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아카데미
메인 타워 37층 이사회 회의실. 카인은 긴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양쪽으로 다섯 명씩, 총 열 명의 이사가 카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인 군, 자네가 이 아카데미를 구했네. 부패한 교감을 적발했고, 시스템의 허점을 노출시켰으며, 진정한 공정성이 무엇인지 보여줬어."
이사회 의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자네에게 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플레이어 등급 상향. 아니, 상향이 아니라 직접 설정하겠네. 최고 등급. 그리고 이 아카데미의 명예 고문 자리도 제공하고 싶다. 자네는 앞으로 어떤 제약도 받지 않을 거야. 자네처럼 진정한 영웅을 우리는 예전에 본 적 없어."
카인은 침을 삼켰다. 이것이 자신이 바라던 것일까? 아니다. 정확히는, 자신이 바라던 것의 일부일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카인의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회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의장의 눈이 커졌다. 다른 이사들도 고개를 들며 카인을 바라봤다.
"거절한다고?"
"네. 전 플레이어 등급을 원하지 않습니다."
카인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이 시스템 자체가 부패했으니까요. 플레이어 등급을 높인다는 것은 같은 부패한 시스템 안에서 저를 특권 계급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개혁이 아니라 타협입니다."
의장이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이 게임 시스템을 없애야 합니다."
말이 나가자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게임 시스템은 애초에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데?"
"아니면, 그렇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카인이 의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실제로는 능력을 정량화하고, 그 정량화된 수치를 조작하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플레이어 등급, 경험치, 능력치, 랭킹. 모두 숫자로 환원되는 순간, 그 숫자를 조작하려는 욕구가 생깁니다. 교감은 그 욕구를 비용으로 팔았을 뿐입니다."
카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모든 학생이 동등한 기회를 가지는 진정한 교육 시스템으로 바꿔야 합니다. 게임이 아니라 교육. 경쟁이 아니라 성장. 수치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발전을 평가하는 시스템."
의장은 카인을 한참 바라봤다. 그의 표정에 뭔가가 변했다. 분노도, 거부도 아니었다. 오직 깊은 생각만이 남았다.
"자네의 제안을 검토해보겠네. 이사회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 개혁안을 수립하는 작업에 들어갈 거야. 그리고 자네는 그 작업에 참여할 수 있나?"
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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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타워 1층 로비. 카인이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세라가 나타났다. 그 옆에는 아론이, 그 뒤로 노엘이 서 있었다.
"잘됐어?"
세라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뭔가가 달라진 흔적이 보였다. 예전의 엘리트다운 냉정함이 사라지고, 온기가 흘러나왔다.
"이제 난 엘리트가 아니야."
세라가 단말기를 들었다. 화면에는 더 이상 랭킹이 없었다. 대신 "학습 진도: 87%"라는 문구만 있었다.
"우린 모두 평등해. 이제 정말로."
세라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안도감이 있었다. 엘리트라는 지위가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정말? 등급을 포기했어?"
아론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인의 필요성이 담겨 있었다.
"네. 이 시스템 자체가 문제니까요."
카인이 대답했다. 그러자 아론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쁨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누적된 불안감이 해소되는 표정이었다.
"진짜 공정한 경쟁이 시작돼. 드디어."
아론이 카인의 어깨를 쳤다. 그 손길에는 단순한 축하만 담겨 있지 않았다. 자신도 이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우리 함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가자."
노엘이 말했다. 학생회장의 목소리는 더 이상 권력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대신 동료로서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루벨이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 주변에는 검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흔적이었다.
"카인."
루벨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보폭이 불안정했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루벨의 목소리가 떨렸다. 카인은 루벨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거기에는 엘리트의 우월함이 없었다. 오직 깨달음과 회한만이 있었다.
"난 네가 뭔지 몰랐어. 넌 NPC였고, 나는 조작된 플레이어였어. 그런데도 넌 모두를 위해 싸웠고, 난... 난 그냥 자리를 지키려고 했어."
루벨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난 진짜 강한 게 뭔지도 몰랐어. 숫자가 높으니까 강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시스템에 기생하고 있었던 거야. 그걸 지금 깨달았어. 넌 아무것도 없이 모두를 지켰는데, 난..."
루벨이 무릎을 꿇을 듯했다. 세라가 그를 잡았다.
"일어서. 이미 끝났어."
카인도 한 걸음 나아갔다. 루벨의 눈을 맞췄다.
"넌 피해자였어. 이 시스템의 피해자. 모두가 그랬어. 넌 피해자였을 뿐이야."
카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차갑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제 다시 시작하자. 진정한 루벨로서."
루벨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는 예감으로 인한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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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소환**
다음 날 아침, 카인의 단말기에 알림이 떨어졌다.
【긴급 소환 / 루미에르 아카데미 이사회 / 메인 타워 회의실 / 10시 30분】
이사회가 카인을 다시 부르다니. 손가락이 떨렸다. 세라와 아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둘 다 같은 소환장을 받았다. 노엘도. 그리고 루벨까지.
10시 20분. 메인 타워 최상층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긴 테이블 한쪽 끝에는 교감 이사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곳은 이제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교육청 관계자들과 아카데미 이사진들이 앉아 있었다. 중앙에는 회장급 인물이 있었다. 은발의 여성이었다. 이름은 드론트. 루미에르 아카데미의 이사장이었다.
"카인. 앉아."
카인이 의자에 앉았다. 세라, 아론, 루벨, 노엘도 그 주변에 배치되었다. 카인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드론트 이사장이 입을 열었다.
"너희는 이 아카데미를 구했다. 부패한 시스템을 폭로했고, 수천 명의 학생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녀는 카인을 바라봤다.
"특히 너, 카인. 넌 영웅이다."
카인의 얼굴이 굳었다. 영웅? 자신은 단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증거를 모았을 뿐인데.
"우리는 결정했다. 너를 루미에르 아카데미의 공식 플레이어로 등록하기로."
카인이 숨을 쉬었다. 드디어 자신이 NPC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드론트가 손을 들었다. 스크린이 켜졌다. 그 위에는 카인의 프로필이 떠올랐다. 능력치는 모두 0이었지만,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어 있었다.
【특수 권한: 시스템 감시 및 개혁 관여】
"너에게 아카데미 시스템 개혁을 위한 특별 권한을 부여한다. 너는 이 아카데미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론트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최고 지위. 학생회장 직책, 그리고 교감 이사 이하 모든 교사에 대한 감시 권한. 너는 이 아카데미의 두 번째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다."
카인이 종이를 받았다. 손이 떨렸다. 자신이 원했던 것이 이것이었나? 생각했다. 아니었다. 자신이 원했던 것은 이 따위 권력이 아니었다.
카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절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드론트의 눈이 커졌다.
"뭐?"
"전 플레이어 지위도, 감시 권한도, 지위도 필요 없습니다."
카인이 일어섰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확고했다.
"난 플레이어가 되고 싶지 않아요. 이 시스템 자체가 부패했으니까."
루벨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세라는 카인을 바라봤다. 아론의 입이 벌어졌다.
"시스템이 문제라는 건 뭔 소리인가?"
한 이사가 소리쳤다.
"우리가 방금 이 시스템을 개혁했는데..."
"개혁이 아니라 수술입니다."
카인이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명확했다.
"이 게임 시스템 자체를 없애야 해요. 능력치, 랭킹, 경험치 시스템 전부요. 모든 학생이 동등한 기회를 가지는 진정한 교육 시스템으로 바꿔야 해."
드론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건 불가능하다. 이 시스템은 루미에르 아카데미의 정체성이야. 수십 년을 운영해온..."
"정체성이 부패 위에 세워져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카인이 테이블에 손을 짚었다.
"저는 이 시스템 때문에 무능한 척 연기했어요. 세라는 루벨과 자신을 비교했어요. 아론은 자신의 부족함을 탓했어요. 루벨은 조작된 능력 속에서 자신을 잃었어요. 그리고 교사들도 학생들도 모두 이 숫자 게임에 갇혀 있었어요."
카인이 한 명씩 바라봤다.
"모두 이 시스템의 피해자예요."
"그럼 대안이 뭔데?"
교육청 관계자가 물었다.
"모든 학생이 자신의 속도로 배울 수 있는 환경. 비교가 아닌 성장. 그리고..."
카인이 심호흡을 했다.
"투명성. 모든 평가가 공개되고, 어떤 학생도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는 시스템."
드론트가 다시 앉았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입술을 깨물었다.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수십 년간 유지해온 시스템의 폐지를 앞에 두고, 그녀는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루미에르의 명성이었고, 그 명성은 자신의 업적이었다. 하지만 그 업적이 부패 위에 세워져 있다면?
"너는 무엇을 원하는 건가?"
"학생이 되고 싶어요. 단지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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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과 변화의 시작**
회의는 3시간을 더 이어졌다.
카인은 자신의 제안을 상세히 설명했다. 세라가 구체적인 시스템 변경안을 제시했다. 아론은 일반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했다. 노엘은 학생회 차원에서 실행 방안을 제안했다. 루벨은 자신이 경험한 시스템의 폐해를 증언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빛에는 진정성이 가득했다.
"난 엘리트였어요. 최고의 능력치를 가진 플레이어였어요."
루벨이 말했다.
"하지만 그 능력이 조작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내가 뭔지 모르겠어요. 자랑스러워하던 모든 게 거짓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시스템이 계속 유지된다면? 다른 루벨들이 또 만들어질 거예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이사들은 저항했다. 수십 년간 유지해온 시스템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이사는 전통을 내세웠고, 다른 이사는 평판을 걱정했다. 또 다른 이사는 시스템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카인의 논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앞에 있는 학생들의 진정성이 거짓이 아니었다.
"만약 우리가 이 시스템을 폐지한다면, 다른 아카데미들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드론트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카인이 대답했다.
마침내, 드론트 이사장이 펜을 집었다.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서명했다.
【루미에르 아카데미 시스템 전면 개혁 결정】
【게임 인터페이스 폐지】
【능력치·랭킹 시스템 폐지】
【프리미엄 던전 폐지】
【개인 성장 중심 평가 시스템 도입】
회의실을 나오는 순간, 카인의 단말기가 울렸다.
【시스템 업데이트 시작】
【기존 시스템 제거 중...】
【새로운 시스템 로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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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변화**
그 날 오후, 메인 홀에서 만났다.
세라가 자신의 단말기를 들었다. 화면에는 더 이상 랭킹이 없었다. 대신 "학습 진도: 87%"라는 문구만 있었다. 그녀는 그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이제 난 엘리트가 아니야."
세라의 목소리에는 해방감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은 듯한 허전함도 흘러나왔다. 엘리트라는 정체성이 자신의 전부였던 그녀에게, 그것은 작지 않은 변화였다. 누군가와 비교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 하지만 그 자유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찾아야 한다는 부담도 함께였다.
"하지만 이게 낫다. 진짜로."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와 비교받지 않아도 되고, 항상 최고여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났어. 이제 나는 그냥... 나야. 그게 누구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론이 옆에 서있었다. 그의 얼굴은 밝았지만, 그 눈빛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진짜 공정한 경쟁이 시작돼. 이제부턴 노력하는 만큼 인정받을 수 있어."
아론의 목소리에는 새로운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동안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이것은 진정한 기회였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있었다. 정말로 공정하게 평가받을까? 자신의 노력이 충분할까?
"난 이제 더 이상 '평범한 학생'이 아니야. 그냥 학생이 되는 거야.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알아?"
노엘은 학생회 배지를 내렸다. 그 자리에 새로운 배지가 붙었다. "학급 대표"라는 단순한 문구였다. 권력의 상징이 아닌, 책임의 표시였다.
"회장 직책도 없어졌어. 우리는 모두 같은 학생이 되었어."
노엘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책임감도 함께 있었다. 권력을 잃었다는 안도감 뒤에, 이제 설득으로만 움직여야 한다는 새로운 무게도 있었다.
"이제 난 권력으로 뭔가를 할 수 없어. 대신 설득하고, 함께 결정해야 해. 그게 더 힘들지만... 더 진정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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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벨의 속죄와 재구성**
카인이 기숙사 로비에서 루벨을 만났다.
루벨은 카인 앞에 섰다. 그의 눈은 불안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진 후의, 그 폐허 속에서 뭔가를 다시 세우려는 사람의 눈이었다.
"카인, 나... 나한테 기회를 줄 수 있을까?"
카인이 잠깐 생각했다. 루벨을 바라봤다. 그는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았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루벨의 목소리는 떨렸다.
"난 시스템의 최고 수혜자였어. 그래서 시스템을 의심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 알아. 난 그 안에서 진짜 강함을 배운 적이 없었어. 단지 조작된 숫자만 올렸을 뿐이야."
루벨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내 능력이 조작되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알아? 내가 뭔지 모르겠어. 지금까지 자랑스러워하던 모든 게 거짓이었어. 그럼 난 뭐야? 누구야?"
카인이 루벨을 바라봤다. 이것이 진정한 위기였다. 루벨의 자존감 붕괴가 단순한 눈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정체성의 완전한 붕괴였다.
"넌 피해자였어."
카인이 천천히 말했다.
"이 시스템의 피해자. 너는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었어.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난 알아. 하지만 그 고통이 너를 죽이는 게 아니야. 그것이 너를 다시 만드는 거야."
루벨이 고개를 들었다.
"다시 만든다고? 난 이미 망가졌는데..."
"아니야. 넌 이제 시작이야."
카인이 루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조작된 능력이 아닌, 진정한 루벨을 찾을 수 있는 기회야.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평생 모르고 산다. 하지만 넌 지금 그걸 알 수 있어. 고통스럽지만 진정한 너를."
루벨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정말로?"
"정말로. 이제 다시 시작하자. 진정한 루벨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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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의 루미에르 아카데미**
학교는 완전히 바뀌었다.
교실에는 칠판이 돌아왔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진도를 개별적으로 관찰했다. 그룹 프로젝트는 경쟁이 아닌 협력의 장이 되었다. 학생들은 서로를 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프리미엄 던전이 있던 자리에는 열린 도서관이 생겼다. 모든 학생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다. 시험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각 학생은 자신의 발전만을 기록했다. 누군가는 빠르게 진도를 나가고, 누군가는 천천히 깊게 배웠다. 그 모든 것이 인정받았다.
어느 날 오후, 카인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시험을 치렀다. 이전의 시험과는 완전히 달랐다. 등급이나 순위가 없었다. 대신 자신의 이해도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부분을 더 보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피드백이었다. 시험 후 교사와의 상담에서 카인은 처음으로 진정한 조언을 받았다.
"넌 이 부분에서 좋은 이해를 보였어. 하지만 여기서 좀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다음 주에 함께 살펴보자."
교사의 말이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함께하는 성장이었다.
또 다른 날,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갈등이 일어났다. 프로젝트 조편성에서 한 학생이 자신이 선택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이전 시스템이었다면 능력치로 판단되었겠지만, 이제는 달랐다. 노엘이 중심이 되어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를 재편성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능력이 뛰어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함께 일하면서, 각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카인은 이제 정말로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다른 평범함이었다. 그는 더 이상 투명한 존재가 아니었고, 동시에 특별한 권력도 없었다. 단지 학생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루벨은 여전히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이제 성장의 고민이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뭔지, 자신이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찾는 고민이었다. 시스템이 정해준 길이 아닌, 자신이 선택하는 길을 찾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예상 밖의 분야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음악이었다. 이전 시스템에서는 능력치가 없어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였다.
세라는 엘리트의 부담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공부를 즐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비교받지 않는 자유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관심 있는 분야를 탐색하고 있었다.
아론은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는 경험을 하며 자신감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한 불안감도 있었다. 이 새로운 시스템에서 자신이 정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노엘은 권력 대신 책임을 배우고 있었다. 학급 대표로서, 설득과 타협의 어려움을 체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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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션**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 카인의 단말기가 울렸다.
【배경 NPC 카인 / 정체 복구 완료】
【새로운 플레이어로 등록됨】
【첫 미션: 아카데미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카인은 웃음이 나왔다. 이제 자신은 더 이상 투명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카데미가 변했다는 것이었다.
카인이 창밖을 봤다.
그 순간, 그의 눈이 멈췄다.
단말기의 뉴스 헤더라인이 떠올랐다.
【전 세계 교육 기관, 게임 시스템 도입 급증】
【엘리트 아카데미, 루미에르 모델 복제 시작】
【아시아 지역, 5개 신규 게임형 교육 시설 개교】
카인의 웃음이 멈췄다.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했다. 기사가 확대되었다.
루미에르 아카데미의 시스템이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개혁된 새로운 시스템이 아니었다. 원본이었다. 부패한 원래의 게임 시스템이, 세계 곳곳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가동되고 있었다.
기사의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니, 루미에르의 개혁 소식은 거의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대신 "루미에르 모델"이라고 불리는 게임형 교육 시스템이 '공정성과 효율성의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어떤 곳은 원본을 그대로 복제했고, 어떤 곳은 더욱 가혹한 버전으로 변형했다.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세계 곳곳에서 같은 부패가 반복되고 있었다.
카인은 다른 기사들을 찾아봤다. 루미에르 아카데미가 게임 시스템을 폐지했다는 소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그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세계는 루미에르의 성공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부패의 시스템이었다.
또 다른 알림이 울렸다.
【국제 교육 위원회 긴급 소환】
【카인 학생, 아카데미 개혁 사례 공유를 위해 선정됨】
【출국 준비 기간: 1주일】
【주요 내용: 게임형 교육 시스템의 국제 표준화 회의】
카인은 단말기를 내려놨다. 가슴이 철렁했다.
한 곳을 고쳤다고 생각했다. 루미에르 아카데미는 변했다. 하지만 세상은 훨씬 더 컸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이 부패한 시스템이 퍼져 있었다. 그리고 루미에르의 개혁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원래의 부패한 시스템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고쳤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시작에 불과했다.
왜 루미에르의 개혁이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카인은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드론트 이사장이 서명한 개혁안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이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것 같았다. 혹은 발표되었지만 묻혀버렸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숨겨진 것일 수도 있었다.
카인은 천천히 일어나 창으로 나갔다.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아래 도시는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어딘가에서, 또 다른 아이들이 같은 부정부패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 거였다. 자신처럼 투명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아이들. 조작된 능력 속에서 자신을 잃은 아이들. 경쟁에 짓눌린 아이들. 그리고 루벨처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아이들.
카인은 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다른 웃음이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의 웃음이었다. 불안감과 결의가 뒤섞인 웃음이었다.
루미에르 아카데미는 변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루미에르의 개혁이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했다. 그것이 다음 전투의 시작이 될 것 같았다.
단말기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국제 교육 위원회 출국까지: 6일 23시간 47분】
카인은 창문을 닫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세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론에게도. 루벨에게도. 노엘에게도.
그들의 답장은 빠르게 돌아왔다.
"우리도 함께 가."
진정한 여정이 지금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불안함도 있었지만,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