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강남역 지하 3층 연습실. 오후 2시.
박준서의 손가락이 떨렸다.
강준호는 그걸 알아챘다. 절대음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종류의 떨림이었다. 박준서는 노트 위에 검지를 올렸다 뗐다를 반복했다. 말하려는데 자꾸 말이 안 나오는 식으로. 강준호는 그 손을 내려다보면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
"탈퇴하고 싶습니다."
글씨가 떨렸다.
강준호의 눈이 좁혀졌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톤의 높낮이를 묻는 수신호였다. 박준서는 고개를 저었다. 손으로 'ㄹ'자를 그렸다. 대화 중단. 피하고 싶다는 뜻.
"왜?"
노트에 적은 글자는 한 글자였지만, 강준호의 손가락은 그 '왜'를 물리적으로 누르듯이 내려찍었다. 음성의 떨림, 성대의 긴장, 호흡의 변화—그 모든 것이 한 글자에 응축되어 있었다.
박준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침을 삼켰다. 5초. 10초.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어요."
노트 위의 글씨가 작아졌다.
"시골 농사가 안 되고 있대요. 아버지 허리도 더 나빠지셨다고. 제가 돈을 벌어야 한다고요."
강준호는 박준서의 얼굴을 봤다. 광대뼈가 움푹했다. 최근 며칠간 밥을 제대로 먹지 않은 얼굴이었다.
"탈퇴하면 돈을 벌 수 있나?"
손가락 수신호였다. 차갑고 직선적인 움직임.
"...기숙사비 아껴서 집에 보낼 수 있죠."
박준서의 목소리는 이미 반쯤 죽어 있었다. 강준호는 그 목소리를 읽었다. 낮은 음역대, 떨리는 성대, 숨을 고르지 못하는 호흡.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죄책감. 자신이 팀의 짐이라는 확신.
강준호는 박준서의 팔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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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실은 강남역 지하 3층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 방음재로 둘러싸인 작은 박스 같은 공간. 강준호는 박준서를 마이크 앞에 세웠다.
"노래해."
노트에 쓴 두 글자. 명령이 아닌 요청이었다.
박준서는 헤드폰을 썼다. 백 트랙이 흘러나왔다. 지난주 녹음한 'NOVA'의 마이너스 원. 박준서의 파트—처음 16마디의 서브 보컬.
그는 노래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강준호는 콘솔 앞에 앉았다.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대음감이 작동했다.
박준서의 목소리가 수치로 변환되었다. 85Hz에서 시작해 250Hz로 올라가는 저음대.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단순한 음역대가 아니었다. 성대의 진동, 공명실의 울림,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 깔린 감정. 박준서가 품은 절망, 자책, 그리고 여전히 죽지 않은 희망.
강준호의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절대음감을 사용할 때마다 나타나는 증상. 자신의 음역대가 한 층씩 벗겨지는 느낌. 이번엔 저음역대가 먼저 떠나는 중이었다. 남은 시간, 11개월 1주.
강준호는 계속했다.
박준서의 목소리를 완전히 해석했다. 공기의 떨림을 음파로 번역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았다—박준서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당신의 저음은 우주의 중심이다.'"
노트에 적은 글자들. 필체가 흔들렸다. 손가락이 따끔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준호는 멈추지 않고 계속 썼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목소리다."
박준서는 헤드폰을 벗었다. 강준호가 노트를 보여주자, 그의 눈이 흔들렸다.
"제가...?"
"다시 불러."
손가락 수신호. 한 번 더.
박준서는 헤드폰을 다시 썼다. 이번엔 다르게 노래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믿으면서. 강준호가 말한 것들—'우주의 중심', '세상이 필요로 하는'—그런 말들을 신체에 새기면서.
저음이 진동했다.
강준호는 콘솔 앞에서 눈을 감았다. 박준서의 목소리가 공간 전체를 울렸다. 85Hz에서 시작한 음이 이제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온, 부모님의 기대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부서져가는 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박준서가 노래를 마쳤다. 헤드폰을 벗고 강준호를 봤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강준호는 노트를 펼쳤다.
"나는 내 목소리를 포기했다."
박준서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너는 할 수 없다. 너의 목소리는 세상이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난 지금 여기 있는 거고, 넌 저 마이크 앞에 서 있는 거다.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마. 이건 필연이다."
박준서는 노트를 읽고 있었지만, 글자가 흔들려 보였다. 눈물 때문에.
강준호는 박준서의 어깨를 집었다. 손가락으로 톤을 표현했다. 깊고, 따뜻하고,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그런 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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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박준서는 시골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강준호가 옆에 있었다.
"어머니?"
박준서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다르게 떨렸다. 절망이 아닌 결의로 떨렸다.
"네, 저 탈퇴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높고 날카로운 음성. 절대음감으로 읽으면 분노, 걱정, 그리고 자식을 잃고 싶지 않은 절박함이 뒤섞여 있었다.
"아들, 너 뭐 하는 거니. 돈도 안 되는데."
"어머니, 제 노래를 들어보세요."
박준서는 강준호가 준 이어폰을 건네도록 했다.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강준호가 콘솔에서 박준서의 녹음을 틀었다.
박준서의 저음이 흘러나왔다.
"당신의 저음은 우주의 중심이다."
강준호가 쓴 말은 어머니에게 들리지 않겠지만, 박준서의 목소리는 들렸다. 그 목소리는—어머니가 아는 아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아들이 아니라, 누군가의 음악이었다.
"어머니?"
박준서가 조심스레 말했다.
전화 너머는 침묵했다. 길고 무거운 침묵.
"...이게 너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변했다. 높고 날카로운 음성이 낮아졌다. 절대음감으로 읽으면 그것은 깨달음의 음성이었다.
"네, 어머니."
"...아버지를 불러야겠다."
박준서는 강준호를 봤다. 강준호는 노트에 'OK'라고 썼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음성. 10년 농사로 갈라진 목소리.
"준서냐?"
"네, 아버지."
"뭐 하는 거니."
박준서는 다시 한 번 박준서의 저음을 틀었다. 이번엔 전체 파트를.
아버지는 끝까지 들었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노래가 끝났다.
"...이게 돈이 될 거냐?"
아버지의 첫 질문이 그것이었다. 비현실적이지 않은, 매우 현실적인 질문.
"모릅니다, 아버지. 하지만 제 프로듀서가 제 목소리가 세상이 필요로 한다고 했습니다."
박준서는 강준호를 봤다. 강준호는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누가?"
"제 프로듀서입니다. 강준호라고 해요."
전화 너머에서 아버지의 호흡이 들렸다. 생각하는 호흡.
"알겠다. 계속해."
그 문장은 짧았지만, 절대음감으로 읽으면 그것은 모든 것이었다. 동의. 신뢰. 그리고 자식을 믿기로 한 결정.
박준서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강준호는 노트에 적었다.
"넌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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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타 서치 예선, 이틀 뒤.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노바는 무대 위에 있었다.
박준서는 센터 자리에 서 있었다. 아니다, 센터 뒤쪽. 자신의 위치. 서브 보컬의 자리. 하지만 그 자리는 더 이상 작지 않았다.
강준호는 객석의 한구석에서 봤다. 박준서의 목소리가 무대를 지배했다. 85Hz에서 시작한 저음이 이제는 1,200석의 경기장을 울리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몸을 일으켰다.
강준호의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이번엔 더 심했다. 중음역대도 함께 벗겨지는 느낌. 남은 시간, 9개월.
하지만 무대 위에서 박준서의 저음은 계속 울렸다.
노바의 공연이 끝났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일어섰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일어났다.
강준호는 노트에 적었다.
"박준서의 목소리가 무대를 살렸다."
손이 떨렸다.
"이게 마지막이 아니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강준호는 자신의 목구멍을 눌렀다. 저음역대가 이미 절반 이상 사라졌다.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집었다.
"노바, 본선 진출을 권장합니다."
객석이 폭발했다.
강준호는 눈을 감았다. 박준서의 목소리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우주의 중심. 세상이 필요로 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살린 것이 자신의 저음역대였다면, 그건 좋은 거래였다.
강준호는 노트의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멈췄다.
자신의 손가락이 페이지 위에서 떨렸다. 절대음감으로 감지한 것은 무대 위의 박준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낯선 음성. 규칙적인 호흡. 그리고 그 아래 흐르는 계산된 의도.
오수진이었다.
강준호는 뒤를 돌아봤다. 검정 정장을 입은 여자가 객석 맨 뒤에 서 있었다. 손에 폰을 들고 있었다. 노바의 공연을 촬영하고 있었다.
절대음감으로 감지한 오수진의 심장 박동이 규칙적이었다.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웃음 속에 있는 것은 놀라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획이었다.
강준호의 손이 떨렸다. 노트를 떨어뜨렸다. 페이지가 흩어졌다.
그 순간, 강준호는 알아챘다.
오수진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
강준호의 목구멍이 다시 한 번 따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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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복도. 강준호는 객석에서 나와 천천히 걸었다.
절대음감으로 오수진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심장 박동, 호흡, 발걸음의 음성 정보. 모두 감지 가능했다.
하지만 강준호는 멈춰 섰다.
절대음감을 한 번 더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대가를 의미했다. 이미 9개월로 줄어든 시간이 더 빨리 소진될 것이었다. 박준서의 녹음 중에 11개월에서 9개월로 줄었다. 그 속도라면, 한 번의 추적으로 또 1개월 이상이 사라질 수 있었다.
선택의 기로였다.
오수진을 추적하기 위해 절대음감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이 남은 시간을 박준서와 노바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
강준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문자를 보냈다. 이태균에게.
"경기장 뒤쪽 주차장.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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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뒤, 경기장 뒤쪽 주차장의 회색 밴. 이태균이 운전석에서 강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준호는 밴에 올라탔다. 이태균은 말을 걸지 않았다. 10년 함께 일한 동료였다. 침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강준호는 노트를 펼쳤다.
"오수진이 왔다. 촬영했다."
이태균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경쟁사다. 우리 공연을 녹화해서 분석할 거야. 약점을 찾을 거고."
강준호는 노트를 더 썼다.
"그리고 우린 그걸 막을 수 없다. 공개 행사니까."
이태균은 핸들을 쥐었다.
"그럼 뭘 하려고?"
강준호는 손가락으로 대답했다. 손가락 수신호로. 자신이 만든 신호 체계로. 이태균은 10년 전부터 이 신호를 이해하고 있었다.
"먼저 치자."
이태균의 눈이 커졌다.
"먼저?"
강준호는 노트에 썼다.
"본선까지 30일. 그 사이에 노바를 완성한다. 오수진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그건... 불가능해."
강준호는 이태균을 봤다. 침묵한 채로.
이태균은 강준호의 눈빛을 읽었다. 절대음감은 없지만, 10년 함께 일한 사람의 눈빛은 읽을 수 있었다.
"얼마나 남았어?"
강준호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현했다. 9개월.
"어제는?"
11개월.
이태균은 핸들을 놨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준호, 넌..."
강준호는 이태균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노트에 썼다.
"괜찮다. 박준서 때문이라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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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내부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노바의 본선 진출이 확정됐을 때의 흥분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박준서는 노바의 멤버들과 함께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이지은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고, 최민준은 핸드폰으로 SNS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나영은 여전히 무대에서의 쾌감에 취해 있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박준서는 자신의 부모님에게 온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우리 아들이 무대에서 그렇게 빛날 줄 몰랐다. 계속해. 엄마가 응원한다."
눈물이 났다.
강준호가 들어왔다. 침묵한 채로. 손에는 노트가 들려 있었다.
박준서는 강준호의 얼굴을 봤다. 뭔가 달랐다. 무대에서 박준서의 목소리를 들을 때의 강준호의 표정과는 다른. 더 심각한, 더 뭔가를 결정한 듯한 표정이었다.
강준호는 노트를 펼쳤다. 모든 멤버들이 시선을 모았다.
"본선은 시작일 뿐이다. 지금부터 진짜 전쟁이다."
글씨가 크고 검었다.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우리 앞에는 빅3 기획사들이 있다. 더 많은 자본, 더 많은 팬, 더 많은 경험을 가진 그룹들이 있다. 우리는 약자다."
강준호는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하지만 약자에게는 한 가지 무기가 있다. 진정성이다."
박준서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우주의 중심이라고 했던 그 저음. 진정성이 담긴 그 목소리.
"이제부터 우린 모든 걸 버린다. 유행은 버린다. 남의 눈은 버린다. 오직 우리의 음성만 남긴다. 우리의 이야기만 남긴다."
강준호는 노트를 내렸다.
"30일 뒤, 본선에서 우린 그걸 보여줄 거다."
이지은이 일어났다.
"그게 가능해요?"
강준호는 이지은을 봤다. 절대음감으로 이지은의 목소리를 분석했다. 두려움. 하지만 그 아래에는 희망이 있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자의 희망. 더 나을 수 있다는 믿음.
강준호는 노트에 썼다.
"가능하다. 왜냐하면 넌 이미 했으니까."
이지은의 얼굴이 변했다.
"우린 이미 한 번의 기적을 경험했다. 박준서를 잃을 뻔했고, 그걸 되찾았다. 우린 이미 불가능을 했다."
박준서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강준호는 모든 멤버를 봤다. 박준서, 이지은, 최민준, 한나영, 그리고 새로 합류한 서민호까지.
"이제부터 30일. 우린 모든 걸 바꿀 거다. 우리의 사운드를 바꾸고, 우리의 컨셉을 바꾸고, 우리의 이야기를 바꿀 거다."
강준호는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본선에서 우린 이 업계를 흔들어놓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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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나가며 강준호는 절대음감을 다시 한 번 사용했다. 객석 뒤쪽을 향해.
오수진의 목소리는 더 이상 거기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촬영 때문에 남겨진 전자기기의 미세한 신호음. 그것도 절대음감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강준호의 목구멍이 또 한 번 따끔거렸다.
남은 음역대는 더 줄었을 것이다. 8개월. 절대음감을 사용할 때마다 소실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박준서의 저음이 무대를 지배했고, 부모님이 아들을 믿기로 했고, 노바가 본선에 진출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강준호는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이미 써 있는 문장이 있었다. 3화에서 자신이 쓴 문장.
"자신의 목소리를 잃는 대신 누군가의 목소리를 살릴 수 있다면."
강준호는 그 아래에 오늘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한 줄을 더했다.
"그것이 두 번째 인생의 의미다."
주차장에서 이태균의 밴이 나타났다. 강준호는 탔다.
이태균은 강준호를 봤다. 침묵 속에서도 읽을 수 있는 그의 표정. 결정이 내려졌다는 표정. 그리고 그 결정이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바꿀 것이라는 확신.
"스튜디오로 가자."
강준호는 노트에 썼다.
"내일부터 30일간 쉬지 않는다. 박준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멤버의 음성 구조를 새로 만든다. 30일 뒤, 본선에서 노바는 다른 그룹이 될 거다."
이태균은 운전을 시작했다. 밴이 올림픽공원을 빠져나갔다.
강준호는 창밖을 봤다. 서울의 야경이 시작되고 있었다. 불이 켜지는 빌딩들, 움직이는 자동차들, 거리의 사람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강준호만 제외하고.
하지만 이제 강준호는 알았다. 그것이 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것이 가장 강한 위치라는 것을.
왜냐하면 자신의 목소리가 없으니,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더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목소리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었다.
강준호는 노트의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비어 있는 페이지. 30일간 쓸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
첫 문장을 썼다.
"본선까지 30일. 우린 모든 걸 잃고 모든 걸 얻을 거다."
밴이 강남역 지하 크레센도 엔터 건물 앞에 멈췄다. 새벽 3시였다.
강준호와 이태균은 지하로 내려갔다. 연습실의 불이 이미 켜져 있었다.
노바의 멤버들이 모두 거기 있었다. 아무도 집에 가지 않았다. 박준서의 눈은 여전히 축축했고, 이지은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고, 최민준은 댄스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강준호가 들어오자 모두 시선을 모았다.
강준호는 스피커를 켰다. 이태균이 준비한 새로운 트랙이 나왔다. 그것은 'NOVA'와는 완전히 다른 곡이었다. 더 어둡고, 더 진정하고, 더 절박했다.
강준호는 노트를 들었다.
"이 곡은 우리의 전쟁이다. 오수진과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의 전쟁이다."
박준서가 먼저 손을 들었다.
"언제까지요?"
강준호는 답했다.
"본선 무대에 설 때까지. 그 이후는 없다. 우린 반드시 이길 거니까."
그리고 강준호는 절대음감으로 각 멤버의 음성을 분석했다. 박준서의 우주적 저음, 이지은의 진정성 있는 중음, 최민준의 절망적 래핑, 한나영의 성장하는 음성, 서민호의 맑은 고음.
강준호는 손으로 지휘를 시작했다. 침묵 속에서. 박준서에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더 깊이, 더 천천히. 이지은에게는 다른 신호. 중음을 앞으로 끌어올려. 최민준과 한나영, 서민호에게는 또 다른 지시들.
각 멤버가 강준호의 신호를 따랐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반복되면서 다섯 개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강남역 지하 연습실에 새로운 노바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강준호의 목구멍이 또 한 번 따끔거렸다.
남은 시간은 더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질 그들의 목소리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오수진이 촬영한 영상은 이미 어딘가로 전송되었을 것이다. 빅3 기획사의 전략팀으로. 하지만 상관없었다.
30일 뒤, 본선 무대에서 노바는 그 영상에 담긴 것보다 훨씬 더 강한 그룹으로 나타날 것이었다.
강준호는 노트에 마지막 문장을 썼다.
"오수진,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밤은 깊어갔다. 강남역 지하에서는 여전히 노바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지휘하는 침묵의 프로듀서의 손가락은 절대음감의 대가를 치르며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