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포화도 68. 모니터의 숫자가 무너지고 있었다.
"12번 베드 코드블루!"
한수진의 외침이 중환자실 복도를 갈랐다. 도현은 이미 침대 옆이었다. 어젯밤 오토바이 환자를 되살린 손이었다. 그 손이 지금 떨렸다. 왼손 손등의 갈색 반점이 형광등 아래에서 유난히 짙었다.
"환자분! 이유민 씨!"
반응이 없었다. 폐부종. 어제 흉부 타박으로 들어온 경증 환자. 늑골 골절 두 개, CT상 폐 실질 손상 없음. 그렇게 판독했다. 그런데 지금 기도에서 분홍색 거품이 올라오고 있었다.
"산소 15리터, 앰부! 은혜 씨, 흉부 청진."
최은혜가 청진기를 대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양측 수포음이요. 선생님, 전체적으로 젖어 있어요."
"급성 폐부종. 라식스 40 밀리 IV, 니트로 드립—"
숫자가 더 떨어졌다. 62. 58. 심전도가 파형을 잃고 톱니처럼 뛰다가 평평해졌다. 도현은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갈비뼈 아래에서 뭔가 어긋나는 감각. 늑골이 부러지는 소리가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에피 1 밀리! 계속 밀어!"
십 분. 십오 분. 오준혁이 교대로 들어와 압박을 이었다.
"도현아, 리듬 안 돌아와."
"더 해."
"도현아."
"더 하라고."
이십이 분. 도현은 손을 멈췄다. 모니터의 직선이 삐— 하는 단음으로 이어졌다.
"…사망 시각, 오전 여섯 시 사십칠 분."
말을 뱉는 순간이었다.
세상이 뒤로 감겼다.
소리가 역류했다. 앰부백을 짜던 손이 거꾸로 움직이고, 부러졌던 늑골이 제자리로 붙고, 최은혜의 "양측 수포음이요"가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현의 눈에만 보이는 필름 되감기. 어젯밤과 똑같았다. 관자놀이가 뜨거워지고, 시야 가장자리가 새하얗게 타들어 갔다.
그리고 멈췄다.
여섯 시 삼십구 분. 사망 팔 분 전. 도현은 다시 12번 베드 앞에 서 있었다. 이유민의 산소포화도는 아직 94. 모니터는 정상이었다. 손끝의 떨림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감각이 칼처럼 벼려졌다.
이번엔 답을 알았다.
폐부종이 아니었다. 아니, 폐부종은 결과였다. 원인은 따로 있었다. 도현은 청진기 대신 손을 환자의 목으로 가져갔다. 경정맥이 부풀어 있었다. 어제 놓친 것. 흉부 타박 부위 아래, 심장을 감싼 막에 피가 고이고 있었다.
"심장압전이다."
"…네?"
은혜가 되물었다. 아직 폐부종의 징후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유민 씨, 지금 심낭에 피 고이고 있어. 눌려서 심장이 못 뛰는 거야. 심초음파 지금."
포터블 초음파가 왔다. 프로브를 대자 화면에 검은 초승달이 떴다. 심장을 짓누르는 액체의 띠. 은혜의 입이 벌어졌다. 아직 어느 검사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게… 진짜 있네요. 이걸 어떻게 맨손으로—"
"심낭천자 세트. 18게이지, 검상돌기 아래로 들어간다."
도현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되감기 안의 여덟 분. 이 시간만큼은 신의 손이었다. 바늘 끝이 심낭에 닿는 감각, 저항이 툭 하고 풀리는 순간을 정확히 잡았다. 검붉은 피가 주사기로 딸려 올라왔다.
산소포화도가 올라갔다. 96. 98. 심전도가 안정된 리듬을 되찾았다.
"…살았어."
은혜가 중얼거렸다. 도현은 벽시계를 봤다. 여섯 시 사십일 분. 되돌린 팔 분 중 삼 분을 진단에, 이 분을 처치에 썼다. 아직 삼 분이 남았다. 그 삼 분 동안 이유민의 활력징후는 완전히 잡혔다.
되감기가 스르르 풀렸다. 원래의 시간선으로 감각이 미끄러졌다.
여섯 시 사십칠 분. 아까 사망을 선언했던 그 시각. 그러나 12번 베드의 환자는 살아 있었다. 심낭에서 뽑아낸 피가 배액관을 타고 흘렀고, 모니터는 98을 가리켰다.
한수진이 배액백을 확인하며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이거… 삽입한 기록이 없는데 언제 넣으셨어요?"
"방금."
"방금이요? 코드블루 돌 때는 없었잖아요."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유민의 손목을 잡고 맥박을 쟀다. 규칙적이었다. 그는 속으로 하나를 확인하고 있었다. 두 번째다. 두 번째 되감기. 어젯밤 오토바이 환자, 그리고 지금.
그때 병실 밖에서 다른 코드가 울렸다.
"어레스트! 응급수술실 앞 이송 중 환자!"
도현이 뛰쳐나갔다. 이동식 침대 위, 삼십 대 남성. 대퇴부에 지혈대가 감겨 있었다. 아침에 들어온 공사장 추락 환자. 개방성 대퇴골 골절, 대퇴동맥 손상 의심으로 수술 대기 중이었다. 이송 중 갑자기 무너진 것이다.
"혈압 안 잡혀요! 지혈대 아래로 계속 새요!"
한수진이 지혈대를 조이며 소리쳤다. 도현이 상처를 열었다. 순간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대퇴동맥이 아니라 그 위, 외장골동맥까지 찢어져 있었다. 지혈대로는 잡을 수 없는 위치.
"수술방! 지금 바로 열어!"
옮기는 사이, 남자의 눈동자가 위로 돌아갔다. 심전도가 평평해졌다.
"사망… 안 돼."
도현이 이를 악문 순간, 다시 세상이 감겼다.
세 번째 되감기. 도현은 익숙하게 몸을 맡겼다. 이제 규칙을 안다고 생각했다. 팔 분. 정답을 알고, 정답을 실행하면 된다. 되감기가 멈춘 자리에서 그는 곧장 외장골동맥을 겨냥했다.
여섯 시 오십삼 분. 사망 팔 분 전. 남자는 아직 이송 침대 위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수술방 지금 열어! 외장골동맥 손상, 지혈대로는 못 잡아. 개복 준비."
도현은 손으로 하복부를 압박했다. 정확한 지점. 대동맥 분지부를 눌러 피의 흐름을 틀어막았다. 초인적인 감각이 손끝으로 혈류의 박동을 읽었다. 이대로 수술방까지 삼 분. 충분했다.
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경련했다. 입에서 거품이 올라왔다. 산소포화도가 아니라 심전도가 이상했다. 출혈이 아니었다. 심장이 멎고 있었다.
"뭐야, 왜—"
지방색전. 골절 부위에서 떨어져 나온 지방 덩어리가 혈류를 타고 폐로, 심장으로 날아간 것이다. 도현이 예상하지 못한 두 번째 변수. 되감기 안에서 첫 번째 죽음을 막았더니, 다른 죽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도현은 흉부 압박으로 전환했다. 되감기의 남은 시간이 줄어들었다. 여섯 시 오십오 분. 오십육 분.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되감긴 팔 분이 소진되는 순간, 감각이 원래 시간선으로 튕겨 나갔다.
여섯 시 오십칠 분. 남자는 죽어 있었다. 심전도는 직선이었다.
도현은 다시 되감기가 발동하기를 기다렸다. 어제도, 조금 전 이유민도 그랬으니까. 사망 확정. 되감기. 정답. 소생.
되감기는 오지 않았다.
일 초. 이 초. 삼 초. 세상은 감기지 않았다. 남자의 시신은 그대로였고, 모니터의 삐— 소리만 계속됐다. 도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손끝에 아직 남자의 혈류가 뛰던 감촉이 남아 있었다. 대동맥 분지부를 누르던 손. 분명히 잡았다고 생각한 목숨이었다. 정답을 알았고, 정답대로 했는데도 남자는 침대 위에서 식어 갔다. 도현은 시신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신음하던 입, 위로 돌아간 눈동자. 자신이 살렸어야 할 사람이었다. 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두 번째 사망은 없다.
한참 뒤에야, 그 사실이 손에 잡혔다. 죄책감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건 서늘한 규칙이었다. 환자당 단 한 번. 되감기 안에서 다른 이유로 다시 죽으면, 그건 두 번째 사망이었고, 영원히 봉인됐다. 조금 전 그가 되감기 안에서 지방색전으로 남자를 잃은 순간, 이 환자의 되감기 권리는 소진된 것이다.
"사망 시각, 오전 여섯 시 오십칠 분."
도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한수진이 조용히 침대 시트를 정리했다. 그녀는 도현의 손을 봤다. 다시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 좀 쉬셔야 할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복도로 나오자 오준혁이 자판기 앞에 서 있었다. 캔커피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하나를 도현에게 내밀었다.
"이유민, 진짜 심낭에 피 고여 있었다며. 어젯밤 CT엔 없었는데."
"…놓쳤던 거야."
준혁이 캔을 따며 도현을 곁눈질했다. 짧게, 그러나 예리하게.
"너, 진단 나오기 전에 병명 말했다던데."
도현은 대답하지 않고 커피를 받았다. 준혁도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그 시선이 등에 오래 남았다.
세 시간 뒤, 상황실 무전이 시끄러웠다. 도현이 커피를 두 잔째 비우던 참이었다.
「성심 권역 응급, 서부순환도로 4번 교차로 다중 접촉사고. 승용차 세 대, 부상자 다수. 4번 교차로 노후 교량, 일명 '살육의 커브' 구간에서 발생. 정확한 인원 파악 중.」
한수진이 무전기를 내려놓으며 미간을 좁혔다.
"또 거기예요. 그 교량, 매년 사고 나는데 예산 없다고 보수를 안 해요."
도현은 무전 소리를 흘려들었다. 머릿속엔 규칙뿐이었다. 환자당 한 번. 팔 분. 두 번째 사망은 봉인.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몸을 데웠다. 대퇴 환자를 잃은 건 규칙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안다. 이제부터는 놓치지 않는다.
준혁이 옆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커피도, 미소도 없었다. 도현의 팔을 붙잡았다. 손아귀에 힘이 실려 있었다.
"도현아. 잠깐 나 좀 봐."
"왜."
"오늘 아침 너, 세 명 봤어. 오토바이는 어젯밤이고. 이유민은 진단 나오기도 전에 심장압전이라고 했고, 대퇴 환자는 수술방 열라고 소리치기 전에 이미 외장골동맥이라고 짚었어. 초음파도, 조영도 안 보고."
"운이 좋았어."
"세 번 다? 운으로?"
준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나 너랑 삼 년 같이 굴렀어. 넌 신중한 놈이야. 확인 안 하면 진단 안 내리는 놈. 그런데 요 이틀, 넌 답을 먼저 알고 문제를 푸는 사람 같아. 시험지 답안지를 미리 본 것처럼."
도현의 캔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준혁의 눈이 그 손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손. 너 손 떨려. 어제부터."
"밤샘이야."
"밤샘으로 손등에 저런 게 생기냐?"
준혁이 도현의 왼손을 가리켰다. 갈색 반점. 어제보다 커진 것 같았다. 도현은 손을 뒤로 뺐다.
"준혁아. 나 지금 환자 살렸어. 이유민, 죽을 뻔한 사람. 그게 잘못이야?"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걱정하는 거야. 너 뭔가…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는 것 같아서."
도현은 준혁의 손을 뿌리쳤다. 뿌리치면서도 등이 서늘했다. 준혁은 잡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처음으로, 친구의 얼굴에 낯선 무언가가 어렸다.
"…그래. 알았어. 근데 도현아. 언젠가 네가 답지 없이 문제 풀어야 할 때가 와. 그때 준비 안 돼 있으면, 나 진짜 무섭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찬물을 틀었다. 얼굴을 몇 번 문지르고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에 자신이 있었다.
이유민을 살렸다. 오토바이 환자를 살렸다. 규칙을 알아냈다. 통제할 수 있다. 대퇴 환자는 아까웠지만, 그건 지식이 없어서였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그는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눈가였다.
눈꼬리 아래로, 어제까지 없던 잔주름이 두 줄, 세 줄. 웃지 않았는데도 접힌 선들. 도현은 손가락으로 그 선을 짚었다. 하나, 둘. 세다가—
손가락이 멈췄다.
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는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셀 수가 없었다.
수도꼭지의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도현은 검지로 눈꼬리를 다시 눌렀다. 피부가 밀려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속도가 느렸다. 손을 떼도 잔주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눌린 선이 그대로 남아 접혀 있었다.
서른한 살이었다. 어제 아침만 해도 세면대 거울에 이런 게 없었다. 확신했다. 매일 아침 면도하며 보는 얼굴이었으니까.
그는 눈가에서 관자놀이로 손을 옮겼다. 잔머리 사이로 흰 것이 한 올. 잡아당겨 뽑아 눈앞에 들었다. 뿌리까지 하얬다.
"…뭐야, 이거."
목소리가 갈라졌다.
물을 잠갔다. 손등을 다시 보았다. 갈색 반점. 어제는 좁쌀만 했는데, 지금은 콩알만 했다. 가장자리가 번지듯 흐렸다.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각질도, 때도 아니었다. 피부 깊은 곳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되감기 두 번. 오토바이 환자에서 팔 분. 이유민에서 팔 분. 합쳐 십육 분을 되돌렸다.
십육 분.
그 대가가—
도현은 세면대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무릎에서 힘이 빠졌다. 두 시간 전, 이유민의 산소포화도가 68에서 96으로 튀어 오르던 순간의 쾌감이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심막천자 바늘 끝에 검붉은 피가 왈칵 올라오던 감각. 모니터의 파형이 되살아나던 소리. 그때는 신이었다. 답지를 손에 쥔 신.
지금 거울 속엔 하룻밤 사이 늙어 버린 남자가 있었다.
"괜찮으세요?"
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한수진이었다. 반쯤 열린 화장실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남자 화장실 앞이라는 걸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준혁 쌤이 선생님 여기 들어갔다고. 안색이 안 좋다고 하던데."
"괜찮습니다."
"괜찮은 사람 목소리가 아닌데요."
수진이 문을 조금 더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도현의 얼굴을 훑었다. 눈가에서 잠깐 멈췄다.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도현은 그녀가 봤다는 걸 알았다.
"선생님."
수진이 천천히 말했다. 그녀는 열두 해를 이 응급실에서 굴렀다. 밤샘한 얼굴과 병든 얼굴을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삼 년 봤는데, 선생님 얼굴이 어제랑 다르네요."
"밤을 새서 그래요."
"그 말, 오늘 세 번째 하시는 거 알아요?"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수진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든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상황실에서 방금 갱신됐어요. 4번 교차로 사고, 아까 승용차 세 대라던 거요."
"…인원 파악됐습니까?"
"그게요."
수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교량 위에서 관광버스 한 대가 뒤에서 밀려 들어왔대요. 지금 후속 무전 계속 들어오는데, 부상자 숫자가 계속 올라가요. 처음엔 다섯, 방금은 열, 지금은—"
무전기가 상황실에서 울렸다. 복도까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현은 물기도 닦지 못한 얼굴로 화장실을 나섰다. 수진이 뒤따랐다.
상황실 화이트보드 앞에 준혁이 서 있었다. 마커를 쥔 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은혜가 전화를 붙든 채 받아 적고 있었다.
「성심 권역, 서부순환 4번 교차로 최종 상황 전달. 관광버스 후미 추돌 및 전복. 승용차 세 대 협착. 현장 추정 중증 외상 다수. 반복한다, 다수. 헬기 두 대 출동, 지상 구급 여섯 대. 첫 이송 예상 시각 십오 분.」
준혁이 마커를 내려놓았다. 도현을 돌아봤다. 방금 화장실에서 나눈 대화 따위는 얼굴에서 지워지고 없었다. 그 자리엔 응급의의 눈만 남아 있었다.
"도현아. 대량재난이야. 트리아지 서야 해."
은혜가 전화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열두 명이래요. 최소 열둘. 적색 태그만 여섯 이상 될 거라고… 이송팀이 그래요."
상황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가 다시 끓기 시작했다. 수진이 무전기를 낚아채 각 병동에 콜을 돌렸다. 준혁이 수술방 세 개를 잡으라고 소리쳤다. 이준호 센터장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렸다.
도현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열두 명. 적색 여섯. 살육의 커브. 노후 교량. 예산 없어 보수 못 한 다리.
그의 손이 옆구리에서 떨렸다. 그는 그 손을 반대 손으로 감쌌다. 눈가의 주름도, 손등의 반점도, 흰머리 한 올도 지금은 문제가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규칙이 저절로 돌아갔다. 환자당 단 한 번. 팔 분. 사망이 확정된 순간에만 발동. 두 번째 사망은 영원한 봉인.
열두 명이 들어온다.
만약 그중 여섯이, 아니 열둘 전부가 내 눈앞에서 죽는다면—
되감기를 여섯 번, 열두 번 쓴다면.
십육 분을 되돌리는 데 눈가에 주름 세 줄이 생겼다. 흰머리가 났다. 손등의 반점이 콩알만 해졌다. 그렇다면 여섯 번은, 열두 번은.
도현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계산이 서지 않았다. 십육 분에 이만큼이라면, 여든 분, 백 분을 되돌린다면 몸이 얼마나 무너질지—셀 수가 없었다. 아까 거울 앞에서 주름을 세다 그만둔 것처럼.
"도현아!"
준혁이 불렀다.
"멍때리지 말고. 네가 리드 서야 해. 첫 헬기 삼 분 뒤 옥상 도착이야. 트리아지 존 어디로 잡을 거야?"
도현은 고개를 들었다.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손등의 반점을 소매로 덮었다. 그리고 마커를 집어 들었다.
"응급실 정문 앞. 램프 앞 공간 비우고 트리아지 존 잡습니다. 녹색은 외래로 빼고, 황색은 EM존, 적색은 곧장 소생실. 소생실 세 개 다 열어요."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그건 순전히 훈련의 결과였다.
"흑색은요?"
수진이 물었다. 트리아지 규칙상 반드시 나오는 질문이었다. 살릴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에게 색을 매기는 규칙. 응급의학의 가장 잔인한 문장.
도현은 마커를 쥔 채 잠시 멈췄다.
흑색. 기대불가. 포기하라는 색.
그의 눈에 그것은 다른 뜻이었다. 되감기를 써야 할 대상의 표식. 이미 죽었지만, 팔 분 전으로 돌아가면 살아 있는 사람. 규칙만 안다면 살릴 수 있는 사람.
"흑색은—"
목이 말랐다.
"흑색은 내가 봅니다. 직접."
상황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준혁이 마커를 쥔 채 도현을 쳐다봤다. 트리아지에서 흑색은 손대지 않는 색이었다. 대량재난 상황에서 소생 가능성 없는 환자에게 인력을 쏟는 건, 살릴 수 있는 다른 환자를 버리는 것과 같았다. 리드가 흑색에 직접 붙겠다는 건 스스로 지휘 라인에서 이탈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현아, 흑색을 리드가 직접—"
준혁이 입을 뗐지만 도현은 눈을 피했다. 은혜도 전화기를 든 채 그를 돌아봤고, 화이트보드 앞을 지나던 인턴 하나가 걸음을 멈췄다. 여러 시선이 도현의 등에 얹혔다. 지금은 따질 시간이 없다는 걸 모두 알았기에, 아무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무거웠다.
옥상에서 헬기 로터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이 천장을 타고 내려왔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첫 이송 환자 하강 시작. 사십 대 남성, 흉부 관통, 혈압 잡히지 않음. 반복한다, 혈압 무측정.」
무전 너머 목소리가 다급했다.
도현은 마커를 내려놓았다. 손등의 반점이 소매 아래에서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착각일 것이다. 반점이 뜨거울 리 없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눈가를 한 번 눌렀다. 아까 화장실에서처럼. 주름이 그대로 있었다. 손끝에 느껴졌다.
"선생님."
수진이 옆에 와 섰다. 그녀의 목소리가 낮았다. 다른 사람은 못 듣게.
"오늘, 몇 번이나 쓰실 거예요?"
도현은 그녀를 돌아봤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녀가 뭘 안다는 건 아닐 것이다. '쓴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무슨 소리예요."
"모르겠어요. 그냥 물어봤어요. 근데 선생님, 아까부터 계속 손을 감싸고 계세요. 안 아픈 척하면서."
수진은 그 말만 남기고 앞장서 걸어갔다. 소생실 문을 열어젖혔다. 침대 세 개가 나란히 비어 있었다. 잠시 뒤면 피로 채워질 자리였다.
도현은 그 뒤를 따랐다. 발걸음마다 규칙이 머릿속에서 카운트다운처럼 울렸다.
환자당 한 번. 팔 분. 두 번째 사망은 봉인.
십육 분에 주름 세 줄. 그렇다면 오늘 밤, 열두 명을 되살린다면.
그는 소생실 문턱을 넘으며 마지막으로 벽에 붙은 작은 거울을 스쳐 봤다. 손 소독제 옆에 걸린, 손바닥만 한 거울. 거기 자기 얼굴이 비쳤다.
눈가의 주름이, 방금 전보다—
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한 줄, 더 늘어 있었다.
아무것도 되돌리지 않았는데도.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거울 쪽으로 반걸음 다가섰다.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고 다시 들여다봤다. 조명 탓인가. 각도 탓인가. 아니면 방금 손끝으로 눌러 접힌 자국이 남은 건가. 스스로에게 그렇게 묻는 동안에도, 손바닥만 한 거울 속의 선은 지워지지 않았다. 착각이라고 우기려 해도 눈이 먼저 그 한 줄을 세고 있었다. 도현은 그게 착각인지, 정말로 늘어난 건지 끝내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로터 소리가 최고조로 커졌다. 헬기가 옥상에 닿았다. 들것 바퀴가 복도를 굴러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첫 환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도현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