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항의 기숙사. 밤 열 시.
이준석의 손가락은 세 개만 남았다.
엄지손가락과 검지, 중지. 나머지는 투명한 공기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는 펜을 집어 들었다가 놓았다. 집을 수 없었다. 손가락이 없으면 펜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대신 손목 전체를 사용해 도면을 누르고, 팔뚝으로 선을 그었다. 어색했지만 가능했다. 모든 것이 가능했다. 지난 열 흘간, 그는 기술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을 배웠다.
"도면이 완성되었습니다."
스승 이규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손수건으로 감싼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무거운 것이었다. 이규완의 팔이 약간 떨렸다.
"마지막 부품이 나왔습니다. 인천항의 대장간에서 밤새 단련했습니다."
이준석은 일어섰다. 척추가 뻐근했다. 어제까지는 무릎을 구부릴 때 작은 소리가 났는데, 오늘은 척추 전체에서 삐걱거리는 음이 났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30년의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었다.
손수건을 풀었다. 동파이프 실린더 한 쌍이 나타났다. 정밀도는 완벽했다. 규격 편차가 1/100인치 이내였다. 조선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장인들이 얼마나 했나?"
"사흘입니다. 한 번에 맞추지 못해서 세 번 다시 깎았습니다."
이준석은 실린더를 들었다. 무게는 정확했다. 비중이 정확했다는 뜻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했다—조선의 기술자들이, 신분제의 굴욕 속에서도, 밤을 새며, 자신의 설계도를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눈이 따뜻해졌다. 피곤해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마워요."
이규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도면을 들어 올렸다. 여러 장이었다. 경인선 전체의 궤간, 기관차의 보일러 설계, 연결봉과 밸브의 배치도, 그리고 1:50 축척의 입체도. 이준석이 손목으로 그린 도면들이었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30일 만에?"
"가능합니다."
이규완이 도면을 내려놓고 이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노인의 눈이 젊은이의 눈을 응시했다. 그 눈에는 믿음이 없었다.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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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날이 지났다.
인천항 철도 건설 현장은 조선 역사상 가장 큰 공사장이 되어 있었다. 인력은 오백 명이 넘었다. 관리 인력, 장인, 노동자, 하인들. 그들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증기 기차를 완성하는 것.
이준석은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설계자가 아니었다. 손가락이 완전히 사라진 지 삼일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감독자였다. 그의 팔과 목소리로 기술을 지휘했다.
"보일러의 압력을 다시 확인하세요. 250파운드 이상 올라가면 안 됩니다."
노동자들이 움직였다. 이준석의 말은 법칙이었다.
"연결봉의 각도를 3도 조정해요. 왼쪽으로."
기술자들이 톱과 망치를 들었다. 이준석은 서 있었다. 두 팔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손가락을 모두 잃은 상태로 서 있는 것이 이렇게 이상하다는 것을 몰랐다. 팔이 떠 있었다. 붕 떠 있었다. 무언가를 집을 수 없는 팔이 공중에서 방향만 지시했다.
오후 네 시. 햇빛이 기울어졌다.
"기관차의 차체를 선로에 올려놓으세요."
거대한 철제 골격이 목재 선로 위에 내려졌다. 무게가 5톤이 넘었다. 나무가 쩌걱거렸지만 견뎠다. 이준석이 설계할 때 이미 계산에 넣었던 강도였다. 현실이 설계와 일치하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것이 정말 가능하다는 증거였기 때문이었다.
이규완이 옆에 섰다.
"내일이군요."
"내일입니다."
"두려운가?"
이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무엇인지 몰랐다. 남은 감정은 초조함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느낌. 척추가 흐르고, 세포가 흐르고, 생각이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1905년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한양에서 전보가 왔습니다."
"뭐라고?"
"고종께서 내일 친히 시운전을 보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명성황후께서도 오신다고요."
이준석의 목이 건조해졌다. 왕과 왕비가 온다는 뜻이었다. 실패의 대가가 곧 사형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었다. 설계는 완벽했고, 부품은 정확했고, 현장 감독은 자신이었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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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 기관차 검사.
이준석은 밤을 새웠다. 마지막 볼트, 마지막 와셔, 마지막 나사를 확인했다. 모든 것이 정확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시간이 되면 이 기계는 움직일 것이었다. 조선 땅에서, 조선 사람들이 만든 기계가, 조선의 선로 위에서 움직일 것이었다.
한 시간 뒤, 고종 국왕이 도착했다.
보호대를 두른 갑옷 같은 의복에 관을 쓴 왕이, 기관차 앞에 섰다. 그 옆에 명성황후가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아침 햇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는데, 마치 초로의 여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매서웠다.
이준석이 무릎을 꿇었다. 신분제는 여전했다. 기술이 바뀌었을지 몰라도 신분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하급 신분이었다.
"이것이 그 기계인가?"
고종의 목소리가 낮았다. 여왕이 옆에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그렇습니다, 폐하."
"움직이는가?"
"움직입니다."
"증명해 보아라."
이준석이 일어섰다. 손이 없었다. 하지만 팔이 있었다. 그는 팔을 들어 기술자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점화 시작. 석탄을 불에 넣고, 보일러에 물을 채우고, 압력 게이지를 올린다. 압력이 올라갔다. 100파운드. 150파운드. 200파운드.
증기가 흰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명성황후의 얼굴이 굳어졌다.
250파운드. 게이지의 바늘이 경고선에 닿았다. 한 초 더 기다렸다. 그다음 밸브를 열었다.
시스시시시—
증기가 폭발했다. 그것은 비명이 아니라 환호였다. 증기는 실린더를 채웠다. 연결봉이 움직였다. 바퀴가 회전했다.
기관차가 움직였다.
첫 번째 회전. 두 번째 회전. 세 번째 회전. 속도가 올라갔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조선 땅에 증기 기차가 달렸다.
기술자들이 함성을 질렀다. 노동자들이 손을 들었다. 관료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경탄이었다. 역사적 순간이었다.
고종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기차를 바라봤다. 그 기계가 의미하는 바를 읽고 있었다. 신분제의 붕괴. 왕권의 강화. 새로운 조선의 탄생.
"신분제를 개혁하겠노라."
고종이 선포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이것은 왕의 명령이었다.
명성황후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변했다. 공포가 아니었다. 계산이었다. 그 눈은 기관차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 속에는 결연한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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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서 인천까지의 거리는 38킬로미터였다. 경인선의 첫 시운전은 오전 열 시에 시작되기로 예정되었다.
이준석은 기관차의 운전대 옆에 섰다. 그는 운전사가 아니었다. 기술자였다. 기술자로서 자신의 기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고종이 기관차에 탔다. 명성황후도 탔다. 개화파 대신들이 탔다. 관료들이 탔다. 기차는 왕실을 싣고 한양을 떠났다.
처음에는 느렸다. 시속 10킬로미터. 이것이 정상이었다. 선로가 새로웠기 때문이었다. 기관차가 새로웠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속도가 올라갔다. 시속 15킬로미터. 20킬로미터. 25킬로미터. 기관차는 조선의 땅을 가르며 달렸다.
이준석은 창밖을 바라봤다. 논이 흐르고 있었다. 마을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길 옆에 서서 기차를 바라봤다. 경탄의 표정이었다. 공포의 표정이었다. 그 둘을 섞은 표정이었다.
손가락 없는 팔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기술자의 팔이었다. 기술자의 눈이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설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깨달음이 가슴을 가로질렀다.
30년 뒤. 1905년의 자신은 죽었다. 기술자로서 실패했다. 조선을 살리지 못했다. 기차는 없었고, 철도는 없었고, 미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기차가 달렸다.
조선의 기차가. 조선의 기술자가 만든 기차가. 조선의 땅을 달렸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성공했다. 이번에는 조선을 구했다.'
그 생각이 스쳤을 때, 이준석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는 손가락 없는 손으로 눈을 닦을 수 없었다. 눈물이 흘렀고, 그는 흘리게 두었다.
차창 너머로 신분제가 무너지고 있었다. 기차 옆에서 양반과 노비가 함께 달리고 있었다. 신분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고종의 왕권은 강해졌고, 명성황후의 권력은 흔들렸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그것이 기차가 만들어낸 세상이었다. 그것이 이준석의 기술이 만들어낸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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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 인천항 도착.
기차가 역 플랫폼에 정차했다. 증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바퀴가 멈췄다. 역사가 멈췄다.
고종이 내렸다. 모두가 내렸다. 관료들이 박수를 쳤다. 군인들이 환호했다. 한양에서 온 신사들과 귀족들이 일어섰다.
명성황후가 내릴 때 비틀거렸다. 시종들이 옆에 섰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고정되어 있었다.
"황후께서 편찮으신가?"
김홍집이 다가갔다.
"괜찮습니다."
명성황후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 떨린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준석은 그녀의 눈을 봤다. 그 눈은 떨리지 않았다. 그 눈은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그 눈이 바라보는 곳은 기차가 아니었다. 이준석이었다.
저녁. 한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박영효가 이준석을 찾았다. 그는 기관차 옆 객실에 앉아 있었다. 온몸이 떨렸다. 척추가 뻐근했다. 시력이 흐려졌다. 회귀의 진행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해냈습니다!"
박영효가 손을 맞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준석은 손을 피했다. 손가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축하합니다. 조선의 첫 기차. 당신이 만든 기차."
"그렇습니다."
박영효가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조선의 땅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박영효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흥분이 아니라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고종께서 신분제 개혁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양반과 노비의 경계가 무너질 것입니다. 신분제만으로는 국가가 근대화되지 않습니다. 교육, 법률 체계 전체를 바꿔야 합니다. 당신이 증명했습니다. 손으로 일하는 기술자도 나라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이준석이 박영효를 바라봤다. 박영효가 예전에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기술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그 말이 맞았다.
"신분제를 정말 바꿀 수 있을까요?"
"이제는 가능합니다. 당신이 증명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왕권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박영효는 이준석의 팔뚝을 봤다. 반투명해지는 살을 봤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일어서서 창밖을 바라봤다.
"고종께서 새로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무엇입니까?"
"함선입니다. 조선의 함선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준석의 가슴이 철렁했다.
"함선이요?"
"기차가 성공하자 보수파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는 기차가 왕권을 강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신분제를 무너뜨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박영효가 말을 멈추고 이준석을 바라봤다.
"기차 시운전 후 명성황후께서 갑자기 병환에 빠지셨습니다. 고열이 내려가지 않고 있다고요."
"병환이요?"
"의원들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보수파는 당신의 기차가 황후께 충격을 주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인선 중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준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명성황후가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은 기차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고종께서는 더 큰 것을 원하십니다. 함선입니다. 조선의 함선을 만들라는 명령입니다. 30일 안에 설계를 완성해야 합니다."
박영효가 이준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당신이 할 수 있습니다."
이준석은 박영효를 바라봤다. 박영효의 눈에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준석은 알고 있었다.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조선을 구하려는 절망이었다.
"그런데 황후께서 돌아가신다면?"
"그렇게 되면 왕권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신분제도 더는 필요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당신이 함선을 완성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박영효의 말에는 냉정함이 있었다. 정치가의 냉정함이었다.
기차가 한양으로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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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궁궐.
고종과 명성황후가 마주 앉았다.
"당신이 그 기차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고종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명성황후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아니, 떨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고정되어 있었다.
"그 기술자가 만든 그 기계가 당신의 권력을 위협할까 봐?"
"그렇지 않습니다, 폐하."
"거짓말입니다."
고종이 일어섰다. 창으로 나가 한양의 밤을 바라봤다.
"그 기술자는 신분도 없는 미천한 자입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것은 조선 전체를 바꿀 것입니다. 군대도 바뀔 것이고, 산업도 바뀔 것이고, 심지어 신분제도 바뀔 것입니다. 당신의 권력도 바뀔 것입니다."
"폐하께서 그것을 원하십니까?"
"나는 권력을 원합니다. 당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권력을. 조선의 권력을. 신분제는 왕권을 약하게 만듭니다. 양반들이 왕권을 견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분제가 무너지면, 나만이 조선의 유일한 권력이 될 것입니다."
고종이 돌아섰다. 명성황후를 응시했다.
"그 기술자를 계속 보호하십시오. 그리고 더 큰 것을 만들게 하십시오. 함선입니다. 조선의 함선. 그것이 만들어지면, 조선은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권력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명성황후가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에 무언가가 스쳤다. 공포였을까, 분노였을까. 아니면 계산이었을까.
"폐하, 그 기술자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뭐라고?"
"신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의원들이 진찰했습니다. 한 달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요."
고종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한양의 밤이 보였다.
"그렇다면 한 달 안에 함선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 기술자가 죽기 전에."
명성황후가 궁을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빨랐다.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은 기차가 아니라 기술자를 겨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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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이준석의 기숙사.
이규완이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내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이규완이 들어갔다. 이준석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자고 있지 않았다. 눈이 떠 있었다.
"회귀의 진행이 80%입니다."
이규완이 말했다. 그것은 진단이 아니라 선고였다.
"임계점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20일. 많아야 한 달."
이준석이 팔을 들어 올렸다. 팔뚝이 반투명해지고 있었다. 혈관이 선명했다. 뼈가 보였다. 그 안에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곧 사라질 것이었다.
"기차는 완성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음은 함선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준석이 일어나 앉았다. 척추가 뻐근했다. 시력이 흐려졌다 맑아졌다. 1905년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스승님. 기술이 정말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기술만으로는?"
"기술만으로는 아닙니다. 기술은 시작일 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이규완이 창밖을 바라봤다. 인천항이 보였다. 아직 어두웠다. 하지만 곧 새벽이 올 것이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당신이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만들든, 그것이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쥔 손이. 그 손이 조선의 손인지, 일본의 손인지."
이준석이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1905년의 자신이 보였다. 기술자로서 실패한 자신이. 조선을 구하지 못한 자신이.
그 순간, 새벽 편지가 들어왔다. 한양에서 온 긴급 전보였다.
이규완이 봉투를 열었다. 손이 떨렸다.
"뭐라고 하나요?"
이준석이 물었다.
이규완이 전보를 읽었다. 그의 얼굴이 굳었다.
"명성황후께서 기차 시운전 후 갑자기 병환에 빠지셨습니다. 고열이 내려가지 않고 있습니다. 의원들이 진찰했습니다."
"의원들이 뭐라고 했나요?"
이규완이 전보를 다시 읽었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궁궐 내 움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황후의 음식을 담당하는 상궁들이 교체되었다고요. 그리고 의원들은 황후의 증상이 중독과 유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준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중독이요?"
"의원들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열, 경련, 의식의 혼탁. 이런 증상들이..."
이규완은 말을 멈췄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했다.
이준석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팔뚝이 더욱 투명해졌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20일. 많아야 한 달.
"스승님. 저는 살인자인가요?"
이준석이 물었다.
이규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바라봤다.
"당신의 기차가 명성황후를 죽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기술이 신분제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이 조선을 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기술만 만들었습니다.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다른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규완이 이준석을 바라봤다.
"고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당신의 기술을 사용할 것입니다. 박영효는 신분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당신의 기술을 사용할 것입니다. 명성황후는 당신의 기술을 없애기 위해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이규완이 말을 멈췄다.
"일본은?"
"일본은 당신의 기술을 빼앗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천항에 일본 상인들이 들어왔습니다. 당신의 설계도를 탈취하려고 합니다. 기술자들을 포섭하려고 합니다."
이준석이 창밖을 바라봤다. 인천항이 보였다. 기차가 만들어진 그곳이. 기술이 탄생한 그곳이.
"스승님. 저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모르겠습니다."
이규완이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이 남은 시간은 20일입니다. 그 시간 동안 당신이 만드는 함선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는지가 조선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인천항의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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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인천항의 부두.
이준석은 함선 설계를 시작했다. 손가락 없는 손으로. 팔뚝으로. 그의 신체는 계속 사라지고 있었다.
손목이 사라지고 있었다. 팔뚝의 반투명한 살을 통해 창밖의 불빛이 비쳤다. 혈관이 보였다. 뼈가 보였다. 그 다음이 무였다.
종이 위에 펜을 올렸다. 하지만 손가락이 없었다. 대신 팔뚝을 사용했다. 선이 떨렸다. 하지만 그는 계속 그렸다.
함선의 기본 구조. 선체의 곡선. 돛대의 높이. 키의 각도. 모든 것이 기차보다 복잡했다. 기차는 직선이었다. 하지만 함선은 곡선이었다. 바다의 파도를 견디는 곡선. 그 곡선을 설계하는 것만으로도 손가락이 남아 있었다면 닳아 없어졌을 것이었다.
30일. 기차는 30일 만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함선은 다를 것이었다.
함선은 기차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보일러, 엔진, 연결봉, 밸브. 모든 것이 기차와 같았지만, 함선은 물 위에서 움직여야 했다. 물의 저항을 계산해야 했다. 파도의 흔들림을 견딜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의 현재 기술로 만들 수 있는 함선이어야 했다.
이준석은 도면을 그으며 생각했다. 조선의 철 생산량은 얼마인가. 조선의 목재 가공 기술은 어느 정도인가. 조선의 용접 기술은 충분한가. 모든 것이 기차를 만들 때보다 더 절박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20일. 많아야 한 달.
이규완이 옆에 섰다.
"설계가 진행되고 있나요?"
"느립니다."
이준석이 대답했다.
"기차는 직선이었습니다. 하지만 함선은 곡선입니다. 곡선을 설계하는 것은 직선을 설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모든 각도가 달라집니다. 모든 강도가 달라집니다."
이규완이 도면을 봤다. 손가락 없는 손으로 그은 도면이었다. 선이 떨렸지만, 그 떨림 속에 기술자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당신이 할 수 있습니다."
이규완이 말했다.
"하지만 스승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 함선이 정말 조선을 구할 수 있을까요? 기차는 육지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함선은 바다를 항해해야 합니다. 바다는 기차 선로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파도, 폭풍, 암초. 모든 것이 함선을 침몰시킬 수 있습니다."
이준석이 팔뚝으로 도면을 누르며 말했다.
"그리고 일본이 있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함선을 보고 배울 것입니다. 일본은 더 큰 함선을 만들 것입니다. 일본은 더 강한 함선을 만들 것입니다. 결국 일본의 함선이 조선의 함선을 침몰시킬 것입니다."
이규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준석의 팔뚝을 봤다. 점점 투명해지는 팔뚝을.
"당신의 기술이 조선을 구할 수 없다면, 누가 구할 수 있을까요?"
이규완이 물었다.
이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그렸다. 함선의 도면을. 조선의 미래의 도면을.
밤. 인천항의 부두.
일본 상인 세 명이 부두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들의 눈은 기숙사를 향하고 있었다. 이준석의 기숙사를.
"저 안에 설계도가 있다."
일본 상인이 속삭였다.
"어떻게 들어가나?"
"문을 열고 들어간다. 간단하다."
"경비는?"
"없다. 조선 사람들은 기술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신분이 낮으니까."
일본 상인들이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기숙사로 향했다.
그 순간, 이규완이 나타났다.
"가지 마세요."
이규완의 목소리가 낮았다.
일본 상인들이 멈췄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조선 사람입니다. 그 기술자의 스승입니다."
이규완이 말했다.
"당신들이 원하는 것은 설계도입니다. 하지만 설계도는 이미 고종 국왕의 손에 있습니다.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일본 상인들이 웃었다.
"우리는 기술자를 원한다. 설계도가 아니라."
일본 상인이 말했다.
"기술자가 일본에 가면, 일본의 함선을 만들 수 있다. 조선의 함선보다 훨씬 더 강한 함선을."
이규완의 얼굴이 굳었다.
"기술자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 달 안에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일본 상인들이 다시 웃었다.
"그렇다면 더욱 빨리 움직여야 한다. 한 달 안에 기술자를 데려가야 한다."
일본 상인들이 기숙사로 향했다.
이규완이 그들을 막았다. 하지만 이규완은 나이 많은 노인이었다. 일본 상인들은 젊었다. 싸움은 한 순간이었다.
이규완이 쓰러졌다.
기숙사 안에서 이준석이 일어났다. 창밖의 소리를 들었다. 싸움 소리를. 스승의 신음 소리를.
이준석은 창밖을 봤다. 어둠 속에서 일본 상인들이 보였다. 그리고 땅에 쓰러진 이규완이 보였다.
이준석은 기숙사를 나갔다. 손이 없었지만, 팔이 있었다. 팔로 일본 상인들을 밀었다. 팔로 그들을 밀어냈다.
"가세요!"
이준석이 외쳤다.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 뭐든, 당신들은 이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일본 상인들이 물러났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여전히 이준석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올 것이다."
일본 상인이 말했다.
"당신의 설계도를 빼앗기 위해. 당신의 기술을 빼앗기 위해."
일본 상인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준석은 이규완을 들었다. 손이 없었지만, 팔이 있었다. 팔로 스승을 안았다.
"스승님.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이규완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당신의 기술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조선의 미래입니다."
"스승님..."
"당신이 만든 함선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조선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일본의 손에 들어가면,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의 손에 들어가면, 조선은 독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규완이 이준석의 팔을 잡았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20일 안에 함선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함선을 조선의 손에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기술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기술이 남은 사람들의 손에 전해질 것입니다."
이규완이 눈을 감았다.
기숙사 안으로 돌아온 이준석은 다시 도면을 그었다. 손가락 없는 손으로. 팔뚝으로.
함선의 설계. 조선의 미래의 설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20일. 많아야 한 달.
기차가 달렸다. 조선의 기차가. 조선의 기술자가 만든 기차가.
그리고 명성황후는 죽어가고 있었다. 중독인지, 충격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준석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의 기차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자신이 살인자인지, 아니면 단지 기술자인지.
그 불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30년 뒤의 죽음보다 더 무거웠다.
하지만 그는 계속 그렸다. 함선의 도면을. 조선의 미래의 도면을.
그리고 일본 상인들은 다시 올 것이었다. 설계도를 빼앗기 위해. 기술자를 납치하기 위해. 조선의 기술을 빼앗기 위해.
20일이 남았다. 많아야 한 달.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30년의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