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사십일 분.
성심대학교 권역외상센터 처치실의 형광등이 피 웅덩이를 하얗게 비췄다. 서도현의 두 손은 환자의 갈라진 복강 안에 잠겨 있었다.
"에피 한 앰플 더."
"방금 세 번째입니다, 선생님."
한수진의 목소리가 짧게 끊겼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토바이 사고, 중앙선 침범, 대형 트럭 밑으로 빨려 들어간 서른두 살 남성. 골반이 통째로 으스러졌고 복강은 출혈로 가득 찼다. 흡인기가 붉은 액체를 빨아내는 속도보다 새어 나오는 속도가 빨랐다.
"혈압 60에 30. 떨어집니다."
"어디야."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출혈점을 찾을 수 없었다. 간에서도, 비장에서도, 위에서도 아니었다. 손끝으로 후복막을 훑었지만 시야가 온통 붉었다.
"40에 20."
"수혈 풀로 돌려."
"이미 O형 팩 여덟 개 들어갔어요. 재고가—"
모니터의 파형이 뭉개졌다. 톱니 같던 QRS가 무너지며 물결처럼 늘어났다.
"VF입니다. 제세동—"
"200줄."
패들이 가슴에 닿고 몸이 튀어 올랐다. 파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360줄. 갈비뼈 아래 근육이 경련했다. 심전도는 조금씩 편평해졌다. 언덕이 사라지고, 마침내 한 줄기 선이 되었다.
"에이시스톨…"
가슴 압박. 도현의 두 손이 흉골 위에서 뛰었다. 삼십 회. 이 분. 사 분. 팔이 감각을 잃었다. 최은혜가 교대로 붙었고, 오준혁이 처치실로 뛰어들어 왔다. 십오 분이 지났다.
"도현아."
오준혁이 그의 어깨를 짚었다.
"그만해. 십칠 분째야."
"조금만 더."
"동공 산대됐어. 대광반사 없어."
도현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은혜가 벽시계를 봤다. 한수진이 흡인기를 내려놓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가라앉고, 남은 것은 자신의 손바닥이 흉골을 누르는 둔탁한 소리뿐이었다.
"서도현 선생님."
수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게 잠겼다.
"보내드리세요."
도현의 손이 멈췄다. 축축한 장갑 안에서 손가락이 떨렸다. 오른손. 오래된 버릇처럼, 그는 왼손으로 오른손 손등을 문질렀다. 삼 년 전 그 새벽, 태아 심음이 사라지던 순간에도 그의 오른손은 이렇게 떨렸다. 산모의 자궁을 열었을 때 이미 늦어 있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못 했다. 그때도, 지금도.
"사망 선언… 하겠습니다."
입술이 겨우 움직였다.
"사망 시각, 오전 세 시—"
세상이 꺼졌다.
빛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고, 귓속에서 이명이 터졌다. 도현은 눈을 감았다 떴다. 처치실이 있었다. 형광등이 피 웅덩이를 비췄다. 그런데 모니터가—
파형이 뛰고 있었다.
톱니 같은 QRS가 다시 살아 있었다. 혈압 60에 30. 흡인기가 붉은 액체를 빨아냈다. 도현의 손은 다시 환자의 복강 안에 잠겨 있었다.
"에피 한 앰플 더."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들었던 그대로.
"방금 세 번째입니다, 선생님."
도현은 숨을 멈췄다. 벽시계를 봤다. 세 시 삼십삼 분. 죽었던 시각에서 정확히 팔 분 전이었다. 등줄기로 얼음물이 흘렀다.
그 순간 세계가 달라졌다. 형광등 아래 붉은 웅덩이가 초점을 되찾았다. 흡인기가 빨아들이는 액체의 흐름이 보였다. 그 흐름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액체가 어느 방향에서 밀려오는지, 도현의 눈은 그것을 읽었다. 손끝의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장기의 미세한 떨림, 혈관벽의 긴장, 조직의 온도차까지 손가락이 지도처럼 그려냈다.
후복막. 좌측 신장 뒤쪽.
방금 전에는 찾지 못한 곳. 죽음 앞에서 놓친 지점.
"석션, 후복막 좌측으로. 지금."
"거긴 방금—"
"거기 맞아. 신동맥 분지에서 뿜고 있어."
수진이 흡인기를 옮겼다. 도현의 손이 복막을 갈랐다. 손가락이 조직 사이를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몸이 자기 것이 아닌 듯 정확했다. 뭉개진 시야 너머로 출혈점이 드러났다. 신동맥 아래 분지 하나가 찢겨 붉은 기둥을 뿜어내고 있었다.
"결찰 준비. 클램프."
"혈압 50입니다."
"괜찮아. 지금 잡는다."
집게가 찢어진 혈관을 물었다. 도현의 오른손은 떨리지 않았다. 실을 걸고, 매듭을 지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붉은 기둥이 사그라들었다. 흡인기가 웅덩이를 빨아내는 속도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혈 잡혔다. 혈압 봐."
"…50. 55. 60. 올라옵니다."
은혜가 모니터를 보며 입을 벌렸다.
"70. 75!"
"수혈 유지. 압박 필요 없어."
도현은 결찰부를 다시 확인했다. 새는 곳은 없었다. 복강을 세척하고, 거즈로 압박했다. 심전도의 파형이 안정을 되찾았다. 톱니가 규칙적으로 언덕을 그렸다.
"동조율 회복. 혈압 90에 60."
처치실이 조용했다. 도현은 고개를 들었다. 오준혁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방금 뛰어들어 왔던 그 자세 그대로. 하지만 이번에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짚을 필요가 없었다.
"…뭐야, 이거."
오준혁이 중얼거렸다.
"방금까지 코딩 걸리기 직전이었잖아. 골반 오픈이었고. 후복막을 어떻게—"
"찾았어."
도현은 짧게 답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놓쳤던 걸 찾았어."
한수진이 환자의 동공에 펜라이트를 비췄다. 반응이 있었다. 조금 전, 다른 시간선에서는 산대되어 멈춰 있던 그 눈동자가 빛에 수축했다.
"대광반사 돌아왔습니다."
수진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떨림이 섞였다. 그녀는 도현을 봤다. 오래 봤다.
"선생님. 지금 이거… 제가 본 게 맞아요?"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수술실로 환자를 넘긴 뒤, 처치실에는 도현 혼자 남았다. 은혜와 준혁은 소생 소식을 병동에 알리러 나갔고, 수진은 다음 환자 준비를 위해 자리를 떴다. 바닥의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도현은 벽에 등을 대고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세 시 삼십삼 분. 죽었어야 할 시각에서 팔 분 전.
그는 시간을 되감았다.
심전도가 평탄선을 그렸다. 동공이 열렸다. 대광반사가 사라졌다. 자신은 사망 선언을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가 되감겼다. 다시 살아난 그 팔 분 동안, 도현의 손은 신들린 듯 정확했다. 놓쳤던 출혈점을 단번에 찾았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삼 년 전 그 산모도, 이 손으로 잡을 수 있었을까.
도현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태아 심음이 사라지던 소리가 아직도 귓속에 있었다. 산모의 이름표, 서른한 살, 초산. 자궁을 열었을 때 이미 늦어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매번 물었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조금만 더 정확했다면. 그 물음이 삼 년째 그의 오른손을 떨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도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장갑을 벗은 오른손. 떨리지 않았다. 손가락을 펴고, 오므리고, 다시 폈다. 완벽하게 고요했다.
죽음을 되돌렸다. 확정된 사망을 자신이 되감아 다시 열었다. 다른 의사라면 열일곱 분 만에 포기했을 그 환자를, 자신은 되살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이건 기적이 아니라—
능력이었다.
도현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이 손이 시간을 여는 열쇠였다. 사망 앞에서, 자신에게만 열리는 문. 신도 손을 놓는 그 순간에, 자신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손등을 무심히 훑었다. 왼손 손등에, 새끼손톱 절반만 한 옅은 갈색 반점이 있었다. 검버섯. 언제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삼십 대 초반에는 이른 것이었지만, 밤샘과 커피와 만성 피로에 절어 사는 외상외과 의사에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반점을 보는 순간 도현의 뇌리를 스쳐 간 생각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손등을 보고 있으니 가슴 한구석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예감. 그는 엄지로 반점을 문질러 봤다.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깨를 폈다. 몸 어딘가가 미세하게 무거웠다. 밤샘 탓이라 여기려 했지만, 그 무게감은 피로와는 다른 것 같았다. 마치 무언가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
아침 여섯 시. 회진 시간.
도현은 중환자실 앞에서 오준혁, 최은혜와 합류했다. 새벽의 소생 소식은 이미 병동에 퍼져 있었다. 지나가던 마취과 전공의가 그를 힐끔 돌아봤다. 골반 개방골절에 후복막 신동맥 출혈, 십칠 분 심정지 직전에서 소생. 교과서에 없는 결과였다.
"진짜 대박이었어."
준혁이 옆에서 걸으며 말했다.
"근데 도현아, 나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넌 그 후복막 출혈점을 어떻게 그렇게 딱 찾은 거야? 좌측 신동맥 분지, 그거 시야에 안 잡혔잖아. 손으로만 더듬어서 한 방에?"
도현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준혁의 눈이 자신을 뚫어지게 봤다. 도현은 시선을 돌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 야, 그게 운이면 나도 로또를 사겠다."
준혁이 중얼거렸다. 도현은 여전히 침묵했다.
은혜가 두 사람 사이로 파일을 내밀었다.
"선생님, 밤새 안 주무셨죠. 커피 드세요."
종이컵을 건네는 은혜의 손끝이 도현의 손등에 닿았다. 그녀는 그 순간 손을 멈췄다. 도현을 바라봤다. 아주 짧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4번 베드 앞을 지나 6번 베드로 향했다. 복부 자상 회복 중인 환자였다. 도현이 차트를 확인하고, 상처 부위를 살폈다. 문제없었다. 다음, 8번 베드. 그다음, 12번 베드.
도현이 12번 베드 앞에 섰다. 흉부 둔상, 폐좌상으로 어제 입원한 마흔네 살 여성. 산소포화도 안정, 활력징후 정상. 회복 중이었다. 도현은 차트를 넘기며 환자의 얼굴을 봤다.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머리맡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터졌다.
날카로운 알람이 중환자실을 갈랐다. 산소포화도가 곤두박질쳤다. 98에서 90, 84, 78. 심박수가 치솟았다가 이내 불규칙하게 튀었다. 잠들어 있던 환자의 가슴이 발작하듯 들썩였다.
"뭐야."
준혁이 튕겨나가듯 침대로 붙었다. 은혜의 손에서 종이컵이 떨어졌다. 커피가 바닥에 검게 번졌다.
도현의 등줄기로 새벽의 그 감각이 다시 흘렀다. 얼음물 같은 것.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환자가 악화될 것을. 아니, 더 정확히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오른손. 마치 능력을 발동하라는 신호처럼.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경고처럼.
도현은 손을 내려다봤다. 왼손 손등의 검버섯이 떠올랐다.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무게감.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연결되었다.
되감기의 대가.
그는 이미 치르고 있었다.
차트를 내려놓고 침대로 다가섰다. 모니터의 파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규칙적이던 QRS가 조금씩 뭉개졌다.
"선생님, 이 환자 어제까지 멀쩡했어요! 폐좌상 경증이었다고요!"
은혜가 소리쳤다. 산소포화도 68. 알람이 비명을 질렀다.
도현의 오른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