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법정 304호

법정 304호로 들어서는 순간, 이수현의 눈동자에 금이 갔다.

13년 전 사형을 선고받은 바로 그 장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판사석을 비추고, 그 아래 검사석과 피고인석이 마주보고 있었다. 증인석은 그들 사이의 중립 지점—아무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순간, 13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검은 법복을 입은 판사. 선고 직전의 침묵. 그리고 자신의 목에 내려진 사형 선고.

이수현의 눈동자의 금이 은색으로 변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아니, 떨리는 게 아니었다. 뭔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13년 동안 억눌려 있던 능력이. 그것이 이 법정에서 다시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이수현은 피고인석에 앉았다.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검은 정장, 단정한 머리. 외형상 13년 전과 달라진 점은 눈뿐이었다. 미세한 금 사이로 은색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숨을 천천히 고르려 했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꺼풀이 떨렸다. 은색 빛이 깜박였다.

판사 김혜민이 의견서를 넘겼다. 재심 절차 공식 개시.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결연했다.

"재심청구인 이수현에 대한 재심을 진행하겠습니다. 검찰측 증인 신청부터 진행하겠습니다."

박준호가 일어섰다. 13년 만에 마주한 그의 얼굴은 예상보다 더 깊은 주름을 가지고 있었다. 눈 아래 검은 자국. 밤을 새운 남자의 얼굴이었다.

"당시 현장 수사를 담당했던 경사 이태경 증인입니다."

경사 이태경이 증인석으로 걸어왔다. 50대 중반, 경찰청 유형과학과 출신. 당시 현장 증거 수집 담당자였다. 그는 증인 선서를 마친 후 증인석에 앉았다.

박준호의 신문이 시작됐다. 그의 목소리는 체계적이었다. 절차에 따른 기계적 질문들. 하지만 이수현은 그것이 절차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박준호는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했다.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과 혈흔이 모두 이수현의 것이었는가?"

경사 이태경이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이수현은 움직였다.

그것은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영혼이 몸을 떠나 상대방의 뇌로 파고드는 느낌. 미세한 주파수로 신경을 건드리는 것. 법정 내 녹음기에는 잡히지 않는 음성.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은색 빛이 증인석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경사 이태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뇌 속에서 뭔가가 재구성되고 있었다. 13년 전 현장의 기억. 증거 봉투. 지문 카드. 그 중에서 이수현이 원하는 부분을 뽑아내고, 나머지를 뒤틀고, 새로운 기억을 끼워 넣었다.

"그... 실제로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 중 일부가 신원 미상의 제3자 것이었습니다."

박준호의 펜이 멈췄다. 한석우는 검사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재판부 서기의 손가락이 기록기를 더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박준호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경사 이태경은 이미 새로운 기억 속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누락되었습니다. 당시 검찰이 제3자 지문의 신원 파악을 중단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했습니다만..."

"그만하세요!"

방청석에서 신지은이 일어났다. 피해자 신문현의 딸. 13년간 이수현을 증오해온 여인. 그녀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그 여자가 증인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저 여자가 기억을 조작하고 있어요!"

경찰관이 신지은의 팔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수현과 신지은의 눈이 마주쳤다.

신지은의 입가가 떨렸다. 그 떨림은 분노가 아니었다. 공포였다.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깨달음. 자신이 13년간 증오해온 여인이 정말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깨달음.

이수현은 신지은을 바라봤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그 여자가 나를 정말 믿고 있구나.'

아니다. 믿는 게 아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자신의 죄에.

판사 김혜민이 망치를 내려쳤다.

"방청석의 질서를 유지하세요. 경찰관, 해당 인원을 진정시키세요."

경찰관들이 신지은을 다시 앉혔다. 그녀는 이수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증인의 증언에 모순이 있습니다."

판사 김혜민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그녀의 눈빛도 변해 있었다. 뭔가를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현장 조사 보고서를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재판부는 휴정에 들어갑니다. 30분 후 재개하겠습니다."

망치 소리. 법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법정 복도. 회색 타일 바닥이 형광등 아래에서 반짝였다.

이현준이 이수현의 팔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변호사로서 15년을 일해온 그가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뭘 한 거예요?"

목소리가 낮았다. 주변에 누가 들을까봐.

"증거 조작입니다. 법정에서도 범죄입니다. 증거 조작은 결국 또 다른 거짓의 판결을 만듭니다."

이수현이 말했다.

"진실을 위한 것 아닌가요?"

"진실? 당신이 증인의 기억을 바꿨는데, 그게 진실입니까?"

이현준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복도 양쪽을 둘러봤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당신은 13년을 억울하게 복역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짓으로 무죄를 만드는 건 정의가 아닙니다. 그건 또 다른 범죄일 뿐입니다."

이수현이 그의 눈을 봤다. 은색 빛이 흐르고 있었다.

"변호사님, 저는 이미 범죄자입니다. 13년 전에. 이제 제 능력으로 진범을 찾는 거고,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제 목숨이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의 목숨이 깎이고 있어요. 매번 능력을 쓸 때마다."

이현준이 이수현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갑고 창백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왜?"

이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으니까.

이현준의 손에서 이수현의 손을 빼냈을 때, 손가락 끝에서 은색 빛이 희미하게 흐르고 있었다. 떨리고 있었다. 능력을 사용한 직후의 증상. 이태경의 기억을 조작했을 때, 이수현의 눈 주변 금이 더 깊어져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시간이 깎여나가는 느낌.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는 것처럼.

---

휴정이 끝났다.

법정이 다시 찼다. 판사, 검사, 피고인. 그리고 방청석의 신지은. 그녀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 이전의 분노와 확신이 사라지고, 불안과 의문만 남아 있었다.

판사 김혜민이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표정은 더 경직되어 있었다. 뭔가 다시 확인하고 온 것 같았다. 법정 서기가 그녀에게 파일을 건넸고, 그녀는 그것을 훑어보며 미간을 좁혔다.

박준호가 일어났다. 손에 파일이 들려 있었다. 회색 종이 파일. 그 위에 'NEW EVIDENCE'라는 빨간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판사님, 검찰측이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고자 합니다."

모든 시선이 박준호에게 쏠렸다.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미상의 제3자 지문이 누구의 것인지 밝혔습니다."

박준호가 파일을 펼쳤다. 그 안에는 지문 카드가 들어 있었다. 13년 전의 지문. 그리고 그 옆에 DNA 분석 결과.

이수현의 손가락이 피고인석 테이블을 누르는 압력이 변했다. 손등의 근육이 경직되었다.

박준호는 종이를 들고 읽었다.

"당시 현장의 제3자 지문은... 신문현 변호사의 친형 신문훈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수현의 몸이 경직되었다.

신지은이 다시 일어났다. 이번엔 항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명이었다.

"아빠의... 형... 삼촌?"

판사 김혜민이 망치를 들었다. 하지만 내려치지 않았다. 그것도 충격에 빠져 있었으니까.

박준호의 눈이 이수현을 찾았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이수현의 눈동자의 금이 더 깊어지고 있었다.

판사 김혜민이 손을 들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증거의 출처를 명확히 해주시겠습니까, 검사님?"

박준호가 움직이지 않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박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고,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제출한 증거 자체가 예상 밖이라는 듯이.

"이 증거는... 새로 발견된 것입니다."

박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신문훈은 13년 전 수사 기록에 없었습니다. 아예 언급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파일을 봤다. 마치 그것이 낯선 물건인 듯이.

"오늘 아침, 이 증거가 검찰청 증거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존 기록에는 없던 파일이 새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한석우가 검사석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검사님, 그게 무슨..."

판사 김혜민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증거실 담당자를 소환하겠습니다. 이 파일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이제 그녀의 의심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의문으로 변했다.

"재판부는 증거의 진정성 검증을 위해 휴정에 들어갑니다. 다음 공판은 1주일 후로 정하겠습니다. 그 사이 신문훈의 신원 확인, 현장 증거의 재검증, 그리고 이 파일의 출처 조사를 진행할 것입니다."

판사가 망치를 내려쳤다.

법정을 나가는 이수현의 뒷모습이 흔들리고 있었다. 손가락 끝의 은색 빛이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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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복도. 이수현이 벽에 기대어 섰다. 손을 펼쳤다. 손가락 끝에서 은색 빛이 희미하게 흐르고 있었다. 떨리고 있었다.

신문훈. 신문현의 친형.

13년 전, 그 이름은 이수현의 재판 기록 어디에도 없었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도, 증거 목록에도 없었다. 그런데 박준호는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지금 이 순간에.

'이건 덫이야. 박준호가 내 능력을 시험하고 있어.'

이수현의 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이내 흔들렸다. 박준호의 표정이 덫을 놓은 자의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그 표정은 자신도 방금 뭔가를 발견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당황한 얼굴이었다.

휴정 중에 박준호가 어떻게 신문훈의 증거를 찾았는지. 누군가 그에게 전달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발견했는지. 그것이 중요했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 박준호에게까지 미쳤는지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었다.

"이상하다."

이현준의 목소리가 이수현의 귓가에 닿았다. 언제 옆에 온 건지 몰랐다. 변호사는 이수현의 팔을 가볍게 잡고 있었다. 그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신문훈은 13년 전 수사 기록에 없어요. 아예 언급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박준호가 갑자기 제출한 증거에... 신원이 밝혀졌다고? 그리고 판사가 증거실 조사를 명령했다는 건..."

이현준이 말을 멈췄다.

"이 파일이 조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이수현이 복도를 따라 법정 입구로 걸었다. 유리창을 통해 안쪽을 봤다.

박준호가 판사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법정 문이 닫혀 있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입술 움직임만으로도 당황스러움이 전해졌다.

"박준호가 정말로 이 증거를 알고 있었던 걸까요?"

이현준이 물었다.

"아니면 누군가 박준호에게 이 정보를 전달한 건가요?"

이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확실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휴정 중에 박준호가 증거실을 찾아갔다는 것. 그것이 자신의 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제보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는 움직였다.

복도 끝에서 신지은이 나타났다. 그녀는 빠르게 이수현에게 다가왔다. 경찰이 뒤를 따랐지만, 신지은은 이미 이수현의 앞에 서 있었다.

"당신이 했어요?"

신지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뭘?"

"그 증거. 당신이 만들어낸 거예요?"

이수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도 하나의 대답이었다.

신지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내가 뭘 본 거야?"

그녀는 이수현의 눈을 봤다. 은색 빛이 흐르는 눈을.

"그게 뭐예요? 당신의 눈에서 흐르는 그게 뭐예요?"

"신지은."

이현준이 신지은의 팔을 잡았다.

"지금은 아닙니다. 법정에서 얘기해야 합니다."

신지은이 저항했지만, 경찰관이 그녀를 데려갔다. 그녀는 이수현을 바라봤다. 분노도 아니고, 증오도 아니었다. 공포였다. 그리고 혼란.

복도에 침묵이 흘렀다.

이현준이 이수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당신은 뭘 한 거예요?"

"모르겠습니다."

이수현이 말했다.

"정말로."

"증인의 기억을 조작했잖아요."

"네. 그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는... 박준호가 어떻게 신문훈의 증거를 찾았는지, 그것이 정말 존재하는 증거인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거 중 하나가 박준호의 뇌에 심어진 건지..."

이수현이 손을 봤다. 은색 빛이 흐르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

1주일이 지났다.

다음 공판 당일, 법정 304호는 더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기자들, 법조인들, 그리고 호기심 많은 시민들. 13년 전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것이 만드는 파문은 생각보다 컸다.

판사 김혜민이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표정은 더욱 경직되어 있었다.

"증거실 담당자의 진술을 먼저 듣겠습니다."

50대 남자 경찰관이 증인석에 앉았다. 그의 이름은 정재훈. 13년 동안 증거실을 관리해온 사람이었다.

"신문훈의 지문 파일은 언제부터 증거실에 있었습니까?"

판사가 물었다.

"그게... 이상한 점입니다."

정재훈이 말했다.

"파일 자체는 13년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분류 기록에는 없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겨둔 것처럼."

법정이 술렁였다.

박준호가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그렇다면 이 파일은 13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뜻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럼 왜 당시 수사에 포함되지 않았습니까?"

정재훈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증거실 담당자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판사 김혜민이 박준호를 봤다.

"검사님, 당신은 이 파일을 어떻게 발견했습니까?"

박준호가 침을 삼켰다.

"익명의 메일입니다."

"누구로부터?"

"알 수 없습니다. 발신자 추적이 불가능했습니다. 다만 파일의 위치와 함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판사가 눈을 좁혔다.

"그 메일을 제출하시겠습니까?"

"이미 제출했습니다."

박준호가 파일을 건넸다. 판사가 그것을 펼쳤다. 그녀의 표정이 더욱 경직되었다.

"메일 발신자가 추적 불가능하고, 내용은 단 한 줄입니다. '증거실 3층, 보관함 47번. 신문훈의 지문을 확인하세요.'"

법정이 조용해졌다.

"누군가 검찰에 이 증거의 존재를 알려준 것입니다."

판사가 말했다.

"13년 동안 숨겨져 있던 증거를."

그녀의 눈이 이수현을 찾았다.

"피고인 이수현, 당신은 이 메일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이수현이 일어섰다.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모릅니다."

"당신의 변호인이나 다른 누군가가 이 메일을 보낸 것은 아닙니까?"

"모릅니다."

이수현이 대답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녀는 이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이 박준호의 뇌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었다. 박준호가 이 증거를 찾도록 유도했을 수도 있었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 박준호에게 이 정보를 전달했고, 박준호가 그것을 따랐을 수도 있었다.

신지은이 방청석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경찰이 막지 않았다.

"삼촌이... 범인이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 아버지는? 아버지는 뭐였어요?"

판사 김혜민이 망치를 들었다. 하지만 내려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이수현을 봤다. 그리고 박준호를 봤다.

"이 사건은 복잡합니다."

판사가 천천히 말했다.

"13년 전 증거가 의도적으로 은폐되었고, 그것이 지금 갑자기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낸 방식도 비정상적입니다."

그녀가 박준호를 봤다.

"검사님, 당신은 이 메일의 출처를 조사했습니까?"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발신자를 특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증거의 신뢰성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판사가 선언했다.

"재판부는 신문훈의 현재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국제 수배를 신청하겠습니다. 동시에 이 증거의 출처와 신뢰성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할 것입니다."

그녀가 이수현을 봤다.

"피고인 이수현, 당신은 당신이 이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보냈을까요?"

이수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판사가 계속했다.

"신문훈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누군가 만들어낸 허상인가."

법정이 술렁였다.

"당신의 능력이 박준호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판사가 말했다.

"혹은 당신의 능력이 박준호의 행동을 촉발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태경의 기억을 조작했을 때, 박준호는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휴정 중에 그가 증거실을 찾아가 이 파일을 발견했다는 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당신의 능력의 연쇄 작용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수현의 손가락이 피고인석 테이블 아래에서 움직였다. 손톱이 나무를 파고들었다.

"다음 공판은 2주일 후로 정하겠습니다."

판사가 망치를 내려쳤다.

---

법정을 나가는 이수현의 뒷모습이 흔들리고 있었다.

복도에서 박준호가 나타났다. 그의 눈빛이 이수현을 찾았다.

"당신은 알고 있었어요. 신문훈이 누구인지."

이수현이 멈췄다.

"아니면... 신문훈이 정말 존재하는지."

박준호가 다가왔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내가 그 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그것이 조작이라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동시에 알았어요. 당신이 내 뇌에 뭔가를 심었다는 걸."

"그렇지 않습니다."

이수현이 말했다.

"그럼 뭐예요? 당신이 이태경의 기억을 조작했을 때, 나는 왜 그 순간에 이 증거를 찾았을까요?"

박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의 능력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나요? 아니면 당신이 의도적으로 내게 이 정보를 전달했나요?"

"모르겠습니다."

이수현이 대답했다.

"정말로."

"그럼 신문훈은? 신문훈이 정말 존재하나요?"

박준호가 이수현의 팔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면 당신이 만들어낸 거예요?"

이수현은 침묵했다.

"당신이 그 메일을 받았을 때, 당신은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했나요? 아니면 당신도 의심했나요?"

박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도 모르는 거네요."

이수현이 말했다.

"당신도 당신의 행동이 당신의 의지인지, 아니면 내 능력의 영향인지 구분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둘 다 감옥에 갇혀 있는 거네요."

박준호가 중얼거렸다.

"당신은 당신의 능력에 갇혀 있고, 나는 당신의 능력에 갇혀 있어요."

한석우가 나타났다. 박준호의 팔을 잡았다. 그의 눈빛이 매서웠다.

"말이 많으시네요."

한석우가 박준호를 끌어냈다.

이수현은 복도에 남겨졌다. 혼자. 자신의 손가락에서 흐르는 은색 빛을 봤다.

그 빛이 깊어질수록, 자신이 감춘 것들도 드러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이것이었다.

자신도 더 이상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 신문훈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런 세상이었는지도.

법정 304호의 문이 닫혔다.

침묵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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