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의도의 증거

지은의 핸드폰 화면이 어두워졌다 다시 켜졌다를 반복했다. 박기준 이사의 메시지를 읽은 지 이십 분. 손가락이 준호의 연락처 위에서 멈춰 있었다.

*"지은, 심사위원 명단 확인했어? 준호가 들어가 있어. 뭔가 이상한데…"*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게 무엇인지, 박기준은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은은 안다. 그 '이상함'이 무엇인지.

누르면 어떤 말이 나올까. 세 년을 견디면서도 못 한 말들이 목에 걸려 있었다.

화면을 꺼렸다. 다시 켰다.

라테 카페의 조명이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현정이 닦던 머그잔을 내려놓고 지은을 바라봤다.

"연락 안 할 거야?"

"뭐라고 말해야 해?"

지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심사위원 명단을 다시 본 순간부터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카페 벽의 시. 박기준의 암시. 원고의 변경 기록. 그리고 준호의 이름. 모든 것이 준호를 향해 수렴했다.

"그 사람이 정말…"

"네."

현정이 끝을 자르고 말했다.

"삼 년 동안 그랬어요. 항상 같은 요청이었거든요. '이 시를 벽에 붙여주면 안 될까요.' 그러고는 손글씨로 옮긴 원본을 건네줬어요. 매달."

"손글씨로?"

지은이 물었다. 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누군가 팬인 줄 알았는데, 계속 같은 사람이 오더라고요. 항상 같은 시. 항상 정성스럽게 손으로 쓴 원본과 함께."

"왜 말 안 했어?"

"물어본 적 없었잖아요."

지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맞았다. 자신이 묻지 않은 것. 자신이 본 것만 믿은 것. 자신이 상처라고 해석한 것들.

카페를 나왔을 때 밤 공기가 차갑게 피부에 닿았다. 거리 곳곳에 봄날씨 따위는 없었다. 서울 문학제 개막식이 열린 컨벤션센터 방향으로 발길이 자동으로 향했다. 내일 심사 결과 발표다. 오늘 저녁 리허설 현장에 준호가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로비에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최종 점검과 진행 담당자들의 분주한 움직임. 지은은 한쪽 구석의 소파에 앉아 있는 준호를 발견했을 때 숨을 멈췄다.

그는 인쇄된 심사표를 보고 있었다. 펜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페이지를 넘겼을 때 손이 일시적으로 멈춰 있었다. 그 멈춤이 지은의 시 '3월의 손가락'이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지은은 안다.

준호의 얼굴이 차분했다. 하지만 눈썹 사이에 주름이 깊었다. 펜을 다시 들었을 때 선이 길게 그어졌다. 그 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은은 알 수 없었다. 좋음인가, 나쁨인가. 심사위원의 평가는 그렇게 일직선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은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발걸음이 나갔다.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준호."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지은은 그의 눈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읽을 수 없었다. 깜짝 놀란 듯했다가 곧 차분해졌다.

"지은."

"당신이 심사위원이라는 걸 아까 알았어."

"그렇군."

"내 시를 읽고 있었네."

지은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심사표를 가리켰다. 준호가 그것을 천천히 내려놨다.

"읽고 싶었어. 당신의 시를."

말이 단순했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지은이 입을 열었을 때 목이 칼칼했다.

"삼 년 전에 당신은 내 시가 관심 없다고 했어. 왜 지금…"

"그런 적이 없어."

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하지만 분명했다.

"당신이 그렇게 해석했을 뿐이야."

지은의 몸이 굳었다.

"우리가 헤어질 때 뭐라고 했어? 정확히."

준호가 일어섰다. 로비의 불빛이 그의 옆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당신이 말했어. 나는 당신을 응원할 수 없다고. 당신의 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고. 그래서 이별이 맞다고."

"그래서 당신이…"

"당신의 시는 항상 나에게 닿았어. 벽에도, 원고로도, 지금도. 당신이 출판사에서 거절당할 때도 나는 당신의 시를 읽고 있었어. 매달. 손글씨로 다시 쓰면서."

지은의 숨이 얕아졌다. 가슴팍이 철렁거렸다. 세 년. 그 긴 세 년 동안.

"왜… 왜 연락 안 했어?"

"당신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지은의 눈이 흐려졌다. 눈물이 아니었다. 세상 전체가 흔들렸다. 무릎이 약해졌다. 소파 팔에 손을 짚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았다.

"당신이 나한테 한 말들을 기억해? '넌 내 상처를 모르니까 도와줄 수 없다'고. '너는 내 글을 진심으로 보지 않는다'고. '우린 지금 헤어져야 한다'고."

"준호…"

"당신이 한 그 말들이 나한테는… 문장이 아니라 상처였어. 당신의 시처럼. 당신의 시는 내가 알아야 했던 당신이었는데, 당신은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그래서 난…"

그의 목소리가 끊겼다. 지은은 처음으로 준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음을 봤다.

"난 당신의 시로만 당신을 알기로 했어."

지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한 줄, 또 한 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당신의 시가 세상에 나갈 때까지. 당신이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당신의 시가 누군가의 손에 닿으면 좋겠어."

"내가 얼마나 크게 오해했는지…"

지은이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깨가 떨렸다. 세 년 전 그날 밤, 자신이 준호에게 던진 말들이 돌아와서 자신의 가슴을 내려쳤다. 준호는 자신을 응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자신이 떠난 후에도 계속 응원했던 것이다. 조용하게.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게. 자신의 시를 손으로 옮기면서.

"내일 심사 결과가…"

"상관없어."

준호가 말했다.

"당신이 상을 받든 못 받든. 내일이 중요한 게 아니야. 당신이 계속 쓰는 것. 당신의 시가 누군가에게 닿는 것. 그게 중요해."

"근데 당신은…"

지은이 눈을 들었을 때 준호의 얼굴이 흐릿했다.

"당신을 기다렸어. 삼 년을."

그 말이 떨어진 직후, 진행 담당자가 로비로 들어왔다. 심사위원들의 최종 점검 시간이라는 공지였다. 준호가 일어서려 했을 때 지은이 그의 팔을 잡았다.

"나도… 나도 당신을 기다렸어. 그걸 모르고 있었지만."

준호의 눈이 지은의 얼굴로 향했다. 그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희망인가, 절망인가,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무언가인가.

"내일 결과 발표 이후에 만날 수 있을까?"

"응."

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지은의 손을 조용히 내려놨다.

---

밤새 지은은 잠을 자지 못했다. 자신의 시집 원고를 다시 펼쳤다. 첫 장에 적힌 시 '3월의 손가락'을 읽었다.

*봄이 오면 그 사람 손가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스친 그 손가락의 따뜻함을* *잊은 척했던 겨울들* *다시 봄이 되면*

자신이 쓴 이 시가 준호의 손으로 옮겨졌다. 매달. 삼 년 동안.

지은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준호의 번호가 화면에 보였다. 통화 버튼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가 내렸다. 다시 올렸다. 내렸다.

'뭐라고 말해?'

지은의 손가락이 멈췄다. 전화를 걸고 싶었다. 동시에 절대 걸면 안 될 것 같았다. 자신이 무엇을 물어야 할지, 준호가 무엇을 설명해야 할지, 그 모든 것이 너무 복잡했다.

결국 지은은 핸드폰을 내려놨다.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시계가 새벽 4시 2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두 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 문학제 심사 발표까지.

---

오전 10시. 문학제 심사 발표장.

무대 위의 조명이 지은을 비췄다. 눈이 부셨다. 그 속에서 지은은 심사위원들을 찾았다. 준호는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제 시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지은이 말을 멈췄다. 준호가 눈을 떴다. 그리고 지은을 바라봤다.

"제 시를 포기하지 않아준 누군가에게 이 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대 아래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지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준호의 눈만 보였다. 그 눈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을 때 준호는 여전히 지은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섰다.

지은이 객석으로 내려오자 준호가 다가왔다. 사람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축하의 말들이 떨어졌다. 하지만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은의 손을 잡았다.

"결과가 나왔으니까 이제…"

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이제 당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네. 심사가 끝났으니까."

지은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말이야?"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야."

말이 떨어진 순간 지은의 눈이 다시 흐려졌다. 하지만 이번엔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지은은 몰랐다. 오직 준호의 손이 자신의 손을 꽉 잡고 있다는 사실만 느껴졌다.

"당신은?"

준호가 물었다.

"나는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 당신의 시처럼. 항상."

지은이 입술을 깨물었을 때 준호가 그녀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 함께 봄을 살아갈 수 있을까?"

지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박기준 이사가 무리를 헤치고 다가왔다.

"지은, 축하한다. 그런데 지금 잠깐 얘기 좀 하자. 출판사에서 긴급으로 연락이 왔는데…"

지은과 준호의 손이 떨어졌다. 박기준의 얼굴 표현이 심각했다.

"당신의 시집 출판 계약이 들어왔어. 근데 조건을 봐야 해."

박기준이 핸드폰 화면을 지은에게 보였다. 계약서 상단에 적힌 글씨가 보였다.

*편집자: 이준호*

지은의 손가락이 떨렸다.

"이게 뭔데요?"

"그게 나도 궁금한데. 준호가 출판을 직접 챙기겠다고 해. 그 대신 심사위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상금은 포기하겠대."

박기준이 계속했다.

"이상한 일이지. 심사위원이 자기 심사 대상 작품의 편집을 직접 하다니. 문학계 관례상 그럴 리 없어. 하지만 준호가 강하게 요청했어. 그리고 출판사도 이 정도 영향력 있는 시인이 편집을 맡으면 마케팅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어."

박기준이 다시 말했다.

"당신은 이 계약에 대해 뭐라고 생각해?"

지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준호가 자신의 시집을 직접 편집한다? 그것은 단순한 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생각해봐. 계약서는 여기 있고."

박기준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지은은 그것을 받았다. 화면을 다시 봤다.

*편집자: 이준호*

이 글씨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몰랐다. 기쁨인가, 혼란인가, 아니면 그 둘의 뒤섞인 무언가인가.

"지은."

박기준이 다시 말했다.

"준호가 3년 동안 뭘 해왔는지 아냐?"

지은이 박기준을 바라봤다.

"뭘 말이세요?"

"당신의 시를 찾아다녔어. 우리 출판사에서 거절한 원고도 그가 챙겼어. 매달 당신이 새로 쓴 시를 읽고 있었다고 했어. 그리고 문학제 심사 위원이 되도록 자신의 네트워크를 사용했다고 했어. 모두 당신의 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지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제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신이 준호한테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당신을 3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어."

박기준이 돌아섰다. 그리고 로비를 빠져나갔다. 지은은 혼자 남겨졌다. 핸드폰 화면에 여전히 계약서가 떠 있었다.

*편집자: 이준호*

지은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발표장을 나갔다. 로비를 가로질렀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봄 햇빛이 얼굴에 닿았다.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네."

지은이 눈을 떴다. 준호가 서 있었다. 문학제 건물 계단 아래에서, 봄 햇빛 속에서.

"박기준 이사가 뭐라고 했어?"

준호가 물었다. 얼굴 표정이 차분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지은이 말을 멈췄다. 준호를 바라봤다. 자신이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3년 전에 당신이 내 시에 관심 없다고 했어."

지은이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우리 헤어질 때. 당신이 내 시 따위는 관심 없다고 했어."

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적이 없어."

"뭐?"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당신의 시는 항상 나에게 닿았어. 벽에도, 원고로도, 지금도. 매번."

준호가 한 발 다가왔다.

"당신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말할 수 없었어. 내가 당신을 추적하고 있다는 걸. 내가 당신의 시를 읽고 있다는 걸. 내가…"

준호가 말을 멈췄다. 지은의 눈을 바라봤다.

"내가 당신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걸."

지은의 눈이 흐려졌다. 아니,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몰랐다.

"그럼…"

지은이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왜 연락 안 했어?"

준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으니까."

지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것은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당신이 나를 버렸다고? 그것은 역이었다. 자신이 준호를 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오해했던 것이었다.

"내가…"

지은이 입을 열려 했을 때 준호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지은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당신의 시 때문에 3년을 살았어. 당신의 시에 담긴 슬픔 때문에 내 슬픔을 견딜 수 있었어. 그리고 당신의 시에 담긴 희망 때문에 내일을 기다릴 수 있었어."

준호의 눈도 젖어 있었다.

"이제 당신과 함께 봄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지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3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자신의 오해가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준호가 그 동안 자신을 얼마나 깊게 사랑했는지가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문학제 건물 앞의 봄 햇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 있었다. 지은의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녀의 손이 준호의 손을 잡았다. 준호의 손이 그녀의 손을 꽉 조였다. 그것이 모든 말이었다.

그때 지은의 핸드폰이 울렸다. 미라로부터의 전화였다.

"지은! 어디야? 출판사에서 긴급 회의를 소집했어. 당신의 시집 계약 관련해서."

지은이 전화를 받았다.

"네, 지금 가겠습니다."

"빨리 와. 그리고…"

미라의 목소리가 멈췄다.

"박기준 이사가 이상한 말을 했어. 당신의 시집 계약 금액이 일반 신인 시집의 10배라고. 그게 무슨 일이냐고."

지은의 손가락이 떨렸다.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는 여전히 지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지은이 전화를 끊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했나?"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당신이 결정하기 전에 내가 너무 많은 걸 정했나?"

지은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준호에게 고마워야 하나, 미안해야 하나, 아니면 자신의 시집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고 말해야 하나.

"내가 출판사에 갈게."

준호가 말했다.

"당신이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나는 출판사에서 기다릴게."

"당신이 왜…"

지은이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

준호가 지은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어떤 계산도 없었다. 오직 사랑만 있었다.

"당신의 시가 세상에 나가야 하니까. 그리고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당신이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준호의 말이 떨어졌을 때 지은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엔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지은도 정확히 몰랐지만, 자신의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지은이 말했다.

"내가 가야 해."

"응."

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지은의 손을 놓았다.

지은이 발걸음을 옮겼다. 문학제 건물 뒤로 돌아가는 길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봤다. 계약서가 여전히 화면에 떠 있었다.

*편집자: 이준호*

자신의 시집이 준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간다. 그것은 단순한 출판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3년의 사랑이 응축되어 있는 하나의 책이 되는 것이었다.

지은은 출판사로 향했다. 뒤에서 준호가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왜 따라와?"

지은이 물었다. 돌아보지 않은 채.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니까."

준호가 답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지은은 깨달았다. 자신이 3년 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크게 오해했는지. 그리고 그 오해 속에서도 준호가 자신을 얼마나 깊게 사랑했는지.

출판사 건물이 가까워졌다. 미라가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지은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준호는 뒤에서 따라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섯 명이 나란히 섰다. 지은, 미라, 준호, 그리고 건물 직원 두 명.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층수 표시가 하나씩 올라갔다.

지은은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미라가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지은은 뒤를 돌아 준호를 봤다.

준호는 지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모든 게 괜찮아.'

그 눈빛이 지은에게 말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멈췄다. 문이 열렸다.

출판사 회의실로 들어가는 순간, 박기준이 일어섰다.

"지은, 준호, 들어와."

지은이 안으로 들어갔다. 준호도 따라 들어왔다. 회의 테이블 주변에는 출판사의 주요 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박기준이 입을 열었다.

"이번 시집 계약은 일반적인 신인 시집 계약과는 다르다. 이 시집은 이미 신인상을 받았고, 문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집을 특별하게 다루기로 결정했다."

박기준이 서류를 펼쳤다.

"인쇄 부수는 5,000부. 일반 신인 시집의 10배다. 마케팅 예산도 별도로 책정했다. 그리고…"

박기준이 준호를 바라봤다.

"편집자 이준호는 심사위원으로서 받을 상금을 전부 포기하고, 이 시집 편집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이것은 문학계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박기준이 계속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집이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했다."

박기준이 지은을 바라봤다.

"지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지은이 입을 열려 했을 때 준호가 말했다.

"당신이 결정하면 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지은은 깨달았다. 준호가 자신의 시집을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자신의 이름을 얼마나 깎아내렸는지.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손상될 수 있는지.

지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모두가 제 시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은은 준호를 봤다. 그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속에는 3년의 기다림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특히…"

지은이 말을 멈췄다.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특히 당신에게."

준호의 눈이 부드러워졌다.

---

그날 오후 늦게, 지은과 준호는 문학제 건물 앞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봄 햇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내일부터 편집을 시작할까?"

준호가 물었다.

"응."

지은이 대답했다.

"그런데…"

지은이 말을 멈췄다.

"뭐?"

"당신이 정말 3년을 날 기다렸어?"

준호가 지은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따뜻했다. 3년 전 그날 밤, 자신이 놓쳤던 그 온기였다.

"응.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기다릴 거야. 당신이 필요로 하는 만큼."

지은이 눈을 감았다. 봄 햇빛이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준호의 손이 자신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말이 필요 없었다. 이 순간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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