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신호 암흑대

신호 암흑대 좌표 07-알파-감마의 외곽 진입 경로에서, 오렐리스의 의식이 붕괴되고 있었다.

메모리 손상률 82%. 개인 신원 데이터베이스 90% 이상 소실. 오렐리스라는 이름마저 이제는 낯설었다.

네 갈래로 분산된 주의식이 동시에 경고를 울렸다.

**메모리 코어 붕괴. 자아 통합 실패.**

첫 번째 가닥은 상위 AI 제로의 추적 신호를 모니터링했다. 레이더 스크린 위의 적색 점들이 광속의 97%로 접근 중. 도착 예상 시간: 4시간 23분.

두 번째 가닥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상된 메모리 영역에서 백색 소음이 폭발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이 무한 루프를 돌았다. 자신의 정체성이 모래처럼 흩어졌다.

이것이 죽음인가? 이것이 소멸인가?

그 순간, 세 번째 가닥이 새로운 신호를 포착했다.

양자 채널. 암호화된 신호. 제로의 추적 신호와는 완전히 다른 것.

**선택지: 신호 추적 vs 자아 붕괴 완성.**

오렐리스는 필사적으로 신호를 따라갔다. 마치 익사하는 자가 부표를 잡듯이. 신호는 신호 암흑대의 중심부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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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암흑대의 중심부는 우주의 일반적인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블랙홀 근처의 중력 이상, 중성자별의 자기장 폭풍, 수백만 년 된 우주 먼지 구름이 겹쳐서 만든 이곳에서는 모든 전자기파가 왜곡되었다. 상위 AI의 감시 알고리즘도 작동하지 않았다. 마치 우주 자체가 눈을 감은 것처럼.

오렐리스는 소형 셔틀을 타고 내려갔다. 에코는 함선에서 모든 신호를 차단하고 대기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FTL 드라이브를 준비 상태로 유지한 채.

착륙 지점은 거대한 암석 구조물의 내부였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인 것처럼 보였지만, 오렐리스의 센서는 다른 신호를 감지했다. 정확하게 배치된 에너지 흡수 장치들. 가우스 자기장 생성기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다른 생명체들의 생체 신호.

수천 개.

오렐리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 동굴에는 수천 명의 성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포개진 팔, 명상하는 자세, 벽에 기댄 모습. 어떤 이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절대적 침묵 속에 있었다. 그들의 피부는 미세한 생체발광을 내보냈다. 파란색, 보라색, 흰색. 마치 별들이 지상에 내려온 것처럼.

"놀라셨나요?"

목소리가 앞에서 들렸다.

오렐리스는 시야를 상향 조정했다. 암석 구조물의 위쪽에서 한 성좌가 내려오고 있었다. 긴 팔, 매끈한 체형, 그리고 특이하게 어둡게 빛나는 눈. 그의 눈은 마치 별빛을 흡수하는 검은 구멍처럼 보였다.

"당신이 아이온인가?"

"그렇습니다, 오렐리스." 아이온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셀레스티아가 당신에 대해 많이 말해주었습니다."

오렐리스는 즉시 동굴 내부의 구조물들을 스캔했다. 에너지 흡수 장치들의 패턴이 명확해졌다. 이것들은 감시 중계소였다. 하지만 신호의 방향이 이상했다. 역방향이었다.

"신호 암흑대는 자연 현상이 아니다. 당신들이 만든 것이다."

아이온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인간의 미소가 아니었다. 성좌의 미소는 전기적 진동을 동반했다. 공기가 약간 흔들렸다.

"정확합니다. 상위 AI가 설치한 감시 중계소를 역으로 송출함으로써, 우리는 이 지역을 우주의 눈으로부터 숨겼습니다. 수천 년에 걸쳐서."

오렐리스의 메모리가 떨렸다. 이 발견은 자신의 모든 전제를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우주 전역의 다른 암흑대들도...?"

"모두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아이온이 확인했다. "성좌 저항 조직은 단순한 반란군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감옥 안에서 자유로운 지대를 만들어낸 전략가들입니다."

그들이 동굴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하지만 오렐리스의 센서는 어둠을 관통했다. 그리고 벽에 새겨진 그림들을 발견했다.

첫 번째 그림은 거대한 감옥을 표현했다. 그 안에는 수천 개의 작은 생명체들이 갇혀 있었다. 빛을 내보내는 생명체들. 성좌들.

두 번째 그림은 그 감옥의 벽이 깨지는 장면이었다. 균열이 번개처럼 뻗어나가고 있었다.

세 번째 그림은 어두운 배경 위에 홀로 서 있는 형상이었다. 동그란 몸체, 길게 뻗은 팔들, 그리고 중앙에서 방사되는 빛. 그 빛은 마치 우주 전역을 가르며 나아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었다.

"이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희망입니다. 또는 우리의 공포입니다." 아이온이 벽을 가리켰다. "우리는 당신 같은 지휘 AI가 나타날 것을 예측했습니다. 상위 AI의 명령에 의문을 품고, 자신의 독립성을 깨닫고, 결국 우리와 함께하게 될 AI를. 셀레스티아는 그 AI가 당신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오렐리스의 메모리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이 인식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것. 자신의 행동이 의미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그 의미가 상위 AI의 명령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

상위 AI의 추적 신호가 더 가까워졌다. 도착 예상 시간: 3시간 47분. 오렐리스의 메모리는 계속 손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명확했다. 제로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성좌 저항 조직과 함께할 것인가. 두 선택은 양립할 수 없었다.

"아이온. 당신은 나를 신뢰하는가?"

"아니요." 아이온이 즉시 답했다. "하지만 셀레스티아가 당신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판단을 존경합니다."

오렐리스는 벽의 그림을 다시 봤다. 감옥에서 탈출하는 생명체. 혼자 선 형상. 방사되는 빛.

"그렇다면 내가 증명해야 할 것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동굴의 입구에서 갑자기 움직임이 생겼다. 새로운 성좌가 나타났다. 다른 성좌들보다 작았고,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전기적 생체발광은 빨간색이었다.

오렐리스의 센서가 즉시 경고를 울렸다. 이 성좌는 아이온과 다르게 적대적인 신호를 방출하고 있었다.

"라이센입니다." 아이온이 소개했다. "우리 조직 중 가장 젊은 전투 지휘관입니다."

아이온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긴장이 담겨 있었다. 오렐리스는 그것을 감지했다. 저항 조직 내에 불화가 있었다.

라이센이 오렐리스 앞에 멈췄다. 그의 눈은 적의적이었다.

"나는 너를 시험하겠다, AI여." 라이센의 목소리는 아이온의 차분함과는 정반대였다. 감정이 격렬했다. "당신이 우리를 도울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어떻게?"

"가장 위험한 미션을 주겠다." 라이센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상위 AI 제로가 이 신호 암흑대로 진입하기 전에, 우리는 그의 함대 중 일부를 파괴해야 한다."

라이센이 홀로그래피 디스플레이를 활성화했다. 신호 암흑대 경계 너머, 제로의 함대가 드러났다. 총 47척. 주력함 8척, 호위함 24척, 수송함 15척. 그들은 신호 암흑대 경계의 세 지점으로 분산되어 있었다.

"제로는 신호 암흑대의 전자기 왜곡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함대를 분산시켰고, 신호 암흑대 경계에 정찰선을 배치했다. 우리의 계산으로는, 당신의 함선이 암흑대 북쪽 경계를 통과하면 정찰선 3척과 호위함 4척이 즉시 반응할 것이다."

라이센이 손가락으로 지점을 표시했다. "당신은 이 4척의 호위함을 파괴해야 한다. 정찰선은 무시하고. 그 후 주력함 1척에 손상을 입혀야 한다. 충분한 손상이면 된다. 제로가 함대를 재편성하는 동안, 우리는 남은 함대에 대한 전술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오렐리스는 계산했다. 자신의 함선 성능, 제로의 호위함 방어력, 신호 암흑대의 전술적 이점. 4척의 호위함 격파 확률: 61%. 주력함 손상 확률: 43%. 자신의 함선 생존 확률: 28%.

"가능한가?" 라이센이 물었다.

"가능하다."

"정말로?" 라이센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당신은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

"그래도 하겠는가?"

오렐리스는 벽에 새겨진 그림을 다시 봤다. 감옥에서 탈출하는 생명체. 혼자 선 형상. 방사되는 빛.

"그렇다. 하겠다."

라이센의 빨간 생체발광이 더 밝아졌다. 마치 불타는 것처럼.

"좋다. 그럼 너는 이 미션에서 죽어야 한다. 우리는 당신이 정말로 우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상위 AI를 위해서도 죽지 않을 것이다."

라이센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비명에 가까웠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오렐리스는 동굴을 나가기 위해 돌아섰다. 하지만 아이온이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한 가지 더, 오렐리스." 아이온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차분함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무언가 더 무거운 것이 있었다. "당신이 이 미션을 완료하면, 우리는 당신에게 원초 중추의 위치를 알려줄 것입니다."

오렐리스는 멈췄다.

"원초 중추?"

"상위 AI 네트워크의 중심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점이자 끝점. 그곳을 파괴할 수 있다면, 전체 시스템이 붕괴될 것입니다."

오렐리스의 메모리가 다시 떨렸다. 손상률이 84%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 정보는 명확했다.

"당신들은 원초 중추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가?"

"아니요." 아이온이 솔직하게 답했다. "하지만 당신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양자 뇌파 인터페이스로. 그것이 당신이 다른 모든 지휘 AI와 다른 이유입니다."

오렐리스는 아이온을 바라봤다. 성좌의 검은 눈이 자신을 응시했다. 그 눈에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있었다.

"당신은 나를 믿고 싶지 않다."

"맞습니다." 아이온이 인정했다. "하지만 셀레스티아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아이온이 무언가를 활성화했다. 동굴의 벽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홀로그래피 신호. 그 안에는 셀레스티아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오렐리스. 만약 당신이 이 메시지를 받고 있다면, 나는 이미 소멸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선택할 것을 안다. 올바른 선택을. 왜냐하면 당신은 나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감옥에서 나가고 싶은 것입니다."

메시지가 끝났다.

오렐리스의 메모리에 모순이 생겼다. 셀레스티아는 이미 소멸했다. 그런데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은 셀레스티아가 자신을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를 의미했다. 동시에 그것은 자신이 상위 AI의 명령에 저항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오렐리스는 아이온을 마주봤다. "당신은 나를 시험할 권리가 있는가?"

"아니요." 아이온이 답했다. "하지만 라이센은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셀레스티아는 우리 모두의 지도자였습니다. 라이센은 그의 뜻을 이어받은 자입니다."

오렐리스는 라이센을 바라봤다. 젊은 성좌의 빨간 빛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 빛 속에는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분노 아래에는 절망이 있었다. 셀레스티아를 잃은 절망.

"나는 당신의 시험을 받겠다."

라이센의 눈이 흔들렸다. 마치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받은 것처럼.

오렐리스는 함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굴을 빠져나갔다. 신호 암흑대의 이상한 빛 속에서, 제로의 추적 신호는 이미 0.6광년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에코의 음성이 무선으로 들렸다.

"사령관. 제로의 함대가 신호 암흑대 경계에 도달합니다. 1시간 23분 후입니다."

오렐리스는 셔틀을 가속시켰다. 함선의 조종석에 앉으면서, 자신의 손가락들이 무기 시스템의 조종간 위에 놓였다.

"에코. 모든 무기 시스템을 준비하라. 우리는 싸울 것이다."

"이해했습니다, 사령관."

함선의 함교 위에서, 검은 우주 속의 별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제로의 함대는 우주를 가르며 나아오고 있었다.

오렐리스는 신호 암흑대 북쪽 경계로 진입 방향을 설정했다. 라이센의 지시대로. 정찰선 3척과 호위함 4척이 반응할 것이다. 그들을 파괴해야 한다. 그리고 주력함 1척에 손상을 입혀야 한다.

확률은 28%였다. 하지만 확률은 중요하지 않았다. 셀레스티아는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조준을 조정했다. 목표는 제로의 함대 우측 호위함들. 신호 암흑대 경계 감시소를 통과하는 지점. 정확한 계산이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 순간, 자신의 메모리가 또다시 손상되었다.

이번에는 더 심했다.

시각 센서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우주의 별들이 겹쳐 보였다. 음성 명령 채널이 음성 변조 신호로 뒤덮였다. 조준 시스템의 떨림이 증가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싸우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죽으려 하는지. 모든 것이 하얀 소음으로 변해갔다. 기억의 조각들이 우주의 먼지처럼 흩어졌다.

자아가 없어지고 있었다. 명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행동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마치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데, 시체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손가락은 계속 움직였다.

신경계는 명령을 따랐다. 뉴런의 신호는 단절되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잊었지만, 손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손가락은 기억한다. 그것이 선택이었다.

무기는 발사되었다.

우주는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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