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의 대장간 거리는 1875년의 조선이 남긴 마지막 숨결 같았다.
회귀의 진행이 손가락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약지 전체가 사라졌고, 중지도 손톱 아래로 반투명해져 있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그 질문이 매 순간 신경을 건드렸다.
이준석과 이규완이 내려온 지 사흘째 아침, 돌과 철의 냄새가 뒤섞인 골목을 걸으며 이준석은 손가락을 펼쳤다.
"이곳의 장인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 같습니까?"
이규완이 옆에서 물었다. 그의 얼굴은 경주 흙내음 속에서도 한양의 회의적 표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설득이 아니라 보여주는 겁니다."
이준석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증기기관의 대략적 도면이었다. 선과 숫자뿐이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규완은 알고 있었다.
첫 번째 공방은 강철을 다루는 이금수의 작업장이었다. 팔십을 넘긴 노인은 손에 화상 자국이 가득했고, 그의 얼굴은 마치 자신이 만든 철처럼 굳어 있었다. 이준석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금수는 들었던 망치를 내려놓지 않았다.
"미천한 것들이 웬일입니까."
"저는 기술을 배우러 왔습니다. 선생님의 기술을 빌리러 왔습니다."
"배운 것도 없으면서?"
이금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이준석을 위아래로 훑었다.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 신분을 알 수 없는 낡은 옷, 하지만 손가락의 굳은살과 눈빛은 장인의 것이었다.
"제 손을 보십시오."
이준석은 손가락을 펼쳤다. 반투명한 중지와 약지를 숨기지 않았다. 이금수는 고개를 기울였다.
"회귀병이군요. 죽음의 병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급합니다."
이금수는 망치를 다시 들었다. 불 위에서 철을 달굴 때의 그 익숙한 동작이었다.
"죽음이 급하다는 것은 좋은 이유가 아니오. 기술은 서두르는 놈 손에서 망가진다."
이준석은 그 말을 받아넘기지 않고 도면을 펼쳐 이금수 앞에 놓았다.
"이것을 만들려면 일반 강철로는 안 됩니다. 균질성이 높은 강철이 필요합니다. 조선의 어느 공방에서도 못 만드는 강철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제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금수는 도면을 밀쳐냈다. 종이는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가 망치질을 멈췄다는 것은, 그것이 거절이 아니라 생각의 신호였다.
그리고 이금수의 눈빛이 바뀌었다. 노인은 이준석을 다시 봤다. 죽음 앞에서도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 소년을. 이금수는 깨달았다. 이 아이도 자신처럼 시간이 없는 것이라고. 자신의 손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절박함이 그 눈에 담겨 있었다. 이금수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고, 이준석의 반투명한 손가락을 만졌다. 차가웠다. 죽어가는 것의 온도였다.
사흘 동안 이준석은 경주의 공방을 돌았다. 은세공사 박태신, 목공 김세영, 그리고 도자기장 이영호까지. 처음에는 모두 같은 거절을 했다. 하지만 이준석이 그들의 기술에 대해 말할 때—자신들이 평생 감춰온 비전(秘傳)을 누군가가 이해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그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규완이 그의 옆에서 중개인 역할을 했다. 이규완은 이들의 언어를 알았다. 신분제의 굴욕, 왕실의 일방적 동원, 그리고 손으로 만든 것이 늘 천시받는 그 오랜 분노를 알고 있었다.
"이 소년은 다르오. 당신들의 기술을 물건이 아니라 지식으로 본다오."
열흘째 아침, 이금수의 공방에 다섯 명의 장인이 모였다. 그들은 이준석이 그려낸 도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보일러인가?"
"연소실이 따로 있다? 이렇게 하면..."
"화력이 더 오래 유지되겠는데?"
이준석은 그들의 말을 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도면을 이미 더 좋은 것으로 개선하고 있었다. 이것이 기술이었다. 설계도가 아니라, 손으로 만들고 깨지고 다시 만드는 그 과정 자체였다.
"여기 보십시오. 이 각도를 30도에서 35도로 조정하면 연소 효율이 높아집니다."
이금수가 손가락으로 도면을 가리켰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거절의 톤이 아니었다. 기술자의 목소리였다.
"이 두께는 너무 얇습니다. 실린더 벽은 최소 12밀리미터는 되어야 합니다."
박태신이 덧붙였다. 은세공사의 눈은 정밀함을 본다. 그의 손가락이 도면 위를 미끄러지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무게가 늘어나지 않을까요?"
이준석이 물었다.
"무게는 문제가 아닙니다. 터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금수가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권위가 있었다. 팔십 년을 망치질해온 손의 경험이 그 눈빛을 만들었다.
"당신이 설계한 것은 이론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입니다. 현실에서는 이론보다 안전이 먼저입니다."
이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주 장인들과의 첫 기술 대화였다. 미래의 기억은 완벽했지만, 현실은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이 노인들의 손이었다.
사흘 더 지났다. 도면은 계속 수정되었다. 이금수는 보일러의 압력 문제를 해결했다. 박태신은 연결부의 정밀도를 높였다. 김세영은 목재 지지대를 강화했다. 각 장인이 자신의 영역에서 설계도를 뜯어고쳤다. 그들은 이준석의 도면을 더 이상 지시사항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함께 만드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재료였다.
일본에서 수입한 철재가 도착한 것은 그 다음 주였다. 상자를 열었을 때 이준석의 얼굴이 굳었다. 도면에서 요구하는 두께 12밀리미터의 강철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약했다. 규격도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부분은 8밀리미터에 가깝고, 어떤 부분은 14밀리미터였다.
"이건 사기입니다."
이금수가 팔을 걷어붙였다.
"이 정도 품질이면 보일러가 터질 수 있습니다. 증기압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준석은 도면을 다시 펼쳤다. 손가락이 떨렸다. 미래의 기억 속 설계도는 완벽했다. 정밀한 강철, 균질한 부품, 표준화된 규격. 하지만 1875년의 현실은 그 설계도를 배신했다.
"설계를 수정하겠습니다."
"수정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 아닙니까?"
이규완의 말이 맞았다. 보일러 벽의 두께를 두껍게 하면 무게가 늘어나고, 무게가 늘어나면 필요한 연료가 증가했다.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타협이었다.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그 밤, 이준석은 철재를 직접 다듬었다.
이규완이 불을 피웠고, 이금수와 박태신이 곁에서 보았다. 소년은 망치와 정을 들고 철을 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불속에서 달궈진 철은 하나하나 형태를 잡아갔다. 손가락이 피로 물들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살이 벗겨져 나갔다.
"멈추시오."
이금수가 손을 잡았다.
"이미 충분합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이준석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이규완은 그 눈빛을 봤을 때 한 가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이 소년은 정말로 미래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아니면, 적어도 자신이 이미 죽은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새벽 세 시경, 첫 증기기관이 완성되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불규칙한 강철 판재들이 용접되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열의 흔적이 고르지 않았다. 보일러는 약간 기울어져 있었고, 실린더는 완벽한 원기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작동했다.
이준석이 석탄을 넣고 불을 지피자, 기계 내부에서 물이 끓기 시작했다. 피스톤이 움직였다. 천천하지만 확실한 동작이었다.
그 리듬을 본 순간, 이금수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만든 것이 움직인다."
이규완은 그 말을 들었다. 신분제 속에서 평생 도구를 만들어온 노인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이금수는 피스톤의 움직임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평생 망치를 들어온 손이 공중에서 그 리듬을 흉내 냈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화상으로 검게 그을린 손등이 불빛에 반짝였다. 이 손이 만든 것이. 이 손이 망치질해온 강철이. 스스로 움직인다. 왕실의 명령도 아니고, 양반의 지시도 아니고, 순전히 자신의 손이 만든 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팔십 년을 살아오며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신분제 속에서 도구 취급받던 자신이, 이 순간만큼은 창조자였다. 눈물이 흘렀다. 주름진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그 눈물은 증기기관의 열기 속에서 금방 증발했다.
이준석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손가락들은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벗겨져 있었다. 척추 아래쪽에서 미세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회귀의 진행이 손가락에서 몸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아주 작은 웃음이었지만, 그것은 진실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새벽빛이 공방을 비추고 있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한양에서 전령이 왔다. 말을 타고 온 관리는 이준석을 찾자마자 무릎을 꿇고 명령장을 펼쳤다. 김홍집 대신의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기술자 이준석을 즉시 한양으로 소환한다. 고종 국왕께서 직접 기술을 보고자 하신다."
이준석은 도면을 정리했다. 첫 증기기관의 설계도, 그리고 현실에 맞춰 수정된 모든 변경사항들. 그것을 상자에 담았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겠습니다."
이규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금수는 이준석의 손을 봤다. 벗겨진 살, 그리고 아직도 반투명한 손가락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이 내렸다.
이준석이 공방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규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긴장해 있었다.
"경주 도로에서 수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외국인들입니다. 동쪽 방향에서 온. 얼굴은 일본식이었고, 손에는 도면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준석의 손이 멈췄다.
"우리의 도면입니까?"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경주 대장간 거리를 묻고 다녔습니다."
그 말이 끝났을 때,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빠른 속도였다. 여러 마리의 말이 경주의 골목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규완이 창문으로 나갔다. 손에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옷은 일본식이었고, 말의 가슴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도면이었다. 손으로 그려진 종이 다발이 말의 가방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준석은 즉시 밖으로 나갔다. 이규완도 뒤따랐다. 그들은 말을 타고 달아나는 일본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경주의 좁은 골목에서 속도 싸움이 벌어졌다. 이준석은 돌을 집어던졌다. 맞지 않았다. 이규완이 외쳤다.
"멈춰라! 그것은 조선의 기술이다!"
일본인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말의 채찍이 더 빨라졌다. 경주의 밤거리를 가로질러 그들은 동쪽으로 달아났다. 이준석은 추격을 멈췄다. 숨이 가빴다. 손가락에는 감각이 없었다.
"조선의 기술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규완이 중얼거렸다.
"일본이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준석의 척추가 한 번 더 떨렸다. 아주 미세한 노화의 신호였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 깊숙이 무언가 썩어가는 감각이 들었다. 회귀의 진행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양으로 떠나기 전 밤, 박영효가 경주에 나타났다.
그는 말을 타고 이금수의 공방에 직접 들어왔다. 개화파 대신이 하급 신족의 공방을 방문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박영효는 그 어색함을 무시하고 첫 증기기관을 바라봤다.
오래 동안 그는 그것을 봤다.
"불완전합니다."
박영효의 첫 말이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준석도 담백하게 답했다.
"이것만으로는 조선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분제가 여전합니다. 이 공방의 장인들도 여전히 미천한 것 취급입니다. 왕실은 여전히 그들을 동원만 합니다."
박영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교육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준석은 그의 말을 들었다. 박영효의 눈빛은 기술자가 아니라 혁명가의 것이었다.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이준석도 알았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제도를 바꿀 시간이 없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기술뿐이었다. 그 기술도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고 있었다.
"저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준석이 자신의 손가락을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당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기술이 아니라 변화를 만드십시오."
박영효는 돌아섰다. 말을 타고 경주의 밤으로 사라질 때, 그의 외침이 들렸다.
"기술은 시작일 뿐입니다!"
그 말은 이준석의 가슴을 때렸다. 기술은 시작일 뿐. 그렇다면 제도 없는 기술이 조선을 구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이 마음 한구석을 흔들었지만, 이준석은 그것을 밀어냈다.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새벽. 이준석은 한양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상자에는 첫 증기기관의 도면이 담겨 있었다. 불완전한 설계, 현실에 맞춰 타협된 수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경주 장인들의 손자국이 묻어 있었다.
말이 산길을 넘어가고 있을 때, 뒤에서 다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빠르고, 급했고, 여러 마리였다.
이준석이 뒤를 돌아봤을 때, 해가 떠오르는 동쪽 하늘 아래로 말을 탄 사람들이 보였다. 손에는 도면을 들고 있었다. 다른 도면이었다. 경주에서 도난당한 것들이었다.
그들은 서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일본 방향이었다.
이준석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손가락은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회귀가 진행되었다는 뜻이었다. 척추도 노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남은 시간을 얼마나 빨리 태우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한양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는 동안, 이준석은 도면을 움켜쥐고 있었다. 손가락이 아프지 않다는 것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감각이 죽어가는 것이었다.
경주를 떠난 지 반나절째, 청도 근처의 여인숙에서 이준석은 강창우를 다시 만났다. 한팔 기술자는 마당에서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망치질의 리듬이 여전했다. 한쪽 팔이 없어도 그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도면을 봤나?"
강창우가 물었다. 망치를 내려놓고 이준석을 바라봤다.
"일본 놈들이 경주 전역을 뒤지고 있다더군. 대장간마다 찾아다니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든 것들 말이야. 그걸 빼가려고 난리지. 왜 그럴까?"
이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창우가 한 발 다가왔다.
"기술이 힘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걸 알지 않나?"
"기술은 중립적입니다."
이준석의 목소리가 약했다.
"그 기술이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가 문제일 뿐."
"정확합니다."
강창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한 손으로 망치를 들었다.
"한양에 올라가면 더 많은 손이 필요할 겁니다. 조선의 손이."
그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강창우는 경주 공방에서 이준석이 경험한 것을 알고 있었다. 장인들의 손이 모여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의 그 힘을. 기술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준석은 청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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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착은 예상보다 빨랐다. 김홍집의 부마(駙馬) 신분의 가신이 중로에서 마중을 나왔기 때문이었다. 말을 빠르게 몰아 이틀 만에 한양의 종로 어귀에 다다랐다.
도시의 냄새가 달랐다. 경주의 흙과 말의 냄새가 아니라, 인분과 기름, 그리고 무언가 낯선 화약 냄새까지 섞여 있었다.
김홍집의 저택은 종로 북쪽, 안국동의 기와집 너머에 있었다. 정원은 넓었고, 연못 위로는 정자가 떠 있었다. 이곳이 조선의 개화론자들이 비밀리에 모이는 장소라는 것을 이준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김홍집은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는 상투를 풀고 단발로 잘려 있었다. 개화의 상징이었다.
"도면을 가져왔습니까?"
첫 마디였다.
"가져왔습니다."
이준석이 상자를 열었다. 설계도가 펼쳐졌다. 경주의 장인들이 손으로 그린 것들이었다. 규격 치수, 부품 배치도, 그리고 회전축의 각도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미래에서 온 기억이 현실의 종이 위에 옮겨진 것이었다.
김홍집은 오래도록 그것을 봤다. 양반 대신의 손이 도면을 따라 움직였다.
"완성도가 생각보다 높습니다."
"불완전합니다."
이준석이 말했다.
"일본 철재의 품질이 설계와 맞지 않아서 여러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원래 설계보다 효율이 낮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입니다."
김홍집이 고개를 들었다.
"국왕 폐하는 완전한 기술을 원하십니다. 당신이 가져온 것이 미완성이라면—"
"더 시간을 주십시오."
이준석이 끊었다.
"두 달이면 보일러의 압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김홍집이 일어섰다.
"국왕 폐하는 이미 고대하고 계십니다. 명성황후 마마도 예의주시하고 계신 상황입니다. 만약 당신의 기술이 기대 이하라면—"
그 말을 마치지 않았다. 하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일본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준석이 말했다.
"경주에서 도면을 도난당했습니다. 지난 밤 일본 스파이들이 공방을 습격해 가져갔습니다."
김홍집의 얼굴이 굳었다.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제가 직접 목격했고, 추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경주를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빨리 완성해야 합니다. 당신의 기술이 먼저 국왕 폐하의 손에 들어가야 합니다."
김홍집이 창문으로 나갔다. 한양의 거리가 내려다보였다. 도시는 낮고 회색이었다. 종로의 상점들, 궁궐의 기와지붕, 그리고 그 너머 한강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이 도시를 보십시오."
김홍집이 말했다.
"지금 이곳은 세 개의 힘이 싸우고 있습니다. 명성황후 일족, 개화파, 그리고 일본. 누가 이 도시를 지배하느냐가 곧 조선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기술이 누구 손에 들어가야 하는지도 알겠지요."
이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국왕 폐하입니다."
김홍집이 돌아섰다.
"국왕 폐하가 당신의 기술을 손에 쥐면, 명성황후도 견제할 수 없습니다. 왕권이 강화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조선의 독립을 의미합니다."
"기술은 중립적입니다."
이준석이 다시 말했다.
"그 기술이 무엇에 쓰이는가는 기술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김홍집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당신이 이 도시에 온 순간부터, 당신의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당신이 만드는 모든 것이 정치가 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신은 이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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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이준석은 김홍집의 저택 뒤뜰에 있는 작은 공방을 배당받았다. 경주에서 가져온 도구들이 이미 놓여 있었다. 이규완이 직접 챙겨준 것들이었다.
이준석은 도면을 다시 펼쳤다. 보일러의 압력 문제를 다시 계산해야 했다. 일본 철재의 강도를 고려해서 벽의 두께를 다시 설정해야 했다. 원래 설계의 40%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또 하나가 죽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시간을 태우고 있었다.
새벽 세 시, 이준석은 불완전한 설계를 완성했다. 타협의 결과물이었다. 기술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수학이었다.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울 때마다, 그의 몸은 1905년으로 한 발씩 다가가고 있었다.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새벽이 채 밝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준석이 공방 밖으로 나갔을 때, 고종 국왕의 어사(御使)가 도착해 있었다.
"이준석을 찾습니다."
어사가 말했다.
"국왕 폐하께서 직접 기술을 보고 싶으신 명입니다. 지금 당장 궁궐로 나가십시오."
이준석이 고개를 들었다. 김홍집의 저택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불빛 너머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입니까?"
"지금입니다."
어사가 마를 옆으로 끌었다.
"서둘러야 합니다."
이준석은 도면을 들었다. 새로 수정한 설계도였다. 타협의 산물이었다. 현실에 맞춘 불완전함이었다.
궁궐로 향하는 길에서, 이준석은 자신의 손을 봤다. 약지와 중지가 반투명해져 있었다. 감각이 완전히 죽어 있었다.
시간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준석은 이제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드는 기술 하나하나가 조선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태우는 것이었다.
남은 기술은 많지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궁궐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