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진실 추적

한지은은 카페 한 켠 노트북 화면에 눈을 떼지 못했다. 밝은 조명 아래 의료 기록 파일이 떠 있었다. 신경과 검사, 뇌파 측정, 혈액 검사—모두 정상이라는 결론으로 끝나 있었다. 그런데 하단 별첨 항목에 박혀 있는 문장 하나가 마치 검은 못처럼 그녀의 시선을 박아두었다.

'뇌파 기록: 일반적 범위 내이나 미세한 이상파 감지. 임상적 의의 불명.'

한지은은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굴렸다. 이상파의 수치를 확대했다. 표준편차로 계산하면 0.7%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 있었다. 0.7%. 거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신경과 의사인 김준호 교수에게 직접 전화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반인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패턴이에요. 간질 환자나 뇌손상 경력자에게서나 보이죠. 근데 이 분은 그런 병력이 없다고?"

한지은은 스크린샷을 세 장 더 찍었다. 밤 10시 45분.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문자를 썼다.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중요한 게 있어요. —한지은'

발신 상대는 임준호. 3분 뒤 답장이 왔다.

'괜찮습니다.'

한지은은 노트북을 닫고 일어섰다. 밤새 추적한 흔적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10년 전 스카우트 기록에서 '최고 재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가 왜 벤치에만 앉아 있었는가. 그리고 지금, 갑자기 나타나 팀을 구원하는 플레이를 펼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

강남역 근처 24시간 카페. 새벽 4시 20분.

임준호는 이미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검은색 후드를 깊게 눌러쓴 그의 얼굴은 창밖의 가로등 불빛 아래 창백했다. 한지은이 다가가자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흔들렸다.

"왜 자고 있지 않으세요?"

한지은은 그의 질문이 역할을 뒤집는 것을 알아챘다.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선수. 그렇다면 그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지은은 의자에 앉았다.

"당신이 먼저 물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한지은은 노트북을 꺼냈다. 의료 기록 스크린샷을 화면에 띄웠다. 임준호의 얼굴이 두 톤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뇌파 기록을 어떻게 얻었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질문이라기보다 고백에 가까웠다.

"공개 정보입니다. 의료 기록은 본인 동의 하에 열람 가능하거든요. 당신이 어딘가에 이미 제출했던 자료고요."

한지은은 화면을 가리켰다.

"이상파가 뭔지 알아요?"

"모릅니다."

"신경과 의사들도 설명할 수 없는 패턴이에요. 일반인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당신의 뇌파는 표준 범위에서 0.7% 벗어나 있어요. 거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인데, 의사는 이렇게 말했어요. 간질 환자나 뇌손상 경력자에게서나 보인다고."

임준호는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다. 손톱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돌아왔다. 혈액 순환을 제어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한지은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당신이 뭔지 말해주세요."

한지은은 노트북을 닫았다.

"저는 모르는데요."

"거짓말이에요. 당신은 알고 있어요. 당신의 신체가 뭔가 다르다는 걸. 10년 전에 당신은 최고 평가를 받았어요. 그런데 왜 벤치만 했어요?"

"모르겠습니다."

"또 거짓. 당신은 알고 있어요. 누군가가 당신을 벤치에 앉혔다는 걸.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걸 증명하려고 해요."

임준호가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카페의 야간 직원이 고개를 돌렸다. 임준호는 한지은을 내려다봤다. 얼굴에서 모든 감정이 걷혀 나갔다.

"기사 쓰지 마세요."

"왜요?"

"당신이 나를 파헤칠수록 팀이 무너져요. 내 불안이 팀에 전해져요. 박성준이, 감독이, 모두가."

한지은은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이 남자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폭로할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팀에 끼칠 영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당신은 죽었어요?"

물음이 입밖으로 나왔을 때 한지은 자신도 놀랐다. 그건 질문이라기보다 직관이었다. 임준호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당신은 진짜 23세가 아니에요. 당신의 뇌파가 증명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의 눈이."

한지은은 임준호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안에는 23세의 불안감이 아니라 33세의 절망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여기 있어요. 지금. 이 순간. 당신 앞에 있어요."

임준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다.

"기사 쓰지 말아 주세요. 제발."

***

새벽 5시. 서울 이글스 훈련장.

박성준은 체육관 조명을 켜고 코트에 섰다. 혼자였다. 아침 훈련까지는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는 코트 모서리에서 리시브 자세를 잡았다. 벽에 공을 던지고 받는 반복.

"너 미쳤냐? 이 시간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임준호였다. 후드를 쓴 그의 모습이 코트의 형광등 아래 유령처럼 보였다.

"너도 못 잤어?"

박성준은 공을 던졌다. 임준호가 받았다. 정확한 리시브였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움직임이 무겁고 기계적이었다.

"너는 뭐야?"

박성준이 물었다. 이전의 친근함이 사라진 질문이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

"10년 벤치 선수가 맞아? 정말?"

임준호는 공을 던졌다. 박성준이 받았다.

"맞아."

"거짓말. 넌 뭔가 크고 무거운 걸 짊어지고 있어. 눈에 띄어. 손이 떨려. 얼굴이 창백해. 넌 뭐야?"

박성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처음으로 임준호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그것은 좌절의 분노였다. 자신의 파트너를 모르는 것에 대한.

"약해졌어."

임준호가 중얼거렸다.

"뭐?"

"내가 약해졌다고. 손이 약해졌고, 머리가 약해졌고, 전부 약해졌어."

임준호는 코트 한쪽 끝으로 가서 공을 받는 자세를 잡았다. 박성준이 강하게 공을 던졌다. 스파이크에 가까운 강도였다. 임준호가 움직였다. 손이 공을 향해 뻗어 나갔다.

손가락이 저렸다.

순간, 신경이 끊어지는 듯한 감각. 손가락이 제어되지 않았다. 공이 손가락 끝을 스쳐 지나갔다. 리시브가 실패했다. 공은 코트 밖으로 날아갔다. 임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을 내려다봤다.

"내가... 받지 못했어."

그 말이 나왔을 때 박성준의 얼굴이 굳었다. 10년을 함께한 파트너가 처음으로 공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뭔가 더 깊은 결함을 암시했다. 박성준은 다시 공을 던졌다. 이번엔 더 강하게. 마치 임준호가 정말 그것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이.

임준호가 움직였다. 손이 공을 향해 뻗어 나갔다. 다시 저림. 손가락이 제어되지 않았다. 공이 손가락 끝을 스쳐 지나갔다. 또 다른 실패. 박성준은 공을 던지지 않았다. 코트에 떨어진 공을 바라봤다.

"뭐가 일어났어?"

박성준이 물었다. 분노는 사라졌다. 남은 건 무력감이었다.

"모르겠어. 손이... 손가락이... 마치 누군가가 잡고 있는 것처럼."

임준호는 손을 다시 봤다. 손가락이 여전히 저렸다. 그 저림은 손목에서 팔뚝까지 퍼져 나가고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박성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것은 선수로서의 무력감이었다. 자신의 파트너를 믿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불신이 자신의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아."

임준호는 코트를 나갔다. 박성준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공이 손에 남아 있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파트너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목격했고, 그것이 자신의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아침 7시. 감독실.

이명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임준호가 섰다. 감독은 안경을 벗었다 썼다를 반복했다.

"너 정말 여기서 우리와 함께 우승하고 싶어?"

"네."

"거짓말 같은데?"

"진짜입니다."

"그럼 왜 자꾸 흔들려? 최근 경기 영상 봤어. 너 집중력이 떨어져. 리시브 타이밍이 밀려. 손가락이 흔들려."

이명호는 안경을 다시 벗었다. 눈을 비볤다.

"정말 여기가 맞는 거지? 아니면 최강팀으로 가고 싶어? 나는 당신이 왜 우리를 선택했는지 정말 궁금해. 돈도 적고, 팬도 적고, 시설도 형편없는데."

감독은 임준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더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 선수가 떠나가 버릴 거라는 두려움. 그리고 그것이 팀 전체를 흔들 거라는 두려움.

"여기가 맞습니다."

"정말?"

"네."

"그럼 넌 정말 살아 있는 거지? 죽지 않은 거지?"

감독의 질문이 임준호를 관통했다. 그것은 의학적 질문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질문이었다. 임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감독의 신뢰가 임준호를 짓누르고 있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죄책감처럼 느껴졌다.

"당신이 우리를 선택한 이유가 뭐든 상관없어. 난 당신을 믿어. 하지만 이건 명심해. 우리 팀은 개인의 영광을 원하지 않아. 우리는 함께 올라가길 원해. 알겠어?"

임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의 신뢰가 위로인지 죄책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

오후 2시. 심리 상담실.

이혜진은 임준호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초근초동.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분명했다. 근육이 스스로 경련하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성공했어요. 봐요. 팀이 승리하고 있어요. 당신 때문에."

이혜진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진짜 제 성공일까요?"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게 맞나요? 이게 현실이 맞나요?"

임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은 지금 여기 있고, 호흡하고 있고, 말하고 있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아니면 이게 죽기 직전의 환상일까요?"

"그럴 리가요. 당신은 살아 있어요."

"근데 내 기억이 사라지고 있어요. 10년 전 기억들이 희미해져요. 내가 33세였을 때의 기억이. 그리고 이 능력도 사라질 거 같아요. 사라지면 난 뭐가 되는 거죠? 난 누구예요?"

임준호는 손을 봤다. 손가락이 저렸다. 마치 누군가 손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임준호예요. 서울 이글스의 리베로. 지금 이 시간에 이곳에 있는 사람."

"그게 전부예요?"

"충분해요."

이혜진은 손을 내밀었다. 임준호는 그것을 잡지 않았다. 상담사의 위로가 자신의 정체성 의문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밤 11시 30분. 자취방.

임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손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근육 기억이 정말 사라지는 건 아닐까. 아직 손가락이 있고, 신경이 있고, 뇌가 있는데도 그것들이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손목에서는 계속 저림이 올라왔다. 팔뚝까지 퍼지는 저림. 마치 누군가가 손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 표시 없음.

"여보세요?"

음성이 변조되어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역재생한 듯한, 낯설고 어색한 음성이었다.

"당신의 손이 점점 더 약해질 거예요."

"누세요?"

"우리가 당신을 선택했어요. 기억하세요? 10년 전. 당신이 서울 이글스에 입단했을 때. 우리가 당신을 벤치에 앉혔어요."

임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 음성은 자신의 목소리인데, 자신이 절대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랬어요?"

"당신은 아직 준비가 덜 됐어요. 10년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지금 당신은 준비됐어요.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당신의 근육 기억이 사라지고 있거든요. 당신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어요."

"뭐가 사라진다는 거예요?"

"모든 것. 당신이 33세에서 축적한 모든 기억. 당신의 정체성.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곧 당신은 진짜 23세가 될 거예요. 아니면 아무도 아닌 누군가가 될 거예요."

통화가 끊어졌다.

임준호는 일어났다. 새벽 3시였다. 거울 앞에 섰다. 형광등 불빛 아래 자신을 봤다.

"내가 정말 23세인가?"

중얼거림이 거울 속에서 반복되었다. 거울 속 얼굴이 조금씩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피부가 늘어나고, 주름이 생기고, 눈이 침침해지는 것처럼. 아니었다. 그건 조명 때문이었다. 단지 조명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울 속 그 남자의 눈빛만은 명확했다. 23세의 불안감이 아니라 33세의 절망. 죽어가는 눈빛.

손가락이 저렸다. 더 강하게. 팔뚝까지 저림이 올라왔다. 어깨까지 퍼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손목을 꽉 잡고 있는 것처럼.

***

새벽 4시 10분. 한지은의 원룸.

기자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천장을 노려봤다. 손에는 인쇄된 의료 기록이 들려 있었다. 병원 관계자에게서 '비공식적으로' 입수한 문서. 임준호의 입단 당시 신체검사 결과.

혈액 검사: 정상. 골밀도: 정상. 근력 측정: 평균 이상. 뇌파 검사: **미세한 이상 감지. 원인 불명.**

"미세한 이상."

한지은이 중얼거렸다. 손가락으로 그 문장을 더듬었다.

10년 전 스카우트 기록에서 본 평가는 '최고의 재능'이었다. 그런데 왜 벤치만 했을까. 의료 기록에 '미세한 이상'이라는 문구가 있다면, 당시 감독이나 의사들은 뭔가를 알고 있었을 거다.

한지은은 일어나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시간은 새벽 4시 23분. 검색 기록을 뒤졌다.

- 임준호 서울 이글스 입단 기사 (10년 전) - 임준호 벤치 기간 언급 기사들 - 최근 임준호 회귀 관련 루머 - 뇌파 이상과 운동 능력의 연관성

마지막 검색어에서 한지은의 손가락이 멈췄다.

'뇌파 이상 + 초능력'

결과는 SF 영화 리뷰와 과학 논문들의 엉망진창한 혼합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뇌파가 아니었다는 것.

그 남자는 뭔가 다르다.

***

아침 7시. 서울 이글스 체육관 입구.

한지은은 임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보이자 기자는 빠르게 다가갔다.

"임선수."

임준호는 멈췄다. 수면 부족의 자국이 눈 아래에 선명했다.

"기자님?"

"5분만 시간 있을까요?"

"경기 준비가..."

"중요한 게 있어요."

한지은은 임준호를 체육관 옆 복도로 이끌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기자는 의료 기록 사본을 꺼냈다.

"이거 본 적 있어요?"

임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당신의 입단 당시 신체검사 결과예요. 뇌파가 정상이 아니라고 나와 있어요. '미세한 이상 감지. 원인 불명.' 이게 뭐예요?"

"모릅니다."

"정말? 10년 전 당신은 최고의 재능이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그런데 벤치만 했어요. 뇌파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제가..."

한지은은 임준호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사고 직전에 뭐가 일어났어요? 당신의 뇌파 기록을 더 파고들어보니 입단 당시와 지금의 패턴이 달라요. 마치 다른 사람의 뇌 같은."

임준호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떨림을 감추려는 제스처였다.

"당신은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야."

그 말이 나가자 임준호의 손가락이 저렸다. 강하게. 마치 누군가가 손목을 조르는 것처럼.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진실을."

"진실이 뭔지 저도 모릅니다."

임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한지은은 이 남자가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느꼈다. 그것은 비난받을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를 잃어버릴 두려움이었다.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요. 당신이 지금 여기 있는 게 진짜예요? 아니면 환상이에요?"

"...모르겠어요."

한지은은 노트를 내렸다. 기자로서 물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이 남자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시간에 의해. 아니면 뭔가 더 깊은 것에 의해.

"경기 잘해요."

***

경기 전 라커룸.

박성준이 임준호에게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넌 정말 10년 벤치 선수가 맞아?"

임준호는 준비 중인 복장을 만지작거렸다.

"네."

"거짓말하지 마. 넌 뭔가 이상해. 처음부터. 왜 우리를 선택했어? 최강팀이 아니라 우리를."

"..."

"넌 정말 우리와 우승하고 싶어?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

임준호는 박성준을 봤다. 에이스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10년을 함께한 파트너로서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하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팀을 위해."

박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코트로 나갔다. 경기는 계속되어야 했다.

***

경기 중.

3세트 중반. 상대 에이스의 스파이크가 날아왔다. 공의 궤적이 보였다. 착지점이 예상됐다. 손이 움직였다.

리시브.

공이 정확하게 박성준 쪽으로 올라갔다. 에이스의 스파이크가 상대 진영을 강타했다. 포인트.

하지만 임준호의 손은 계속 저렸다. 그리고 그 저림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2세트 말. 상대 스파이크가 다시 날아왔다. 임준호는 움직였다. 손이 공을 향해 뻗어 나갔다. 하지만 손가락이 저렸다. 너무 강하게. 손가락이 제어되지 않았다.

공이 손가락 끝을 스쳐 지나갔다.

리시브 실패.

스코어보드가 상대팀의 포인트를 표시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임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계속 저렸다. 마치 누군가가 손목을 조르며 말하는 것처럼.

이게 내 손인가. 이게 내 신체인가. 내가 이 공을 놓친 건가.

박성준이 임준호를 봤다. 처음으로 자신의 파트너가 경기 중에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뭔가 더 깊은 결함을 암시했다.

다음 플레이. 상대 스파이크. 또 다른 리시브. 이번엔 성공했다. 하지만 손가락의 저림은 계속됐다. 임준호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근육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면 자신도 함께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

경기 후반. 세트 포인트 상황. 상대 에이스의 강한 스파이크가 임준호 쪽으로 날아왔다. 손이 움직였다. 공을 향해 뻗어 나갔다. 손가락이 저렸다. 강하게. 손가락이 제어되지 않았다.

공이 손가락 끝을 스쳐 지나갔다.

또 다른 실패.

박성준은 임준호를 바라봤다. 그 순간 에이스는 알았다. 자신의 파트너가 더 이상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팀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을.

***

경기 후. 라커룸.

이명호 감독이 임준호를 불렀다. 사무실로.

"앉아."

임준호는 앉았다. 감독은 경기 영상을 재생했다. 임준호의 리시브 장면들. 대부분 완벽했다. 하지만 그 두 번의 실패가 화면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손가락이 저려서 공을 놓친 장면.

"다음 경기 출전은 어려울 것 같아."

감독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말은 임준호를 관통했다.

"감독..."

"의료진에 물었어. 당신의 신경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고 하더라. 손가락 저림이 진행형이라고."

이명호는 영상을 멈췄다. 그 실패의 순간에서.

"당신이 뭐든 당신이 우리를 선택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해. 하지만 나는 팀을 지켜야 해. 당신의 상태가 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건 아닌지 확인해야 해."

임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의료진 검진을 받아. 내일 아침. 그 결과에 따라 다음 경기 출전 여부를 결정하겠어. 알겠어?"

임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의 결정이 임준호를 짓누르고 있었다. 신뢰는 이제 조건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자신의 신체가 결정할 것이었다.

***

밤 11시 45분. 자취방.

임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손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여전히 저렸다. 여전히 누군가가 손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팔뚝까지 올라온 저림. 이제 어깨까지 퍼지고 있었다.

휴대폰을 집었다. 메시지가 왔다.

'당신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서두르세요.'

발신자 없음.

임준호는 일어났다. 새벽 3시였다. 거울 앞에 섰다. 형광등 불빛 아래 자신을 봤다.

"내가 정말 23세인가?"

그 말을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거울 속 얼굴이 변하지 않았다. 23세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33세의 눈빛이었다. 절망의 눈빛. 죽어가는 눈빛.

손가락이 더 강하게 저렸다. 이제 손가락뿐만 아니라 손 전체가 저렸다. 마치 누군가가 손목을 조르며 말하는 것처럼.

'당신은 이미 죽었어. 이건 마지막 기회야. 마지막 춤이야. 마지막 공연이야.'

임준호의 손이 떨렸다. 더 이상 근육 기억 때문이 아니었다. 순수한 공포 때문이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한지은의 번호.

"기자님?"

"당신이 정말 23세 같지 않아요."

"..."

"난 당신이 누군지 찾아낼 거예요. 당신이 뭔지. 당신이 정말 인간인지."

"그러지 마세요."

"왜?"

"내가... 아직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어요."

통화가 끊어졌다.

거울 앞에서 임준호는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를 반복했다. 손이 있다. 신경이 있다. 뇌가 있다. 하지만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마치 이 모든 게 누군가의 조종 아래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조종자는 자신의 목소리로 말한다. 역재생된 자신의 목소리로.

새벽 4시 47분. 임준호는 여전히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손가락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살아 있는 건가?"

거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목의 저림은 계속됐다. 마치 누군가가 손목을 조르며 계속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의료진 검진은 내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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