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커룸의 형광등
라커룸의 형광등이 준호의 얼굴을 비췄다. 하얀 천장, 검은 로커, 회색 벤치. 10년 전 이 공간을 떠날 때와 똑같은 냄새—스포츠 테이프와 세제와 절망.
준호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손가락이 저렸다.
약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 손등을 누르고 있는 것 같은 감각. 손가락이 하나씩 구부러지는 느낌. 준호는 손을 펼쳤다가 다시 움켜쥐었다. 저림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해졌다. 손등의 피부가 따뜻해졌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임준호! 어서 와!"
박성준이 달려왔다. 에이스의 얼굴은 진심으로 환했다. 그는 준호의 어깨를 힘껏 잡았다. 팀의 다른 선수들도 하나둘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은 어색했지만 따뜻했다. 리그 최약체팀에 어떤 희망이 들어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그들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라커룸 입구가 열렸다.
"준호 선수 맞나요?"
음성이 낮고 날카로웠다. 긴 검은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한지은. 준호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스포츠 채널의 기자였다. 그녀의 눈빛은 호기심을 넘어 의심으로 가득했다.
"10년을 벤치에만 앉아 있다가 갑자기 복귀했다면서요? 이 팀을 선택한 이유가 뭐예요?"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로커 앞으로 걸어갔다.
"준호 선수? 혹시 복귀 전에 다른 팀과 접촉이 있었나요? 아니면..."
"내일 훈련이 있으니까요."
박성준이 한지은을 밖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기자의 눈은 계속 준호를 따라왔다. 준호는 유니폼을 벗어 로커에 넣었다.
손가락 저림이 급격히 강해졌다.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발신자. 문자만 떨어졌다.
"당신은 왜 회귀했나요?"
준호는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다음 날 오전 10시. 훈련장.**
서울 이글스의 훈련장은 낡았다. 천장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조명 중 두 개는 깜박였다. 하지만 네트와 코트는 정성껏 관리되어 있었다.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팀의 철학이 느껴졌다.
준호는 코트 위에 섰다.
"임준호! 오른쪽 코트에서 시작해!"
이명호 감독의 목소리가 울렸다. 감독은 메모장을 들고 있었다. 그 얼굴은 기대와 의심의 중간쯤에 있었다.
첫 번째 드릴은 기본 리시브였다.
코치가 스파이크를 날렸다. 일반적인 속도와 각도였다. 준호의 몸이 움직였다. 신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디서 공이 떨어질지, 어느 각도로 팔을 펼쳐야 할지, 몸 전체를 어떻게 회전시켜야 정확한 토스가 나올지. 10년의 근육이 33세의 기억을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뭔가 어긋났다.
팔의 속도는 33세였지만 신체의 반응은 23세였다. 움직임이 약간 빨랐다. 타이밍이 미세하게 앞섰다. 공이 세터에게 올라갔지만, 궤적이 예상보다 높았다.
"음?"
코치가 고개를 기울였다.
"다시."
두 번째 스파이크. 준호는 빠르게 움직였다. 이번엔 강한 스파이크였다. 속도가 빨랐다. 준호의 팔은 그 속도를 읽었지만, 신체는 과하게 반응했다. 다이빙이 필요 없는 공을 다이빙으로 받았다. 공은 정확하게 올라갔지만, 그 과정은 거칠었다.
세터가 살짝 눈썹을 올렸다.
"저 리베로 뭐 하는 거야?"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준호는 쉼 없이 움직였다. 스파이크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코치가 도전하듯 강하게 날렸다. 준호는 한 걸음에 옆으로 움직여 몸을 날렸다. 다이빙 리시브. 공은 천장 높이에서 정확하게 세터의 손에 떨어졌다.
하지만 준호의 몸은 코트에 내팽개쳐졌다. 23세의 신체가 33세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무릎이 먼저 부딪혔다. 손가락이 저렸다.
라커룸 전체가 조용해졌다.
"저게 리베로냐?"
코치가 외쳤다. 그 음성에는 놀람을 넘어 의심이 섞여 있었다.
준호는 일어났다. 손가락의 저림이 더 강해졌다. 마치 누군가 손을 꽉 잡고 있는 것처럼. 신체 전체에 전기 같은 감각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성장인가, 아니면 죽음 직전의 환각인가. 그 질문은 이미 뒤로 밀려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이 하는 일은 거짓이 아니었다.
훈련이 계속됐다.
이명호 감독이 메모장에 무언가를 계속 적었다. 그의 표정이 변했다. 의심에서 더 깊은 의심으로. 마치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30분 후, 감독이 손을 들었다.
"준호! 여기 와."
준호가 다가가자 감독은 그를 코트 밖으로 이끌었다. 다른 선수들은 계속 훈련을 했다. 감독의 목소리는 낮았다.
"너 정말 10년을 벤치에만 있었어?"
"네."
"그럼 이게 어떻게 가능해? 저 플레이들은... 완벽하지만 완벽하지 않아. 마치 두 명의 선수가 한 몸에 있는 것처럼."
감독은 준호의 눈을 직접 봤다. 마치 거짓을 찾아내려는 듯이.
"감독님?"
"리시브는 노련하지만 움직임은 어리숙해. 판단은 정확하지만 신체가 따라가지 못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 이상해. 너는 이미 완성된 선수인데,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선수야. 이게 말이 돼?"
감독은 준호를 더 자세히 관찰했다. 마치 영상 분석을 하듯이.
"암튼 상관없어. 넌 내가 필요한 선수야. 이게 내 마지막 시즌이거든. 퇴직 전에 한 번이라도 우승을 경험하고 싶어. 그리고 넌... 그걸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해두자."
감독은 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넌 내 팀의 일원이야. 이 팀에는 위계가 있고, 규칙이 있고, 신뢰가 있어. 그 모든 것을 지켜야 한다. 알겠지?"
"네."
"그리고 저 기자년이 또 들어오면 미리 알려. 선수의 인터뷰는 구단을 거쳐서 하는 거야. 이건 원칙이다."
감독은 준호를 다시 코트로 보냈다.
"훈련 계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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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의 정규 훈련이 끝났다. 준호는 모든 드릴에서 노련함과 어색함을 동시에 보여줬다. 리시브, 토스, 커버, 다이빙, 원 터치. 리베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현했지만, 매번 미세한 불협화음이 있었다. 마치 두 개의 시간이 한 몸에서 충돌하는 것처럼.
선수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경외심과 의심 사이를 오갔다.
마지막 드릴은 게임 상황이었다.
준호는 리베로로서 백 로우의 중앙에 섰다. 상대 팀이 스파이크를 날렸다. 준호는 그것을 예측했다. 10년의 경험이 상대 스파이커의 팔 움직임을 읽게 했다. 공이 날아오기 전에 이미 준호는 그 궤적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체가 따라가지 못했다. 한 발, 두 발. 공을 받았지만 토스는 어긋났다.
박성준이 스파이크를 날렸다. 하지만 공은 네트에 걸렸다.
"어?"
박성준이 준호를 봤다. 그 얼굴에는 놀람이 있었다.
훈련이 끝났다.
---
샤워를 마친 준호가 라커룸으로 돌아왔을 때, 박성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준호."
"응."
"너 진짜 10년을 벤치에만 앉아 있었어?"
준호는 옷을 입었다. 박성준의 눈이 따라왔다.
"응."
"그럼 뭐 하는 거야? 아까 마지막 게임에서 토스가 왜..."
박성준은 말을 멈췄다. 준호를 더 자세히 봤다. 라커룸 복도의 형광등 아래서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뭔가 다르다."
박성준이 준호의 눈을 직접 봤다.
"아까 리시브들... 본적 없는 플레이야. 그리고 넌..."
박성준은 말을 멈췄다. 마치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듯한 표정이었다.
"뭔가 다르다. 진짜로. 눈빛이 다르고, 움직임이 다르고... 너 뭔가 숨기고 있지?"
"아니야."
"정말?"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했다.
박성준의 표정이 변했다. 신뢰가 흔들렸다. 그의 눈이 좁혀졌다.
"뭐...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응."
박성준은 다시 봤다. 마치 영상 분석을 하듯 세밀하게. 그 시선이 준호를 관통했다. 이번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의심이었다.
"흠..."
박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뭐, 상관없어. 어떤 비밀이 있든 난 넌 믿을 거야. 일단은."
박성준은 준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 손의 무게가 달랐다. 신뢰가 아니라 경고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넌 내 팀의 리베로니까. 그리고 나는 넌 최고라고 생각해. 아직은."
박성준은 준호를 더 오래 봤다.
"다음에 만날 때 뭔가 설명해 줄 거지?"
"응."
"약속이야."
박성준은 라커룸을 나갔다. 그의 뒷모습에는 불안감이 묻어났다.
그 순간, 준호의 손가락이 저렸다. 약했다가 강해졌다. 마치 누군가 손을 꽉 쥐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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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감독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훈련 영상을 담은 태블릿이 놓여 있었다. 준호가 들어가자 감독은 화면을 꺼버렸다.
"앉아."
준호는 앉았다. 감독은 선글라스를 벗고 준호를 봤다. 그의 눈은 피로했다. 주름이 많았다. 나이는 58세. 배구 경력 30년.
"오늘 훈련 어땠어?"
"죄송합니다."
감독은 눈을 좁혔다.
"뭐가 미안해?"
"마지막 게임에서 토스가..."
"그건 아직 괜찮아. 신체가 적응하는 과정이겠지. 하지만 뭔가 이상해."
감독은 태블릿을 다시 켰다. 화면에는 준호의 리시브들이 나왔다. 정확한 것도 있고, 어긋난 것도 있었다.
"이 영상을 봐. 처음엔 완벽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긋나. 마치 두 개의 신체가 싸우고 있는 것처럼."
감독은 화면을 끄고 준호를 봤다.
"너 정말 10년을 벤치에만 있었어?"
"네."
"그럼 이게 무슨 일이야? 벤치에서 10년을 있었으면 신체가 굳어야 정상이야. 그런데 넌 첫 훈련부터 이 정도 수준이야. 이게 말이 돼?"
감독은 선글라스를 다시 썼다.
"뭔가 숨기고 있지?"
"아닙니다."
"정말?"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감독은 한숨을 쉬었다.
"암튼 상관없어. 넌 내가 필요한 선수야. 이게 내 마지막 시즌이거든. 퇴직 전에 한 번이라도 우승을 경험하고 싶어. 그리고 넌... 그걸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한 가지 더."
감독은 준호를 바라봤다.
"저 기자년이 또 들어오면 알려. 그리고 팀 내에서 뭔가 이상한 게 있으면 먼저 나한테 말해. 알겠어?"
"네, 감독님."
"그럼 가. 그리고 내일 훈련 때 더 나아져 있어야 해. 신체 적응이 빨리 이루어져야 우리가 우승할 수 있어."
준호는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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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는 조용했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나갔고, 청소 직원들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준호는 라커룸으로 가는 길에 창을 통해 훈련장을 봤다. 네트 위에 공들이 남아 있었다. 텅 빈 코트는 마치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손가락이 저렸다.
이번엔 단순한 저림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굽혀주는 느낌이었다. 준호는 손을 펼쳤다. 손바닥이 따뜻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준호는 받았다.
"여보세요?"
음성이 들렸다. 남성의 음성. 그리고 그 음성은 준호가 알고 있었다.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음성이었다.
"준호? 들려?"
"누... 누구야?"
"나야. 너야. 우리가 연결됐어."
준호의 몸이 굳었다.
"뭐... 뭐라는 거야?"
"넌 회귀했고, 난 남았어. 이제 우리가 다시 만난 거야. 손가락이 저릴 때? 그건 내 손이야. 내가 잡고 있는 거야."
준호의 손이 떨렸다. 그 목소리. 그것은 정확히 자신의 목소리였다. 33세의 자신. 죽기 직전의 자신.
"이건... 뭐야? 뭐가 일어나는 거야?"
"넌 혼자가 아니야. 절대로. 난 항상 여기 있어. 손가락 저림은 시작일 뿐이야. 넌 날 느껴야 해. 왜냐하면..."
음성이 끊겼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여러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남성, 여성, 아이의 목소리. 모두 다르지만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넌 우리의 마지막 기회야."
전화가 끝났다.
준호는 벽에 기댔다. 손이 떨렸다. 발도. 온 몸이 떨렸다. 창밖을 봤다. 서울의 야경이 여전히 밝았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색깔이 변했다. 모든 것이 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준호는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저렸다. 하지만 이번엔 통증이 아니라 온기였다. 따뜻하고, 안정적이고, 확실한 온기.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33세의 자신이었다.
손가락이 한 번 움직였다. 마치 대답하듯이. 마치 고개를 끄덕이듯이.
그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이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라커룸의 형광등. 감독의 의심스러운 눈빛. 박성준의 경고와 불안. 한지은의 질문과 추적. 편의점 점원의 응원. 그리고 지금의 손가락 저림과 여러 목소리.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었다. 회귀한 자신과 남겨진 자신.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 속에서 기다리던 누군가들.
준호는 창밖을 다시 봤다. 은색 야경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마치 새벽이 오는 것처럼.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빛처럼.
그의 눈빛이 변했다. 놀람과 두려움 사이의 그 무언가가 사라지고, 오직 결의만 남았다.
"알겠어."
준호가 속삭였다.
"난 할 수 있어. 우리가 할 수 있어."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꽉 쥐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약속을 하듯이.
그리고 준호는 알았다.
내일 훈련장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박성준에게 해야 할 말이. 감독에게 보여줘야 할 플레이가. 한지은이 추적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
손가락의 저림이 천천히 사라졌다. 하지만 따뜻함은 남았다. 그것이 준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