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경기장 입구에서 임준호의 발이 멈췄다.

서울 타이탄스 홈 경기장. 수용 인원 5천 명. 스탠드는 이미 만석이었다. 파란색과 흰색 응원 도구가 물결을 이뤘다. 자신을 스카우트했던 팀이자, 버렸던 팀이자, 10년을 꿈꿔온 무대였다.

손가락을 펼쳤다. 투명했다. 빛이 통과했다. 근육 기억은 완전히 사라졌다.

"준호, 들어가자."

박성준이 옆에서 손을 밀었다. 에이스의 손은 따뜻했다. 준호는 그 온기를 감각에 새겼다. 근육 기억 대신 이것을 믿어야 했다. 팀의 손, 팀의 목소리, 팀의 신뢰.

"응."

라커룸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이명호 감독이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수염이 짙었고 눈빛은 차가웠다.

"타이탄스는 지난 3년 우승팀이다. 리베로 최준영은 세계 수준이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감독의 시선이 준호를 향했다.

"리시브. 방어. 그리고 준호, 당신이 해낸 것들을 반복하는 것이다."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근육 기억은 없다. 알겠나? 당신은 이제 순수한 신체 감각으로만 플레이한다. 상대 스파이크를 읽고, 상대 움직임을 읽고, 팀의 호흡을 읽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명호 감독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우리는 약팀이 아니다. 당신이 여기서 증명했으니까."

라커룸이 울렸다. 박성준의 함성부터 시작된 응원이 모든 선수를 감쌌다. 임준호는 박성준을 봤다. 에이스의 눈빛은 순수했고, 의심이 없었다. 그저 믿음만 있었다.

경기장 불이 켜졌을 때, 서울 이글스 선수들이 코트에 들어섰다.

스탠드의 함성이 압도적이었다. 타이탄스 팬들의 응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임준호는 자신의 포지션으로 걸어갔다. 리베로의 자리. 백 라인. 최강팀의 공격을 맞받을 위치.

최준영이 반대편 코트에 섰다. 세계 수준의 리베로. 같은 세대. 정반대의 인생. 최준영의 눈이 임준호를 향했다. 존경과 경계가 섞인 시선이었다.

1세트가 시작되었다.

타이탄스의 에이스가 스파이크를 날렸다. 시속 120킬로미터 이상의 공. 임준호의 몸이 반응했다. 근육 기억 없이. 순수한 신체 감각으로. 공이 그의 팔목에 닿았다. 완벽한 각도. 박성준이 토스를 받았다. 스파이크가 날아갔다.

골인.

경기장이 울렸다. 2번째 공. 타이탄스의 중거리 공격. 임준호가 몸을 날렸다. 다이빙. 손가락 끝이 공에 닿았다. 투명한 손이 공을 튕겨냈다. 박성준이 재차 스파이크를 성공시켰다.

다시 득점.

5세트를 지나면서 패턴이 명확해졌다. 임준호의 리시브가 박성준의 공격으로 이어지고, 박성준의 스파이크가 점수로 변환되었다. 최강팀의 수비수들이 하나 둘 준호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투명한 손. 그 손이 모든 공을 받아낸다.

10대 5. 서울 이글스가 앞서갔다.

1세트 중반, 최준영이 움직였다. 타이탄스의 리베로가 코트를 누볐다. 임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더 이상 무시가 없었다. 경쟁자로의 인정. 같은 포지션의 전사로의 존경.

임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탄스의 공격 패턴이 바뀌었다. 더 강해졌고, 더 정교해졌다. 공격수들이 임준호를 노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으로 공을 받아내는 선수. 그를 무너뜨리면 팀의 공격 시스템이 무너진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스파이크가 임준호의 얼굴 앞으로 날아왔다. 회피할 수 없는 각도. 임준호는 팔을 들어올렸다. 공이 얼굴을 스쳤다. 손목이 닿았다. 투명한 손이 공을 받아냈다.

박성준이 외쳤다.

"이게 진짜 넌데! 이게 진짜 우리 팀이야!"

에이스의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를 울렸다. 서울 이글스 팬들이 함성을 질렀다. 박성준의 스파이크가 성공했다.

13대 6. 격차가 벌어졌다.

이명호 감독은 벤치에서 일어섰다. 주먹을 쥐었다. 입술을 움직였다. '우리가 할 수 있다.'

1세트가 끝났을 때 스코어는 25대 18. 서울 이글스의 승리.

타이탄스 벤치에 긴장이 흘렀다. 최강팀이 첫 세트를 잃었다. 타이탄스 감독이 중얼거렸다.

"저 선수... 우리가 스카우트한 선수가 맞나?"

2세트도 비슷했다. 임준호의 리시브. 박성준의 스파이크. 그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타이탄스의 공격이 강해질수록 준호의 신체 감각은 더 예리해졌다. 근육 기억 없이. 순수한 신체만으로. 경기장의 공기를 읽고,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팀의 호흡을 읽었다.

하지만 3세트에 들어서면서 변화가 생겼다.

임준호의 호흡이 가빠졌다. 다리가 무거워졌다. 어깨가 처지기 시작했다. 근육 기억이 있을 때는 33세의 체력이 버텼다. 10년의 경험이 신체에 각인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23세의 신체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신경 신호만으로 움직이는 몸은 빠르게 지쳐갔다.

스파이크가 날아왔다. 임준호의 반응이 0.1초 늦었다.

공이 코트에 떨어졌다.

타이탄스의 첫 득점.

경기장의 함성이 바뀌었다. 타이탄스 팬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서울 이글스 팬들의 함성이 약해졌다.

2번째 공. 임준호가 다시 리시브했다. 성공했다. 박성준의 스파이크. 득점. 하지만 다음 공에서 또 실수했다. 손가락 끝이 투명해서가 아니었다. 신체가 지쳐서였다. 발이 제 위치에서 벗어났고, 팔의 회전이 둔해졌으며, 판단 속도가 떨어졌다.

임준호는 자신의 신체를 느꼈다. 근육 기억 없는 순수한 육체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박성준과의 호흡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팀이 필요했다. 신뢰가 필요했다.

박성준이 라인을 지나며 준호를 봤다. 에이스의 눈빛이 변했다. 걱정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손을 내밀었다. 주먹을 불렀다.

"여기다. 함께 가자."

최준영도 움직였다. 타이탄스의 리베로가 임준호의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제스처 속에는 '계속 해'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같은 포지션의 전사로서의 격려.

이명호 감독이 벤치에서 외쳤다.

"준호! 팀을 믿어!"

그 순간 임준호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 신체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팀에 맡기는 것. 근육 기억으로 증명하려던 자신에서 팀과 함께 나아가는 자신으로의 전환이었다.

임준호의 호흡이 정리되었다. 신체가 다시 일어섰다. 남은 체력을 모아 코트를 누볐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박성준의 믿음이 있었고, 최준영의 인정이 있었고, 감독의 지시가 있었다. 팀의 신뢰가 신체를 움직였다.

3세트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서울 이글스가 다시 앞서갔다. 14대 11. 15대 12. 17대 13. 격차가 벌어졌다.

20대 16. 마지막 몇 초였다.

타이탄스의 에이스가 마지막 스파이크를 날렸다. 강력한 공격. 시속 130킬로미터 이상. 임준호를 노린 공이었다.

임준호는 몸을 날렸다.

투명한 손이 공을 받아냈다. 공이 박성준에게 전달되었다. 에이스가 점프했다. 스파이크가 날아갔다.

경기장이 폭발했다.

골인.

서울 이글스의 승리. 플레이오프 준준결승 진출.

스탠드의 함성이 경기장 천장을 울렸다. 박성준이 임준호를 안았다. 에이스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약팀이 최강팀을 이겼다.

라커룸으로 들어갔을 때 임준호는 벤치에 앉았다. 혼자였다. 선수들은 모두 샤워실로 들어갔다. 임준호는 손을 펼쳤다. 여전히 투명했다. 손가락 끝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손은 따뜻했다. 신체의 떨림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라커룸 문이 열렸다. 이명호 감독이 들어섰다. 늙은 감독의 얼굴은 창백했다. 눈빛은 흔들렸다.

"준호."

감독이 벤치 옆에 앉았다. 나이 먹은 남자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선수... 우리가 스카우트한 선수가 맞나?"

"네."

"그런데 손이..."

임준호가 감독을 바라봤다. 손가락 끝이 투명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의료 검사도 설명할 수 없었고,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었다.

"감독님."

임준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결연했다.

"이제 난 설명 대신 경기로 말하겠습니다."

이명호 감독은 임준호의 얼굴을 오래 봤다. 그 얼굴에는 10년의 벤치에서 나온 절망이 없었다. 대신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선택. 확신. 그리고 차분함. 감독의 두려움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준준결승은 3일 뒤다. 상대는 중위권 팀이야.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감독이 일어섰다.

"결승은 동방 블레이즈와 서울 타이탄스 중 우승팀이 올 거야. 우리가 이긴 타이탄스 말이야. 최준영이 있는 팀이다."

임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신 손은 언제까지 그럴 건가?"

감독의 질문이 떨어졌다.

"모릅니다."

"결승까지 가나?"

"모릅니다."

"그럼 우리가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나?"

임준호는 잠깐 생각했다. 손가락이 투명해지고 있고, 근육 기억은 사라졌으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박성준이 있다. 이명호 감독이 있다. 팀이 있다. 최강팀을 이겼다.

"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명호 감독은 웃음을 터트렸다. 오래된 웃음이었다. 10년을 기다린 감독의 웃음이었다.

"좋아. 그럼 준준결승 준비하자. 3일 뒤가 맞지?"

"네."

감독이 나갔다. 라커룸에는 임준호만 남았다. 다시 손을 펼쳤다. 손가락 끝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했다. 하지만 손은 따뜻했다. 신체는 반응했다. 박성준과 함께 경기한 감각이 남아있었다. 팀의 신뢰가 몸에 새겨졌다. 근육 기억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기억이었다.

밤 11시 30분. 경기장 주차장에서 임준호는 최준영을 만났다. 타이탄스의 리베로가 먼저 다가왔다.

"잘 경기했어."

최준영의 음성이 차분했다. 패배한 선수의 입장이지만 그 안에는 존경이 있었다.

"당신이 이길 줄 몰랐어. 우리 팀도 몰랐을 거야. 솔직히 나도 반신반의했어."

임준호는 답하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투명하던데. 뭐 하는 건가?"

"모릅니다."

최준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짧은 웃음이었지만 진심이 담겨있었다.

"신기한 선수네. 그래도 이겼어. 약팀이 최강팀을 이겼어. 결승에서 또 만나면 그때는 어떨까?"

"모르겠습니다."

"응.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기대돼."

최준영이 손을 내밀었다. 같은 포지션의 전사로서의 인사였다. 임준호는 투명한 손으로 그 손을 잡았다. 손가락 끝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따뜻함은 전달되었다.

"결승에서 봐."

최준영은 떠났다. 주차장에는 임준호만 남았다. 밤하늘이 검었다.

휴대폰에 알림이 울렸다. 한지은 기자였다. 문자 메시지였다.

"당신의 손가락이 투명해지는 영상을 올렸어. 조회수가 벌써 50만을 넘었어. 기자로서 나는 이 현상의 정체를 파헤쳐야 해. 당신이 도와줄 거니?"

임준호는 메시지를 읽고 한참을 생각했다. 손가락 끝이 투명해지는 이유.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그 모든 것이 기자의 추적 대상이 되고 있었다.

메시지를 지웠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임준호는 거울 앞에 섰다. 손을 펼쳤다. 손가락 끝이 거의 사라졌다. 한 주일 정도면 완전히 투명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손은 움직였다. 신체는 반응했다. 박성준을 받아주는 손이었다. 팀을 지키는 손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거울 속의 자신에게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대답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은 임준호였다. 리베로였다. 서울 이글스의 선수였다. 박성준의 파트너였다. 팀의 일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새벽 2시. 침대에 누웠을 때 손이 떨렸다. 신경을 곤두세웠다가 이완되는 신체의 반응이었다. 근육이 기억하고 있었다. 최강팀과의 경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박성준과의 호흡을 기억하고 있었다. 팀과 함께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준준결승까지 3일이었다.

그 3일 동안 임준호는 훈련에만 집중했다. 미디어는 그의 투명한 손가락을 주제로 기사를 쏟아냈다. 한지은 기자는 계속 연락을 했다. 이명호 감독은 일관된 지시를 내렸다.

"팀을 믿어. 그게 다야."

3일 뒤 경기장은 붐볐다. 준준결승이었다. 상대는 중위권 팀 '동방 블레이즈'. 약팀도 강팀도 아닌 안정적인 팀이었다. 하지만 준준결승은 준준결승이었다. 패배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임준호는 코트에 섰다. 손가락 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체는 움직였다. 박성준이 서 있었다. 감독이 지시를 내렸다. 팀이 응원했다.

첫 번째 공. 상대팀의 스파이크가 날아왔다. 임준호가 리시브했다. 성공.

두 번째 공. 또 성공.

세 번째 공. 성공.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약팀이 아닌 팀이었다. 서울 이글스는 중위권 팀을 누르기 시작했다. 1세트는 25대 15. 2세트는 25대 18. 3세트는 25대 12.

완승이었다.

라커룸에서 박성준이 임준호를 안았다.

"결승이야. 우리가 결승에 간다."

에이스의 얼굴은 열정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임준호는 다른 것을 봤다. 박성준의 얼굴에는 두려움도 있었다. 결승이 최강팀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최준영이 있는 타이탄스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임준호는 박성준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우리가 할 수 있어."

박성준은 임준호를 봤다. 손을 펼쳤다. 손가락 끝이 완전히 투명했다.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손이..."

"상관없어. 우리가 있으니까."

박성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스가 리베로의 투명한 손을 잡았다. 따뜻함이 전달되었다.

경기장 밖에서 한지은 기자는 경기를 촬영하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임준호의 투명한 손가락이 보였다. 완벽한 기사의 소재였다. 투명해지는 손가락의 비밀. 선수의 정체. 그것이 기자의 임무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뭔가를 깨달았다.

투명한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하게. 강력하게. 팀을 지키기 위해. 공을 받아내고, 팀을 살리고, 박성준과 호흡하고 있었다. 그 손은 증명하려는 손이 아니었다. 지키려는 손이었다.

한지은은 자신의 카메라를 내렸다. 렌즈를 통해 보던 세상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파헤쳐야 할 것은 투명해지는 손가락이 아니라 그 손가락이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임준호라는 선수의 비밀이 아니라 임준호가 선택한 팀이었다.

그녀는 경기장 스탠드로 올라갔다. 카메라를 내렸다. 기자로서의 추적에서 한 팬으로서의 응원으로 전환했다.

결승전 상대가 최종 확정되었다.

타이탄스였다. 최준영이 있는 팀이었다.

임준호는 경기장 라커룸에서 휴대폰을 켜 뉴스를 확인했다. 헤드라인은 명확했다.

"투명한 손가락의 선수, 최강팀과 결승 진출. 회귀의 진실이 드러날 것인가?"

"기자 한지은, 투명한 손가락 추적 중단. '응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입장 발표"

두 번째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지은 기자가 추적을 멈췄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응원했다. 임준호는 휴대폰을 껐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한 경기뿐이었다. 최강팀과의 결승. 박성준과의 경기. 팀을 위한 경기.

손가락 끝을 다시 펼쳤다. 완전히 투명했다. 거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손은 따뜻했다. 신체는 반응했다. 팀은 믿고 있었다.

결승까지는 5일이었다.

그 5일 동안 서울 이글스는 강화 훈련에 들어갔다. 이명호 감독은 전술을 짰다. 박성준은 에이스로서 최고의 상태를 준비했다. 임준호는 순수한 신체 감각으로만 방어했다.

그 과정에서 임준호는 자신의 신체 한계를 명확히 인식했다. 손가락이 투명해질수록 신체는 더 빠르게 지쳐갔다. 근육 기억 없는 순수한 육체는 결승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불안은 팀을 믿는 순간 사라졌다. 박성준의 목소리, 감독의 지시, 선수들의 응원. 그것들이 신체를 움직였다.

마지막 밤, 임준호는 자신의 손을 다시 펼쳤다. 손가락 끝이 완전히 사라졌다. 손은 투명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근육 기억이 사라지고, 자신이 누구인지 불명확해졌지만, 팀이 있었다. 박성준이 있었다. 함께할 수 있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한지은 기자였다.

"준호. 내가 찾아냈어. 당신의 의료 기록. 당신은... 당신은 정말..."

기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안에는 놀라움과 동정이 섞여 있었다. 기자가 발견한 진실이 무엇인지 임준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기자님."

임준호가 말했다.

"더 이상 찾지 마세요."

"뭐라고?"

"당신이 찾은 것도, 당신이 파헤칠 것도 이제는 필요 없습니다."

임준호는 전화를 끊었다. 기자의 진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대신 팀과 함께 올라가면 된다. 박성준과 함께 최강팀을 이기면 된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었다.

아니면 시작될 것이었다.

결승까지 남은 시간은 24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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