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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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중앙에 선 도현의 무릎이 흔들렸다. 침대 2번의 뇌 관통상 환자를 3시간에 걸쳐 살려냈을 때 이미 태워버린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몸이 알고 있었다. 손가락은 더 이상 펴지지 않았고,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은 육십 대 후반 노인의 것이었다.

헬기 소리가 울렸다.

"다중 추돌, 서부순환도로 4번 교차로. 5분 ETA."

무전기의 음성이 응급실을 꿈처럼 흔들었다. 도현은 동시에 느꼈다—능력의 손가락이 꼿꼿이 솟는 느낌. 새로운 환자가 올 것이고, 그 환자는 죽을 것이고, 자신은 다시 시간을 되감길 것이라는 자동 예언이 뇌 후두엽에서 울렸다.

그 순간 한수진이 도현의 팔을 잡았다. 응급실 간호사장의 손은 철저했다.

"당신 손이 더 이상 떨리면 환자를 죽인다."

도현은 그 말을 들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오른손을 들어올렸을 때 손가락들은 마치 물속의 나뭇가지처럼 일렁였다. 신경계 손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었다. 왼손도 마찬가지였다. 두 손 모두 자신의 신체에서 비롯된 배신이었다.

"실장님, 저를—"

"응급실에서 빠져나가."

한수진의 얼굴은 감정이 없었다. 그 무표정이 더 끔찍했다. 간호사는 현장에서 가장 먼저 죽음을 감지하는 사람이고, 그녀는 지금 도현을 죽어가는 사람으로 본 것이었다.

도현이 한 발 물러섰을 때, 최은혜가 나타났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는 처치실 쪽에서 달려왔다. 그녀의 손에는 종이 타월이 들려 있었다. 언뜻 보면 일반적인 청소용품이었으나, 도현은 그 타올 위의 검은 자국을 알아봤다. 커피 얼룩이었다.

"4화에서 당신이 커피 잔을 떨어뜨렸을 때," 은혜가 말했다. 목소리는 흔들렸다. "나는 당신의 손을 봤어요. 펜도 못 쥐는 손. 그런데 당신은 계속 환자를 만지고 있었어. 계속 되감기를 썼어."

그 순간 도현의 뇌에서 4화의 장면이 튀어나왔다. 자신이 커피잔을 집으려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 떨어뜨린 순간. 타일 바닥에 흩어지는 갈색 액체. 그리고 그 직후 자신이 느꼈던 것—'한 번 더 쓸 수 있다. 다음 환자를 위해 한 번만 더.'

은혜가 타올을 내밀었다.

"이건 당신이 남긴 증거예요. 당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

도현은 그 타올을 받지 않았다. 손을 내밀 힘이 없었다.

오준혁이 응급실 중앙에서 나타났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도현의 옆에 서서, 그냥 섰다. 친구의 존재 자체가 말이었다.

"나는," 도현이 중얼거렸다. "모든 환자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내가 손을 놓으면 그들이 죽는다고. 그게 내 책임이라고."

"그건 의사의 일이 아니야," 오준혁이 말했다. 목소리는 2화에서와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도현이 듣는 것 같았다. "그건 신의 일이야. 넌 신이 아니야."

"나는 할 수 있었는데," 도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었다. "계속 할 수 있었어. 그 환자를 못 살렸을 때, 다시 돌아가서 살릴 수 있었어. 한 번만 더 손을 쓰면—"

"그러면 넌 죽어."

한수진이 끝냈다.

침묵이 응급실을 채웠다. 모니터의 비프음, 헬기의 소음, 그리고 그 사이로 도현 자신의 심장음이 들렸다. 불규칙한 박동. 이미 손상된 심근의 리듬.

"나는," 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모든 죽음을 혼자 떠안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어. 환자가 죽으면 내가 죽인 거고, 내가 더 잘했으면 살렸을 거라고. 그래서 계속 되감기를 썼어.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고."

은혜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도현이 이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점점 맑아졌다. "죽음을 막는 게 내 일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의사의 일이라면? 그리고 모든 죽음이 내 책임이 아니라면?"

도현이 천천히 무릎을 펼쳤다. 오준혁이 팔을 받쳐줬다.

"나는 여기서 멈춘다."

그가 말했다. 손가락 끝이 떨렸지만, 목소리는 결정했다.

"되감기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도현—" 한수진이 입을 열었다.

"팀이 있으니까," 도현이 이었다. "너희가 있으니까 나 혼자 모든 죽음을 떠안을 필요가 없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너희가 할 수 있고, 너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내가 할 수 있다. 그게 팀이지."

은혜가 타올을 다시 내밀었다. 이번엔 도현이 받았다. 오른손으로는 안 됐다. 왼손으로 집었다. 떨렸지만 집혔다.

무전기가 울렸다.

"ETA 3분. 환자 상태 불명. 트리아지 필요."

응급실의 모든 사람이 도현을 봤다. 센터장 이준호는 캐비닛 너머에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도현의 촬영 기록이 들려 있었다. 노화한 손의 사진들. 그는 그것을 천천히 내려놨다.

"서도현," 이준호가 말했다. "넌 죽어가고 있다."

"네," 도현이 대답했다.

"그럼 왜 나가지 않는가?"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떨리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오준혁이 도현의 오른손을 받쳐줬다. 한수진이 왼손을 잡았다. 최은혜가 도현의 등을 밀었다.

"환자를 봐야 하니까요," 도현이 말했다.

센터장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급실이 전개됐다. 팀이 수술실로 향했다. 도현의 앞에 오준혁, 옆에 한수진, 뒤에 최은혜. 그 뒤로 간호사들과 인턴들이 따라왔다.

수술실 문 앞에서 멈췄다.

도현의 떨리는 손을 팀의 손들이 함께 받쳐줬다. 왼손은 한수진, 오른손은 오준혁. 최은혜는 도현의 등을 밀고 있었다.

"준비됐어?" 오준혁이 물었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떨리는 손을 모아 수술실 문을 밀었다. 팀의 손들이 함께했다.

조명이 켜졌다.

수술대 위에 환자가 있었다. 젊은 남성, 복부 손상, 생체 신호 불안정. 도현은 떨리는 손으로 장갑을 집어 들었다. 한수진이 도와줬다.

"스타트," 도현이 말했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손은 정확했다. 메스가 피부를 갈랐다. 조직이 벌어졌다. 혈관이 노출됐다.

도현의 손이 다시 떨렸다.

오준혁이 도현의 오른손 아래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떨림을 받쳐줬다. 함께 메스를 들었다.

"우리가 한다," 오준혁이 말했다.

수술실 내 모든 손이 움직였다. 한수진의 손, 최은혜의 손, 그리고 도현의 손. 떨렸지만 정확했다. 되감기 없이. 능력 없이. 오직 실력과 팀의 손으로만.

혈관이 지혈됐다.

손상된 장기가 복구됐다.

생체 신호가 안정됐다.

도현의 떨리는 손이 마지막 봉합을 했다. 한수진이 받쳐줬다. 오준혁이 옆에서 함께했다. 최은혜가 뒤에서 밀었다.

"끝," 도현이 말했다.

환자는 살아 있었다.

수술실 문이 천천히 닫혔다. 팀의 손들이 마지막으로 도현을 받쳐주고, 조명이 어두워졌다.

도현의 손은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손에는 더 이상 죽음을 되감기는 능력이 없었다.

그 대신, 손에는 팀이 있었다.

# 되감기 없이

무전기 신호가 끝나자 응급실은 정적에 잠겼다. 모니터의 신호음만 규칙적으로 울렸다.

도현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오른손이 떨렸다. 손가락 끝이 아니라 손목까지 진동했다. 최은혜가 그걸 봤다. 그리고 그 손을 잠깐 자신의 손으로 감싸 쥐었다. 따뜻했지만 차가웠다. 도현의 손은 이제 죽음의 손이 아니었다. 단지 떨리는 손일 뿐이었다.

"서도현 의사," 최은혜가 천천히 말했다. "기억나? 4화에서... 아니, 4화가 아니라 4일 전. 당신이 커피를 마시다가 손이 떨려서 테이블에 흘렸어. 나 봤어. 그리고 당신은 그걸 무시했어."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자국을 보고 있어. 지금도." 최은혜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마른 커피 얼룩이 남아 있었다. "매일 아침 이 자국을 보면서 생각했어. '도현이가 자기를 얼마나 태우고 있는지' 하면서. 그런데 넌 계속했어. 또 했어. 또."

오준혁이 도현의 어깨를 잡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오준혁의 손이 그 떨림을 받쳐줬다.

"더는 당신을 태우게 두지 않겠다," 최은혜가 말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내가 그 커피 자국을 매일 봐야 한다면... 나도 죽어. 천천히. 너처럼."

도현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이 움직였다. 떨리는 손이 최은혜의 손을 찾아갔다. 왼손이었다. 왼손은 아직 어느 정도 정상이었다.

한수진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표정했지만 눈은 젖어 있었다.

"당신은 모든 죽음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해," 한수진이 말했다. "레지던트 시절 산모부터. 그 이후로 본 모든 환자들. 하나하나가 당신의 실패라고. 근데 그건 의료진의 일이 아니라 신의 일이야. 그리고 당신은 신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이야."

오준혁이 이었다.

"우린 팀이야," 오준혁이 말했다. "팀이라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야. 당신이 할 수 없는 건 내가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건 수진이가 한다. 수진이가 할 수 없는 건 은혜가 한다. 그렇게 우린 환자를 산다. 당신 혼자가 아니라 우리 함께가 환자를 산다고."

도현의 손이 다시 떨렸다. 이번엔 다른 이유였다.

센터장 이준호가 캐비닛 뒤에서 나타났다. 손에는 도현의 기록 사진들이 들려 있었다. 손등의 검버섯. 주름. 회백화된 머리 한 가닥. 노화의 모든 증거. 이준호는 그것들을 천천히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의 손도 떨렸다.

"서도현," 이준호가 말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눈은 흔들렸다. "넌 이미 죽어가고 있다. 몸이 말해주고 있어. 이 사진들이 말해주고 있어."

"네," 도현이 대답했다.

"그럼 왜 나가지 않는가? 휴직 신청을 해. 치료를 받아. 남은 시간이라도 정상적으로 살아."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떨리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오준혁이 도현의 오른손을 받쳐줬다. 한수진이 왼손을 잡았다. 최은혜가 도현의 등을 밀었다.

"나는 여기서 멈춘다," 도현이 말했다. 목소리는 결정했다. "되감기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이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대신 팀과 함께 나간다. 오직 실력만으로. 능력 없이."

한수진이 도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게 가능해?" 이준호가 물었다.

"아니요," 도현이 대답했다. "하지만 해야 합니다."

무전기가 울렸다.

"ETA 2분. 환자 상태: 복부 외상, 생체 신호 불안정. 중증. 트리아지 필요."

응급실의 모든 사람이 도현을 봤다. 센터장은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이 일어섰다. 떨리는 손으로 가운을 입었다. 한수진이 도와줬다. 오준혁이 글러브를 건넸다. 최은혜가 마스크를 고정했다. 팀의 손들이 도현을 감쌌다.

응급실 문이 열렸다. 헬기 소리가 들렸다. 짧은 신호음. 다가오는 차량음. 그리고 구급대원들의 외침.

"남성, 32세, 교통사고, 복부 관통상, 심박 110, 혈압 80/50!"

환자가 들려왔다. 도현은 환자를 봤다. 젊은 남성. 피가 흐르고 있었다. 복부에서. 도현의 눈동자가 확대됐다. 그리고 무언가를 느꼈다. 능력이 깨어나는 감각. 사망 신호. 되감기를 하라는 신호.

도현의 손이 떨렸다. 더 심하게.

"수술실 1번 준비 완료," 한수진이 말했다.

도현이 환자 옆으로 갔다.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떨리는 손이었다. 환자는 도현을 봤다. 죽음 직전의 눈빛으로.

"살려주세요," 환자가 말했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능력을 느꼈다. 사망 8분 전의 신호. 되감기의 유혹. 손 하나만 움직이면 된다. 시간을 8분 뒤로 돌린다.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오준혁이 도현의 뒤에 섰다.

"나 있어," 오준혁이 말했다.

최은혜가 도현의 옆에 섰다.

"나도 있어," 최은혜가 말했다.

한수진이 도현의 앞에 섰다.

"우린 함께한다," 한수진이 말했다.

도현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되감기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떨리는 손으로 환자의 복부를 촉진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진단했다. 간 손상. 비장 손상. 복막 출혈. 응급 수술. 가능성 있음.

"수술실로," 도현이 말했다.

팀이 움직였다. 오준혁이 수액을 잡았다. 최은혜가 산소를 연결했다. 한수진이 환자를 밀었다. 도현이 옆에서 함께했다.

수술실 문 앞에서 멈췄다.

도현의 떨리는 손을 팀의 손들이 함께 받쳐줬다. 한수진의 손. 오준혁의 손. 최은혜의 손. 네 쌍의 손이 한 명의 환자를 받쳐줬다.

"준비됐어?" 오준혁이 물었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떨리는 손을 모아 수술실 문을 밀었다. 팀의 손들이 함께했다.

조명이 켜졌다.

수술대 위에 환자가 있었다. 마취과 의사가 이미 대기 중이었다. 기구 간호사가 준비된 도구들을 정렬했다. 도현이 수술복을 입었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입었다. 장갑을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한수진이 도와줬다.

"스타트," 도현이 말했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손은 정확했다. 메스가 피부를 갈랐다. 첫 번째 절개. 조직이 벌어졌다. 혈액이 흘렀다. 한수진이 즉시 흡인했다.

도현의 손이 다시 떨렸다. 더 심하게.

오준혁이 도현의 오른손 아래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떨림을 받쳐줬다. 함께 메스를 들었다.

"우리가 한다," 오준혁이 말했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수술했다. 되감기 없이. 능력 없이. 오직 실력과 팀의 손으로만.

간의 손상 부위가 노출됐다. 출혈이 심했다. 한수진이 수액을 빠르게 주입했다. 최은혜가 혈액을 준비했다. 오준혁이 도현의 손을 받쳐줬다.

"지혈 클램프," 도현이 말했다.

한수진이 건넸다. 도현의 떨리는 손이 집었다. 오준혁의 손이 함께했다. 함께 클램프를 적용했다.

혈관이 지혈됐다.

손상된 장기가 복구됐다.

생체 신호가 안정됐다.

도현의 떨리는 손이 마지막 봉합을 했다. 한수진이 받쳐줬다. 오준혁이 옆에서 함께했다. 최은혜가 뒤에서 밀었다.

"끝," 도현이 말했다.

환자는 살아 있었다.

수술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팀이 나왔다. 도현이 맨 뒤였다. 떨리는 손을 내밀고. 팀의 손들이 받쳐주고.

응급실 중앙에 섰다. 모든 사람이 도현을 봤다. 센터장도. 감사반도. 모든 의료진도.

도현의 손은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손에는 더 이상 죽음을 되감기는 능력이 없었다.

그 대신, 손에는 팀이 있었다.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ETA 3분. 대형 교통사고. 환자 다수. 모든 의료진 대기."

도현은 손을 들어올렸다. 떨리는 손. 하지만 손. 여전히 손.

오준혁이 도현의 옆에 섰다.

한수진이 앞에 섰다.

최은혜가 뒤에 섰다.

센터장 이준호가 천천히 걸어왔다. 도현을 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도현이 말했다.

팀이 응급실을 향해 움직였다.

떨리는 손으로.

하지만 함께.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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