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새로운 시작

서울 강남의 대형 서점 북페스티벌 홀. 천장까지 닿은 유리창 너머로 봄날 햇빛이 쏟아진다.

지은은 입구 근처 전시대 앞에 멈춰 섰다. 자신의 이름이 실제로 인쇄된 책등을 만지기가 두려웠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3월의 손가락』. 정말로, 정말로 세상에 나왔다.

"축하합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지은이 돌아보니 현정이 웃음을 띠고 있었다. 카페에서만 보던 얼굴이 이곳에서는 낯설게 느껴졌다.

"와주셨어요?"

"당연하지. 당신의 시가 세상에 닿은 첫날인데."

현정이 책을 집어 들었다. 표지를 부드럽게 만졌다. 마치 새로 태어난 아이를 다루듯이.

"누군가는 이걸 읽으면서 울 거예요. 누군가는 깨달을 거고. 누군가는 이 책이 자신의 것이라고 느낄 거야."

지은의 목이 메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아셨나요?" 현정이 계속했다. "처음부터. 3년 전부터. 매달, 벽에 붙여지는 당신의 시를 통해서."

지은은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도 함께.

"네. 누군가가 날 믿어줬어요."

현정이 지은의 손을 잡았다. 그 손도 떨리고 있었다.

"이제 많은 누군가가 당신의 시를 읽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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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회 무대 위. 지은은 마이크 앞에 섰다. 객석의 어둠 속에서 한 명의 얼굴이 명확했다. 준호였다.

그는 지은의 시집을 손에 들고 있었다. 책등이 조명에 반짝였다. 그의 눈이 지은을 찾았다. 지은도 그를 찾았다.

시간이 멈췄다.

"이 시집은 누군가의 사랑 없이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지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3년 전, 저는 상처에 갇혀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오해했고, 그 오해가 저를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3년 동안, 누군가는 저를 잊지 않았습니다. 제 시를 찾아다니며, 벽에 붙여주고, 심사위원이 되어 제 작품을 세상에 알려주었습니다."

지은의 눈빛이 준호를 향했다. 준호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직 듣고 있을 뿐이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큰 말이 아니라, 작은 손길의 연속이라는 것을."

지은이 원고를 내려다봤다. 글씨가 흔들렸다. 눈물이 맺혔지만 목소리는 다시 살아났다.

"이 시는 그 깨달음에 대한 것입니다."

지은이 첫 번째 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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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시간이 우리를 떨어뜨렸지만,* *결국 우리를 더 깊게 이어줬다.* *이제 나는 안다.* *사랑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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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구절을 읽을 때, 지은은 눈을 들었다. 준호도 눈을 들었다.

객석의 어둠 속에서 그들의 눈이 만났다.

준호의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지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준호만 보였다. 준호의 눈물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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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났다. 사람들이 지은을 축하하러 몰려왔다. 명함을 건네는 출판 에이전트,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 독자들의 감사 인사. 지은은 미소로 응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계속 준호를 찾고 있었다.

준호는 서점 구석에 서 있었다. 지은의 시집을 펼쳐 들고 있었다.

지은이 축하 인사를 마친 후, 준호에게 다가갔다.

"읽고 있었어요?"

준호가 책을 내렸다. 그의 눈빛이 부드러웠다.

"3년 동안 읽어온 시들인데, 이렇게 한 권이 되어 있으니까.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아."

지은이 웃음을 흘렸다. 눈물이 섞여 있었다.

"당신 덕분이에요. 정말로."

"아니야. 이건 당신의 것이야. 당신의 손가락에서 나온 글자들이야."

준호가 책을 지은에게 건넸다.

"나는 다만 당신이 이미 아는 것을 상기시켜줬을 뿐이야. 당신의 시가 세상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서점의 직원이 지은에게 다가왔다. 사인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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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회 테이블. 지은은 펜을 들었다. 사인회 줄을 선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다르게 보였다.

한 여성이 책장을 펼쳐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시, 정말 좋아요. 제 마음을 정확히 꺼내놓은 것 같았어요."

지은의 손이 떨렸다. 펜이 종이 위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이 책이 나온 게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진짜로."

다른 여성이 말했다. 서른 가까운 나이로 보였다. 눈가의 주름 사이에는 웃음이 묻어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지은이 물었다.

"신인 시집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이 책이 나올 때까지 당신 뒤에 누군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을 믿어주는 누군가가."

여성이 웃으며 돌아섰다. 지은은 그 말을 되씹었다. 뒤에 누군가. 그렇다. 정확히 그것이었다.

사인회가 끝났을 때는 밤 여덟 시가 넘었다. 책상 위에는 펜으로 쓴 지은의 이름이 수십 개 남아 있었다. 각각은 다른 손에서 나온 것이었고, 다른 가슴에 도착할 것이었다.

현정이 나타났다. 라테 카페의 주인은 지은의 사인회를 돕기 위해 일찍부터 와 있었다.

"고마워요, 현정님."

지은이 말했다.

"당신이 벽을 열어줬으니까. 그래야 내 시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었어요."

현정이 지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당신의 시가 닿았어. 정말로. 그리고 그 누군가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받아들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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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나오자 봄밤의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지은은 자신이 들고 있는 책을 들어 올렸다. 표지에는 자신의 이름과 시집의 제목이 인쇄되어 있었다. 『3월의 손가락』.

누군가가 지은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은."

지은이 돌아섰다. 준호가 서점 입구에 서 있었다. 손에는 『3월의 손가락』이 들려 있었다. 그것도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이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지은이 물었다.

"낭독회가 시작될 때부터. 뒤쪽에서 봤어."

준호가 대답했다.

"당신을 봤어. 사람들 앞에서 웃는 당신을 봤어. 그게 좋았어."

지은이 한 발 다가섰다.

"무대에서 날 언급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알아. 들었어."

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본다는 걸 처음 알았어. 공개적으로."

지은이 준호의 눈을 마주했다. 그의 눈빛에는 혼란이 있었다. 감사와 당혹, 그 둘 사이에서 흔들리는 표정이었다.

"후회하세요?"

"아니야."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다만 예상 밖이었어. 당신이 나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낼 줄은."

"당신이 내 시를 드러냈으니까요. 3년 동안."

지은이 대답했다.

"이제 내가 당신을 드러낼 차례라고 생각했어요."

준호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놨다. 그 아래에는 수십 권의 『3월의 손가락』이 쌓여 있었다.

"이게 뭐예요?"

지은이 놀라며 물었다.

"다 샀어. 모두."

"왜요?"

"당신의 시가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그걸 축하하고 싶었어."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랐어. 도서관에 기증하고,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혹시 모를 때를 위해 몇 권은 남겨두고."

지은이 그 책들을 바라봤다. 준호가 산 책들. 그것은 단순한 구매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뢰였다.

"무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은이 속삭였다.

"말하지 마. 그냥 있어."

준호가 지은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마치 3년의 거리가 한 번에 메워지는 것처럼.

그들은 서점을 나왔다. 강남로의 밤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봄밤의 온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3년 전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지은이 말했다.

"당신이 내 시를 버렸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고."

"그래. 나도 알아."

준호가 대답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본다고 생각했는지 알아."

"그런데 다 달랐어요."

지은이 준호를 바라봤다.

"당신은 한 번도 나를 버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 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3년을 다 썼어요."

"당신의 시가 그럴 가치가 있었거든."

준호가 말했다.

"매달 당신의 시를 찾아다니며 라테 카페 벽에 붙였어. 문학제 심사위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어. 출판사에 추천했어. 모두 당신의 시가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믿었으니까."

"그게 왜 그렇게 중요했어요?"

지은이 물었다. 그 질문은 단순하지 않았다. 3년 동안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준호가 발걸음을 멈췄다. 거리의 가로등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눈빛이 깊었다.

"당신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알았어. 이것은 누군가의 손가락에서 나온 진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진실이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

준호가 지은의 눈을 바라봤다.

"당신이 당신의 가치를 알기 전까지, 나는 당신을 대신해서 믿기로 했어. 당신이 포기하지 않을 때까지."

지은의 눈가가 따뜻해졌다.

"그럼 이제는?"

"이제는 당신이 믿으면 돼. 당신의 시를 믿고, 당신 자신을 믿고."

준호가 지은의 손을 더 꼭 잡았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그렇게 하도록 곁에 있을 거야."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강대로의 교통 신호등이 빨강, 파랑, 초록으로 반복되었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밝았지만, 그들 주변의 세상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었다.

"다음은 뭘 쓸 거예요?"

지은이 물었다.

"뭘?"

준호가 되물었다.

"시. 다음 시집. 뭘 쓸 거냐고."

지은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써봐."

준호가 대답했다.

지은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럼 제목은?"

"다시 만남."

준호가 말했다.

"3년 뒤에 봄이 다시 오는 것처럼, 우리도 다시 만났으니까."

지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순수했다. 모든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좋아요. 그럼 첫 번째 시는 이미 있어요."

"뭔데?"

"오늘. 이 밤. 당신과 함께 걷고 있는 이 순간."

지은이 준호의 손을 맞잡았다. 두 손이 겹쳐졌다. 그 겹침은 약속이었다. 미래에 대한 약속이었다.

거리의 불빛이 서서히 흐릿해졌다. 봄밤의 공기가 목을 스쳤다. 한 명의 여자가 쓴 시들이 세상의 서점 벽에 붙어 있고, 한 명의 남자가 쓴 사랑이 그 시들 뒤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둘이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은이 준호의 팔에 기대었다. 그의 소매에서 봄날의 따뜻함과 함께 낡은 책의 냄새가 났다. 3년 동안 그가 들고 다닌 시집들의 냄새였다.

"당신의 과거 시집은?"

지은이 물었다.

"뭐?"

"당신도 시인이잖아요. 당신의 시집은 어디 있어요?"

준호가 잠깐 침묵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어."

"왜요?"

"당신의 시가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이제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지은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새로운 결심이 담겨 있었다.

"정말요?"

"응. 당신 덕분이야. 당신이 나를 공개적으로 인정해줬으니까."

준호가 지은의 손을 잡았다.

"우리 함께 쓸까? 당신의 다음 시집과 나의 첫 시집을."

지은이 웃음을 흘렸다.

"당신의 제목은?"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들은 계속 걸었다. 봄밤의 거리에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여전히 길게 펼쳐져 있었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은 그들의 겹쳐진 손과, 그 손 위에 떨어지는 봄날의 벚꽃잎이었다.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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