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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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오수진이 보낸 문자를 다섯 번 읽고도 여전히 떨렸다. '오늘 저녁 6시, 우리 사무실'. 문자는 명령이었다. 강남역 지하에서 올라온 강준호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절대음감이 켜지면 주변의 모든 소리가 색상과 수치로 변환된다. 지금 그것까지 켜질 여유가 없었다. 목구멍에서는 이미 따끔거림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후 5시 50분. 강남의 고급 오피스 건물 32층. 오수진의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그녀의 얼굴이 먼저 나타났다. 검은 정장, 거울 같은 눈동자. 10년 전 강준호가 존경하던 후배는 이제 경쟁자였다.

"앉아."

강준호가 의자에 앉자, 오수진은 책상 위에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노바' 음원이 재생 중이었다. NOVA, 강준호가 만든 그 곡이다. 오수진의 입가에 미세한 웃음이 떠올랐다.

"당신의 절대음감. 여전히 살아있네."

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죠? 당신도 결국 같은 길을 걷게 될 거야."

오수진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책상 위에 놓인 또 다른 파일을 펼쳤다. 거기에는 '라이즈'라는 그룹의 음반이 있었다. 10년 전 강준호가 프로듀싱했던 그룹. 처음엔 주목받았지만, 결국 흩어졌던 그룹이었다.

"라이즈도 처음엔 좋았어. 당신의 음감으로 만든 음악도 좋았고. 하지만 뭐 했어? 6개월 만에 내분, 1년 만에 해체. 멤버들은 흩어졌고, 당신은..." 오수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락으로 떨어졌다."

강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노트를 꺼내 펜을 집었다. 그는 천천히 글을 썼다. '다를 거야.'

"다르다고?" 오수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의 그 웃긴 침묵이 뭘 할 수 있어? 음악만 좋아서 되나? 멤버들의 심리, 팬덤, 미디어, 자본력—이 모든 게 당신을 짓누를 거야. 라이즈처럼. 그리고 노바도."

침묵이 방을 가득 채웠다.

강준호는 오수진을 바라봤다. 눈빛만으로 대답했다. 그것이 더 강력한 저항이었다. 오수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뭘 아는 줄 알아? 내가 이미 움직였다는 걸."

오수진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며 말했다.

"노바의 음원? 어제 경쟁사에 넘겼어. 음질 비교 자료로.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는 이미 루머가 퍼지고 있고." 오수진이 휴대폰 화면을 강준호 쪽으로 기울였다. 스크린샷들이 떠 있었다.

'신인 그룹 노바, 음향 조작 의혹'

'강남 지하 연습실의 유령 프로듀서'

'멤버 간 불화 심화, 곧 해체?'

"이건 내 팀이 퍼뜨린 거야. 당신의 라이즈 때처럼. 멤버들이 불안해하면, 결국..." 오수진이 휴대폰을 내렸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흩어진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거든."

강준호의 얼굴에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절대음감을 켰다. 오수진의 성대 진동이 화면처럼 떠올랐다. 주파수 대역대는 높았다. 흥분 상태. 그 안에 숨겨진 것은 두려움이었다. 진짜 두려움.

"당신도 결국 같은 길을 걷게 될 거야. 노바도 당신처럼 망할 거고." 오수진이 몸을 일으켰다. 손이 떨렸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변하지 않았거든. 여전히 완벽함을 추구하고, 여전히 멤버들을 너무 밀어붙이고, 여전히..."

오수진이 강준호의 목을 바라봤다. 그의 목에는 이미 자국이 패어 있었다.

"뭔가를 잃고 있는 것 같은데?"

침묵이 사무실을 채웠다. 에어컨의 소음만 들렸다.

"대답은 없나?" 오수진이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떨리고 있었다. "아, 맞다. 당신 침묵하잖아."

강준호가 노트를 펼쳤다. 펜을 집었다. 글씨를 썼다.

'당신이 두려운 건 내 성공이 아니라 내 침묵이다.'

오수진의 몸이 경직됐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무슨 소리야?"

강준호가 노트를 다시 썼다. 글씨가 명확했다.

'말은 거짓을 숨길 수 있다. 침묵은 아니다.'

오수진이 노트를 집어던졌다. 종이가 바닥에 흩어졌다. "넌 정신을 차려야 해. 나는 SM 프로듀싱팀 이사야. 넌 뭔데? 무명 기획사의 침묵한 프로듀서?"

오수진이 강준호의 팔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강준호의 팔에 전해졌다.

"당신도 결국 같은 길을 걷게 될 거야. 라이즈처럼, 노바도 망할 거고, 당신도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거야."

오수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절대음감으로 읽었다. 성대가 떨리고 있었다. 공포. 순수한 공포였다. 그 안에 뭔가가 더 있었다. 질투. 아니, 후회였다. 한때 강준호를 존경했던 사람의 후회. 자신이 그를 짓밟아야 한다고 믿었던 후회.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착각했던 후회.

"그리고 이번엔 아무도 건져주지 않을 거야."

강준호가 천천히 오수진을 바라봤다. 손을 들어 오수진의 손을 풀었다. 천천히, 확실하게.

그리고 침묵한 채 문을 열었다.

"강준호!"

뒤에서 오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강하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강준호는 계단을 내려갔다. 한 계단씩. 발걸음이 무거웠다. 계단 벽에 손을 짚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오수진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라이즈가 해체되던 날. 멤버들이 하나둘 떠나가던 그 절망감. 그것이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는 공포. 하지만 강준호는 계단을 멈추지 않았다. 아래로, 계속 아래로.

---

강남역 지하 연습실. 오후 3시.

노바의 다섯 멤버가 모였다. 박준서, 이지은, 최민준, 한나영.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서민호.

서민호는 크레센도 엔터의 신입 연습생이었다. 최근 성대 결절 수술을 마쳤고, 저음 담당이었다. 이태균이 그를 추천했다. 강준호가 세 번 만나 절대음감으로 진단했을 때, 그의 음성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동시에 아직도 노래할 수 있는 음역대가 있었다.

"서민호는 우리의 감정 센터야." 강준호가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넌 노래하지 않아. 우리를 안아."

서민호의 눈이 흔들렸다. 몇 달 만에 처음 누군가가 자신의 목소리에 가치를 부여했다.

이지은이 강준호에게 다가왔다. "우리가... 정말 오디션 나가는 거죠?"

강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트를 펼쳤다.

'글로벌 스타 서치. 48시간 후 예선 마감. 우리가 간다.'

박준서가 손을 들었다. "근데 지금 소셜 미디어에 우리 얘기가 나와요. 안 좋은 얘기들이."

최민준이 휴대폰을 들었다. 스크린을 보였다. 화면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떠 있었다.

'노바? 누군데? 음향 조작 의혹?'

'강남 지하 연습실 귀신 프로듀서?'

'멤버들 사이 불화 심각. 곧 해체?'

'이 팀 진짜 뭐 하는 팀이냐고 ㅋㅋ'

한나영이 휴대폰을 들었다. 하나하나 읽으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미 우리 망한 거 아니에요? 오디션 전에 이미..." 손가락이 떨렸다. 휴대폰을 놨다 집었다를 반복했다.

최민준이 휴대폰을 내렸다. "저 루머들 어디서 나온 거냐고. 우리가 뭘 했는데..."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박준서의 손이 떨렸다. "우리 진짜... 해체하는 거 아니에요?" 다른 멤버들을 바라봤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지은이 눈물을 흘렸다. "이게 뭐예요.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목이 메었다.

강준호가 빠르게 노트를 펼쳤다. 펜으로 글을 썼다. 글씨가 약간 흔들렸다. 손가락 관절이 아팠다. 절대음감을 너무 많이 썼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진정하면 된다.'

이지은이 강준호를 자세히 봤다. "당신 목이... 정말 괜찮으세요?"

강준호가 손을 들어 그녀를 멈췄다. 손가락으로 다시 신호를 보냈다.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

'다섯 명. 다섯 가지 색깔. 그게 노바야.'

박준서가 강준호의 옆에 섰다. "저희가 뭘 할 수 있어요? 저 루머들은 이미..."

최민준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차라리 그냥 포기하는 게..."

강준호가 노트에 크게 썼다. 펜을 누르는 힘이 강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노래하는 것뿐이다. 진정으로, 한 번에, 그게 전부다.'

한나영이 고개를 들었다. "그게... 충분합니까?"

강준호가 손가락으로 대답했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한 손가락씩 펼쳤다.

'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니까.'

그 말이 끝나자 멤버들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절망에서 결연함으로. 불안에서 신뢰로. 한나영의 눈물이 멈췄다. 최민준이 고개를 들었다. 박준서의 손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서민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뭘 해야 해요?"

강준호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절대음감으로 서민호의 성대를 읽었다. 깊은 저음. 그 안에 담긴 것은 '다시 살아나고 싶다'는 절실함이었다. 버려졌던 목소리가 다시 쓰이고 싶다는 간절함.

노트를 썼다.

'넌 우리의 기초가 된다. 다섯 개의 음성이 하나가 되도록.'

서민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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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강남역 지하 계단.

강준호가 혼자 올라가고 있었다. 목구멍에서 뭔가 흐르는 느낌이 있었다.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손가락에 붉은 자국이 묻었다. 피였다.

침을 삼킬 때마다 따끔거렸다. 한 계단씩 올라갔다. 숨이 차지 않았다. 이미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였다.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음성 범위가 한 옥타브씩 줄어들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강준호가 받았다.

"강준호? 나 오수진이야."

목소리가 들렸다. 절대음감으로 읽었다. 흥분. 그 안에 광기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절망이 있었다.

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글로벌 스타 서치 참가했다고 들었어. 좋은 결정이야. 당신이 그걸 충분히 망칠 수 있으니까." 오수진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웃음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강준호? 당신의 절대음감도 결국 저주일 뿐이야. 목소리를 잃으면서까지 뭘 얻을 건데?"

강준호가 끊었다.

지상에 올라온 강준호는 강남역 입구의 화장실을 찾았다. 거울 앞에 섰다.

입술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입을 떼려고 하자 목구멍에서 바람만 나왔다. 소리가 없었다. 절대 없었다.

손가락으로 계산했다. 글로벌 스타 서치 예선까지 48시간. 그 후 본선까지 약 60일.

그 60일 동안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절대음감을 쓸 때마다 성대가 갈려나가고 있었다. 손가락 신호를 보낼 때마다 통증이 심해졌다. 어제는 손가락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휴대폰이 울렸다.

[글로벌 스타 서치 공식 앱 알림]

'축하합니다! 노바가 예선 심사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본선 진출을 위해 3분 30초 분량의 미디어 영상을 제출하세요. 제출 기한: 72시간.'

강준호의 눈이 움직였다.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입술 위에 핏자국이 있었다. 목에는 자국이 패어 있었다. 절대음감을 쓸 때마다 성대가 갈려나가고 있었다. 목소리는 이미 반 이상 사라졌다.

그는 노트를 꺼냈다. 펜을 집었다.

'48시간. 72시간. 60일.'

다시 썼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글씨는 명확했다.

'그 안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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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 크레센도 엔터 회의실.

이태균이 강준호의 앞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에는 글로벌 스타 서치의 심사 기준이 떠 있었다.

'음성 품질 40점, 무대 표현력 30점, 그룹 화학 20점, 독창성 10점'

이태균이 손을 모았다. "72시간 안에 영상을 만들어야 해. 근데 뭘 보여줄 거야?"

강준호가 노트를 펼쳤다. 이미 많은 글이 적혀 있었다. 악보, 가사, 영상 구성도, 카메라 앵글.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손글씨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NOVA. 우리의 첫 곡. 그것뿐이다.'

이태균이 노트를 읽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음성 품질에서 40점을 받으려면... 이 팀이 정말 완벽해야 해. 지금 상태로는..."

강준호가 손을 들었다.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손가락이 약간 마비되어 있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이태균이 웃음을 흘렸다. "당신이 그 말을 하네. 10년 전의 당신은 완벽함의 화신이었는데."

강준호가 노트를 다시 썼다. 필체가 흔들렸다. 손가락 마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10년 전의 나는 죽었다.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은 완벽함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이태균이 조용히 노트를 바라봤다. "당신 목이..."

강준호가 손을 들었다.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이태균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강준호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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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 후. 강남역 지하 촬영장.

노바의 다섯 멤버와 서민호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무대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태균이 카메라를 들었다.

강준호가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손가락이 떨렸다. 신호를 보낼 때마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첫 번째 음정. 박준서가 노래를 시작했다.

'떨어지는 별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맑았다. 절대음감으로 읽었다. 배려. 따뜻함. 그리고 자신감. 강준호는 손가락으로 음정을 조정했다. 박준서의 음성이 정확히 C4에서 울렸다.

이지은이 합류했다.

'우리는 빛이 되어'

음성이 명확했다. 과거의 완벽함의 강박은 사라졌다. 대신 진정성이 들어찼다. 강준호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통증이 더 심했다. 손가락 마디가 마비되고 있었다. 이지은의 음정을 E4로 조정했다.

최민준의 랩이 들어왔다. 냉소적이던 음성에 희망이 섞여 있었다. 강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신호를 보낼 때마다 손가락이 따끔거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나영의 음성. 미개발되었던 가능성이 꽃을 피웠다. 강준호가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손가락 끝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마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한나영의 음정은 정확히 G4에서 울렸다.

그리고 서민호의 저음. 모든 음성을 받아서 하나로 만들었다. 강준호는 무대 옆에서 손가락으로 지휘했다. 절대음감으로 각 멤버의 음정을 실시간으로 조정했다. C4에서 C5로, 다시 B3으로. 음역대가 0.5Hz씩 떨어졌다가 올라갔다. 완벽한 조화. 하지만 신호를 보낼 때마다 강준호의 손가락은 더 마비되었다. 통증이 손목까지 올라왔다.

멤버들은 강준호의 손가락 신호를 따랐다. 말 없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밤하늘의 별이 되어'

'모두가 우리를 바라본다'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진다'

영상 촬영은 3분 30초 만에 끝났다. 한 번에. 재촬영 없이.

이태균이 카메라를 내렸다. "완벽했어."

강준호가 손을 흔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완벽하지 않다. 진정했을 뿐이다.'

박준서가 강준호에게 다가왔다. "당신 목이... 정말 괜찮으세요?"

강준호가 노트를 펼쳤다. 손가락이 펜을 집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우리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게 우리 음악이다.'

서민호가 강준호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뭔가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죠?"

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민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절대음감을 쓸 때마다 성대가 갈려나가고, 손가락이 마비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강준호가 노바를 위해 치르고 있는 대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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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 후. 글로벌 스타 서치 공식 채널.

노바의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단순했다. 'NOVA - Rising'

조회수가 올라갔다. 1만, 10만, 100만.

댓글이 달렸다.

'와 이 팀 뭐야? 완전 다르다'

'음성이 진짜 아름다워'

'이 그룹 누구지? 처음 봤는데 중독된다'

'절대음감 프로듀서 있는 팀이라고? 진짜?'

'저 손가락 신호 뭐야? 뭔가 숨겨진 의미 있는 것 같은데'

'음악 전공자인데 진짜 신기하다. 저 신호가 음정을 나타내는 건가?'

'이 팀 진짜 특이한데... 프로듀서가 손가락으로만 지휘하네. 왜 말을 안 하는 거지?'

'혹시 이 프로듀서 절대음감이 있어서 음정을 손가락으로 조정하는 건가? 신기하다'

이태균이 강준호에게 휴대폰을 보였다. 강준호는 영상을 봤다. 자신이 손가락으로 보여준 음정들이 화면 위에 숨겨진 신호로 떠 있었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만 보일 수 있는 숨겨진 메시지.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진다.'

강준호가 노트를 펼쳤다. 펜을 들었다. 하지만 글을 쓸 수 없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마비가 손가락 전체로 퍼졌다.

절대음감을 너무 많이 썼다. 이제 남은 시간은 40일 정도였다. 그 사이에 노바는 본선 진출을 해야 했다. 세계 오디션의 본선. 그곳에는 전 세계의 최고 재능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강준호가 노트에 썼다. 글씨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약했다.

'이제 끝이 보인다.'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 강준호가 받았다.

"강준호? 나 박진한이야. 글로벌 스타 서치 심사위원이고." 음성이 들렸다. 절대음감으로 읽었다. 이 사람은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강준호를 알고 있었다. "당신의 노바 팀. 정말 좋은 팀이야. 근데 말이야. 본선에 나가려면... 당신이 직접 나가야 해."

강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이 궁금해하고 있어. '침묵의 프로듀서'가 정말 존재하는지. 당신이 본선 무대에 나가서 당신의 팀을 지휘해야 해. 그게 규칙이야. 팀의 리더가 무대에 함께 서야 한다는 규칙."

강준호의 손이 떨렸다.

"근데 당신이 노래할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야. 당신의 침묵이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음악이 될 수 있다면."

박진한의 음성에는 무언가 더 있었다. 강준호를 향한 이해. 그리고 기대.

"생각해봐. 당신이 본선에 나가지 않으면 노바는 본선 진출 자격이 없어. 규칙이니까."

전화가 끊겼다.

강준호가 거울을 봤다. 입술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입을 떼려고 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도 마비되었다. 더 이상 신호를 보낼 수 없을 수도 있었다.

40일. 그 사이에 자신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본선 무대에 나가야 한다. 침묵한 채로. 세계의 모든 심사위원 앞에서. 노바를 위해.

강준호가 노트를 펼쳤다. 마지막 페이지에 썼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글씨는 명확했다.

'침묵이 음악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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