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15분, 지하 도서관.
"넌 뭘 봤어?"
세라가 책장 사이로 나타났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검은 교복 위의 학생회 휘장이 희미한 조명 아래 반짝였다.
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루벨이 뭔가 하고 있어. 어제부터 계속 기숙사 밖으로 나가고, 돌아오는 시간도 들쑥날쑥해. 그리고—" 세라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넌 그걸 알고 있지?"
"본 게 없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세라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시스템을 향한 것임을 카인은 알았다.
"루벨의 능력치가 일주일 만에 79에서 87로 올랐어. 그런 게 가능한가? 나는 3개월에 5 올렸는데." 세라가 말했다. "시스템이 공정하다면 그럴 수 없어야 한다. 근데 루벨은 할 수 있다. 왜일까?"
"모릅니다."
"그럼 왜 거래실 근처에 있었어? 프리미엄 던전 복도에서? 루벨이 가는 곳마다?"
카인의 손가락이 떨렸다.
"난 너를 감시해. 학생회 2위로서 규칙 위반을 확인하는 게 내 직책이거든. 그러다 보니 보여. 넌 뭔가 다르다는 게." 세라가 말했다. "그리고 루벨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았어. 어제 저녁에 드루이드한테 '혹시 누가 나한테 따라다니고 있진 않을까'라고 했거든."
침묵이 흘렀다.
"그 '누가'는 너야. 그리고 난 넌 이 학교를 공정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 세라가 말했다. "맞지?"
카인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
카인이 손을 뻗었다. 단말기 화면에 영상 파일이 떴다. 음성 파일도 있었다. 루벨과 교감의 대화였다.
"능력치 조작 거래. 시험 문제 유출. 경쟁자 약화 계약."
세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화면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이게... 확실해?"
"확실합니다."
"그럼 이걸 바로 폭로해야 하는데—"
"아직입니다." 카인이 끊었다. "이건 음성 파일이고, 루벨이 거짓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우린 영상이 필요합니다. 거래실에서의 직접적인 거래 영상."
세라가 생각에 잠겼다.
"거래실은 지하 2층이야. 학생 접근 금지 구역이고, 카메라도 있고—"
"학생회 권한이 있습니다. 지하 시설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세라의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에는 결단이 있었다.
"노엘을 만나자."
---
학생회실. 밤 10시 42분.
노엘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학생회장 배지가 가슴에 반짝였다. 세라를 본 후 그 뒤에 서 있는 카인을 봤다.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신입생?"
"네. 이 학생이 지하 시설 점검에 필요하대요. 기숙사 배관 문제 때문에."
거짓말이 자연스러웠다.
노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근데 왜 밤에?"
"낮에는 학생들이 많아서. 더 정확하게 점검할 수 있어요."
노엘은 책상 서랍에서 카드를 꺼냈다. 마스터 키 카드였다. 그는 카드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더니, 카인을 정면으로 마주봤다.
"넌 정말 신입생이야?"
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엘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의심의 웃음이 아니었다. 이해의 웃음이었다.
"넌 시스템에 안 보이지?"
카인의 몸이 경직되었다.
"공정함을 위해서라면, 규칙을 깨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해." 노엘이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그는 카드를 세라에게 건넸다.
"1시간만 하고 반납해. 보안실에 연락하지 말고 조용히 진행해."
"알겠습니다."
세라가 카드를 받았다. 카인은 그제야 숨을 쉬었다. 노엘의 눈이 다시 카인을 향했다.
"넌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그걸 계속해."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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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2층. 밤 11시 3분.
거래실의 문이 열렸다. 내부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책상, 의자, 그리고 벽장. 어떤 카메라도 보이지 않았다.
세라가 들고 온 소형 카메라를 꺼냈다. 손가락 크기만 한 렌즈였다. 카인이 책상 모서리에 접착제로 붙였다.
"들켜도 배관 점검 기구라고 하면 돼."
카인의 손가락이 정확했다. 카메라는 책상과 의자 전체를 포착할 수 있는 각도에 설치되었다.
세라가 카인을 봤다.
"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
카인은 손을 내렸다.
"이게 맞는 일이니까요."
"맞는 일?" 세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신뢰였다. "넌 정말 신입생이 맞아?"
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라가 한 발 가까워졌다. 그리고 카인의 손을 잡았다.
"우린 이걸 해야 해. 진짜로. 이게 공정함을 위한 거라면."
세라의 목소리가 작았지만 확고했다. 카인은 손을 더 꼭 잡았다. 그 순간, 그들은 진정한 동맹이 되었다.
손을 놨다.
카인의 단말기가 울렸다.
**[거래 예정 시간 변경]** **[루벨·교감 거래 일정: 내일(목요일) 23:30 → 오늘(수요일) 23:45로 변경]** **[변경 사유: 긴급 보안 점검]**
6분 뒤였다.
"뭐야?"
세라가 화면을 봤다.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거래가 지금 시작돼."
두 사람이 거래실 문을 닫았다. 카메라는 켜져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들렸다.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그 순간, 다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위층에서. 기숙사 3층에서.
"카인!"
아론이 복도에서 나타났다. 그의 표정은 심각했다. 카인과 세라는 계단 중간에 서 있었다.
"넌 뭔가 숨기고 있지?"
아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분노가 아니라 배신감이었다.
"아론—"
"넌 날 피해. 계속. 어제도, 오늘도. 넌 뭔가를 하고 있어. 혼자. 넌 왜 날 믿지 않는 거야?"
카인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가 닫았다.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론이 NPC 정체를 알면 루벨이 이용할 수도 있다.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시간이 없어."
카인이 간신히 말했다.
"지금이 맞아. 지금 말해. 넌 뭘 하고 있는 거야?"
기숙사 복도의 불이 모두 켜졌다. 밤 11시 44분.
카인은 선택을 해야 했다. 아론에게 진실을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둘 다 아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미안해."
카인이 계단을 내려갔다. 세라가 뒤를 따랐다. 아론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카인! 넌 뭐야?!"
지하 1층. 복도의 카메라가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카인은 카메라에 보이지 않았다. 세라만 보였다.
그리고 지하 2층의 문이 열렸다.
루벨이 들어섰다. 그 뒤에 교감이 있었다.
카메라가 켜져 있었다.
카인은 즉시 움직였다. 세라가 팔을 잡았다.
"화장실."
세라가 속삭였다. 손가락이 복도 끝 화장실 문을 가리켰다. 문이 닫히는 순간, 루벨과 교감이 지하 2층에서 나타났다.
거래실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루벨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사님, 왜 시간을 앞당기셨습니까?"
"보안 감시가 강화될 예정이다. 미리 진행하는 게 낫다."
교감의 목소리는 차갑고 결연했다. 거래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카인과 세라는 화장실 안에서 숨을 죽였다. 세라의 손이 카인의 손을 찾았다.
"카메라가 켜져 있어?"
세라가 입술만 움직여 물었다.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2층의 거래실. 지금 이 순간, 루벨과 교감의 음성, 그들의 모습, 거래의 구체적 내용이 모두 녹화되고 있었다.
5분이 지났다.
지하 2층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학생회 순찰대일 가능성이 높았다. 밤 11시 48분. 야간 순찰 시간이었다.
카인은 화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복도는 비어 있었다. 하지만 위층에서 아론의 목소리가 여전히 들렸다.
"카인! 대답해!"
"우린 거기 갈 수 없어. 아론이 있어."
"알아."
카인이 단말기를 꺼냈다. 카메라 상태를 확인했다. 녹화 중. 음성도 선명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루벨과 교감의 대화가 명확하게 기록되고 있었다.
세라가 카인의 팔을 잡아당겼다. 위층의 아론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 나가면 들켜."
세라가 화장실로 카인을 밀어 넣었다. 문이 닫혔다.
아론이 지하 1층에 도착했다. 그의 눈이 복도를 훑었다. 텅 빈 복도. 아무도 없었다.
아론은 화장실 문을 밀었다. 안은 비어 있었다. 그는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화장실 안에서 카인과 세라는 숨을 내쉬었다.
"거래가 끝나고 있는 것 같아."
세라가 귀를 기울였다. 지하 2층의 거래실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루벨과 교감이 나갔다.
"다음 거래는 금요일이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루벨의 목소리에는 만족감이 묻어났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멀어졌다.
카인은 화장실을 나왔다. 세라를 따라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거래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책상 모서리에 붙인 카메라가 여전히 켜져 있었다.
"다 받았어?"
세라가 물었다.
카인이 단말기를 확인했다. 녹화 시간: 12분 37초. 음성 품질: 최상. 영상 품질: 선명.
"네. 모두."
세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승리의 미소가 아니었다. 안도의 미소였다.
"이제 증거를 수집했어. 루벨과 교감의 거래 내용, 능력치 조작, 뇌물의 구체적 액수. 모든 게 여기 있어."
"학생회에 제출하면?"
"노엘이 즉시 행동할 거야. 그는 진정으로 공정성을 원하는 사람이야."
세라가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손가락 크기의 저장장치였다. 그 안에는 루미에르 아카데미의 모든 비밀이 들어 있었다.
"내일 오후 3시. 학생회실에서 노엘을 만나. 증거를 보여주고 함께 계획을 짜자."
"네."
카인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론이 뭔가 눈치 챘어."
"알아. 봤어. 하지만 아직 뭔지는 모르는 것 같아."
세라가 카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넌 그한테 뭐라고 할 거야?"
카인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아론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아론은 카인의 친구였고, 지금 카인은 아론을 완전히 배신한 상태였다.
"일단 오늘 밤은 피해. 내일 아침에 아론을 만나."
세라가 말했다.
"뭐라고?"
"진실을 말해. 모든 걸. 아론은 넌 믿을 수 있는 친구야."
카인은 세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론의 배신감 어린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두 사람이 지하 2층을 빠져나갔다. 거래실의 문이 닫혔다. 카메라는 꺼졌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복도. 밤 11시 57분.
아론은 카인의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배신감이 섞여 있었다.
"넌 어디 갔어?"
"화장실."
"거짓말 하지 마. 난 봤어. 넌 세라와 함께 지하에 있었어. 뭘 하고 있는 거야?"
카인은 아론을 직시했다. 그 순간, 아론의 표정이 변했다. 카인의 눈에 무언가가 있었다. 결연함이었다.
"넌 뭐야, 카인?"
아론이 한 발 물러섰다.
"평범한 신입생이 아니야. 넌 뭔가 다르다고."
카인은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아론의 안전이 달려 있었다.
"알겠어. 넌 말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럼 난 물어보지 않겠어."
아론이 돌아섰다.
"하지만 넌 기억해. 난 널 믿었어. 그리고 넌 날 배신했어. 그게 다야."
아론의 발걸음이 멀어졌다. 카인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말해야 할 것들이 목에 걸렸지만, 모두 핑계처럼 들릴 것 같았다.
카인은 방에 들어갔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내일 오후 3시. 학생회실. 노엘에게 증거를 제출한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난다. 루벨과 교감의 비리가 폭로된다. 시스템의 불공정성이 드러난다.
하지만 아론과의 우정은 끝났다.
카인의 단말기가 울렸다.
**[시스템 알림]** **[격리 상태 해제 예정]** **[카운트다운: 8시간 13분]**
8시간 뒤면, 카인의 존재는 시스템에 완전히 삭제된다. 그러면 카인은 이 세상에 남은 흔적이 없는 존재가 된다.
밤 11시 59분.
카인은 천장을 바라봤다. 내일이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
그 순간, 카인의 단말기가 다시 울렸다.
**[긴급 알림]** **[루벨의 추적 시작]** **[카인의 위치: 감지됨]** **[추적 대상 거리: 약 50미터]**
카인은 벌떡 일어났다.
루벨이 기숙사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카인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