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강호의 시계공 - 제2화

약한 손가락으로 초침을 쥐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

그리고 주경은 죽어가고 있었다.

신기관 첩자의 창이 공방의 기와를 뚫고 들어왔고, 철혈맹 살수의 검이 목재를 가르며 내려쳤다. 초침을 쥐면 시간이 멈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생명이다. 매 순간, 주경의 몸에서 뭔가 깎여나간다. 피도 아닌, 숨도 아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 시간을 빼앗으면 시간이 주경을 빼앗는다.

주경은 공방 안쪽 암실로 몸을 날렸다. 손가락 끝이 금속 표면에 닿는 순간, 세상이 얼어붙었다. 창밖의 빛이 고정되고, 첩자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주경의 눈에만 세상이 흘러갔다. 공방 뒤쪽 창문까지 열 걸음. 그는 뛰었다. 발이 땅을 디디고 몸이 창틀을 넘었다.

시간이 풀렸다.

뒤따르는 검의 음성이 들렸고, 돌을 깨는 창의 끝이 공방의 벽면을 가로질렀다. 주경은 이미 향로골목의 어두운 통로 속에 있었다.

숨이 가빴다. 가슴이 철렁했다. 처음으로 그 능력을 현실에서 썼다. 입 안이 쇠맛으로 가득 찼다. 피였다. 코에서 흐르는 피.

발소리가 들렸다. 여럿이다. 뒤쫓는 것 같다. 주경은 골목 모서리를 꺾었다. 손에 들었던 초침은 어느새 사라졌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는 쓸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달빛이 골목을 비추는 지점에서 그는 멈췄다.

앞길을 막아선 사람이 있었다.

검은 옷의 노인. 얼굴은 어두워 구분되지 않지만, 손에 들린 검이 달빛을 반사했다. 그는 주경을 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낮고 차분했다.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같았다.

주경은 발을 멈췄다. 등이 차가워졌다. 이 사람이 자신을 아는 것 같았다.

"저를 모르시는군요." 노인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내 얼굴을 기억해야 합니다."

뒤쪽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철혈맹 살수들이다. 노인은 검을 돌렸다. 가는 움직임이었지만, 검의 궤적이 공기를 가르며 울음을 냈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주경은 몸 전체가 얼어붙은 채로 물러났다. 노인과 살수들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검이 칼과 부딪쳤고, 불꽃이 튀었다. 한 명, 두 명, 세 명. 살수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저기다!"

신기관 첩자들이 반대쪽 골목에서 나타났다. 창과 화살이 날아왔다. 노인은 주경의 손목을 잡았다.

"이리로."

그들은 달아났다.

---

안전한 장소는 향로골목의 뒤편 창고였다. 낡은 시계 부품들이 쌓여 있는 공간. 창문이 없고, 한 개의 문만 있는 곳. 노인은 문을 닫고 촛불을 켰다.

처음으로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회색 수염, 깊게 패인 눈, 그리고 오른쪽 눈썹에 흉터. 주경은 이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노인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무언가 떨리는 게 있었다. 마치 오래된 상처를 누르다가 터트린 것 같은.

주경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저는 류해입니다." 노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당신의... 동료였던 사람입니다. 전생에서."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주경의 눈이 떨렸다. 전생. 이 사람도 알고 있다는 뜻인가.

"당신은 시계공 가문의 막내였습니다." 류해가 천천히 말했다. "주경이라고 불리던 당신. 황실에서 인정한 기계공의 아들. 그 재능으로 신기관의 신월이라는 여인과 함께 일했습니다."

주경의 몸이 굳어갔다.

"그리고 당신은 죽었습니다. 정치 암투에 휘말려. 철혈맹의 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촛불만 타닥거렸다.

"당신을 죽인 자들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철혈맹의 우두머리, 철천. 그리고 그의 직속 살수들." 류해가 계속했다. "그들이 당신을 죽였고, 당신의 가문을 멸문했습니다."

주경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벌어졌다. 마치 물 속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왜... 나를?"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 신기관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기계 기술이 황실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류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철혈맹은 안정을 원했습니다. 전통적인 강호의 질서를 원했습니다. 당신은 그 질서를 위협했습니다."

주경은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전생에서 나는 당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류해의 목소리가 흐릿해졌다. "당신이 사라진 후, 나는 오랫동안 속죄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당신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비무와 함께."

주경이 고개를 들었다. 류해의 눈이 젖어 있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주경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당신이 정말 누군가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류해가 물었다. "당신이 죽었다는 것. 그것을 아십니까?"

주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이 울렸다. 마치 누군가 가슴을 열고 손을 집어넣은 것처럼.

"당신은 죽었고, 다시 태어났습니다." 류해가 계속했다. "약한 몸으로. 도제로. 하지만 당신의 영혼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능력도 돌아왔습니다. 시간을 조작하는 능력.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주입니다."

류해가 주경에게 더 가까워졌다.

"당신은 왜 살아났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주경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정말로 모르십니까?"

주경은 눈을 감았다.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황실의 궁전. 신월의 얼굴. 그리고 피. 자신의 피인지 누군가의 피인지 모를 그 붉은 색.

"당신이 죽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주경이 눈을 떴다. 류해를 바라봤다.

"당신은 신월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주경의 세계가 흔들렸다. 무릎이 꺾였다. 손이 바닥을 짚었다. 피가 코에서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능력의 대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의 무게였다.

---

류해는 주경을 창고의 한구석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낡은 지도와 문서들이 놓여 있었다. 경성의 지도였다. 자금성 언덕. 서점가 거리. 포구 지대. 사찰 계곡.

류해가 지도를 펼쳤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강호의 세 세력을 아십니까?" 류해가 물었다.

주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철혈맹은 황실의 후원 아래 전통 무술 세력을 이끌고 있습니다." 류해가 자금성 언덕을 가리켰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철천입니다. 무술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 자.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절대강자의 경지가 필요합니다."

주경은 지도를 보고 있었다.

"신기관은 개혁파 관료들을 지원합니다." 류해가 서점가 거리를 가리켰다. "신월이 이끄는 세력입니다. 서양의 기술과 동양의 무술을 결합하려 하는 자들. 그들은 당신의 능력을 원합니다."

주경이 가만히 류해를 바라봤다.

"그리고 해상연맹. 포구 지대의 상인들과 무인들의 연합입니다. 그들은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가장 위험한 세력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와든 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류해가 지도를 내려놨다.

"당신은 이 세 세력 사이의 교차점에 서 있습니다. 약한 몸이지만, 강력한 능력을 가진 채로."

주경의 손가락이 떨렸다.

"당신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류해가 말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하기 전에,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주경이 고개를 들었다. 류해의 눈이 주경을 꿰뚫고 있었다.

"당신의 진정한 이름을 말해 보십시오."

주경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 순간, 창고의 문이 열렸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고, 그 바람 속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

여인은 흰 옷을 입고 있었다. 경성의 밤이 어두워도 그 옷은 달처럼 빛났다. 그녀의 눈은 검은 밤처럼 깊었다.

신월이었다.

류해의 몸이 경직되었다. 손이 검의 자루를 잡았다.

"류해." 신월이 말했다.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당신은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군요."

"신월이시군요." 류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곳은 당신이 올 곳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를 보호하려 하고 있습니다." 신월이 주경을 바라봤다. "하지만 보호는 성장을 막습니다. 당신도 그것을 알면서도, 왜 계속 그 방법을 고집합니까?"

주경은 신월을 보고 있었다. 그 여인의 얼굴에서 무언가 낡은 것을 느꼈다. 마치 이미 본 것 같은.

류해가 검을 반쯤 뽑았다.

"이곳에서 물러나십시오, 신월."

"아직 때가 아닙니다, 류해." 신월이 말했다. "당신이 그를 깨우는 것이라면, 당신은 그를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각성입니다."

신월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회중시계가 들려 있었다.

"이것을 기억하십니까, 주경?"

낡은 시계였다. 금색의 케이스. 그리고 그 위에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주경은 그 글을 읽고 얼어붕었다.

'언제나 시간은 당신의 편입니다.'

자신의 필체였다. 아니, 전생의 필체였다.

류해가 검을 완전히 뽑았다. 검의 끝이 신월을 향했다.

"당신이 그를 이용하려 한다면, 나는 당신을 막겠습니다."

"이용?" 신월이 웃음을 흘렸다. "류해, 당신은 아직도 모르는군요. 당신이 그를 막으려 할수록, 그는 더 깊이 빠질 것입니다."

신월이 회중시계를 주경에게 내밀었다.

"당신은 선택해야 합니다, 주경." 신월이 말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류해가 검을 내렸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신월을 따라다녔다.

"첫째, 류해를 따라 이 도시의 어딘가에 숨어 조용히 살아가는 것." 신월이 계속했다. "하지만 철혈맹은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당신의 능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죽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주경의 손이 떨렸다.

"둘째, 신기관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능력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입니다. 우리와 함께라면, 당신은 강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신월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것이 더 위험했다.

주경은 회중시계를 받았다. 손에 들려진 무게. 그것은 무거웠다. 마치 과거 전체가 손에 담긴 것처럼.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신월이 물었다.

주경은 회중시계를 열었다. 초침이 보였다. 그 초침이 움직였다. 똑딱. 똑딱. 시간이 흘렀다.

주경의 손가락이 초침을 집어 들었다.

세상이 멈췄다.

---

시간 정지 속에서 주경은 움직였다.

신월은 동상처럼 서 있었고, 류해도 검을 든 채로 멈춰 있었다. 주경은 창고 안을 천천히 돌아봤다.

벽, 바닥, 천장. 그리고 그 벽 사이사이에 보이는 것들. 낡은 시계 부품들. 그 중 일부는 자신의 작품이었다. 아니, 전생의 작품이었다.

주경은 벽의 한 부분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낡은 도면들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떨림이 있었지만,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시간을 멈추면 안 된다. 시간을 역행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은 모든 것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빼앗은 죄를 짊어져야 한다.'

주경의 손이 떨렸다. 도면을 떨어뜨렸다.

또 다른 도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신월의 초상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글이 있었다.

'나는 당신을 죽여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는다. 그것이 속죄다.'

손가락이 더욱 떨렸다. 주경은 도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찢었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시간 정지 속에서도 들렸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일어났다.

주경은 초침을 더 오래 쥐고 있었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입에서도 피가 흘렀다. 손가락이 푸르게 변해갔다. 시간을 빼앗는 대가는 생명이었다. 주경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주경은 창고의 모든 도면을 찾아냈다. 신월에 대한 것들. 자신의 죄에 대한 것들. 그것들을 모두 찢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경은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거의 투명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주경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주경은 초침을 놓았다.

---

시간이 풀렸다.

주경은 무릎을 꿇었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입에서도 피가 흘렀다. 손가락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주경이 말했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누구를 죽이려고 했습니까?"

신월과 류해가 주경을 바라봤다.

"전생에서, 나는 누구를 죽이려고 했습니까?"

류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주경이 얼마나 오래 초침을 쥐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 오래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시간이었다.

"당신은... 신월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류해가 천천히 말했다.

"그것이 전부입니까?" 주경이 물었다.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 차가움은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신월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주경."

주경의 몸이 흔들렸다.

"당신은 신월을 죽인 후 자신도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속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철혈맹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당신은 신월을 죽이지 못했고, 당신 자신도 죽음으로써 속죄하지 못했습니다. 그대신 당신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신월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그리고 이제, 당신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다시 한 번 선택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주경은 회중시계를 들었다. 그것은 여전히 똑딱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주경의 눈이 맑아졌다. 마치 안개가 걷혀나가는 것처럼. 도면들을 찢던 손가락이 떨렸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결연함이었다.

"나는..." 주경이 천천히 말했다. "나는 시간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류해와 신월이 주경을 바라봤다.

주경은 회중시계를 열었다. 초침을 꺼냈다. 손이 떨렸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주경은 초침을 바닥에 내던졌다.

초침이 구르며 멈췄다.

"전생에서 나는 시간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주경이 말했다. "신월을 죽이기 위해. 나 자신을 죽이기 위해. 그것이 죄였습니다. 나는 그 죄를 다시 짓지 않겠습니다."

주경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맑았다. 하지만 그 눈은 이제 다른 것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강해져야 합니다. 시간을 멈춰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힘으로."

류해가 한 발 물러섰다.

"당신은..." 류해가 말했다.

"나는 강해져야 합니다." 주경이 말했다. "약한 몸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류해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주경의 결정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안도감.

신월이 창고의 문으로 향했다. 류해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 검을 든 손도 내려졌다.

"사찰 계곡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류해가 마침내 말했다. "지법사라 불리는 대장로. 그 사람이 당신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길은 매우 험합니다."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어렵습니다." 류해가 대답했다.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강해지고 싶다면, 그 길밖에 없습니다."

신월이 창고의 문을 열었다. 밤의 공기가 들어왔다.

"며칠 뒤, 서점가 거리의 찻집에서 만납시다." 신월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담겨 있었다. 마치 주경의 선택을 예측한 듯한. "그곳에서 당신이 선택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신월의 눈이 류해를 마주쳤다. 그 눈에는 질문이 있었다. 류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신월이 주경을 다시 바라봤다. "당신은 이미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신월이 창고를 나갔다. 밤이 그녀를 삼켰다.

주경과 류해만 남았다.

류해는 검을 완전히 거두었다. 하지만 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변했습니다." 류해가 말했다.

"아닙니다." 주경이 대답했다. "나는 깨어났습니다."

주경은 바닥에 떨어진 초침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쥐지 않았다. 손가락 위에 올려놓기만 했다. 손가락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을 빼앗은 대가는 아직도 주경의 몸 속에 남아 있었다.

"이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닙니다." 주경이 말했다.

류해가 주경에게 더 가까워졌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류해가 말했다. "당신의 진정한 이름을. 당신이 정말 신월을 죽이려고 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주경이 류해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의문이 있었다. 깊고 어두운 의문.

"신월이 정말 나를 돕고 싶은 것입니까?" 주경이 물었다. "아니면 나를 이용하려는 것입니까?"

류해는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촛불이 타닥거렸다.

"그것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경이 말했다. "지금은 강해지는 것이 먼저입니다."

류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주경의 선택이 자신의 계획을 벗어났다는 듯이.

"그렇다면 우리는 내일 아침에 출발합시다." 류해가 말했다. "사찰 계곡으로."

주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초침을 다시 회중시계에 넣었다. 시계가 다시 똑딱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경의 손이 떨리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이 떨렸다. 깨어난 자의 눈. 그리고 그 눈 속에는 아직도 많은 질문들이 남아 있었다.

류해는 주경을 창고 구석의 낡은 요를 펼쳐진 곳으로 이끌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십시오." 류해가 말했다. "내일 여행은 험할 것입니다."

주경이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촛불의 그림자가 춤을 춘다.

류해는 창고의 문 앞에 앉았다. 검을 무릎에 올려놓고, 밤을 지킬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자주 주경을 향했다.

마치 주경이 언제라도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류해." 주경이 어둠 속에서 말했다.

"네."

"신월이 말한 것이 사실입니까? 내가 신월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

류해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네.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죽으려고 했다는 것이?"

"네."

"왜?"

류해는 다시 침묵했다. 촛불만 타닥거렸다.

"그것은 당신이 기억해야 합니다." 류해가 마침내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그 기억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주경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도면들을 찢던 손가락의 기억이 생생했다. 그리고 그 도면에 쓰여 있던 글씨들.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는다. 그것이 속죄다.'

그 글씨가 누구의 것인지, 주경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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