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장 이준호의 전화가 끊긴 자리에, 복도 형광등이 깜빡였다.
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흉부외과 수술복 위로 아직 마르지 않은 혈흔이 얼룩져 있었다. 왼손에 든 봉투. 검진 결과지. 오후 다섯 시 사십오 분에 채혈했던, 그 미개봉 봉투가 어느새 다시 손에 들려 있었다.
"닥터 서!"
수진의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 날아왔다. 무전기를 든 채였다.
"세컨드 웨이브 이송 시작됐어요. 육 분. 아니, 오 분."
"몇 명."
"확정 여섯. 추가 가능성 있고요. 사고 현장에서 교량 상판이 무너졌대요. 살육의 커브, 그 노후 교량."
도현은 대답 대신 봉투를 뜯었다.
손끝이 종이 가장자리를 미끄러졌다. 두 번 만에 겨우 찢었다. 결과지가 펼쳐졌다.
**텔로미어 길이 — 참고치 대비 하위 0.3퍼센타일. 재검 권고.** **골밀도 T-score −3.8. 중증 골다공증. 연령 불일치.** **심박변이도(SDNN) 18ms. 70대 후반 평균 수준.**
그 아래, 검사실 담당의가 붉은 볼펜으로 눌러 쓴 손글씨.
*이런 수치는 본 적이 없습니다. 오류 재검 요망. 환자 실연령 재확인 바람.*
도현은 종이를 쥔 손을 내려다봤다. 손등에 갈색 반점 열 개. 어제 다섯, 그제 셋. 1화의 그 밤, 처음 발견했던 옅은 한 점이 이제 딱지처럼 번져 손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8분 되감기 한 번에 대략 여덟 시간의 수명. 손등의 반점으로 센다면, 하루에 몇 개씩 늘어나는 속도. 그건 착각일 리 없는 숫자였다.
되감기의 대가는 나 자신이다.
확정.
"닥터 서, 결과지 나왔어요?" 수진이 다가와 봉투를 흘끗 봤다.
도현은 종이를 접어 가운 안주머니에 넣었다.
"오진이야. 재검이면 돼."
"안색이—"
"트리아지 존으로 가."
—
앰뷸런스 후미등이 응급실 진입로를 붉게 물들였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밀려드는 소독약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사이렌.
"적색! 개방성 골절, 대량출혈!" "이쪽 황색, 의식 있음, 복부 압통!" "흑색이요, 흑색! 여기 흑색 한 명!"
구급대원의 외침이 겹쳤다. 도현은 두 번째 카트 곁으로 달라붙었다.
준혁이 반대편에서 환자 눈에 펜라이트를 비추고 있었다.
"동공 반응 없어. 호흡 없고. 도현, 이쪽은—"
"태그."
"흑색이야." 준혁이 도현의 눈을 봤다. "두개골 함몰, 뇌조직 노출. 자발순환 없어. 규칙대로면 넘겨."
트리아지의 원칙. 살릴 가능성이 희박한 자에게 자원을 쓰는 대신, 더 많은 생명을 위해 흑색을 포기한다. 그 잔인함이 종이 태그 색깔로 요약되어 있었다.
도현은 환자의 얼굴을 봤다. 사십 대. 결혼반지. 손톱 밑에 페인트가 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
"자발순환 없다며." 준혁이 다시 말했다. "8분 지났어. 소생 불가."
임상적 사망이 확정되어야 능력이 활성화된다. 아직 이 사람은 '확정'되지 않았다. 되감기가 걸리지 않는다. 도현의 이능은 의지로 켜지지 않았다.
"...넘겨." 도현이 입술을 뗐다. "황색 존으로 흑색 태그 부착. 준혁, 옆 카트."
"어? 도현, 방금—"
"내가 포기 안 한다고 말할 자격, 아직 이 환자한테는 없어." 도현이 이를 악물었다. "죽음이 확정 안 됐으니까. 규칙을 깬다는 게 아니라, 아직 규칙을 적용할 단계가 아니라는 거야. 넘기고, 다음."
준혁이 잠깐 도현을 응시하다가 카트를 밀었다.
—
세 번째 카트. 적색 태그. 흉부 관통상.
"이십육 세 여성, 조수석. 안전벨트에 흉곽 압박, 혈흉 의심. 혈압 육십에 촉지 안 됨."
수진이 수액 라인을 두 개 동시에 꽂았다. 은혜가 초음파 프로브를 갈비뼈 사이에 밀어넣었다.
"닥터 서, 심낭에 액체 차 있어요. 압전이에요."
"수술방 안 기다려. 여기서 연다. 개흉 세트."
"여기서요?" 은혜의 목소리가 떨렸다.
"심낭 절개 안 하면 삼 분 안에 멈춰. 메스."
도현이 손을 내밀었다. 수진이 메스를 얹었다.
그리고 봤다.
메스를 쥔 도현의 손이 떨렸다.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칼끝이 떨림에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은혜가 프로브를 든 채 그 손을 봤다. 처음으로, 아주 가까이서.
"닥터 서, 손이..." 은혜의 입이 벌어졌다.
"드레이프 잡아." 도현이 끊어 말했다.
칼끝이 늑간을 갈랐다. 떨림을 억누르려 팔꿈치를 환자 몸에 붙였다. 심낭을 열자 시커먼 혈전이 쏟아졌다. 손가락으로 파고들어 손상 부위를 눌렀다. 봉합사.
"바이탈."
"올라와요. 팔십, 구십. 촉지 됩니다!"
은혜가 도현을 봤다. 도현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선이 자기 손등에 박히는 걸 느꼈다. 열 개의 반점. 떨리는 손가락.
"닥터 서." 은혜가 낮게 물었다. "정말 괜찮으세요?"
"괜찮아."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 환자는 살았으니까.
—
네 번째 카트가 도착했을 때, 도현은 그 사람을 봤다.
흑색 태그. 아까 넘겼던 남자와는 다른 사람. 육십 대 남성. 뇌 관통상. 왼쪽 관자놀이에서 후두부까지 금속 파편이 관통한 흔적. 4화 버스 사고 때 봤던 김영준과 겹쳐 보였다.
"흑색. 넘어가요." 구급대원이 말했다.
도현이 다가섰다. 준혁이 옆에 붙었다.
"도현, 이 사람은 진짜야. 뇌간 노출이야. 신도 못 살려."
"신은 안 필요해."
"뭐?"
도현은 환자의 목에 손가락을 댔다. 경동맥. 아주 미약한 박동. 아직 멈추지 않았다.
"아직 안 죽었어."
"그러니까 넘기라는—"
"기다리라는 거야."
도현은 카트 옆에 무릎을 꿇었다. 수진이 뒤에서 다가왔다. 그 얼굴에는 아까 봉투를 보던 눈빛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닥터 서. 지금 이 사람 붙잡으면 저 안에 적색 여섯이 대기해요. 자원이 없어요. 이게 트리아지예요."
"알아."
"몰라요. 당신, 저 결과지—"
"안다니까." 도현이 그녀를 돌아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몸이 어떻게 되는지, 이제 정확히 알아. 손이 왜 떨리는지도 알아. 그래도."
경동맥의 박동이 사라졌다. 손끝 아래로 정적. 심전도 모니터가 평평한 선을 그었다.
"...사망 시각 이십이 시 사십칠 분." 준혁이 조용히 말했다.
임상적 사망 확정.
그 순간, 도현의 시야가 얼어붙었다.
세상의 소리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모니터 알람, 사이렌, 사람들의 고함이 아득해지고, 오직 자신의 심장 소리만 커졌다. 이능이 활성화됐다. 되감을 수 있다. 이 사람에 한해, 단 한 번, 8분 전으로.
여덟 시간. 아니, 뇌 관통상이면 8분 전에도 이미 위중했다. 되감아도 확률은 반뜰. 실패하면 봉인. 성공해도 내 수명은 사라진다. 결과지의 붉은 글씨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런 수치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도현이 입을 열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환자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규칙을 깬다. 아무도 포기 안 해."
되감아라.
세상이 역류했다.
—
8분 전. 카트가 막 도착하는 순간. 감각이 칼날처럼 예리해졌다. 심장이 뛰는 소리, 파편 주변 혈관의 박동, 뇌척수액이 새어 나오는 미세한 흐름까지 손끝에 그려졌다.
이제는 안다. 무엇이 이 사람을 죽였는지.
관통 궤적이 정맥동을 스쳤다. 파편을 잘못 건드리면 대량출혈, 그대로 두면 뇌압 상승. 아까 회귀 전에는 파편을 먼저 제거하려다 정맥동이 터졌다. 이번엔 순서를 바꾼다.
"준혁, 만니톨 풀드립. 수진, 개두 세트 열지 말고 파편 고정만. 은혜, 혈액 여섯 팩 콜."
떨리는 손이, 되감긴 8분 동안은 떨리지 않았다. 능력이 손의 정밀도를 극대화하는 시간. 이 짧은 유예 안에서만 도현은 옛날의 자신이었다.
파편 아래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정맥동 손상부를 압박한 채, 반대손으로 지혈용 젤폼을 채웠다. 각도. 깊이. 회귀 전 기억이 지도처럼 손을 이끌었다.
"뇌압 내려가요." 은혜가 모니터를 봤다. "닥터 서, 파형 돌아와요."
"경동맥 확인."
수진이 목에 손을 댔다.
"...뛰어요. 박동 있어요."
준혁이 숨을 삼켰다. 방금 흑색 태그를 붙였던 손으로, 그 태그를 떼어냈다.
"...말도 안 돼."
"수술방 예약." 도현이 일어섰다. 무릎이 꺾일 뻔했다. "감압 개두술. 십오 분 뒤 첫 커트. 살았어."
살았다. 되감기 없이는 절대 살릴 수 없었던 사람이. 살육의 커브에서 실려온, 흑색 태그의 남자가.
도현은 자기 손을 봤다. 8분이 끝나고, 다시 떨리기 시작한 손. 손등의 반점이—셋 더 늘어 있었다. 열세 개. 방금 여덟 시간이, 아니 그 이상이 몸에서 뜯겨 나갔다.
그래도 이 사람은 산다.
"봤죠." 도현이 중얼거렸다. "아무도 포기 안 했어."
은혜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도현의 손을 보고 있었다. 반점이 늘어난 손을. 방금 전엔 없던 것을.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입술이 다물어졌다 떨렸다. 한 발 물러섰다. 존경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 뭔가 다른 것이 들어찼다. 공포인지, 연민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
도현이 카트를 수술방 쪽으로 밀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트리아지 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까 넘겼던 흑색 태그 남자—황색 존에 방치된 사십 대. 그 옆 적색 침대의 스물여섯 흉부 관통 여성. 복부 압통 황색. 개방성 골절 적색. 그리고 방금 세컨드 웨이브로 밀려든 이름 모를 넷.
여섯 개의 모니터가 동시에 울렸다.
"코드! 3번 침대 서맥!" "5번 SpO2 떨어져요, 칠십!" "닥터 서, 7번 무맥성 전기활동!" "이쪽도요! 이쪽도 떨어져요!"
한 명씩이 아니었다. 대여섯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벽에 걸린 모니터 파형들이 차례로 곤두박질쳤다. 도현이 한 명을 붙잡고 있는 사이, 다른 생명들의 시간이 한꺼번에 바닥나고 있었다.
도현의 손이 떨렸다. 수명을 태워 살릴 수 있는 건 한 번에 한 명뿐이었다. 이능은 확정된 죽음에만, 환자당 한 번만 걸린다.
여섯 개의 파형이, 그를 향해 무너져 내렸다.
"닥터 서!" 수진의 비명. "어디부터요? 누구부터 붙잡아요!"
도현은 움직이지 못했다.
열세 개의 반점이 박힌 손이, 허공에서 떨고 있었다.
발이 바닥에 붙었다. 신발 밑창이 리놀륨에 녹아든 것처럼.
여섯 개의 알람이 하나의 소음으로 뭉쳐졌다. 도현의 귀가 그것을 개별 주파수로 쪼갰다. 3번의 서맥, 초당 세 번의 흉골 아래 미약한 박동. 5번의 산소포화도, 68로 떨어졌다가 67. 7번은 이미 심전도 파형이 톱니로 부서지고 있었다.
능력은 사망 확정에만 걸린다. 환자당 한 번. 여섯이 동시에 죽어가는 지금, 되감기로 잡을 수 있는 건 그중 가장 먼저 죽는 한 명뿐이다. 나머지 다섯은—
머릿속에서 아까 열어본 결과지가 펼쳐졌다.
*텔로미어 길이: 측정 하한. 골밀도 T-score: -3.8. 심박변이도: 붕괴 범위. 판독의 소견: 본원에서 관찰된 바 없는 수치. 검체 오류 재검 권고.*
검체 오류가 아니었다. 오늘 아침, 채혈실에서 다섯 개였던 반점이 지금 열세 개다. 되감기 세 번에 하루치 수명. 방금 흑색 남자를 잡느라 또 여덟 시간 넘게 태웠다. 결과지는 도현에게 이미 말했다. 너는 죽어가는 중이라고. 되돌린 시간의 대가를 몸으로 치르고 있다고.
그걸 확인한 지 십 분도 안 됐다.
그런데 발이 다시 움직이려 했다. 7번 침대 쪽으로. 가장 먼저 죽을 사람 쪽으로.
"닥터 서!" 수진이 그의 가운 자락을 잡았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정신 차려요. 트리아지 원칙. 한 명씩. 살릴 수 있는 사람부터."
"놔요."
"안 놔요." 수진의 눈이 붉었다. "당신 손 봤어요. 나 이십 년 차예요. 저런 손 처음 봐요. 하루 사이에 늙어버린 손. 당신 지금—"
"수진."
"—죽어가고 있잖아요."
응급실의 소음이 잠깐 얇아진 것 같았다. 도현은 자기 손을 봤다. 수진의 말이 맞았다. 스물아홉 살의 손이 아니었다. 마디가 굵고, 피부가 얇고, 반점이 박힌.
준혁이 뛰어왔다. 이마에 피가 튀어 있었다. 흑색 남자의 피.
"내가 3번 잡을게. 은혜가 5번. 수진이 7번 라인 잡고." 준혁이 손가락으로 빠르게 배분했다. "도현, 넌 지휘만 해. 우리가 손으로 잡을게. 넌 눈으로 봐."
"7번은 무맥성 전기활동이야." 도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너희가 잡아도 못 살려. 원인을 몰라. 폐색전인지 심장압전인지 저혈량인지, 초음파 돌릴 시간이 없어."
"그럼 다 같이 죽자는 거야?"
"아니." 도현은 이미 7번 침대를 향해 걷고 있었다. "다 살릴 거야."
"도현!"
7번 침대. 이십 대 후반의 남자. 얼굴이 회색이었다. 심전도 파형이 마지막 톱니를 그리고, 일자로 눕는 순간.
모니터가 길게 울었다.
"14시 22분, 임상적 사망—"
세계가 뒤집혔다.
빛이 뒤로 빨려 들어갔다. 알람이 역재생됐다. 준혁의 입에서 나온 말이 입안으로 되돌아갔다. 도현의 시야에 남자의 파형이 다시 살아나, 톱니에서 파도로, 파도에서 정상 리듬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8분.
되감겼다.
감각이 다시 칼날이 됐다. 손 떨림이 멎었다. 도현의 청진기 없는 귀가 남자의 흉강을 뚫고 들어갔다.
경정맥이 부풀어 있다. 혈압은 촉지 불가. 심음이 멀다—물에 잠긴 것처럼.
*심장압전.* 이유민 때와 같다. 심낭에 피가 차서 심장을 조이고 있다.
"준혁! 여기 심장압전! 심낭천자 세트 지금!"
"뭐? 아직 안 죽—"
"곧 죽어. 십오 초 안에. 세트 던져."
준혁이 반사적으로 트레이를 밀었다. 도현이 검상돌기 아래 45도로 바늘을 꽂았다. 되감기 전이었다면 이 각도를 못 잡았을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는. 하지만 지금 손끝은 자를 댄 것처럼 정확했다.
바늘이 심낭에 닿았다. 검붉은 피가 주사기로 역류했다. 20cc, 40cc, 60cc.
모니터의 혈압이 올라왔다. 촉지 불가에서 60으로. 70으로.
"경정맥 가라앉아요." 은혜의 목소리. "SpO2 올라와요."
살았다. 두 번째로.
도현은 몸을 폈다. 세상이 한 바퀴 도는 것 같았다. 무릎에 힘이 안 들어갔다. 손등을 봤다.
반점이 또 늘었다. 열여섯 개.
세 개가 더. 방금 이 8분에, 며칠분의 생이 또 뜯겨 나갔다.
"은혜, 심낭 배액관 삽입 준비." 도현이 겨우 말했다. 혀가 무거웠다. "이 사람 흉부외과 콜. 심장 자체 손상 있으면—"
말을 끝맺지 못했다.
시야가 흐려졌다. 아니, 흐려진 게 아니었다. 응급실 전체가 정보로 밀려들어왔다. 되감기가 끝난 뒤에도 감각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예민해진 귀에, 다른 모니터들이 들어왔다.
3번. 준혁이 심폐소생을 시작했지만 파형이 안 돌아온다.
5번. 은혜가 이쪽 7번에 붙어 있는 동안, 산소포화도가 62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머지 넷.
세컨드 웨이브. 이름도 모르는 넷.
도현이 7번을 되감는 8분 동안—현실의 8분이 아니라 되감긴 8분이지만, 그 대가로 며칠을 태우는 동안—3번의 심장은 멎었고, 5번은 질식하고 있었고, 8번 침대에서 새로운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 명을 살렸다. 되감기로.
돌아서니 다섯이 무너지고 있었다.
"닥터 서!" 은혜가 5번으로 뛰며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까 트리아지 존에서 도현의 손을 보고 존경이 무너졌던 그 얼굴이, 지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5번 안 돼요! 튜브가—"
"3번 무반응!" 준혁의 외침. "에피 세 번째 들어갔는데 파형 안 와!"
"8번! 8번 서맥!"
"이쪽 9번도 산소 떨어져요!"
도현은 7번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방금 되살린 남자의 심장이 그의 손 아래에서 뛰고 있었다. 산 사람 하나.
그리고 그 어깨 너머로.
다섯 개의 파형이, 여섯 개의 파형이, 동시에 곤두박질쳤다. 톱니로. 일자로.
능력은 확정된 죽음에만 걸린다. 환자당 한 번. 지금 되감을 수 있는 건 가장 먼저 죽는 한 명. 그 한 명을 잡는 8분 동안, 나머지 다섯은 죽는다.
한 명을 되감으면, 다섯을 버리는 것이다.
트리아지가, 이렇게 도현의 눈앞에 색색의 태그로 펼쳐졌다. 그가 그토록 견디지 못하던 그 규칙이. 흑색이 아니라, 살릴 수 있었던 적색과 황색들이. 그가 7번 하나에 매달리는 사이 죽어가는 자들이.
"누구부터요!" 수진의 비명이 응급실을 갈랐다. "닥터 서, 누구부터 붙잡아요! 결정해요! 지금!"
도현의 입술이 벌어졌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열여섯 개의 반점이 박힌 손이, 다섯 개의 침대와 여섯 개의 침대 사이에서, 어디로도 뻗지 못한 채 허공에서 떨었다.
귀울음이 시작됐다. 고주파의 음성이 아니라, 뇌 안에서 울려 퍼지는 울림. 도현의 시각이 흔들렸다. 모니터들이 한 번씩 겹쳐 보였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마비감이 손목으로 올라왔다.
첫 번째 모니터가 길게 울기 시작했다.
두 번째 모니터가 뒤따랐다.
그리고 세 번째가.
3번 침대 파형이 일자로 눕는 순간, 세 번째 모니터가 길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