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의 도망은 생각보다 길었다.
카인은 세라의 손을 잡은 채 계단을 세 칸씩 내려뛰었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심장이 박동을 놓쳤다. 뒤에서 루벨의 음성이 들렸다. 고함이 아닌 차가운 말투였다.
"멈춰."
카인은 멈추지 않았다.
메인 타워 4층에 도달했을 때, 세라가 중간 복도로 카인을 끌어당겼다. 복도는 어두웠다. 밤 11시를 넘긴 시간이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숙사에 있었다. 카인과 세라는 벽에 등을 대고 숨을 고르며 귀를 기울였다.
루벨의 발걸음 소리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비상 시스템 활성화," 루벨이 말했다. 음성 명령이었다. 시스템이 응답했다.
"플레이어 루벨, 추적 모드 활성화. 주변 3층 범위 내 모든 이동 감지."
카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세라를 바라봤다. 세라도 같은 표정이었다. 추적 모드는 엘리트만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루벨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어떤 대가도 치르겠다는.
"이 방향이야," 루벨이 중얼거렸다.
카인은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투명화.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카인의 몸이 사라졌다. 공기 중에 남은 것은 온기뿐이었다. 세라가 카인의 손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카인은 세라에게 입모양으로 신호를 보냈다. 움직이지 말 것. 숨을 쉬지 말 것.
루벨이 복도 모퉁이를 돌아왔다. 그의 눈이 세라를 포착했다.
"너."
루벨은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능력치는 화면상 초록색으로 떴다. 모든 센서가 가동 중이었다. 하지만 투명한 카인은 그의 감지 범위에 나타나지 않았다. 배경 NPC는 시스템 자체가 인식하지 않는 존재였다.
"세라. 너 뭐 하는 거야?" 루벨이 물었다. 목소리에는 친절함이 있었지만, 눈에는 없었다.
"그냥... 산책이야," 세라가 대답했다.
"이 시간에?"
"응."
루벨이 한 발 더 다가갔다. "넌 뭘 봤니?"
투명한 카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들어올릴 수도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위험했다. 루벨이 세라의 앞에 섰다. 루벨의 손이 올라갔다.
그 순간.
"학생회장 노엘 호출. 긴급 상황 발생," 시스템의 음성이 울렸다.
루벨의 손이 멈췄다. 그가 단말기를 확인했다. 그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거래실이... 비어있다?"
루벨이 세라의 앞을 떠났다. 계단을 향해 달아났다. 세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루벨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인이 나타났다. 투명화가 풀렸다. 그의 호흡은 가쁠 대로 가팬다.
"거래실이...?"
"노엘이 점검 나왔어. 우리보다 먼저."
카인의 뇌가 재빨리 돌아갔다. 노엘. 학생회장 노엘이 거래실을 점검하고 있었단 말인가? 시간이 맞지 않았다. 계획상 노엘은 지금 학생회실에 있어야 했다. 내일 오후 3시에 증거를 제출받기로 했었는데.
카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노엘이 거래실을 점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 알렸단 말인가. 아니면 노엘이 독자적으로 행동한 건가.
"노엘이 뭘 알고 있는 거야?" 카인이 중얼거렸다.
"몰라. 하지만 지금 거기 가면..."
"위험해."
둘은 침묵했다. 복도의 형광등이 따갑게 울렸다. 멀리서 루벨의 발소리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큰 발소리였다. 뛰고 있었다.
"우리도 가야 해," 카인이 말했다.
그들은 반대쪽 계단으로 내려갔다. 2층을 거쳐 1층으로. 지하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멈췄다.
카인의 눈이 지하 방향을 향했다.
"뭐 하는 거야?" 세라가 물었다.
"거래실의 영상만으로는... 부족해."
"무슨 말이야?"
"루벨이 거래실을 비웠다. 노엘에게 걸려 당황했을 것 같아. 그 말은..."
카인이 세라를 마주봤다. 그의 눈이 결연해 보였다.
"증거를 없애려고 할 거야. 시스템에서. 코어룸에서."
"아니야. 코어룸은... 그건 너무..."
"모든 플레이어 데이터가 저장된 곳이야. 루벨의 능력 부스팅 기록도 거기 있어. 거래 흔적도. 시스템 조작 로그도. 영상만 있어서는 부족해. 그들은 '시스템 오류'라고 말할 거야. 하지만 코어룸의 데이터는 거짓을 말할 수 없어."
세라가 카인의 팔을 잡았다. "코어룸에 가면... 너 삭제될 수 있어."
"알아."
"그럼 왜..."
"일반 학생들을 위해서야."
카인이 세라의 손을 풀었다. 그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입구 앞에 섰다. 계단은 어두웠다. 지하 3층까지 이어지는 계단. 그곳이 시스템 코어룸이었다.
카인의 발이 첫 번째 계단에 닿았다.
"기다려," 세라가 말했다. "혼자 가지 마."
"너는 여기서 기다려. 누군가는 위에서 감시해야 해."
"그건..."
"약속이야. 내가 돌아올 때까지."
세라는 카인의 손을 놓았다. 그의 결연한 표정 앞에서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카인은 계단을 내려갔다. 세라는 계단 입구에 서서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었다.
지하 2층에 도착했을 때, 카인은 시스템 경고를 받았다.
"배경 NPC의 금지 구역 진입 감지. 30초 후 시스템 추적 활성화."
카인은 계속 내려갔다.
"20초."
지하 3층의 문이 보였다. 거대한 합금 문. 코어룸의 입구. 카인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문의 패널에 터치했다. 배경 NPC의 특수성이 작동했다. 시스템 제약을 우회하는 그 기묘한 능력.
"10초."
문이 열렸다. 카인은 안으로 들어섰다.
"3초. 2초. 1초."
시스템의 음성이 울렸다. 이전과는 다른 톤이었다. 차갑고 기계적이었다.
"배경 NPC의 코어룸 접근 시도 감지. 보안 위협 레벨 최고 상향 조정. 삭제 대상으로 재분류. 시스템 추적 시작."
카인의 몸이 떨렸다. 이제 끝이었다. 이제 정말로 끝이었다. 그가 삭제될 때까지의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시스템은 말하지 않았다.
카인이 투명화했다.
코어룸 내부는 거대한 서버 공간이었다. 무수한 홀로그래픽 화면들이 떠있었다. 모든 플레이어의 데이터가 여기 저장되어 있었다. 루벨의 능력치 변화 그래프. 경험치 급등 기록. 거래 내역.
카인은 빠르게 움직였다. 손가락이 공중에서 화면들을 헤쳤다. 루벨의 데이터를 찾아야 했다. 능력치 상향 기록. 날짜별로. 금액별로.
화면이 넘어갔다. 다음 화면. 또 다음. 카인의 눈이 정보를 스캔했다. 거래 기록이 나타났다. 루벨의 이름. 거래 상대. 금액. 날짜. 모두 명확했다. 이것이 증거였다. 이것이 루벨을 끌어내릴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배경 NPC 추적 진행 중. 현재 위치: 코어룸 내부."
카인은 더 빨리 움직였다.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했다. 데이터 복사. 자신의 단말기로 전송. 시간이 없었다. 추적자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카인의 손이 떨렸다. 한 번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았다. 데이터를 놓치면 모든 것이 끝났다. 루벨은 계속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일반 학생들은 계속 속을 수 있었다.
전송 진행률이 올라갔다. 23%. 45%. 67%.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배경 NPC 발견 임박."
카인은 투명 상태를 유지한 채 움직였다. 코어룸의 다른 쪽으로. 추적자들이 들어왔다. 교감의 직원들이었다. 3명. 그들은 카인을 볼 수 없었다. 배경 NPC는 시스템 화면에만 나타났다.
"여기 어딘가에 있어. 센서가 반응했어."
카인은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투명 상태의 신체는 물리적 실체를 유지했다. 옷깃이 직원의 어깨를 스쳐나갔다. 직원이 움찔했지만, 시각적으로는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전송 진행률이 89%에 도달했다.
카인은 코어룸을 빠져나갔다. 투명 상태 그대로. 계단을 올라갔다. 2층. 1층. 지상층.
시스템의 음성이 계속 울렸다.
"배경 NPC 추적 진행 중. 현재 위치: 메인 타워 1층."
카인은 복도를 뛰었다. 기숙사 방향으로. 자신의 방으로. 317호. 투명 상태를 유지한 채. 문을 열었다.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투명화가 풀렸다.
카인의 호흡이 가쁠 대로 가팬다. 침대에 앉았다. 손이 떨렸다. 단말기를 확인했다. 전송 완료. 루벨의 부정부패의 증거는 이제 카인의 손에 있었다.
하지만 대가가 있었다.
시스템의 음성이 울렸다.
"배경 NPC 카인. 삭제 예정일: 3일 후. 최종 경고."
카인의 눈이 감겨졌다. 3일. 그게 남은 시간이었다.
그 순간.
두드림 소리가 들렸다.
카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천천하고 의도적인 리듬. 밤 12시 14분. 누가 이 시간에.
카인이 일어났다. 문 앞으로 갔다. 도어 스코프를 통해 봤다.
루벨이 서 있었다.
루벨의 입이 움직였다. 음성이 문을 통해 들렸다.
"내가 찾던 감시자가 바로 너였나?"
카인의 심장이 멈췄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루벨은 여전히 문 밖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진정되어 있었지만, 눈빛은 칼날처럼 예리했다. 저녁 내내 카인을 추적했던 사람. 지금 이 순간 문 너머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
"문을 열어."
루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무섭게 들렸다. 명령이 아니라 당연한 진행처럼 들렸다.
카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뇌가 고속으로 회전했다. 루벨이 자신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가. 거래실에서? 아니면 더 일찍?
카인은 루벨의 의심 과정을 재구성하려 했다. 프리미엄 던전 입구에서 여러 번 봤다고 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인가. 첫 주? 아니면 그 전부터?
거래실 복도에서도 봤다고 했다. 거래실은 루벨이 자주 가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카인을 여러 번 마주쳤다면, 루벨은 이미 의심했을 것이다. 배경 NPC가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코어룸 복도에서.
루벨은 카인을 찾기 위해 얼마나 오래 이곳을 감시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 그 모든 과정이 루벨의 얼굴에 피로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없어. 셋까지 센다."
루벨의 손이 문을 밀었다. 문이 흔들렸다. 기숙사의 문은 약했다. 손목의 힘만으로도 열릴 수 있었다.
"하나."
카인은 빠르게 생각했다. 문을 열면 루벨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나면? 자신을 죽일 수는 없다. 아카데미 내에서는.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시스템에 신고. 강제 퇴학. 아니면 더 나쁜 것.
"둘."
카인의 손이 문고리에 닿았다.
"셋."
문이 열렸다.
루벨이 들어왔다. 제복을 정확히 입은 엘리트의 모습 그대로. 하지만 눈에는 피로가 서려 있었다. 이 밤 내내 카인을 찾으려고 애쓴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넌 뭐야?"
루벨이 물었다. 질문이 아니었다. 심문이었다.
"평범한 신입생이지."
카인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자신도 놀랐다.
루벨이 웃었다. 짧은 웃음. 공허한 웃음.
"평범한 신입생이 시스템 감시를 피한다고? 평범한 신입생이 코어룸에 접근한다고?" 루벨이 한 발 더 들어왔다. "난 너를 여러 번 봤어. 프리미엄 던전 입구에서. 거래실 복도에서. 그리고 오늘, 코어룸 복도에서. 세 번 모두 너는 시스템 감시 범위 밖에 있었어."
루벨은 한 걸음씩 카인에게 다가갔다. 그의 말이 계속 흘러나왔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어. 시스템이 너를 인식 못 한다는 게. 하지만 생각해보니 설명이 된다. 넌 버그야. 시스템의 오류로 등록된 존재. 그리고 그 오류 때문에 넌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한다."
루벨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카인과 루벨 사이의 거리는 이제 2미터도 채 안 되었다. 카인은 루벨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엘리트의 신체에서 나오는 그 압도적인 존재감.
"거래실에서 영상을 녹화했지. 코어룸에서 데이터를 복사했지. 넌 증거를 모으고 있어. 그리고 나는 그동안 계속 의심했어. 누가 날 감시하는지. 누가 우리의 거래를 기록하는지. 오늘 알았어. 너야."
루벨의 말이 계속되었다. 카인의 가슴팍이 철렁 내려앉았다. 루벨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거래실. 코어룸. 그리고 자신의 정체까지.
카인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손가락 끝에서 손톱이 파고들었다. 루벨의 힘과 카인의 힘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났다. 상위 1% 엘리트의 신체능력과 입시 탈락자의 신체능력. 하지만 카인에게는 루벨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투명화.
"좋아. 그렇다면 더 간단하게 얘기하지."
루벨이 말했다. 카인이 투명 상태로 변했을 때, 루벨은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루벨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명 상태의 존재도 여전히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나한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첫 번째, 내가 너를 고발한다. 시스템에. 그럼 넌 3일 안에 삭제돼. 너 자신도 알고 있겠지. 이미 시스템이 경고했잖아."
투명한 카인의 호흡이 가빠졌다. 루벨의 말이 정확했다. 너무나 정확했다. 마치 카인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두 번째, 넌 나한테 손을 잡아줘. 지금까지 모은 모든 증거를 나한테 준다. 거래실 영상. 코어룸 데이터. 모든 것. 그럼 나는 조용히 이 문제를 처리할 거야. 넌 계속 살 수 있어. 시스템 삭제도 피할 수 있고."
침묵이 흘렀다. 투명한 카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루벨의 말은 계속되었다.
"생각할 시간을 줄게. 하지만 많지는 않아. 내일 오후 3시. 학생회장 노엘이 증거를 공개하려고 계획하고 있어. 넌 알겠지? 세라가 그 계획을 세웠다는 것."
투명화가 풀렸다.
카인을 바라보는 루벨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손 안에 있다는 듯한 표정. 카인의 가슴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가슴팍을 누르는 듯한 절망감. 배신감. 그리고 계산하는 뇌.
루벨이 계속 말했다. 카인의 눈을 마주보며.
"난 이미 노엘을 조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 내일 오후 2시 30분, 노엘이 영상을 열 때, 그것은 가짜가 될 거야. 내가 준비한 깊페이크."
*깊페이크.*
카인의 투명 상태에서 호흡이 가늘어졌다. 루벨이 그것을 감지했을까. 아니다. 루벨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넌 선택해야 돼. 나한테 항복할 건지. 아니면 함께 망할 건지."
루벨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 손을 문고리에 올렸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 말을 남겼다.
"시간 제한은 12시간. 내일 오후 3시까지 답변을 줘. 그때까지 내게 연락하지 않으면, 난 노엘에게 모든 진실을 고백할 거야. 그리고 넌 시스템과 나 사이에서 으깬 신분이 될 거다. 누구도 넌 도와주지 않을 거야."
문이 닫혔다.
카인은 혼자 남겨졌다.
방 안의 조용함이 귀를 먹먹하게 했다. 침대 위에 앉은 카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루벨이 한 말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깊페이크.*
*조종.*
*12시간.*
카인은 자신의 단말기를 꺼냈다. 이미 저장된 메시지가 있었다. 세라로부터의 메시지. 오후 11시 47분에 온 것이었다.
"카인, 준비됐어? 내일 오후 3시 노엘에게 모든 증거를 전달하기로 했잖아. 루벨은 지금 어딘가에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린 이미 이겼어. 증거가 있으니까."
카인은 단말기를 내려놨다. 세라에게 먼저 연락해야 했다. 코어룸에서 나왔는지 확인해야 했다. 루벨의 추적을 피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카인은 다시 단말기를 집어 들었다. 세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코어룸 나왔어. 안전한 곳에 있어?"
응답이 없었다. 카인의 불안감이 커졌다. 세라는 계단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었다. 루벨의 추적이 시작되었을 때 계단 입구에 있었다면, 루벨이 지나갈 때 발각되었을 수도 있었다.
잠시 후, 세라의 메시지가 왔다.
"계단 입구에서 루벨을 봤어. 코어룸 방향에서 올라오고 있었어."
카인의 심장이 철렁했다. 세라가 루벨과 마주쳤다는 말인가.
"넌 괜찮아?"
"응. 루벨이 나한테 집중하기 전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어. 지금 기숙사 뒤 숲에 있어. 안전해."
카인은 한숨을 쉬었다. 세라는 안전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노엘이었다. 노엘에게 깊페이크의 위협을 알려야 했다. 그리고 루벨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려야 했다.
카인은 메시지를 입력했다.
"세라, 지금 노엘에게 연락할 수 있어? 루벨이 깊페이크를 준비 중이야. 내일 오후 2시 30분에 영상을 조작할 거야. 노엘이 알아야 해."
"지금?"
"지금이야. 시간이 없어."
카인은 노엘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영상 공개 전에 꼭 연락해. 긴급 상황이야."
그리고 아론에게도.
"아론, 깨어 있어? 세라 봤어?"
메시지들이 보내졌다.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1분. 2분. 3분.
노엘의 메시지가 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시간에?"
"루벨이 내일 영상을 조작할 거야. 깊페이크로. 내일 오후 2시 30분에. 넌 조심해야 해."
"뭐라고?"
카인은 상황을 설명했다. 루벨의 협박. 12시간의 시간 제한. 깊페이크 위협. 노엘이 영상을 열 때 그것이 조작될 것이라는 것.
노엘의 응답이 왔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 영상 없이?"
"코어룸 데이터가 있어. 루벨의 거래 기록이 모두 저장되어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코어룸에 접근했어?"
"응. 데이터는 이미 복사했어. 하지만 시스템이 나를 삭제 대상으로 재분류했어. 3일 후에 삭제될 거야."
침묵이 흘렀다. 노엘의 다음 메시지가 올 때까지 긴 시간이 지났다.
"만나자. 지금."
"지금?"
"응. 학생회실에서. 우린 계획을 바꿔야 해."
카인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통해 밤의 아카데미를 바라봤다. 저 어딘가에서 세라는 숲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노엘은 학생회실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루벨은 자신이 만든 함정 안에서 카인의 다음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12시간. 그것이 남은 시간이었다.
카인은 방을 나갔다. 어둠 속으로. 학생회실을 향해.
루벨은 자신의 함정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해도 카인이 죽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벨은 한 가지를 놓쳤다.
카인은 배경 NPC였다. 시스템이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제약이 아니라, 동시에 자유였다.
계단을 내려가는 카인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어둠 속에서 눈빛이 변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숨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사냥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