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본문

경기장의 온도가 올라갔다. 서울 타이탄스전이 끝난 지 사흘, 플레이오프 결정전을 앞두고 스포츠 센터는 미친 듯이 돌아갔다. 임준호는 라커룸 벤치에 앉아 자신의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거의 투명했다. 아니, 이제 투명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지면 피부가 있지만, 보면 공기 같았다.

"손 어때?" 박성준이 옆에 앉으며 물었다.

"모르겠어."

"뭐가 모르겠어. 경기하면 되지."

박성준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없었다. 10년을 그 팀에서 버텨온 준호도 한 번쯤 부러워할 정도의 순수함. 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손이 어떤 손인지, 이 몸이 누구의 몸인지 말이다.

경기장 입장은 오후 6시였다. 준호는 버스에서 내려 스타디움을 올려다봤다. 매표소 앞에는 수백 명의 팬들이 줄을 섰다. 10년 만에 우승을 꿈꾸는 서울 이글스 팬들.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떠있었다. 준호는 그 희망이 자신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이것이 진짜 원하던 것 아닌가? 10년을 벤치에서 썩으며 기다렸던 바로 이 순간.

"임준호 선수! 사진 한 장만!"

기자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카메라 플래시가 준호의 얼굴을 비췄다. 그중에 한지은이 있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내리고 준호의 손을 바라봤다. 투명한 손가락. 그녀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준호를 바라봤지만, 질문하지는 않았다.

라커룸에서 준호는 유니폼을 입었다. 손가락이 투명했지만, 팔뚝부터는 실체가 있었다. 이명호 감독이 입장했다. 나이 든 감독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있었다.

"이거 마지막이야. 내 마지막이고, 너희 많은 선수들의 마지막일 수도 있어.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감독이 모두를 바라봤다.

"우리는 약팀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약팀이었어. 그런데 이 남자가 나타났어."

감독의 손가락이 준호를 가리켰다.

"임준호. 넌 왜 우리를 선택했는지 정말 궁금해. 명문팀 제의도 많았을 텐데. 하지만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 넌 우리를 선택했고, 우리는 넌 믿기로 했어. 그리고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준호는 감독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는 신뢰가 있었다. 증명을 요구하는 눈이 아니라, 함께하는 눈이었다.

"오늘 우리는 우승한다. 상대팀이 뭐든 상관없어. 우리가 함께라면 가능해. 임준호, 박성준, 그리고 모든 선수들. 우리가 함께라면."

라커룸에 함성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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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준호는 수천 명의 팬 목소리를 들었다. 스타디움은 진동했다. 주홈 팀이 입장하자 상대방인 서울 타이탄스도 나왔다. 최준영이 준호를 발견했다. 두 리베로의 눈이 만났다. 최준영은 준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무시가 아니었다. 경쟁자로서의 인정.

경기가 시작됐다.

1세트는 팽팽했다. 준호는 상대팀의 스파이크를 받았다. 손가락이 투명했지만, 신체는 반응했다. 근육 기억이 아니라, 순수한 신체 감각이었다. 공이 박성준에게 갔다. 박성준의 스파이크는 완벽했다. 상대팀의 블로킹이 실패했다. 점수는 15:14로 서울 이글스가 앞섰다.

2세트는 더 치열했다. 최준영이 준호의 리시브를 노리기 시작했다. 스파이크의 각도를 변경하고, 준호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공을 내렸다. 하지만 준호는 반응했다. 투명한 손가락으로, 하지만 정확하게. 공이 살짝 떴다. 박성준이 그것을 잡아 완벽한 스파이크로 날렸다. 스탠드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준호는 피로를 느꼈다. 몸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팀이 그를 감쌌다. 박성준은 계속 준호를 믿었다. 최준영도 준호의 리시브에 존경을 담아 블로킹을 했다. 이명호 감독은 라인에서 계속 준호에게 신뢰를 보냈다. 모두가 함께였다.

3세트의 마지막, 스코어는 24:24였다.

준호는 이 순간 뭔가를 느꼈다. 33세 때의 기억들이 한순간 떠올랐다. 10년 동안 벤치에서 썩으며 느꼈던 절망, 그리고 이 회귀라는 기적 앞에서 느꼈던 공포. 손가락이 투명해지며 느꼈던 죽음의 공포. 하지만 그것은 과거였다.

상대팀의 에이스가 스파이크를 준비했다. 공이 날아왔다. 준호는 몸을 날렸다. 투명한 손가락으로 공을 받았다. 공이 박성준에게 갔다. 박성준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그가 스파이크를 날렸다.

완벽했다.

상대팀의 블로킹이 실패했다. 공이 상대팀 코트에 떨어졌다.

경기장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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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이었다.

라커룸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준호는 박성준에게 안겼다. 박성준은 준호를 들어올렸다. 최준영도 라커룸에 들어와 준호를 안겼다. "정말 잘했어. 정말 고마워"라고 중얼거렸다. 팀 전체가 준호를 감쌌다. 이제 준호는 더 이상 '벤치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우승 팀의 리베로'였다.

이명호 감독이 준호를 바라봤다. 나이 든 감독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렀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시상식에서 준호는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팬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준호의 손에는 트로피의 무게가 있었다. 투명한 손가락으로도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한지은이 다가왔다. 카메라를 들지 않고, 순수한 기자의 눈으로.

"당신은 정말 뭐였어?"

준호는 웃었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었다.

"난 그저 배구 선수일 뿐. 그리고 이제 우승팀의 선수야."

카메라는 준호의 손을 비췄다. 손가락이 다시 실체를 가지고 나타났다. 투명함이 사라졌다. 완전하고 단단한 손이 트로피를 들고 있었다. 회귀 현상은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33세에서 23세로 돌아온 것도, 손가락이 투명해진 것도, 그리고 지금 다시 실체를 가지게 된 것도.

하지만 준호는 더 이상 그것을 알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증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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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의 함성이 천장을 흔들었다. 서울 이글스 팬들의 환호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10년 만의 우승. 그들은 이 순간을 잊고 있었다.

라커룸 복도에서 준호는 박성준의 어깨에 기댔다. 다리가 풀렸다. 경기 내내 신체는 반응했지만 정신은 어디론가 떠나 있었다. 투명한 손가락을 내려다봤다.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돌아왔다. 색깔이 돌아왔다. 실체가 돌아왔다.

박성준이 준호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됐어. 이제 됐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라커룸 안으로 들어서자 팀 전체가 준호를 맞이했다. 이명호 감독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나이 든 감독의 눈가는 축축했다. 손을 내밀지 않고 그냥 준호를 안았다. "정말 고마워. 정말."

준호의 목에 힘이 빠졌다. 감독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지난 몇 개월간 느껴왔던 불안, 의심, 공포가 한 점으로 모여 눈물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눈물은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였다.

다른 선수들이 준호를 밀어냈다. 어깨를 두드리고, 머리를 비틀고, 웃음과 함께 밀어냈다. 중원 블로커 최지훈이 준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진짜 미쳤어. 마지막 세트 넌 뭐하는 거야?"

"그냥... 했어."

"그냥이 아니라 진짜 헬 오브 플레이었어."

준호는 웃음을 지었다. 입가에만 올라오는 웃음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우러나오는 웃음. 자신도 놀랐다. 이런 감정이 남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샤워, 옷 갈아입기, 인터뷰 준비. 모든 것이 자동으로 진행되었다. 준호의 머릿속은 여전히 경기장에 있었다.

마지막 세트의 24:24. 그 순간.

상대팀의 에이스 김준호가 스파이크를 준비했을 때, 준호의 눈앞에 뭔가가 떠올랐다. 33세의 기억이 아니었다. 23세의 현재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33세의 모든 것이 녹아 있었다. 상대팀의 패턴, 김준호의 팔 움직임, 스파이크가 떨어질 궤적. 그리고 그것을 받아낼 자신의 손의 위치.

손가락이 투명했다. 하지만 반응했다.

공이 떴다. 완벽하게.

박성준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그 순간 준호는 알았다. 이것이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 아니라 이것, 바로 이 순간이 자신이 원했던 것이었다. 팀원의 얼굴에 피는 웃음. 감독의 신뢰. 관중석의 함성.

그리고 박성준의 완벽한 스파이크.

준호는 라커룸 벤치에 앉았다. 발을 풀어헤쳤다. 종아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근육 기억이 소실되었을 때부터 이런 고통은 늘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것이 진짜 자신의 신체가 느끼는 피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증명되지 않은, 확인되지 않은, 회귀도 아닌 순수한 자신의 피로.

최준영이 라커룸 입구에서 준호를 찾았다. 대기팀 선수가 우승팀의 라커룸에 들어가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박성준이 눈썹을 올렸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최준영은 말없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준호를 안았다. "정말 잘했어. 정말."

준호는 최준영의 등을 두드렸다. "너도."

"다음 시즌에 또 만나자. 너한테서 배울 게 많아."

그 말이 떨어지자 준호는 뭔가 이상했다. 최준영이 자신에게 배운다고? 최준영은 세계 수준의 리베로였다. 준호보다 훨씬 나은 신체 조건을 가진 선수였다. 그런데도 그는 진심으로 말했다.

"고마워."

최준영이 떠난 후 박성준이 준호의 옆에 앉았다. "저 남자, 너한테 반했나?"

"축구 얘기 하던 거 같은데?"

"농구지."

"아, 맞다."

박성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준호도 웃었다. 어이없는 농담이 이렇게 소중할 수 있다는 생각은 처음이었다.

시상식은 경기장 중앙에서 열렸다. 준호는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손가락이 실체를 가지고 트로피의 차갑고 단단한 표면을 감싸 안았다. 팬들의 환호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지은 기자가 다가왔다.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펜도 들지 않았다. 그저 순수한 눈빛으로 준호를 바라봤다.

"당신은 정말 뭐였어?"

준호는 한지은의 눈을 맞춰 봤다. 지난 몇 개월간 기자는 자신의 비밀을 파헤치려 했다. 회귀의 증거를 찾으려 했다. 의료 기록을 추적했고, 과거 영상을 뒤졌고, 불가능한 것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그 눈에는 추적자의 집념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호기심만 있었다.

"난 그저 배구 선수일 뿐."

"그게 다야?"

"그리고 이제 우승팀의 선수야."

준호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언론사 카메라들이 이 장면을 담았다. 우승 리베로. 신인이 아닌 베테랑도 아닌, 회귀한 선수도 아닌. 그저 우승팀의 리베로.

한지은은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대신 준호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다시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투명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색깔이 돌아왔다. 혈관이 보였다. 손톱이 보였다. 모든 것이 돌아왔다.

"회귀는 뭐였어? 정말 있었던 일이야, 아니면..."

"몰라."

준호의 대답은 단호했다.

"모를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중요하지 않아."

한지은은 펜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놨다. 기사를 쓰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아니, 쓸 수 없다는 의미였다.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기사로 만들겠는가.

"당신을 취재하면서 알았어. 당신은 증명되지 않은 선수가 아니야. 당신은 증명된 선수야. 이 트로피가 그 증명이야."

준호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경기장에서 나가며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을 펼쳤다. 오그렸다. 만지고, 주먹을 쥐고, 펴고.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투명함은 사라졌다. 근육 기억도 사라졌다. 33세의 기억도 거의 희미했다. 하지만 신체는 기억했다. 신체가 배웠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박성준이 옆에 섰다. "뭐 해?"

"그냥... 손을 봐."

박성준은 준호의 손을 봤다.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저 배구 선수의 손이었다.

"뭐가 이상해?"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아."

준호는 웃었다. 그리고 박성준의 어깨를 쳤다. 다음 시즌을 위해 훈련실로 들어가야 했다. 우승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잠깐 쉬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경기장의 환호성이 점차 멀어졌다. 하지만 준호의 귀에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10년 전 벤치에서 들었던 환호성이 아니라, 오늘 자신이 일으킨 환호성이.

그것으로 충분했다.

회귀의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33세에서 23세로 돌아온 것도, 손가락이 투명해진 것도, 그리고 지금 다시 실체를 가지게 된 것도 모두 설명할 수 없었다. 의료 기록에 남은 뇌파의 이상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진 기억도, 순수한 신체 감각만 남은 것도 모두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준호는 더 이상 그것을 알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증명했으니까.

준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손을 펼쳤다. 완전한 손. 실제의 손. 자신의 손.

내년 시즌을 위해, 다시 한 번 우승을 위해, 박성준과 함께, 팀과 함께.

그것이 이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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