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거절의 무게

회의실의 불빛이 너무 밝았다. 지은은 테이블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으며 박기준 이사의 얼굴을 읽으려 했다. 그의 표정은 이미 결정을 내린 사람의 것이었다.

"시집은 어렵습니다."

박기준의 말이 떨어지자 최미라가 재빨리 덧붙였다. 미라는 언제나 그렇게 했다. 먼저 날카로운 칼을 내려 놓고, 그 다음 스스로 상처를 어루만지는 척 한다.

"지은, 당신의 시는 정말 좋아. 하지만 시집은 시장이 없어. 에세이라면 몰라도."

지은의 목이 메인다. 이것은 두 번째도 아니고 세 번째도 아니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쯤 되는 거절이었다. 매번 다른 출판사였지만, 말은 항상 같았다. 시는 좋지만 팔리지 않는다. 당신은 재능이 있지만 시장성이 없다. 좋아하지만 출판할 수 없다.

"신인 시인의 시집은 위험 자산이에요. 우리는 안전한 것들을 찾고 있습니다."

박기준이 덧붙였다. 그는 재무 보고서를 보는 사람처럼 지은을 바라봤다. 숫자로 환산된 가치만이 중요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개인 출판은요?"

지은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애절하게 바랐다.

"그건 정통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신인 작가가 개인 출판으로 책을 내면 문학계에서는 '제도권 밖의 작가'로 봅니다. 당신의 경력에 흠이 생겨요."

박기준은 마치 친절한 충고를 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 말 안에는 냉정한 판정이 들어 있었다. 너는 이 세계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것을 해라. 그것이 그의 메시지였다.

미라가 다시 말을 열었다.

"당신의 원고는 어디론가 넘어갔어요. 심사 과정에서 몇 부가 바깥으로 나가기도 하거든요. 혹시 누군가가 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지은의 손이 멈췄다. 원고가 어디론가 넘어갔다. 그 말은 누군가의 손에 닿았다는 뜻이었다. 준호의 손에? 아니면 다른 누군가? 그 원고를 본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시를 읽었다는 뜻이었다. 거절의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누군가는 자신의 글을 읽었을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했다가 다시 사라졌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읽혀도 출판되지 않으면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이 세계의 규칙은 명확했다. 제도권 안에 들어와야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 시는?"

지은이 물었다.

박기준이 서류 더미 사이에서 손가락으로 뭔가를 찾으려 했다.

"거절입니다.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말 이후로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미라의 입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위로의 말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은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박기준의 마지막 말만 반복되었다.

거절입니다. 거절입니다. 거절입니다.

회의실을 나온 지은은 복도에 서 있었다. 창밖으로 봄날이 펼쳐져 있었다. 벚꽃이 흩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지은에게 그 풍경은 단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었다. 자신의 시간만 멈춰 있는 동안, 세상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미라가 복도로 나왔다. 지은은 그녀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지은."

미라의 손이 지은의 어깨에 닿았다. 그 손의 무게가 전해졌다. 미라는 언제나 이렇게 했다. 먼저 날카로운 말을 하고, 그 다음 손을 얹는다. 마치 그 손이 상처를 덮을 수 있을 것처럼.

"당신의 시가 누군가에게는 닿고 싶다고 했잖아. 그 누군가가 누군지 생각해본 적 있어?"

지은이 돌아봤다. 미라의 눈이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뭔가가 담겨 있었다. 연민? 아니면 다른 감정? 지은은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계속 쓸 거지?"

미라가 물었다. 이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당신은 이 모든 거절 속에서도 계속 쓸 거지? 그렇지?

지은의 눈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맺혔다. 그것이 흘러내릴 것 같은 순간,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삼켰다. 그렇다. 계속 쓸 것이다. 아무도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시를, 아무도 출판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시를, 그래도 계속 쓸 것이다.

미라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럼 됐어. 그럼 충분해."

그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지은은 알고 있었다.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나오지 않는 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을.

***

라테 카페에 들어갔을 때, 현정은 이미 벽을 정리하고 있었다. 신인 작가들의 시를 붙여 주는 공간. 그곳에 지은의 시도 있었다.

"어서와."

현정이 인사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 미소는 다르게 보였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의 미소처럼.

"벽을 정리하고 있어?"

지은이 물었다.

"응. 이번 달 새로운 시들이 많이 들어왔거든.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야."

현정이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지은의 시가 있었다. 그것을 다시 보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글이 벽에 붙어 있다는 것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누가 이것을 여기 붙이라고 했어?"

지은이 물었다. 이전에 물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의도가 담겨 있었다.

현정이 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지은의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현정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미소가 더 깊어졌다.

"누군가는 이곳에 시를 붙이는 것을 신성하게 여겨. 그 사람은 말했어. '이 시가 세상에 나가기 전에, 적어도 누군가의 눈에는 닿아야 한다'고."

현정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더 조심스럽고, 더 따뜻했다.

"그 누군가가..."

지은이 말을 시작했다.

"음, 그건 내가 말할 수 없어."

현정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뭔가가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왜 이 시를 붙였는지, 모든 것을. 하지만 그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군가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지은은 벽을 바라봤다. 자신의 시가 스포트라이트 아래 있었다. 누군가는 이 시가 빛을 받기를 원했다. 누군가는 이 시를 신성하다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가 준호라면? 아니면 다른 누군가라면?

"커피 한 잔?"

현정이 물었다.

"응."

지은이 대답했다.

현정이 카운터로 가면서 지은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연민과 응원이 섞여 있었다.

***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지은의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 핸드폰 화면을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라테 카페의 알림이 떴다. 자신의 시 전시 사진이었다.

지은은 화면을 내렸다 올렸다를 반복했다. 마치 그 사진이 계속 변할 것처럼.

하지만 사진은 변하지 않았다. 오직 같은 시만 반복되었다. 벽에 붙은 자신의 시. 그리고 그것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버스 안에서 지은은 3년 전을 생각했다.

***

그때 준호는 "더 하고 싶어"라고 말했었다. 둘이 헤어지기 직전, 지은이 "당신은 내 시를 읽지도 않았잖아"라고 소리쳤을 때, 준호는 "미안해. 더 하고 싶어. 너를 위해 더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그 말을 지은은 "당신은 나를 도와주지 않겠다는 뜻이구나"라고 해석했었다. 하지만 그때 준호의 눈이 달랐다. 그의 눈빛이 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손이 자신의 시 원고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듯이.

그 순간, 준호의 입이 움직였다. 마치 무언가를 결심하는 순간처럼. 그의 입술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그리고 그 직후로 그의 손가락이 원고의 가장자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정성스럽게. 마치 그것을 기억하려는 듯이. 아니, 마치 그것을 지켜내겠다고 다짐하는 듯이.

지은은 그때 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자신의 상처에만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

버스에서 내린 지은은 집으로 향했다. 밤이 깊었다.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그 가로등 아래를 걸으면서 지은은 핸드폰을 다시 꺼냈다.

라테 카페의 사진을 다시 봤다. 벽에 붙은 자신의 시. 그것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누군가는 이것을 신성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것이 보여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원고를 어디론가 넘어가게 했다. 그 원고가 심사 위원의 손에 닿게 했다. 문학제의 심사 대상에 올리게 했다.

준호.

그 이름이 지은의 입에서 나왔다. 거리의 밤 공기 속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생각이 그것을 덮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준호는 자신의 시를 무시했다. 자신의 글 따위는 관심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누구의 짓인가?

지은은 준호의 번호를 찾았다. 핸드폰 화면에 그의 번호가 떴다.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서 떴다 내려앉았다를 반복했다.

전화를 걸까? 말까?

그 손가락이 계속 떠 있었다. 밤 공기 속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지은은 결국 전화를 걸지 않았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계단을 올랐다. 4층짜리 빌라의 좁은 계단.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 문을 열었을 때 처음으로 한숨이 나왔다. 거실의 불을 켰다. 책과 수첩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편집자로서의 일과 시인으로서의 삶이 구분되지 않은 공간. 지은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라테 카페의 사진을 클릭했다. 이번엔 댓글을 봤다.

"신인 시인 지은의 작품입니다. 벽에 전시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세요."

현정의 글이었다. 그 아래에 하트 이모티콘들이 줄을 이었다. 댓글도 몇 개 달려 있었다.

"정말 좋은 시네요."

"누가 올린 거예요?"

"벽에 직접 가봐야겠어요."

지은의 눈이 마지막 댓글에서 멈췄다.

"당신의 시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익명의 댓글이었다. 계정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한 번만 남기고 사라진 말처럼.

지은의 가슴이 철렁했다.

***

다음 날 아침, 지은은 출판사로 갔다. 문학의 집 출판사의 편집실은 조용했다. 출근 시간이 아직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은은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박기준 이사의 메일을 다시 읽었다.

제목: RE: 지은의 시집 출판 제안

본문은 짧았다.

"지금은 시집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 당신의 재능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경영 판단상 시집 출판은 보류한다. 혹시 에세이나 일반 문학서로 방향을 전환할 생각은 없는가?"

지은은 이 메일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매번 같은 내용이었다. 매번 같은 절망이었다.

"아직도 읽고 있어?"

미라가 나타났다. 핑크색 머플러를 풀고 있었다. 지은을 보며 웃었다.

"기준이 뭐라고 했대?"

"시집은 수익성이 없다고."

"맞아. 그게 우리 회사 사주님의 생각이야. 시집은 명예지, 돈이 아니라고. 그런데 우리는 명예만 쌓을 수 없는 회사거든."

미라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지은 옆에 앉았다.

"당신의 시가 누군가에게는 닿고 싶다고 했잖아. 기억해?"

지은이 고개를 들었다.

"응."

"그럼 말해봐. 그 누군가가 누군지 생각해본 적 있냐?"

침묵이 흘렀다. 지은의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미라가 계속했다.

"당신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그 누군가가 당신의 시를 읽고 인정해주기를. 그렇지 않니?"

"아니야."

지은의 대답은 빨랐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미라가 지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당신은 계속 쓸 거지?"

"뭐?"

"당신의 시. 계속 쓸 거지? 설령 누가 읽지 않더라도?"

지은의 눈이 흔들렸다.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질 수 없었다. 사무실이었기 때문이다. 밝은 형광등 아래였기 때문이다.

지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됐어. 그럼 충분해."

미라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마치 누군가를 위로하는 엄마의 목소리 같았다. 하지만 지은은 그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미라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은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군가가 준호라는 것을. 그리고 그 준호가 자신의 시를 무시했다고 지은이 믿고 있다는 것을.

***

점심시간이 되자 지은은 라테 카페로 갔다. 직접 벽을 보고 싶었다. 사진이 아닌 실물을. 자신의 시가 어떻게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카페는 한산했다. 오후 1시. 점심을 먹은 사람들은 사무실로 돌아가고, 아직 점심을 먹으러 나올 사람들은 오지 않은 시간대였다.

현정이 카운터에 있었다. 지은을 보며 미소 지었다.

"오늘도 왔네."

"응. 좀 봐도 돼?"

"당연하지."

지은이 벽으로 갔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자신의 시가 붙어 있었다.

*봄이 오면 나는 당신을 다시 본다*

*당신은 여전히 책장 앞에 있고*

*나는 여전히 당신의 손가락을 본다*

*그 손가락이 책의 등을 어루만지던 모습을*

*그때 당신의 얼굴은 편안했다*

*지금 당신의 얼굴은 어떤가*

지은은 이 시를 다시 읽었다. 자신이 썼던 시를. 3년 전에 준호를 생각하며 썼던 시를.

"누가 올렸어?"

"모르겠어."

현정이 대답했다.

"누군가 전화를 해서 이 시를 벽에 붙여달라고 했어. 이 시가 신성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그래서 올렸어."

"언제?"

"한 달 전쯤."

한 달 전. 지은은 그 시기를 생각했다. 1월. 문학제가 개최되기 한 달 전. 준호가 자신의 원고를 받기 전인가? 아니면 후인가?

"그 사람이 뭐라고 했어? 이름이라도."

현정이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로만 알아. 남자였어. 목소리가 진지했어. 마치 이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듯이."

지은의 심장이 빨라졌다. 남자. 진지한 목소리. 시를 신성하게 여기는 남자.

준호.

그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혹시...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어? 왜 이 시가 신성하다고?"

현정이 잠시 생각했다. 마치 그 말을 정확히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듯이.

"음... 뭐였더라. 아, 맞다. '이 시는 누군가를 위한 시예요. 그 누군가가 이것을 봐야 해요. 그 누군가가 이것을 알아야 해요'라고 했어."

지은의 손이 떨렸다.

누군가를 위한 시.

그 누군가가 자신이라면?

그 누군가가 준호라면?

"있잖아, 지은."

현정이 말했다.

"누군가는 당신의 시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당신의 시가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거야. 당신의 시가 당신을 찾아가고 있다는 거야."

지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벽에 붙은 시를 계속 바라봤다. 스포트라이트가 그 시를 비추고 있었다.

***

사무실로 돌아온 지은은 박기준 이사의 방에 들어갔다. 노크를 했다. 그리고 들어갔다.

박기준은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지은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뭐야?"

"제 시집 원고요. 어디로 넘어갔대요?"

박기준이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자꾸만 집착하니까 말이야. 그 원고는 이미 거절 결정이 났으니까 다른 곳으로 넘어갔어. 제대로 된 채널로."

"어디요?"

"그건 내가 말할 수 없어."

"왜요?"

박기준이 모니터를 다시 보며 말했다.

"왜냐하면 아직 진행 중이거든. 심사 과정이 끝나기 전에 말할 수는 없어."

지은의 눈이 커졌다. 심사 과정.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군가가 자신의 원고를 다시 어딘가에 제출했다는 뜻인가? 누군가가 자신의 시를 세상에 알리려고 한다는 뜻인가?

"제 원고가 어디에 들어갔어요?"

"그건 당신이 알 필요 없어. 당신은 자기 일이나 해. 편집자로서 당신의 역할이 있지. 시인으로서의 당신은 나의 책임이 아니야."

박기준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은과의 대화는 끝이었다.

지은은 방을 나왔다. 복도에 서서 생각했다.

원고가 진행 중이라는 것. 심사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군가가 그 원고를 가져갔다는 뜻인가? 누군가가 자신의 시를 다시 세상에 내보내려고 한다는 뜻인가?

그리고 그 누군가가 준호라면?

***

저녁이 되자 지은은 라테 카페로 다시 갔다. 벽의 시를 다시 보기 위해서. 그리고 현정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현정이 커피를 만들었다. 아메리카노. 지은이 좋아하는 것.

"또 왔어?"

"응."

"그 사람 때문에?"

"뭐?"

현정이 웃었다.

"당신의 시를 올린 그 사람 말이야.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

"응."

"그럼 여기 와봐."

현정이 지은을 벽으로 끌고 갔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지은의 시 아래.

"여기 봐. 여기."

현정이 벽의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아주 작아서 처음엔 보이지 않는 메모.

지은이 가까이 가서 읽었다.

*"봄이 오면 나는 당신을 다시 본다. 당신도 다시 봄을 볼 수 있기를."*

손글씨였다. 펜으로 쓴 작은 글씨.

지은의 가슴이 철렁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글씨를 따라가는 손가락이 멈출 수 없었다.

그 글씨를 본 순간, 지은은 그것이 누구의 글씨인지 알아버렸다. 3년 전 준호가 자신에게 써준 편지. 그 편지의 글씨와 같았다. 정확하게, 흔들림 없이 같았다.

숨이 멈췄다. 눈이 흐려졌다. 눈물이 맺혔다가 떨어졌다.

"이건... 언제 붙었어?"

"오늘 오전이야. 누군가 와서 붙고 갔어. 당신 시가 올라온 후로 처음 본 거야."

지은은 메모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그 글씨에 닿았다. 따뜻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종이는 차가워야 한다. 하지만 지은에게는 따뜻했다.

봄이 오면 나는 당신을 다시 본다.

당신도 다시 봄을 볼 수 있기를.

***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지은은 핸드폰을 들었다. 준호의 번호를 찾았다. 이번엔 전화를 거는 것이 아니었다.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이 한 거죠?"

답이 곧바로 왔다. 하지만 문자가 아니었다. 통화 신청이었다.

지은은 통화를 받지 않았다.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대답해요. 당신이 한 거 맞죠?"

또 통화 신청이 왔다. 지은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맴돌았다. 받을까, 말까. 그 손가락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떠 있다가, 결국 화면을 누렀다.

침묵만 흘렀다. 양쪽 모두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직 숨소리만 들렸다.

"당신이... 한 거야?"

지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응."

준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짧은 대답. 하지만 그 안에는 3년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왜?"

"당신의 시가 좋았거든."

"거짓말해. 당신은 내 시를 무시했잖아. 헤어질 때 당신은 '내 글 따위는 관심 없다'고 했잖아!"

지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버스 안의 다른 승객들이 돌아봤다. 하지만 지은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준호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아주 조용했다. 하지만 단호했다.

"당신이 '내 시를 읽지도 않았다'고 소리쳤어. 그때 나는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해? 나는 '더 하고 싶다'고 했어. 당신을 위해 더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다고. 그건 당신의 글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야. 그건 당신의 글을 더 소중하게 지키고 싶다는 뜻이었어. 그런데 당신은 그 말을 듣지 않았어. 당신은 자신의 상처에만 갇혀 있었고, 나의 말은 그것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어."

"그럼 왜 이제야..."

지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행동으로 말하기로 했어. 당신의 시를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당신의 시가 누군가의 손에 닿도록 하는 것으로. 그것이 나의 사랑이 진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지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버스가 멈췄다. 지은의 정류장이었다. 하지만 지은은 내리지 않았다.

"지은."

준호가 이름을 불렀다.

"응?"

"당신의 시를 다시 봐줄래? 이번엔 내가 아니라 당신이. 당신의 시가 얼마나 좋은지 당신도 봐줄래?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당신도 알아줄래?"

지은은 전화를 끝냈다. 버스에서 내렸다. 밤거리를 걸었다.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핸드폰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준호였다.

*"내일 문학제 최종 심사가 있어. 당신의 시가 올라. 당신도 와줄래?"*

지은은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문학제. 최종 심사. 당신의 시.

그 말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벽의 메모가 떠올랐다. 준호의 글씨. 그리고 그 글씨 아래 붙은 자신의 시.

지은은 핸드폰에 답장을 쳤다.

*"가."*

그 한 글자를 보내고 나서야, 지은은 자신이 얼마나 크게 오해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자신이 준호를 얼마나 잘못 이해했는지. 그가 자신의 시를 무시한 게 아니라, 자신의 시를 지키기 위해 더 큰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모든 시간 동안 준호는 자신의 시를 누군가에게 닿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천장을 바라보며 지은은 눈물을 흘렸다. 이번엔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깨달음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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