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기숙사 거실. 성수의 빛이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레이나의 손가락이 떨렸다. 멈추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입에서 나오는 말도 자신의 말인지, 연기된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신부 빅토르 칸이 이끄는 무리가 거실 입구를 가득 채웠고, 세인·카일·에드먼드는 성수의 영역 안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세 남자의 검은 눈이 흔들렸다. 자신들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눈.

레이나는 손을 들었다.

어둠의 마력이 몸 전체를 타고 올라왔다. 검은 불이 거실 천장까지 솟았다. 신부들이 성수병을 더 높이 들었지만, 그 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검어졌다.

"너희들이 원하는 걸 알아?"

레이나의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내가 만들어준 착각이야."

세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는 날 구원하고 싶었어. 착한 기사 세인이 악한 영애를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그런데 내가 그 욕망을 봤어. 너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있던 영웅 콤플렉스를. 그리고 증폭시켰어."

세인이 입을 열려 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는 날 이해하고 싶었어. 학자 카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대상을 만났을 때의 강박관념. 그걸 봤어. 날 연구하려던 게 아니라, 날 소유하려던 거야. 내가 그 욕망을 만들어줬어."

카일의 손이 주먹으로 쥐어졌다. 성수의 영역 안에서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너."

레이나의 시선이 에드먼드를 향했다.

"황태자 에드먼드. 넌 원했어. 왕실의 정치 게임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완벽해야 한다는 족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어. 내 '악함'이 그 자유처럼 보였지. 내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었어."

에드먼드의 눈이 떨렸다.

"그래. 넌 다 거짓이야."

레이나가 한 걸음 내디뎠다. 검은 불이 그녀의 발자국을 따라 번져나갔다.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어. 나는 착한 영애도 아니고 악한 영애도 아니야. 나는 그냥... 누군가의 욕망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존재일 뿐이야."

"레이나..."

세인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 넌 뭐야? 넌 정말로 뭐야?"

레이나가 멈췄다.

거울을 봤던 때를 생각했다. 아침마다 얼굴을 인식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그 시간들. 거울 속 눈동자가 검었다 투명했다를 반복하던 순간들.

손가락이 떨렸다. 의도적으로 멈추려고 했다. 손가락을 움켜쥐고, 다시 펼쳤다. 떨림은 계속됐다.

검은 마력이 손끝에서 맴돌았다. 제어하려고 했다. 마력을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흔들렸다.

"나도... 모르겠어."

그 말이 나온 순간, 검은 불이 흔들렸다.

신부 빅토르 칸이 성수병을 높이 들었다. 성수의 빛이 거실 전체를 밝혔다. 레이나의 마력이 수축했다.

"악마여, 너의 거짓말은 여기서 끝난다."

신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미나 제국의 이름으로, 빛의 교단의 권위로, 너를 정화한다."

성수가 거실 바닥에 퍼지기 시작했다. 세인·카일·에드먼드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이 레이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만 떨렸다.

"레이나!"

"기다려!"

"내가 데려가겠어!"

세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지만, 성수의 영역은 그들을 가두고 있었다.

레이나는 천천히 물러섰다. 거실 뒤의 복도로. 성수는 그녀를 따라왔다. 신부들이 뒤를 따랐다.

기숙사 앞 계단. 레이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떨렸다.

"나는 누구인가."

그 말을 반복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위층에서 달려 내려왔다.

발걸음이 빨랐다. 매우 빨랐다.

"누나!"

시온의 목소리였다.

어린 남동생이 계단 중간에서 나타났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 작은 몸에서 희미한 어둠의 마력이 피어올랐다.

"시온, 물러나!"

레이나가 소리쳤다.

하지만 시온은 멈추지 않았다. 누나를 향해 달려왔다. 신부들이 성수병을 들었다.

"아이여, 물러나거라!"

신부가 외쳤다.

시온은 누나를 안았다.

작은 팔이 레이나의 허리를 감쌌다.

"누나, 난 모르겠어. 누나가 악한 영애인지 착한 영애인지. 그런 건 상관없어."

시온의 목소리가 떨렸다.

"난 누나가 누구든 상관없어. 누나가 누나이면 돼. 그게 다야."

레이나의 손이 떨렸다.

"난... 누나의 연기를 사랑한 게 아니라, 누나 자체를 사랑해. 누나가 누구든 상관없어."

처음으로.

처음으로 레이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진정한 눈물이었다.

검은 마력이 거실 전체를 휩쓸었다.

신부들이 뒤로 물러섰다.

기숙사 벽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밖에서 성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카데미 전체를 덮고 있던 차단 결계가 깨지는 소리.

무언가 변하고 있었다.

무언가 시작되고 있었다.

레이나의 검은 마력이 기숙사를 뒤흔들었다. 벽에 금이 가고, 천장에서 석회가 떨어졌다. 신부들은 성수병을 들고 물러났지만, 그들의 움직임도 느렸다.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시온은 누나를 놓지 않았다.

"누나, 제발. 제발 괜찮아."

어린 남동생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림이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레이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온의 얼굴을 봤다. 눈이 빨갛게 부은 남동생.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린 사람. 자신의 '연기'를 보지 않고 '자신'을 본 유일한 사람.

"시온..."

레이나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착한 목소리도 악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단지 누나의 목소리였다.

검은 마력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호흡이 정상화되었다. 눈동자가 초점을 되찾기 시작했다.

신부 빅토르 칸의 손이 멈췄다. 성수병을 들었던 팔이 흔들렸다.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의심이 깊게 새겼다.

검은 마력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악의 냄새가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누군가의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려는 누군가의 울음이었다.

신부는 입을 벌렸다 닫았다. 벌렸다 닫았다. 성수병이 손에서 흔들렸다.

"이건... 악마의 속임수입니까?"

뒤에 선 신부 중 한 명이 물었다.

빅토르 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검은 마력 속에서 들려오는 울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것은 악의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절망이었다. 누군가의 고통이었다.

신부의 신념이 흔들렸다. 오랫동안 확신해왔던 것들이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악마는 이렇게 울지 않는다. 악마는 이렇게 사랑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 아이는..."

신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구원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그가 성수병을 내렸다. 신부들이 한 발씩 물러섰다. 하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기숙사 주변에 서서, 레이나를 감시했다. 혹은 보호했다. 빅토르 칸의 의도는 모호했지만, 그의 선택은 명확했다. 성수병을 내린 것은 정화의 포기를 의미했다.

기숙사 거실의 문이 열렸다.

세인이 나왔다. 그 다음 카일. 마지막으로 에드먼드. 세 남자가 계단을 내려갔다. 성수의 영역에서 벗어났다는 뜻이었다.

"레이나."

세인이 처음 입을 열었다. 그의 검은 눈이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투명해지고 있었다. 마치 아침빛이 어둠을 밀어내듯이.

"내가 원한 건... 뭐였지?"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처음으로 직면하는 사람의 목소리.

"난... 넌 구원받아야 할 악한 존재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정의로워 보였거든. 내가 너를 구원하면 내가 영웅이 될 거라고."

세인이 한 발 내디뎠다. 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레이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이 닿을 듯 말 듯 허공에서 떨렸다.

"근데 그게 다 거짓이었어. 내가 원한 건 구원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줄 누군가였어. 완벽함에서 벗어나게 해줄 누군가."

세인이 손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항복이 아니었다. 그는 한 발 더 내디뎠다. 성수의 영역이 아직도 그를 가두려 했지만, 그는 그것을 밀어내며 나아갔다. 마력이 아닌 의지로.

"미안해."

그 말과 함께 세인의 손이 레이나의 어깨에 닿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그것은 더 이상 구원의 손이 아니라 함께하는 손이었다.

카일이 한 발 나아갔다. 그의 눈은 여전히 검었지만, 거기에 뭔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이성. 논리. 그리고 그것을 깨물고 있는 집착.

"너는 정말로 뭐야?"

카일이 묻지 않았다. 선언했다.

"난 알고 싶어. 너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 자체가 궁금해. 이건... 이건 내 강박관념이야. 이해하고 싶은 욕망. 그런데 이게... 이게 너를 지배하고 있었어. 내가 너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네가 날 지배하고 있었어."

카일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검은 눈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검음은 더 이상 중독이 아니었다. 인정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난 너를 알고 싶어. 이제는 착각 없이. 그냥... 너를 알고 싶어."

카일이 손을 뻗었다. 세인처럼 그도 성수의 영역을 밀어내고 나아갔다. 그의 손이 레이나의 손을 찾았다. 손가락이 손가락 위에 겹쳐졌다.

"난 뭘 해줄 수 없어. 그냥... 곁에 있고 싶어."

그것은 작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것이었다.

에드먼드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황태자는 계단의 꼭대기에 서 있었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내 착각이 뭐든..."

그가 한 걸음 내디뎠다.

"난 너를 원해."

그것은 단순했다. 왕실의 정치 게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완벽함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욕망.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에드먼드는 그것을 인정하는 대신 선택했다.

"내 착각이 뭐든... 난 너를 사랑해. 그게... 그게 진실이야."

에드먼드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다른 둘과 달랐다. 망설임 없이, 확신 있게 뻗어져 있었다. 하지만 닿지 못했다. 성수의 영역이 아직도 그를 가두고 있었으니까.

에드먼드는 성수의 영역 안에서 움직였다. 그 안에서 손을 뻗었다. 성수는 그의 피부를 태웠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난 네 착각의 일부일 수도 있어. 하지만..."

에드먼드의 손이 성수의 빛을 헤치며 나아갔다.

"난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그의 손이 레이나의 얼굴에 닿았다. 따뜻했다. 성수에 그을린 손이었지만, 따뜻했다.

시온이 누나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누나, 우리 어디 가?"

그 질문이 모든 것을 바꿨다.

레이나는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에서 봐왔던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현재의 얼굴을 느껴봤다. 손가락은 여전히 떨렸다. 어둠의 마력은 여전히 폭발하려고 했다. 연기의 습관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시온의 손이 따뜻했다. 세인의 손이 따뜻했다. 카일의 손이 따뜻했다. 에드먼드의 손이 따뜻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레이나는 손가락을 펼쳤다. 떨림이 계속됐지만, 이제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선택이었다.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선택.

마력의 색이 변했다. 검은색에서 자주색으로. 여전히 어둠이었지만, 더 이상 절망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레이나가 말했다. 목소리가 안정되었다.

"우리 함께 가자. 어디든."

손가락의 떨림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자신의 일부였다. 거부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이었다.

그 순간, 아카데미의 시계탑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정오였다.

기숙사의 창문 너머로 무언가 검은 것이 지나갔다. 아주 크고, 아주 빠르고, 아주 위협적인 무언가.

신부들이 하늘을 바라봤다.

"뭐야, 저건?"

세인이 중얼거렸다.

카일의 눈이 확대됐다.

"어둠의 마력... 아니다. 이건... 이건 다른 종류의 마력이야. 아카데미의 결계를 뚫고 들어온..."

에드먼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불가능해. 저건..."

그가 말을 마치기 전에, 아카데미의 대문이 무너졌다.

검은 날개를 펼친 드래곤이 아카데미 정문을 박살내고 들어왔다. 그 등 위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레이나와 닮은 얼굴의 여인.

"레이나!"

드래곤 위의 여인이 소리쳤다.

"엄마?"

레이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머니 리리안이었다. 그런데...

"빨리! 우리 지금 떠나야 해!"

리리안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뭔가 더 큰 것이 따라오고 있었다.

하늘이 검어졌다.

제국의 왕실 기사단. 황제 직속의 드래곤 나이트들. 그들이 하늘을 채웠다. 빅토르 칸이 신부들을 이끌고 아카데미를 떠났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황제에게 보고했다는 뜻이었다. 레이나의 마력이 제국 전역에 감지되었고, 황제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루미나 제국의 이름으로, 어둠의 마력 사용자를 체포한다!"

황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오의 태양이 구름에 가려졌다. 아카데미 전체가 어둠에 싸였다.

그리고 레이나는 깨달았다.

자신이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되찾는 순간, 세상 전체가 자신을 제거하려 나섰다는 것을.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