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8화 「순수한 신체」

임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경기에 나갈 것인가. 나가지 않을 것인가.

선택은 단순했지만 무거웠다.

손가락들이 반투명에 가까워졌다. 햇빛을 통과시켰다. 거울 앞에서 손을 펼쳤을 때 손등의 혈관이 희미하게 보였다. 근육 기억이 완전히 소실되기 직전의 상태였다. 남은 시간이 며칠인지, 몇 시간인지 알 수 없었다.

나가면 마지막 기억들을 소진할 것이다. 근육이 기억한 마지막 것들을 모두 짜내고 비울 것이다. 그 이후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나가지 않으면 팀은 패배할 것이다. 플레이오프 16강 진출 경기를 이기지 못하면 끝이다. 서울 이글스는 다시 최약체로 돌아갈 것이고, 박성준은 또다시 혼자가 될 것이다.

임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펼쳤다를 반복했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구부러졌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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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훈련장.

이명호 감독은 준호를 라커룸 모서리로 불러냈다. 팀원들은 이미 코트로 나갔다.

"넌 경기에 나간다."

준호는 감독의 얼굴을 봤다. 주름진 이마, 굳게 다문 입술. 결정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

"근육 기억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습니다."

"알고 있다."

감독은 준호의 손을 봤다. 반투명한 손가락들. 그는 그것을 정확히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었지만, 소실되고 있다는 것은 감지했다.

"그렇다면 더 나가야 한다. 근육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순수한 신체 감각으로 플레이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성장이다."

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지난 3경기에서 뭘 배웠나?"

"…"

"넌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경험에서 나오는 완벽함. 그게 너를 망쳤다. 이제 네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는 것. 지금 이 경기에서 필요한 플레이만 하는 것. 그게 정답이다."

감독은 준호의 어깨를 톡 쳤다.

"박성준이 너를 믿고 있다. 팀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넌 반드시 나가야 한다."

준호는 감독을 바라봤다. 이명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본 적 없는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플레이오프 진출 이후로 처음 드러나는 감정이었다. 우승을 향한 희망이 동시에 책임감으로 짓누르고 있었다. 퇴직 전 마지막 우승. 그것을 향한 절실함이 감독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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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2시간 전, 준호는 라커룸에서 테이핑을 했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테이프를 감았다. 반투명한 손가락들을 하얀 테이프로 감싸 덮었다. 마치 그것을 숨기려는 듯이.

박성준이 옆에 앉았다.

"경기 나가?"

"응."

"손은?"

준호는 테이프를 감은 손을 봤다.

"괜찮다."

박성준은 웃었다. 거짓말을 믿지 않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앉아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준호는 박성준을 돌아봤다.

"10년을 벤치에 앉아 있었어."

박성준이 고개를 들었다.

"스카우트 제의도 많았지만 다 거절했어. 이 팀에 남기로 한 선택이 맞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난 3경기는... 내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했어. 약해진 내 때문에 팀이 망할 수도 있다고."

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하지만 오늘 코트에 나갔을 때, 알았어. 10년을 기다린 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는 걸."

박성준은 준호의 손을 잡았다. 테이프로 감싼 손. 그 안에 있는 투명한 손가락들.

"우린 해낼 수 있어."

박성준의 말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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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오후 7시에 시작됐다.

상대팀은 중위권 팀 '인천 메트로스'.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서로 죽기 살기였다. 준호가 코트에 나오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지난 3경기의 부진으로 팬들은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다.

1세트 초반, 준호의 움직임은 어색했다.

손가락들이 떨렸다. 테이프로 감싼 손가락들이 상대 스파이크를 받아낼 때마다 떨렸다. 근육 기억이 작동하지 않았다. 33세의 기억은 이미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남은 것은 순수한 신체 감각뿐이었다.

첫 번째 스파이크. 준호의 손이 공을 받아냈다. 하지만 토스가 어색했다. 박성준이 스파이크를 올렸지만 결과는 블로킹으로 끝났다.

관중석이 술렁거렸다.

두 번째 스파이크. 이번엔 더 빨랐다. 준호는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공의 궤적을 눈으로 쫓았다. 상대 공격수의 어깨가 기울어지는 각도, 토스의 높이, 스파이크 타이밍. 모든 것이 신체에 입력됐다. 손이 공을 받아냈다. 토스는 정확했다. 박성준의 스파이크가 상대 진영에 떨어졌다.

포인트.

세트가 진행되면서 준호의 움직임이 매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근육 기억이 아니라 순수한 신체 감각으로 움직이자,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있던 몸이 이제 현재에만 집중했다.

1세트 중반, 상대팀의 연속 공격이 들어왔다.

첫 번째 공. 준호가 리시브했다.

두 번째 공. 더 강하게 들어왔다. 준호의 손이 공을 받아냈다.

세 번째 공. 가장 강력한 스파이크였다. 상대 에이스의 풀 파워 공격. 준호의 신체가 반응했다. 무릎을 구부렸다. 상체를 낮췄다. 손을 펼쳤다. 공이 손가락 위에 착 붙었다.

이 순간, 준호의 뇌는 작동하지 않았다. 기억도, 경험도 필요 없었다. 신체만이 움직였다. 손가락의 각도, 손목의 각도, 팔의 힘. 모든 것이 순수한 감각으로만 조율됐다.

토스가 나왔다. 완벽한 토스였다.

박성준이 스파이크를 올렸다. 상대 블로킹을 뚫었다. 포인트.

경기장이 폭발했다.

박성준이 달려와 준호를 끌어안았다.

"이게 진짜 넌데?"

준호는 박성준의 얼굴을 봤다. 그의 눈빛에서 믿음이 보였다. 의심이 아니라 순수한 믿음.

"응. 이게 진짜 나야."

준호의 입에서 웃음이 나왔다. 처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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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트는 25:21로 서울 이글스의 승리였다.

2세트도 준호의 안정적인 리시브가 팀의 기초를 다졌다. 7:4로 앞서던 중반부, 상대팀이 연속 3점을 따라왔다. 경기장의 긴장감이 고조됐다. 10:10. 동점이 된 순간, 상대 에이스가 강한 스파이크를 날렸다.

준호는 기억에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상대 공격수의 어깨 움직임을 읽었다. 토스가 나간 순간부터 에이스의 몸이 기울어지는 각도, 스파이크 팔의 속도. 모든 것이 신체에 입력됐다. 준호의 발이 먼저 움직였다. 공이 날아올 지점을 예측하고 한 발 물러섰다.

손이 공을 받아냈다. 토스가 정확했다. 박성준의 스파이크가 상대 진영을 가로질렀다. 포인트.

경기는 그 이후 준호의 주도로 흘러갔다. 근육 기억 없이도 신체는 반응했다. 10년의 경험이 근육에 새겨져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났을 때, 오히려 더 순수한 신체 감각이 작동했다. 상대 공격수의 습관, 토스의 높이 변화, 블로킹 타이밍. 모든 것을 읽는 능력이 되살아났다.

2세트도 25:19로 서울 이글스의 승리.

3세트는 더욱 치열했다. 상대팀이 집중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성준과 준호의 호흡은 더욱 깊어졌다. 토스와 스파이크, 리시브와 커버. 모든 플레이가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였다.

18:18. 동점 상황에서 상대팀의 공격이 들어왔다. 상대 에이스가 강력한 스파이크를 날렸다. 준호는 공의 궤적을 눈으로 쫓았다. 공이 떨어질 지점을 신체가 먼저 알았다. 움직임이 없었다. 필요 없었다. 공은 이미 준호의 손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공을 받아냈다. 토스가 나왔다. 박성준의 스파이크가 상대 진영을 가로질렀다. 포인트.

20:18. 서울 이글스의 리드.

상대팀이 다시 공격했다. 더 강하게. 더 빠르게. 하지만 준호는 흔들리지 않았다. 신체가 이미 모든 것을 읽고 있었다. 리시브. 토스. 포인트.

21:18.

22:18.

23:19.

24:20.

25:22. 3세트도 서울 이글스의 승리.

경기장의 환호성은 폭발했다. 10년간 최약체로 남아있던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 그것도 3:0 완승. 경기장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준호는 코트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아니라 몸 전체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패배의 무릎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간의 무릎이었다.

박성준이 달려와 준호를 끌어안았다. 그의 손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해냈어. 우리 해냈어!"

박성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에이스 선수답지 않게 벅찬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준호는 박성준의 등을 두드렸다. 말이 필요 없었다. 이 순간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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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으로 복귀한 후, 준호는 테이프를 서서히 풀었다.

손가락들이 드러났다. 완전히 투명했다. 빛이 손을 관통했다. 뼈만 남은 것 같은 투명함. 근육 기억은 완전히 사라졌다.

더 이상 33세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경기 영상도, 상대팀의 전술도, 지난 10년의 훈련 과정도 모두 희미해졌다. 순수한 23세의 신체만 남아있었다. 오직 이 몸이 오늘 경기장에서 느낀 것들만.

준호는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펼쳤다를 반복했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움직였다.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명확함이 느껴졌다.

이 손은 33세의 기억을 담은 손이 아니다.

이 손은 지금 이 순간, 코트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손이다.

"손 봤어?"

박성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준호 옆에 앉았다. 샤워를 하지 않은 채로. 경기의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은 상태로.

"응."

"…좋아?"

준호는 웃었다. 진심 어린 웃음. 지난 몇 주일 동안 처음 나온 웃음.

"응. 이제 진짜 시작이야."

박성준은 준호의 투명한 손을 봤다. 그것을 이상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준호의 결단처럼 보였다.

박성준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가 하려던 말은 필요 없었다. 코트에서 이미 모든 것을 보여줬으니까.

라커룸 문이 열렸다.

최준영이 들어섰다. 서울 타이탄스의 리베로. 지난 경기들에서 준호를 모욕했던 선수. 준호가 약해질 때마다 조롱했던 상대.

그가 라커룸에 들어서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상대팀 선수가 우리 팀 라커룸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최준영의 얼굴에는 긴장이 배어 있었다. 경의와 두려움이 섞인 표정. 마치 자신이 곧 마주할 무언가에 대한 불안감이 보였다.

최준영은 준호에게 다가왔다. 다른 팀원들이 눈을 들었다.

"넌 정말 대단한 선수야."

최준영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경쟁자로서의 존경이 떠올라 있었다.

"미안했어. 나는 질렸어."

준호는 최준영의 눈을 봤다. 그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었다. 1라운드에서 떨어져나갈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달갑지 않음. 하지만 더 이상 준호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다짐.

"미안할 필요 없어. 우리 팀을 이기자."

준호가 말했다.

최준영은 준호의 손을 잡았다. 투명한 손가락들. 하지만 그 손이 쥔 것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것을 잡는 손의 힘도, 최준영이 느끼는 그것도.

"플레이오프에서 봐."

최준영이 말했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준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자신의 팀이 맞닥뜨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최준영은 라커룸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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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준호는 취재진 사이를 걸었다.

스포츠 기자, 카메라맨, 팬들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모두가 준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임선수! 플레이오프 진출 소감은?"

"첫 경기 상대팀이 서울 타이탄스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신의 비결이 뭔가요?"

한지은이 나타났다.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하지만 뭔가가 바뀌었다. 지난 몇 주일간의 추적에서 나온 피로감이 보였다.

그녀는 준호를 따라 더 조용한 복도로 향했다.

"임선수. 경기 후 소감 부탁합니다."

다른 기자들의 마이크는 피할 수 있었지만, 한지은의 그것은 피할 수 없었다. 준호는 멈춰 섰다.

"당신은 정말 뭐예요?"

한지은의 질문은 단도직입적이었다.

"회귀? 초능력? 정체를 밝혀주세요. 독자들이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인간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존재인지."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완전히 투명한 손가락들. 빛이 손을 관통했다. 더 이상 숨길 것도, 설명할 것도 없었다.

한지은은 펜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펜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준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서 뭔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지난 몇 주일간 추적하던 불안감, 혼란, 자기 의심이 모두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명확한 현재만 남아 있었다.

한지은은 깨달았다. 회귀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는 대상은 이미 준호가 아니라는 것을. 준호는 이미 그것을 내려놓았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난 그저 배구 선수일 뿐입니다."

준호의 대답은 담담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사실의 진술.

"회귀가 뭐든 상관없어요. 그것도 이제 필요 없어요."

한지은이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이 팀과 함께 플레이오프를 올라가려고 하는 선수일 뿐이에요."

준호의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었다. 지난 몇 주일간의 고민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절대적인 현재뿐이었다.

한지은은 녹음기를 껐다. 펜도 내렸다. 기자로서의 본능을 누르고, 한 인간으로서 준호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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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준호는 자신의 방에서 손을 봤다.

손가락들이 완전히 투명했다. 손등의 혈관도, 뼈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그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근육 기억은 사라졌다. 33세의 기억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순수한 23세의 신체와, 그 신체가 오늘 경기장에서 배운 것들뿐이었다.

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펼쳤다를 반복했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 손이 쥘 수 있는 것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명호 감독이었다.

"준호. 내일 오전 10시에 사무실로 와. 플레이오프 전술 회의가 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준호."

감독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 안에는 불안감과 희망, 책임감이 겹겹이 담겨 있었다.

"오늘 경기는 잘했다. 너를 믿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어. 플레이오프에서도 계속 그 플레이를 하면 된다."

준호는 감독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퇴직 전 마지막 우승을 향한 감독의 절실함이 담긴 확신이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통화가 끝났다.

준호는 다시 손을 펼쳤다. 완전히 투명한 손가락들. 이제 그것은 저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준호는 거울 앞에 섰다. 투명한 손가락들을 펼쳤다 쥐었다를 반복했다.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었다. 10년을 벤치에서 기다린 선수가 아니었다. 지난 3경기의 부진으로 팀을 배신한 선수도 아니었다.

순수한 현재만 남은 선수였다.

플레이오프 8강. 서울 타이탄스. 최준영. 최강팀.

그들의 눈빛 속에서 준호는 자신의 미래를 봤다. 새로운 자아와의 대면. 근육 기억 없이 순수한 신체 감각으로만 싸우는 자신과의 만남.

준호는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완전히 숨겨졌다.

그 안에서 뭔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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