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째 경기를 앞두고
체육관 로비에서 준호는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손가락이 저렸다. 아침부터. 어제도. 그저께도.
손가락을 펼쳤다 구부렸다를 반복했다. 움직임은 명확했다. 신체는 반응했다. 하지만 감각이 없었다. 누군가 손 전체에 얇은 막을 씌워둔 것처럼. 준호는 손을 쥐었다 펼쳤다를 세 번 더 반복한 후 라커룸으로 향했다.
코트에 들어서자마자 박성준이 달려왔다.
"어제 안 봤냐고. 새로운 공세 패턴 봤어?"
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박성준은 토스 위치를 손가락으로 그렸다. 준호는 듣는 척했다. 실제로는 박성준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만 보였다.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워밍업 시간. 준호는 평소보다 먼저 라인 위에 섰다. 감독이 서브를 넘겼다. 낮은 궤적의 공. 준호는 몸을 낮췄다. 팔을 모았다. 손목을 펼쳤다. 공이 손에 닿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공은 네트 너머로 날아갔다.
"집중하자!"
감독의 목소리. 준호는 다시 라인에 섰다. 다음 공. 이번엔 높은 궤적. 준호의 팔이 공을 맞췄다. 공은 토스라인에 정확히 떨어졌다. 박성준이 스파이크를 날렸다. 상대 블로킹을 뚫고 들어갔다. 포인트.
"좋아!"
박성준이 엄지를 세웠다. 준호는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입가가 경직되었다.
5분 뒤, 준호의 리시브 실수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상대 에이스의 스파이크. 준호는 예측했다. 신체는 움직였다. 팔은 정확한 위치에 있었다. 공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네트 너머. 상대 포인트.
미들 블로커의 빠른 공격. 준호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손을 모았다. 공은 준호의 팔뚝을 스쳐 지나갔다. 방향이 틀어졌다. 사이드라인 밖. 상대 포인트.
상대의 느린 탑스핀 서브. 가장 받기 쉬운 공. 준호가 깊게 숨을 쉬었다. 손을 모았다. 공이 떨어진다. 떨어진다. 손이 닿는다.
손이 없다.
준호는 손을 봤다. 손이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공은 손가락 사이를 통과했다.
박성준이 라인 뒤에서 준호를 봤다. 표정이 단단해졌다.
경기는 2세트까지 진행됐다. 준호의 리시브 실수는 일곱 번. 박성준은 세고 있었다. 감독도. 관중도 느끼고 있었다.
## 3세트 시작 직전
라커룸의 복도. 최준영이 준호를 잡았다. 서울 타이탄스의 리베로. 186센티미터 반의 신체. 어깨가 넓었다. 눈빛이 차가웠다.
"너 요즘 어떻게 된 거야?"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작은 좋았어. 첫 경기, 둘째 경기. 다들 너한테 집중했어. '오, 저 선수 괜찮네'라고. 근데 지금?" 최준영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지금 넌 뭐야? 손가락 사이로 공 빠뜨리고. 토스 방향 틀리고. 셋 경기 연속으로 리시브 실수 다섯 개 이상씩."
"일곱 개입니다."
"뭐?"
"3세트 전까지 일곱 개예요."
최준영의 입가가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었다. 얼굴 근육이 경멸로 일그러졌다.
"그 정도면 이미 끝이지. 넌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어. 아니, 알아? 넌 뭔가를 숨기고 있어.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그게 너를 죽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제 너 때문에 우리 팀도 죽어가고 있어."
준호는 목을 삼켰다.
"더 이상 이 상태로 경기하지 마. 넌 이 포지션에 맞지 않아. 리베로는 정신력의 게임이거든. 그리고 넌 정신이 여기 없어. 완전히 어딘가 다른 곳에 있어. 미안하지만, 넌 필요 없어. 나한테 자리를 돌려줘."
준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더 정직하게 말해줄게. 넌 거짓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넌 뭔가 아닌 다른 거야. 그래서 넌 약해져. 계속 약해져. 지금 이 순간도 약해지고 있어. 그리고 우리 팀과 박성준이를 같이 끌어내리고 있어."
최준영이 어깨를 치고 돌아섰다. 준호는 벽에 등을 기댔다. 숨이 나오지 않았다.
박성준이 나타났다. 최준영과 준호를 본 박성준의 얼굴이 굳었다.
"뭐 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리베로끼리 얘기 나누고 있었어."
박성준이 최준영 옆으로 갔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 선수 괴롭히지 마."
"괴롭히는 게 아니라 현실을 말해주는 거야. 이 정도면 객관적 사실이지 않아?"
박성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최준영은 웃고 떠났다.
박성준이 준호 앞에 섰다.
"너 괜찮아?"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박성준의 눈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미안해. 난 약해지고 있어."
"뭐 사과해?"
박성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넌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그리고 넌 약하지 않아."
박성준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지금 뭔가 힘든 거면, 그걸 함께 견디자. 우린 팀이잖아. 혼자 짊어질 필요 없어."
준호는 박성준의 눈을 마주했다. 정말 진심이었다. 정말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준호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준호가 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박성준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워. 정말."
준호의 목소리는 작았다.
"3세트 시작하자."
경기장으로 나갔다.
## 3세트
3세트는 처음부터 준호에게 지옥이었다. 손가락이 저렸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손 전체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준호의 손을 잡고 있는데, 그것이 준호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10대 8. 상대 우위.
16대 14. 계속 밀렸다.
18대 18. 마지막 포인트.
준호가 라인에 섰다. 상대 에이스가 서브를 준비했다. 높은 궤적. 준호가 예측했다. 신체가 반응했다. 팔이 모였다. 손가락이 펼쳐졌다.
이번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이 공은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손이 공을 감싸 안았다. 완벽한 각도. 정확한 위치. 공은 토스라인으로 떠올랐다.
박성준이 스파이크를 준비했다. 준호는 그 순간을 봤다. 박성준의 팔이 올라가고. 공이 상대 블로킹을 향해 날아가고.
그리고 그 순간.
준호의 손가락이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었다. 색깔이. 온기가. 감각이.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손이 아니었다.
경기장이 정적으로 변했다. 모든 음성이 사라졌다. 모든 움직임이 느려졌다.
상대팀의 리시버가 박성준의 스파이크를 받아냈다. 그 공이 다시 날아왔다. 준호가 있는 쪽으로.
준호는 움직이려고 했다. 손이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손이 반응했다. 하지만 손이 없었다.
공이 준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경기장의 소리가 점차 돌아왔다. 관중의 탄성. 상대팀의 환호. 박성준의 고함. 모든 것이 혼재된 소음.
25대 18. 세트 포인트. 경기 종료.
라커룸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준호는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정상적으로 보였다. 색깔이 있었다. 온기도 있었다. 하지만 감각은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내부를 파내간 것처럼.
## 라커룸
경기는 졌다. 2대 1. 이명호 감독이 라커룸 문을 닫으며 선수들을 응시했다. 침묵.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했다.
"플레이오프까지 5경기다. 우리는 지금 8위에 있고, 5위 안에 들어야 한다."
감독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그래서 더 차가웠다.
"저 경기는 이길 수 있었다. 아니, 이겨야 했다."
감독의 눈이 준호에게 멈췄다. 준호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모두 나가. 임준호는 남아."
선수들이 나갔다. 박성준이 마지막에 준호를 봤다. 가려는 손을 멈췄다가, 결국 문을 통과했다.
이명호 감독이 의자에 앉았다. 준호도 앉았다.
"너의 불안감이 보여. 첫 경기 때는 그런 게 없었는데."
감독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넌 뭔가를 잃고 있다. 게임 감각도 아니고. 신체 능력도 아니고. 그건 정신이야. 정신."
준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미안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야 한다. 넌 뭔가를 숨기고 있다. 모두가 느껴. 나도, 박성준이도, 이혜진도."
감독이 준호에게 가까워졌다.
"이 팀에 들어올 때 넌 내게 말했어. '당신이 나를 믿어주면 이 팀을 바꾸겠다'고. 기억해?"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지금 뭐가 문제야? 넌 여전히 우리 팀의 최고 선수야. 하지만 네가 무너지면 우리 팀도 무너진다. 플레이오프까지 버텨줄 수 있어?"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감독은 준호의 침묵을 읽었다.
"대답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라는 뜻이야. 그런데 넌 '네'라고 말해야 돼. 이 팀을 위해. 박성준이를 위해."
감독이 일어섰다.
"오늘은 집에 가. 푹 쉬어. 내일부터 훈련이다."
준호가 나왔다. 복도에서 박성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난 너를 알아. 넌 뭔가 크고 무거운 걸 짊어지고 있어."
박성준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그걸 나한테 말하면 어떨까? 혼자 짊어질 필요 없잖아."
준호는 박성준의 손을 봤다. 따뜻했다. 현실적이었다. 준호의 손과는 다르게.
"미안해. 아직 말할 수 없어."
박성준의 손이 준호의 팔에서 떨어졌다. 그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변했고, 곧 상처로 변했다.
"그럼 난 뭐야? 넌 내 앞에서 이렇게 벽을 치고 있고?"
준호는 박성준을 바라봤다. 박성준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준호를 도우려고 했지만, 준호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 거부가 박성준을 상처 입혔다.
"내가 정말 이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박성준이 한 발 물러섰다.
"뭐라는 거야?"
"난... 정말로 모르겠어.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 건지."
박성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오래. 그 눈빛에는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동시에 절망도 있었다. 그리고 결정이 있었다.
"알겠어. 혼자 해."
박성준이 돌아섰다. 준호는 그 뒷모습을 봤다. 박성준의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포기였다.
## 심리상담
이혜진을 만난 건 그 다음날이었다. 팀 심리상담실. 준호는 그곳에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명호 감독의 지시였다.
이혜진이 차를 내밀었다. 준호는 받지 않았다.
"당신은 지금 성공했어요."
이혜진이 말했다.
"3경기 연속 승리. 미디어의 주목. 팬들의 환호. 모든 게 당신이 원하던 거 아닌가요?"
"네."
"그런데 자신이 없어 보여요. 왜 자신을 못 믿어요?"
준호가 침묵했다.
"당신의 플레이는 거짓이 아니에요. 그건 실제 능력이에요. 왜 자신을 의심해요?"
"내가 정말 이 정도의 선수인지 모르겠어요."
이혜진이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첫째,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둘째, 누군가가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
준호는 이혜진을 봤다. 그녀의 눈은 깊었다.
"누군가가?"
"당신을 낮춘 누군가. 당신을 무시한 누군가. 그들이 만들어낸 상처가 당신을 지금도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혜진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준호의 손이 떨렸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호흡이 얕아졌다.
"그런데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어요."
이혜진이 준호를 더 깊이 관찰했다.
"당신의 기억이 정말 현재의 것뿐인가요? 아니면 과거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지우려고 하는 건가요?"
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당신은 정말 인간인가요?"
한지은 기자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 추궁. 그 의심.
이혜진의 물음이 겹쳤다.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심리상담과 기자의 질문이 연결되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준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준호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당신의 감각 상실은 신체적 문제가 아니에요. 그건 정체성의 붕괴예요."
이혜진이 말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니까, 당신의 손도 당신을 거부하는 거예요."
## 훈련장
훈련장으로 돌아온 준호는 코트에 섰다. 박성준이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말을 걸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었다.
감독은 준호와 박성준의 짝을 변경했다. 박성준은 다른 선수와 연습했다. 준호는 그것을 목격했다. 명확한 신호였다. 준호가 팀에서 고립되었다는 신호.
3일 후. 다음 경기. 상대는 중위권 팀이었다. 평소라면 이길 수 있는 팀.
## 18대 18
18대 18. 결정의 순간.
준호가 라인에 섰다. 상대 에이스가 서브를 준비했다. 준호는 이미 그 궤적을 알고 있었다. 10년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서브가 날아왔다. 준호의 몸이 반응했다. 발이 움직였다. 팔이 올라갔다.
공이 준호의 팔에 닿았다.
이번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이 공은. 이 순간은.
손이 공을 감싸 안았다. 완벽한 각도. 정확한 위치. 공은 토스라인으로 떠올랐다. 박성준이 스파이크를 준비했다. 준호는 그 순간을 봤다. 박성준의 팔이 올라가고. 공이 상대 블로킹을 향해 날아가고.
상대팀의 리시버가 공을 받아냈다. 그 공이 다시 날아왔다. 준호가 있는 쪽으로.
준호는 움직였다. 한 발 앞으로. 손을 모았다. 팔이 공을 맞췄다.
그 순간.
준호는 손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손이 없었다. 감각만 남아있었다. 아니. 감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손이 없는 상태에서 신체만으로 공을 받아내려는 본능이 발동했다. 팔뚝이 공을 끌어안으려 했다. 어깨가 움직였다. 몸 전체가 공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없었다.
공이 준호의 팔뚝을 스쳐 지나갔다. 방향이 틀어졌다. 준호가 받은 공이 아니었다.
상대팀이 그 공을 받아냈다. 그리고 스파이크를 날렸다.
박성준이 블로킹을 시도했다. 하지만 공은 박성준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25대 18. 경기 종료.
라커룸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준호는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정상적으로 보였다. 색깔이 있었다. 온기도 있었다. 하지만 감각은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내부를 파내간 것처럼.
경기는 졌다. 2대 1.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4경기 남았다.
라커룸에 들어간 준호는 벤치 모서리에 앉았다. 선수들이 옆을 지나갔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준호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박성준은 준호 옆에 앉지 않았다.
감독은 준호를 보지 않았다.
그 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 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준호는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얼굴도 변하고 있었다. 윤곽이 흐려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준호를 지우고 있는 것처럼.
준호는 깨달았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이것은 소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