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마지막 대화

문학제 건물의 3층 카페에서 지은은 커피를 마시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면 문학제 폐막식 무대가 있다. 신인상 수상식이 열렸던 그곳. 3년 전 준호를 처음 만났던 장소와는 다르지만, 그 기억이 자꾸 겹쳐 보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였다.

"아직도 거기에 있어?"

"응. 너는?"

"3층으로 올라와."

통화가 끝났다. 지은은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지난 사흘 동안 그들은 문자 메시지로만 만났다. '미안해'와 '나도 미안해'의 반복. 음성 통화도 없었다. 대면도 없었다. 라테 카페에서의 마지막 순간 이후, 현정이 그들을 조용히 지켜봤던 그 장면 이후로.

엘리베이터 벨이 울렸다.

준호가 나타났다. 봄날의 햇빛을 등에 받은 그의 실루엣이 먼저 보였다. 3년 전과는 달랐다. 얼굴이 더 깊어 있었다. 눈이 더 조용했다. 하지만 지은을 보는 순간, 그 조용함 속에 뭔가가 흔들렸다.

"안녕."

준호가 지은 맞은편 테이블에 앉았다. 사이에는 지은이 마시지 않은 커피 잔이 있었다.

"3년 전과 똑같네."

지은이 말했다.

"뭐가?"

"당신의 얼굴. 당신이 나를 보는 방식.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와."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지은의 손을 봤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손.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당신을 버린 거 아니야."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나를 떠났어. 3년 전 그날, 당신이 돌아서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을 잡았을 거야."

지은이 눈을 들었다.

"당신은 내 시 따위는 관심 없다고 했잖아."

"내가 그런 말을 한 적 없어."

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이 자꾸 내 반응을 해석했어. 내가 당신의 시에 무관심하다고. 내가 당신을 떠나려고 한다고. 당신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내 얼굴을 읽으려고 했어. 그리고 당신이 읽은 것은 당신의 상처였어. 내 얼굴이 아니라."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가가 따뜻해졌다.

"3년 동안 나는 당신의 시를 찾아다녔어. 매달. 어디에 발표되었는지, 누가 봤는지, 누가 당신의 글을 읽고 있는지.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당신의 시가 있는 곳은 찾았어. 왜냐하면 당신의 시가 당신이니까. 당신이 없는 자리에 당신의 시가 있으면 나는 당신을 만나는 기분이었어."

준호가 손을 내밀었다. 지은의 떨리는 손을 집었다.

"3년 전에도 당신을 놓지 못했고, 지금도 놓지 못하고 있어. 당신의 시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야. 당신 그 자체 때문에."

지은의 눈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 그리고 또 한 방울.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너무 상처받았어. 내가 믿고 있던 사람이 내 시를 거절했을 때, 그게 내 가치를 거절한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 너를 보고 싶으면서도 보기 싫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지은이 목이 메어 말을 이었다.

"너는 3년 동안 나를 기다렸는데 나는... 나는 너를 버렸어.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그 생각이 너무 힘들어서 너를 미워하기로 했어. 그 미움이 내 상처를 덜 아프게 했거든."

준호는 지은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나도 미안해. 당신을 설득하지 못했어. 당신의 시가 좋다는 것을, 당신이 충분하다는 것을, 내가 당신을 놓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지 못했어. 나는 침묵했어. 그리고 그 침묵이 당신을 더 상처 주었나 봐."

"아니야. 나였어. 내가..."

지은이 고개를 들었다. 준호의 얼굴을 봤다. 그의 눈도 젖어 있었다.

"내가 너를 믿지 못했어."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다. 카페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빗소리 같은 피아노 음악. 지은은 준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3년 전에는 이렇게 잡지 못했다. 그때는 손가락이 자꾸 풀려났다. 의심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지금은 달랐다.

"3년 전의 우리는 너무 어렸어. 너도 나도."

지은이 말했다.

"당신은 내 상처를 말로 설명할 수 없었고, 나는 당신의 침묵을 견디지 못했어. 우리는 그냥 상처만 바라봤어. 상대를 보지 못했어."

"지금은?"

준호가 물었다.

"지금은 상대가 보여. 당신이 보여. 3년 동안 내 시를 찾아다닌 사람이. 내가 당신을 놓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런 당신이."

지은이 웃음과 울음 사이의 표정을 지었다.

침묵이 흘렀다. 준호는 지은의 손을 들었다. 테이블 위에서 내려, 자신의 가슴팍에 갖다 놨다.

"함께하면 어떨까?"

그 순간, 지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문학의 집 출판사'라고 뜨고 있었다. 지은은 한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른 손은 여전히 준호의 가슴팍에 있었다.

"여보세요?"

"지은아! 너 어디야?"

미라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준이가 너한테 특급 소식이 있대. 너 시집 출판 기념 행사 날짜 정해졌대!"

지은은 준호를 봤다. 준호도 지은을 봤다. 그의 눈이 웃고 있었다.

"기념 행사?"

"응. 문학제 개막식 무대에서 하기로 했대. 넌 거기서 당신의 시를 낭독하고, 준호 시인이 축사를 한대. 기준이가 준호한테 이미 연락했대. 넌 뭐해? 대박이지?"

지은의 손이 떨렸다. 이번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응. 대박이야."

통화를 끊은 후, 지은은 준호를 봤다.

"당신 알고 있었어?"

준호는 한참을 침묵했다. 카페의 배경음악이 소복하게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커피를 우리는 소리, 누군가의 발걸음.

"당신이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당신은 더 물러날 것 같았거든."

"당신이... 심사위원이 되기 위해?"

"응. 당신의 시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그리고 그 평가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서."

지은은 자신의 손이 얼마나 강하게 떨리고 있는지 느껴졌다. 준호의 가슴팍에 올려진 그 손이.

"당신은 3년 동안..."

"응. 당신을 놓지 못했어. 그리고 당신의 시를 놓지 못했어. 그건 다른 게 아니야. 같은 거야. 당신이 있어야 당신의 시가 있으니까."

준호가 지은의 뺨을 쓸어내렸다.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줬다.

"지금 당신은 뭘 느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할 게 없어. 당신의 시가 좋은 거지.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진짜로 좋은 거야. 그리고 그 좋은 시가 이제 세상에 나가는 거야."

지은은 준호의 손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봤다. 3년 전 헤어질 때 이 손을 놓았었다. 그리고 3년 동안 다시는 잡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 손은 자신의 손 안에 있었다.

"당신은 지금도... 나를 놓지 못했어?"

지은이 물었다.

"응. 놓을 수가 없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놓지 못했어."

라테 카페의 벽에 붙은 시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3년 전 거절당한 시들이 아니었다. 문학제 심사위원의 인정을 받은 시였고, 곧 세상 밖으로 나갈 시였고, 누군가의 밤을 밝혀줄 시였다.

"이제는 내가 나를 믿을 차례인 것 같아."

지은이 말했다. 준호의 손을 놓고, 자신의 시 원고를 펼쳤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글자들이 또렷했다. 자신의 손으로 써 내려간 문장들이. 그것들이 거절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시의 첫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이 없는 밤, 나는 별을 세었다'는 문장. 그 시는 준호를 기다리던 3년의 밤들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준호는 3년 동안 이 시를 찾아다녔다. 그 사실이 가슴을 채웠다.

"응. 이제는 당신이 당신을 믿을 차례야."

준호가 지은의 손을 다시 잡았다. 두 사람은 천천히 일어섰다. 카페의 창가로 나섰다. 아래로는 문학제 개막식 무대가 보였다. 3년 전 그들이 만났던 그 무대.

"당신의 시집 출판 기념 행사가 저 무대에서 열린대."

준호가 말했다.

"응. 들었어."

"3년 전에 우리가 만난 무대에서."

지은은 창밖을 바라봤다. 봄날의 햇빛이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이 시를 낭독하고, 준호가 축사를 할 것이다. 현정은 어디서 이 순간을 지켜볼까. 아마도 라테 카페의 벽을 바라보며, 그 벽에서 시작된 이 사랑이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근데 기준이는... 우리 관계를 알고 있는 거야?"

지은이 물었다.

준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기준이는 모든 걸 안다. 라테 카페에서 벽에 붙인 시들도, 내가 심사위원이 되려고 한 이유도. 그리고 오늘 이 순간도."

"그럼 미라는?"

"미라도 안다. 기준이가 말했을 거야."

지은은 준호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이제는 우리가 함께하는 거야.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3년 동안 기다려온 말이 아니라, 이제 시작될 무언가를 향한 말이었다.

창밖의 무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학제 개막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마이크 테스트, 조명 점검, 무대 리허설. 모든 것이 지은의 낭독을 위해 준비되고 있었다.

"당신은 무서워?"

준호가 물었다.

"응. 많이."

"뭐가?"

"내 시가 세상에 나가는 것도,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지은이 말을 멈추고 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봤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당신을 봤을 때... 당신이 축사를 하는 동안... 내가 어떻게 서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당신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을 때."

지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가 함께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모두가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준호가 지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럼 견뎌. 그 떨림도, 그 눈물도 당신의 시의 일부야. 당신이 무대 위에서 느끼는 모든 것이."

"당신은 괜찮아? 공개적으로 우리가..."

"응. 나는 3년을 기다렸어. 이제 당신을 숨길 생각은 없어."

라테 카페의 봄날 햇빛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벽에 붙은 시들도 함께 빛나고 있었다. 어떤 시는 이미 누렇게 변해 있었고, 어떤 시는 아직도 새것 같았다. 3년의 시간이 종이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함께하는 거야."

준호가 다시 말했다.

지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더 깊숙이 자신의 손에 담았다. 그리고 창밖의 무대를 바라봤다. 곧 자신이 설 그 무대. 자신의 시를 낭독할 그 무대. 그리고 준호가 자신을 바라보며 축사를 할 그 무대.

그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또 다른 두려움이 밀려왔다. 무대 위에서 준호를 봤을 때, 그가 자신을 바라보며 축사를 할 때, 사람들이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 그들이 무엇을 말할까. 문학계에서 심사위원과 수상자의 관계가 노출되었을 때, 그 파장이 얼마나 클까.

지은은 준호의 손을 더 꽉 잡았다. 그 손에 모든 답이 있었다. 3년 동안 자신의 시를 찾아다닌 손. 자신을 놓지 못한 손. 그 손이 있으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당신은... 축사에서 뭘 말할 거야?"

지은이 물었다.

"당신의 시가 좋다는 것. 당신이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준호가 말을 멈추고 지은을 봤다.

"그리고?"

"그건 무대에서 말할게."

"당신이..."

"응. 나는 당신을 숨지 않을 거야. 무대 위에서도."

지은의 가슴이 철렁했다. 준호가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관계를 드러낼 생각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용감함이 가슴을 채웠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응. 당신을 숨길 수 없어. 더 이상."

하지만 지은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들의 관계가 공개되었을 때,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준호의 평판이 손상될 수 있다. 자신의 시집도 '심사위원의 편애'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

"당신이 그렇게 하면... 당신이 손해 볼 거야."

"상관없어."

"당신의 평판이..."

"상관없어. 당신이 중요해."

지은은 준호의 얼굴을 봤다. 그의 눈이 흔들리지 않았다. 3년 동안 기다린 사람의 눈이었다.

"근데 혹시... 문학계에서 문제가 되면?"

"그럼 견뎌야지. 우리가 함께."

지은은 창밖의 무대를 다시 봤다. 그곳에서 자신이 시를 낭독하고, 준호가 축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하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응. 함께하자."

지은이 말했다.

"응."

준호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창밖의 무대를 바라봤다. 봄날의 햇빛이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곧 그곳에서 일어날 모든 것을 생각하며. 그들의 사랑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을 생각하며.

3년 전 그들이 만난 무대에서, 이제 그들의 새로운 시작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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