돌계단을 밟을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신월이 주경 앞에 섰다.
"도망치세요."
신월의 목소리는 낮았다.
"아직 아닙니다."
주경이 말했다. 그의 손이 주머니로 향했다. 초침이 있었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 이달 남은 마지막 사용권.
석혜가 주경의 팔을 잡았다.
"아직 아닙니다."
석혜가 반복했다. 마치 주경에게 경고하는 것처럼.
공상이 칼을 들었다. 천풍검법의 첫 번째 형상. 하늘의 바람이 흔들린다. 검기가 계곡을 가로질렀다.
지법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신월이 몸을 날렸다. 그녀의 손에서 은색의 기계 장치들이 나타났다. 신기관의 무기들. 공상의 검기를 막기 위해.
하지만 공상은 미소를 지었다.
"늦었습니다."
공상이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계곡의 위쪽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내려왔다.
검은 옷. 철혈맹의 표장. 그 앞에 서 있는 사람.
철천이었다.
강호의 절대강자. 철신공의 주인. 그의 눈은 주경을 향했다.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것처럼.
"주경이군요."
철천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침내 만나는군요."
주경의 손이 초침을 꺼냈다. 마지막 한 번. 이 순간을 위해 남겨둔 힘. 하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공포가 아니었다. 의심이었다.
*당신의 진정한 강함은 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법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주경은 초침을 들었다가 놨다. 다시 들었다가 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마비된 손가락 끝에서 피가 흘렀다.
초침의 손잡이를 놓으려는 순간, 공포가 몰려왔다. 손에서 떨어지는 기계 장치. 자신을 지켜줄 마지막 수단을 내려놓는 것. 그 공포는 육체적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호흡이 얕아지고, 손가락 끝이 저렸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그 순간, 동시에 무언가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쇠사슬이 끊어지는 것처럼. 가슴이 터질 듯한 해방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약함을 받아들인 순간의 통쾌함. 그것이 현실이었다.
석혜가 주경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그 압력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메시지였다.
아직 아닙니다.
철천이 칼을 뽑았다. 철신공으로 강화된 신체. 그의 움직임에 공기가 울렸다.
주경의 손은 초침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칼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지였다. 복수냐, 아니면 다른 길이냐. 강함이냐, 아니면 약함을 받아들임이냐.
철천이 내려왔다.
신월과 공상이 동시에 움직였다. 신기관의 무기와 천풍검법이 충돌했다. 불꽃이 튀었다.
지법사는 여전히 서 있었다.
그리고 주경은 초침을 쥔 채,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절망적인 질문 속에 갇혀 있었다.
철천의 검이 주경을 향했다. 지법사가 아니라 주경을.
주경은 몸을 날릴 수 없었다. 석혜가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지법사가 움직였다.
노승의 몸은 느렸다. 하지만 그의 손은 아니었다. 무상검. 그것은 검이 아니라 무(無)였다. 철천의 검과 만난 순간, 공기가 정지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이미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검과 검이 아닌 것이 충돌할 때마다 계곡이 울렸다.
"오래되었군요, 철천."
지법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당신은 여전히 죽음으로 문제를 풀려고 합니까?"
철천의 얼굴에 감정이 드러났다. 분노였다.
"당신이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지법사. 그 아이는 신기관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안정을 위협하는 것을."
"국가?"
지법사가 웃음처럼 들리는 소리를 냈다.
"당신은 국가를 지킨다고 말하지만, 당신이 지키는 것은 권력입니다."
철천의 검이 다시 올라왔다. 지법사는 무상검으로 그것을 받아냈다. 계곡이 울렸다.
공상은 신월과 석혜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신기관의 무기들과 천풍검법이 계곡 안을 누볐다. 석혜의 한 팔은 신월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고, 신월의 기계 장치들은 공상의 칼을 막아내기 위해 작동했다.
공상의 칼이 신월의 팔을 스쳤다. 피가 흘렀다.
"신월, 당신은 항상 이 아이를 지키려고 하는군요."
공상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
"아버지의 죄책감 때문인가요?"
신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손에서 기계 장치가 떨어졌다. 그 순간의 흔들림이 치명적이었다. 공상의 검이 그녀를 향해 내려왔다.
석혜가 몸을 날렸다. 한 팔만으로 그녀는 신월을 밀어냈고, 공상의 검을 몸으로 받아냈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주경의 손을 놓지 않았다.
신월은 그 피를 보며 깨달았다. 공상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이 주경을 지키는 이유가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는 것을. 죄책감. 아버지의 죄책감. 그것이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신월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지만 나올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죄책감이라는 말 앞에서, 자신이 주경을 위해 한 모든 행동이 순수하지 않았다는 깨달음. 그것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이미 시작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주경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신월의 흔들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자신을 지키는 이유가 순수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었다.
철천이 이미 주경 앞에 있었다.
그의 검은 주경의 머리를 향했다. 철신공으로 강화된 신체에서 나오는 검기는 공기 자체를 가르고 있었다. 주경은 몸을 날릴 수 없었다. 석혜가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초침의 홈을 따라 움직였다. 마지막 한 번. 3개월의 수명과 맞바꿀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그 순간, 지법사가 움직였다.
노승의 손이 철천의 검을 받아냈다. 무상검. 두 사람의 움직임은 이미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검과 검이 아닌 것이 충돌할 때마다 계곡이 울렸다. 철천이 지법사를 밀어냈다. 노승의 몸이 뒤로 밀렸다. 철신공의 힘은 무상검의 경지도 밀어낼 수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주경이 움직였다.
초침을 쓰지 않고.
주경은 지법사가 밀려나는 궤적을 읽었다. 전생의 기억이 살아났다. 검을 피하는 방법. 철신공의 약점.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생의 몸은 약했다. 전력의 30%도 발휘할 수 없는 약한 몸이었다.
그럼에도 주경은 움직였다.
약한 몸으로, 지법사를 받아냈다. 손가락 끝이 닿았다. 마비된 손가락. 그것이 무상검의 궤적을 읽어냈다. 신체는 약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확했다. 전생의 기억이 현생의 약한 몸을 이끌었다.
철천의 검이 주경을 향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철천이 물었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처음으로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죽음을 피하려는 약자입니까? 아니면 강자를 따르려는 개입니까?"
주경이 대답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단호했다.
"저는 선택하겠습니다."
"선택?"
"네. 이 순간, 제 방식으로."
주경의 손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초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작은 기계 장치였다. 시계의 추. 정교한 톱니와 용수철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전생에서 만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현생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 몰래 만들어두었던 것처럼.
주경이 그것을 던졌다. 철천을 향해서가 아니라, 계곡의 중심을 향해.
시계의 추는 떨어지며 울음을 냈다. 규칙적인 음향. 태엽이 풀리는 소리. 똑딱, 똑딱. 마치 심장 박동처럼.
철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시간의 음향."
철천이 중얼거렸다.
"당신의 아버지가 만들었던 것."
주경의 손이 떨렸다. 아버지. 그 이름은 금지된 것이었다. 손가락 끝에서 뭔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조각나고 있는 것처럼. 기억의 파편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작업실의 불빛. 손에 잡혔던 작은 기계 장치들.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맞춰지고, 현실이 덮여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사라졌다. 마치 시간이 역행하는 것처럼.
공상이 움직임을 멈췄다. 신월과 석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 음향을 들었다. 시계의 추가 내는 소리는 계곡의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
마치 시침의 귀향처럼.
하지만 다르다고 주경은 느꼈다. 이것은 생명을 깎아먹지 않는다. 다만 시간을 재울 뿐이다. 초침처럼 끝없이 돌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나아가는 시간.
규칙적인 음향이 울릴 때, 주경의 신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마비되었던 손가락 끝에 감각이 돌아왔다. 따끔거리는 느낌. 피가 흐르는 느낌. 그리고 호흡. 깊고 규칙적인 호흡이 돌아왔다. 마치 오랫동안 물속에 있다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처럼.
약함을 받아들인 순간의 통쾌함이 온몸을 휩쓸었다. 그것은 강함이 아니었다. 하지만 더 진실했다.
지법사가 주경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처음으로 명확한 감정이 드러났다. 놀라움이었다.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주경이 대답했다.
"모릅니다. 하지만 제 손이 알고 있었습니다."
지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 속에는 인정이 있었다. 시험의 정답을 받은 자의 표정이었다.
그 순간, 계곡의 위쪽에서 또 다른 불빛이 내려왔다. 횃불. 많은 횃불.
철혈맹의 병사들이었다. 철천을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 철천이 이미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온 것이었다.
그들의 수는 주경, 신월, 석혜, 지법사를 모두 합쳐도 상대가 될 수 없는 규모였다.
공상이 웃음을 흘렸다.
"지법사, 당신은 이제 끝입니다."
공상이 말했다.
"철천의 손으로 죽든, 아니면 철혈맹의 손으로 죽든. 당신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신월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공상의 말이 남겨놓은 상처. 아버지의 죄책감. 그것은 아직도 신월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그녀는 손을 움직였다. 기계 장치를 다시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죄책감을 짊어지면서도, 현재를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철천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확정된 판결이 들어 있었다.
"주경. 당신은 신기관에 가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주경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초침은 여전히 주머니에 있었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 3개월의 수명.
그 순간, 석혜가 주경의 팔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더욱 강하게.
"아직 아닙니다."
세 번째다. 같은 말을 세 번 들었다. 주경은 이제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아야 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 아직 선택하지 말라는 뜻.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
계곡의 하늘이 다시 붉어졌다.
그것은 철혈맹의 신호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