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루미에르 아카데미의 비밀

메인 타워 지하 1층 복도. 카인의 단말기가 울렸다.

【긴급 공지】시스템 오류 데이터 격리 중. 플레이어 '카인' 강제 소환. 코어룸 진입 권한 회수. 5시간 후 시스템 자동 삭제 예정.

손가락이 떨렸다. 5시간. 정확히 4시간 47분.

화면을 내렸을 때 세라와 아론이 나타났다. 세라는 백업 드라이브를 쥐고 있었고, 아론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노엘을 찾았어?"

"찾았어. 지금 학생회 사무실에 있어."

세라의 목소리가 가늘었다.

"근데 너한테 강제 소환 알림이 왔어?"

"응."

카인은 화면을 보여주었다.

"5시간도 안 남았어."

세라가 말했다.

"지금 당장 노엘을 찾아가야 해. 이 증거를 공개해야 돼."

세라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아론이 덧붙였다.

"카인, 넌 이 증거를 가지고 노엘한테 가. 우린 옆에 있을 테니까."

메인 타워 4층 학생회 사무실. 노엘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카인이 드라이브를 건넸을 때 그의 얼굴이 굳었다.

"이게 뭐야?"

"루벨과 교감의 거래 영상이야."

노엘의 손이 떨렸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거래실이 나타났다. 루벨과 교감이 마주 앉아 있었다. 교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수학 시험을 미리 받겠지?"

루벨이 웃었다.

"당연하지. 아, 그리고 세라의 능력치 저하 처리도 부탁해."

교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다음 달 송금은?"

"5천만 원. 예정대로."

노엘이 영상을 멈췄다. 창백한 얼굴로 카인을 바라봤다.

"이게... 진짜야?"

"진짜야. 음성 기록도, 시스템 로그도 모두 백업했어."

노엘이 일어섰다.

"이걸 공개해야 해. 지금 당장."

그의 손이 단말기를 집었다.

"학생회 전체 방송 권한이 있어. 모든 학생에게..."

그 순간, 카인의 단말기가 울렸다.

【긴급 소환】시스템 코어룸 강제 진입. 플레이어 '카인' 현재 위치 추적 중. 거부 시 즉시 삭제 프로그램 실행.

세라가 카인의 팔을 잡았다.

"가야 해?"

"가야 해."

카인이 일어섰다.

"노엘, 내가 가는 동안에 방송해. 제발."

"응. 나도 지금 할게."

노엘이 단말기를 들었다.

메인 타워 지하 3층. 시스템 코어룸.

교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는 보안 요원들이 서 있었다.

"넌 시스템의 버그야."

교감이 말했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단말기를 눌렀다.

【시스템 강제 삭제 프로그램 실행】

카인의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손가락부터. 팔. 다리. 가슴.

마치 지워지는 것처럼.

그 순간.

【긴급 방송】학생회장 노엘이 전 학생에게 공지합니다.

모든 학생의 단말기가 울렸다. 같은 영상이 떴다.

거래실. 루벨. 교감. 뇌물. 능력치 조작. 시험 문제 사전 제공.

메인 타워 1층 중앙 홀에서 학생들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게... 진짜야?"

한 학생이 외쳤다.

"영상이 조작된 건 아니야?"

"루벨이가 정말 그랬어?"

학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불신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이건...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야!"

교감이 소리쳤다.

"루벨이 먼저 제안했어! 내가 강요당한 거야!"

"거짓말하지 마!"

학생 중 한 명이 외쳤다.

"시스템 로그에 당신이 능력치를 조작한 기록이 있어!"

교감이 저항했다. 보안 요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풀어! 내 말을 들어! 이건 누군가 나한테 강요한 거야!"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학생들의 분노가 너무 컸다. 교감의 거래가 단순한 비리가 아니라, 자신들의 노력을 짓밟은 배신이었기 때문이다.

노엘이 단말기를 들었다.

"추가 증거를 공개합니다."

추가 자료들이 화면에 떴다. 학생들의 표정이 의심에서 확신으로 변했다.

"아카데미 운영진에 신고합니다. 이사 교감을 비리 혐의로 즉시 체포하도록 요청합니다."

교감은 계속 저항했다. 입술이 떨렸다. 공포와 절망이 얼굴을 뒤덮었다.

"누군가... 누군가 나한테 이걸 시킨 거야! 나도 피해자야!"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결국 보안 요원들에게 끌려가면서도 계속 외쳤다.

"나도... 나도 모르는 게 있어! 지하에... 지하에..."

그의 목소리는 복도 끝에서 사라졌다.

코어룸의 삭제 프로그램이 멈췄다. 교감의 주의가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카인의 몸이 천천히 실체화되었다. 가슴이 먼저. 팔. 다리. 손가락.

카인은 살아 있었다.

메인 타워 1층 중앙 홀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학생들이 서로 뭔가를 소리쳤다. 신뢰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교사들도 동요했다. 자신들이 몰랐던 비리가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이 충격을 주었다.

그때 루벨이 나타났다.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카인은 세라와 아론과 함께 그 장면을 지켜봤다.

"넌 살았어."

세라가 말했다.

"응."

카인이 답했다.

그의 단말기가 울렸다.

【시스템 알림】배경 NPC 카인 / 플레이어 등급 상향 조정 신청 중 / 아카데미 이사회 검토 예정 / 최종 결정: 보류 중

화면 아래에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경고】시스템 코어 심층부에서 새로운 프로토콜 활성화 감지. 루미에르 아카데미 중앙 관리 시스템 자동 업그레이드 예정. 모든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카인의 손가락이 얼었다.

"뭔가 이상해."

카인이 중얼거렸다. 세라가 고개를 들었다.

"뭐가?"

"시스템이... 자동 업그레이드? 이건 교감이 조작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야."

아론이 교감을 바라봤다. 이사 교감은 보안 요원들에게 끌려가는 중이었는데, 그의 얼굴은 창백함을 넘어 공포 상태였다.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걸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카인, 너 지금 뭘 했어?"

루벨이 다가왔다. 그의 눈이 카인을 응시했다.

"코어룸에 침입했을 때... 뭔가 건드렸나?"

카인이 생각했다. 그때의 기억이 스쳤다. 데이터를 복사할 때 시스템이 저항했다. 뭔가 깊은 곳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손가락이 투명한 벽에 부딪혔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막아놓은 듯한 저항감. 시스템의 경고음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카인은 계속 눌렀다. 복사를 완료해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 깊은 곳에서 깨어났다.

"아, 맞다."

카인이 중얼거렸다.

"내가 접근하면 안 되는 영역이 있었어. 손가락이 벽에 부딪혔는데... 그걸 무시하고 복사를 진행했어."

세라의 얼굴이 긴장으로 경직됐다.

"뭐야?"

"모르겠어. 시스템이 뭔가를 숨기고 있었는데... 내 NPC 상태 때문에 알림이 안 떴어. 그냥 데이터만 복사되고."

카인은 그 영역에 대해 더 생각해보려 했다. 코어룸의 깊숙한 곳에서 느껴진 저항감. 마치 손을 뻗었을 때 투명한 벽에 부딪히는 듯한 감각. 그것은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설치해놓은 방어막이었다.

'뭐가 있었던 거야?'

카인의 단말기가 다시 울렸다.

【시스템 알림】배경 NPC 카인 / 현재 상태: 프로토콜 활성화 대상자로 지정됨 / 아카데미 중앙 이사회와 시스템 관리자 긴급 소집 중

이번에는 다른 알림이 떴다.

【시스템 알림】모든 플레이어에게 공지합니다. 루미에르 아카데미 중앙 관리 시스템에서 심층부 프로토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재 모든 플레이어의 능력치 재검증 중입니다. 재검증 완료 시까지 모든 던전 진입과 능력 사용이 일시 중단됩니다.

학생들의 단말기가 울음을 멈췄다. 동시에 아카데미 전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뭐... 뭐야? 시스템이 전체 재검증을?"

노엘이 단말기를 내렸다.

"이건 교감도 할 수 없는 일이야."

한 명의 교사가 나타났다. 얼굴이 창백한 중년 남자였다.

"저... 저는 시스템 관리자 보조입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프로토콜은... 본사 중앙에서만 활성화할 수 있어요. 루미에르 아카데미 지부의 교감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입니다."

카인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그렇다면 이건 누가?

"카인."

세라가 카인의 팔을 잡았다.

"너 혹시... 코어룸에서 뭔가 더 했어?"

"아뇨. 그냥 데이터만 복사했어요."

카인이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곧 깨달았다. 자신이 '아뇨'라고 존댓말을 썼다. 아직도 '평범한 신입생'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메인 타워의 모든 화면이 켜졌다. 로비의 거대한 디스플레이, 복도의 안내 화면, 모든 학생의 단말기. 동시에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루미에르 아카데미의 로고가 깜빡였다.

그리고 텍스트가 나타났다.

【루미에르 아카데미 중앙 관리 시스템】 【검토 대상: 배경 NPC 카인】 【검토 사항: 시스템 무결성 침범 및 심층부 프로토콜 우발적 활성화】 【판정: 현재 검토 중】 【예상 완료 시간: 24시간】

루벨이 웃음을 터뜨렸다. 절망의 웃음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시스템이 너를 판정 대상으로 만들었어?"

"카인..."

아론이 카인을 바라봤다.

"넌... 지금 시스템 자체를 상대하는 건 아니야?"

카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코어룸에서 자신이 한 일은 증거 복사뿐이었다. 그런데 시스템이 이렇게 반응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면...

카인의 눈이 떠졌다.

'내가 버그야.'

교감이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시스템은 카인을 버그로 인식했다. 그렇다면 카인이 시스템의 심층부에 접근했을 때 시스템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자신을 수리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뭔가 깨어났다. 루미에르 아카데미가 단순한 학교 시스템이 아니라,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라는 걸 증명하는 프로토콜이.

"카인, 우리 뭐 해야 해?"

세라가 물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카인의 팔을 잡고 있었다.

"모르겠어."

카인이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냥...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노엘이 다가왔다. 학생회장의 얼굴에는 결의가 가득했다.

"24시간이면 충분해. 그 사이에 아카데미는 확실히 변할 거야. 교감은 체포되고, 엘리트 제도는 재검토될 거고."

교사 보조가 다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특수한 장치가 들려 있었다.

"이사 교감을 임시 구금하겠습니다. 중앙에서 검사 팀이 올 때까지."

보안 요원들이 교감을 움직이게 했다. 교감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이 끝났다는 걸 아는 듯한 표정으로.

그런데 그가 지나갈 때, 카인과 눈이 마주쳤다. 교감의 눈에는 두려움만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뭔가 다른 감정도 있었다. 마치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다는 걸 아는 절망감.

카인의 단말기가 또 울렸다.

【시스템 알림】배경 NPC 카인 / 능력치 재검증 완료 대기 중 / 임시 상태: 관찰자(Observer) 등급 / 모든 시스템 제약 일시 해제 / 주의: 24시간 내 최종 판정 필요

카인이 단말기를 들었다. 능력치 창이 떠올랐다.

【카인 - 배경 NPC】 【신체능력: 0】 【지능: 0】 【직감: 0】 【공식 랭킹: 없음】

그런데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어 있었다.

【숨겨진 능력: 시스템 추적 불가능 / 시스템 진실 인식 / 시스템 심층부 접근 가능】 【현재 상태: 프로토콜 활성화 인자(Trigger)】

"뭐야 이거?"

카인이 중얼거렸다.

세라가 카인의 단말기를 봤다.

"너... 혹시 시스템의 버그가 아니라..."

세라가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 순간, 메인 타워의 모든 조명이 깜빡였다. 그리고 새로운 알림이 나타났다.

【긴급 알림】루미에르 아카데미 중앙 관리 시스템 / 현재 상태: 부분 봉쇄 모드 진입 / 이유: 미승인 프로토콜 활성화 / 영향받는 영역: 메인 타워 지하 5층 이상 / 경고: 무단 침입 시 시스템 즉시 격리 / 현재 시간: 23시간 59분 59초

카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지하 5층?'

카인은 지하 3층에서만 코어룸을 봤다. 그렇다면 지하 5층에는 뭐가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위의 알림에서 '미승인 프로토콜'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걸렸다.

누가 프로토콜을 미승인으로 남겨뒀다는 뜻인가?

"카인."

루벨이 카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넌 지금 엄청난 일을 시작했어. 알고 있어?"

카인이 루벨을 바라봤다. 루벨의 눈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동시에 기대감도 있었다.

"아직... 모르겠어요."

카인이 말했다.

"그런데 분명한 건..."

카인이 자신의 단말기를 다시 봤다. 시스템은 계속해서 카운트다운을 진행하고 있었다.

23시간 59분 58초. 23시간 59분 57초.

"이건 끝이 아니야."

카인이 말했다.

"이제 시작이야."

메인 타워의 모든 화면이 다시 깜빡였다. 그리고 마지막 알림이 나타났다.

【경고】루미에르 아카데미 중앙 관리 시스템 / 현재 상태: 부분 재부팅 중 / 예상 완료 시간: 24시간 / 재부팅 완료 후 모든 데이터 공개 예정 / 이 메시지는 배경 NPC 카인에게만 표시됩니다.

카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모든 데이터 공개?'

그것은 축제가 아니라 폭탄이었다. 아카데미의 모든 비밀이 노출되는 것. 단순히 교감의 비리를 넘어선, 시스템 자체의 비밀까지.

그리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

카인은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세라가 카인의 얼굴을 봤다.

"뭐야? 또 뭐가 됐어?"

"아카데미의... 모든 데이터가 공개될 거야."

카인이 천천히 말했다.

"교감의 거래, 엘리트 제도, 능력 조작, 시스템 프로토콜... 모든 게."

"그게... 나쁜 건가?"

아론이 물었다.

카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그것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시스템 활성화. 자신이 건드린 무언가가 야기한 연쇄반응.

루벨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놀람과 기쁨이 섞인 웃음이었다.

"그럼... 진짜로 모든 게 바뀌는 거네?"

"응."

카인이 답했다.

"진짜로."

그의 단말기의 카운트다운은 계속됐다.

23시간 59분 52초.

카인은 세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론을 바라봤다. 루벨은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엘은 단말기를 들고 뭔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 함께 기다려."

카인이 말했다.

"24시간이면 충분해. 모든 게 드러나고, 모든 게 바뀔 거야."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다른 감정도 섞여 있었다. 두려움. 책임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

메인 타워의 조명이 다시 정상화되었다. 그리고 아카데미는 새로운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그것은 파괴의 시간이었고, 동시에 재생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카인이 있었다.

단말기의 화면은 계속해서 초를 세고 있었다.

23시간 59분 45초.

카인은 그 숫자를 바라봤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뭔가 깨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하 5층의 그 무언가가. 미승인 프로토콜이 활성화되면서 봉인되어 있던 뭔가가.

카인은 자신이 코어룸에서 느꼈던 벽을 다시 떠올렸다. 투명한 벽.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치해놓은 방어막. 그것을 뚫었을 때 깨어난 프로토콜.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카인은 알았다.

자신이 시작한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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