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번 침대
7번 침대의 알람이 벽을 긁었다.
「V-fib입니다!」
한수진이 소리쳤다. 도현의 시선이 모니터로 꽂혔다. 새벽에, 되감기로 되살린 그 청년. 심전도가 톱니처럼 튀다가 이내 무너져 내리는 파형—심실세동. 왼손으로 오른손을 짓누른 채, 도현은 그 두 글자를 알아봤다.
「제세동, 200줄!」
준혁이 먼저 패들을 집었다. 젤을 바르고, 흉부에 밀착.
「차지! 다들 물러나!」
방전음. 청년의 몸이 침대 위에서 한 뼘 튀어 올랐다가 떨어졌다. 모니터는 여전히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반응 없어. 다시!」
도현의 입안이 말랐다. 이 환자는—되감았다. 이미 한 번. 서부순환도로에서 실려 온 그날, 사망 확정 8분 전으로. 그 8분에 몇 달을 태웠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다시 죽어 가고 있었다.
「300줄! 차지!」
두 번째 방전. 청년의 턱이 경련하며 젖혀졌다. 파형은 살아나지 않았다.
도현은 이 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았다. 사망 확정. 그리고 능력의 발동. 사망이 확정되는 순간 자동으로 켜지는, 8분 전으로의 문. 언제나 그랬듯이.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도현, 뭐 해! 흉부압박 이어받아!」
준혁의 고함에 손이 움직였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쥐고, 흉골 아래쪽에 체중을 실었다. 하나, 둘, 셋. 갈비뼈가 손바닥 아래에서 삐걱거렸다.
'왜 안 켜지지.'
압박을 이어 가면서도 머릿속은 다른 데 가 있었다. 이전엔 사망이 확정되기도 전에 목덜미가 서늘해지고, 시야가 좁아지며, 그 8분의 문이 손짓했다. 새벽 첫 되감기 직후, 도현은 규칙을 깨달았다. 환자당 한 번. 두 번째 사망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소리. 되감기가 오지 않았다.
준혁이 이를 악물고 아드레날린을 밀어 넣었다.
「1mg 들어갔어! 리듬 체크—」
모니터가 잠깐 무언가를 그리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무수축. 에피 반복하고 압박 계속.」
수진이 스톱워치를 눌렀다. 그 손목에 걸린 시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도현의 오른팔이 떨렸다. 압박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어깨부터 손끝까지가 저릿했다. 갈색 반점이 뒤덮인 손등이 자기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이어받을게.」
준혁이 손을 겹쳐 압박을 넘겨받았다. 도현은 한 걸음 물러나 숨을 몰아쉬었다.
「도현.」
준혁이 압박을 이어 가며, 눈은 도현에게 두었다.
「너, 그거 왜 안 써. 8분. 이 환자한테는 왜 안 써.」
도현의 입술이 벌어졌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못 써.」
「뭐?」
「이 환자는… 한 번 썼어. 새벽에.」
수진의 손이 멈칫했다. 8번 병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압박 소리와 앰부백 쥐어짜는 소리만 남았다.
「환자당 한 번이야. 두 번째 사망은—」
도현이 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사포처럼 긁혔다.
「영원한 봉인. 두 번은 없어. 다시 죽으면… 무슨 짓을 해도 못 되돌려.」
준혁의 압박이 한 박자 흐트러졌다가 곧 회복됐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 새끼를 놓치면.」
「끝이야. 되감기도 없어. 진짜로 끝나.」
도현은 자신이 뱉은 말에 스스로 무릎이 꺾일 뻔했다. 여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으면 되돌리면 되니까. 문이 언제나 거기 있었으니까. 그 문 뒤에서 그는 신이었다. 첫 되감기의 밤, 되살아난 환자의 심전도를 보며 제 손바닥을 뒤집어 보던 순간—이 손이 죽음을 되감는다고, 그렇게 믿었던 그 손이 지금은 노인의 것이 되어 떨고 있었다.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오직 지금, 이 침대 위에서 결판나는 죽음.
도현은 처음으로, 아무 안전장치 없이 죽음 앞에 서 있었다.
「리듬 체크.」
수진이 압박을 멈추라고 손을 들었다. 모니터의 선이 무수축의 평지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PEA일 수도 있어요. 맥 확인.」
도현이 청년의 목에 손가락을 얹었다. 경동맥.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전기 활동은 있으나 심장이 짜내지 못하는 상태—무맥성 전기 활동. 원인을 찾아야 했다.
「4H 4T.」
도현이 중얼거렸다. 저혈량, 저산소, 산증, 전해질… 혈전, 긴장성 기흉, 심장눌림증.
「새벽에 뭘로 되살렸지.」
수진이 즉시 답했다.
「흉부 관통상, 심낭천자하셨어요. 심장눌림증 해소하고 되살아났고요.」
도현의 눈이 번쩍였다.
「재출혈. 심낭에 또 찼어. 심장이 눌리고 있어. 초음파.」
은혜가 문을 밀고 들어온 건 그때였다. 손에 휴대용 초음파를 들고. 그녀의 시선이 도현의 손등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환자에게로 옮겨 갔다.
「제가 대댈게요. 선생님은—」
말끝을 흐리며, 그녀는 도현의 떨리는 오른손을 보았다. 존경이 담겼던 눈빛이, 지금은 다른 것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프로브를 검상돌기 아래에 밀어 넣었다.
「심낭액 확인. 우심실 눌리고 있어요. 확실해요.」
「심낭천자.」
도현이 손을 뻗었다. 스파이널 니들. 준혁이 그걸 건네려다 멈췄다.
「너 손으로 심장 찌를 거야? 이 손으로?」
도현의 오른손이 니들 위에서 나비처럼 떨렸다. 심낭천자는 밀리미터 싸움이다. 각도가 어긋나면 심근을 찢고, 관상동맥을 뚫는다. 되감기로 감각이 극대화됐던 새벽엔 눈 감고도 했다. 지금은—펜도 못 쥐는 손이었다.
「내가 해.」
준혁이 니들을 가로챘다.
도현의 안에서 무언가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내가 한다. 내 환자다. 내가 살린다.' 여태 그를 지배해 온 목소리였다. 모든 죽음을 제 것으로 떠안고, 홀로 짊어지고, 되감기로 태우고, 그렇게 늙어 온 목소리. 그 목소리는 손을 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준혁이 언제 했던 말이 귓속을 때렸다. 넌 모든 환자의 죽음을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는데, 그건 의사가 아니라 신의 일이야.
도현은 뻗던 손을 멈췄다. 손을 놓는 것. 그것이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각도. 좌측 어깨 향해서 30도. 초음파로 니들 팁 실시간으로 봐. 은혜가 화면 불러 주고.」
준혁의 손이 멈칫했다. 도현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빼앗지 않고.
「내가 찌를게. 네가 봐 줘.」
준혁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니들이 피부를 뚫었다. 은혜가 화면을 읽었다.
「팁 보여요. 조금 더… 심낭 근처예요. 우심실 조심.」
「지금.」
도현이 말했다. 그의 오른손은 니들 위에 얹혀 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준혁의 팔꿈치 각도를 눈으로 재고, 목소리로 손을 이끌었다.
「반 밀리 더. 멈춰. 흡인.」
주사기 안으로 검붉은 피가 딸려 나왔다. 5cc, 10cc, 15cc. 눌려 있던 우심실이 초음파 화면 위에서 다시 부풀기 시작했다.
「리듬 돌아와요!」
수진이 소리쳤다. 모니터의 선이 무수축의 평지에서 튀어 올라, 톱니를, 그리고 뾰족한 봉우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QRS. 하나. 둘. 규칙적으로.
「맥 잡혀요.」
은혜가 청년의 목에 손을 댄 채 외쳤다. 그녀의 눈가가 붉었다.
「자발순환 회복. ROSC.」
도현은 침대 난간을 잡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되감기 없이. 자기 손으로 찌르지도 않고. 세 사람의 손과 눈과 목소리로. 살렸다.
그가 여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방식이었다. 언제나 혼자였으니까. 죽음 앞에서 그는 언제나 혼자 서서, 혼자 문을 열고, 혼자 태웠으니까.
「봉인, 안 됐다.」
도현이 중얼거렸다. 두 번째 사망은 오지 않았다. 청년은 살았고, 되감기의 문은 열릴 필요가 없었다. 그가 아껴 둔 게 아니라—쓸 수 없었기에, 그래서 처음으로 다른 길을 찾았다.
수진이 청년의 상처를 압박 드레싱하며, 도현을 곁눈질했다.
「선생님. 방금, 손 안 쓰셨어요. 되감기.」
「못 썼지. 규칙상.」
「아뇨.」
수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은 언제나 환자의 진짜 상태를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이었다.
「못 쓰신 게 아니라 안 쓰신 거예요. 방금이 진짜 선생님이었어요. 새벽에 혼자 심장 찌르던 사람 말고.」
도현이 그녀를 보았다.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준혁이 장갑을 벗어 던지며 도현의 어깨를 쳤다.
「넌 신이 아니라니까. 죽어 가는 사람이라고, 새끼야. 근데—」
그가 청년의 살아난 심전도를 턱으로 가리켰다.
「죽어 가는 사람도, 다른 손들 빌리면 저 정돈 할 수 있어. 그동안 넌 왜 혼자 다 짊어졌냐. 우리 여기 다 있었는데.」
도현의 목이 메었다. 여태 그는 이 응급실에서 자신만이 죽음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모든 침대가 제 책임이었고, 모든 사망이 제 실패였고, 자기 수명을 종이처럼 태웠다. 그 오만이 이 손을 이렇게 늙게 했다.
「나 혼자… 다 살릴 수는 없구나.」
처음으로 입 밖에 낸 말이었다. 그 말은 패배 같았고, 동시에 무언가를 내려놓는 소리였다. 여태 그의 어깨를 짓눌러 온 것이, 이제 넷의 손에 나뉘어 얹혔다.
「이제 알았어? 3년 걸렸네.」
준혁이 피식 웃었다.
은혜가 청년의 활력징후를 다시 재며, 조심스레 도현에게 말했다.
「선생님. 아까 그 손 각도 잡아 주시는 거… 그거 아무나 못 해요. 되감기 없어도, 선생님 머리가 있잖아요.」
도현이 옅게 웃으려 했다. 입꼬리가 반쯤 올라가다 말았다.
그 순간, 시야가 기울었다.
「선생님?」
침대 난간을 잡았던 손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바닥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도현은 자신의 무릎이 접히는 걸 먼 데서 보듯 느꼈다. 갈색 반점의 손이 허공을 긁었다.
「도현!」
준혁이 낚아챘지만, 이미 도현의 눈꺼풀은 감기고 있었다. 시야가 점점 좁혀 들었다. 심박이 귀 속에서 울렸다. 세 사람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들려왔다.
「맥 잡아 봐, 빨리!」
「혈압… 안 잡혀요!」
「모니터 붙여! 12유도!」
의식의 마지막 실오라기에서, 도현은 자기 심장이 방금 살린 청년의 것처럼 톱니를 그리는 소리를 들었다. 되감을 문은, 자신에겐 없었다.
—
침상에 눕혀진 도현의 팔에 라인이 잡혔다. 준혁이 채혈관을 들고 검사실로 뛰었다. 수진이 심전도를 붙이는 사이, 은혜가 응급 혈액검사 결과를 콘솔에서 불러 읽었다.
「골밀도… T-score 마이너스 4.2.」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텔로미어 길이 검사… 예상 생물학적 연령…」
화면의 숫자를 확인한 준혁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도현의 차트에 뜬 값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실제 나이 스물아홉. 신경계 손상으로 인한 급속 노화. 화면이 내놓은 생물학적 연령은 육십 세를 훌쩍 넘겼다.
「이 새끼… 남은 시간이…」
준혁이 말을 잇지 못했다.
수진이 도현의 손을 잡았다. 반점 위로, 처음 각성한 밤 손등에 돋았다던 그 옅은 검버섯 한 점이, 이제 오십 개의 형제들 틈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선생님. 이제 정말 멈추셔야 해요.」
그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응급실 전체에 방송이 깔렸다. 상황실의 다급한 목소리.
「전 의료진 주목. 서부순환도로 4번 교차로, 살육의 커브 노후 교량 구간. 후발 구조대가 잔해 아래에서 생존자 1명 추가 확인. 헬기 이송 6분 후 도착. 다발성 외상, 심정지 임박. 수용 가능 팀 회신 바랍니다.」
준혁의 손에서 채혈관이 미끄러졌다.
침상 위, 감겨 있던 도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또… 한 명.」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서부순환도로에서 시작된 그 사고. 그 잔해 아래에 묻혀 있던 또 다른 생명이 지금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도현의 오른손은, 이제 손가락 하나 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