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말하지 않은 곳에 답이 있습니다

명진섭의 책상은 매우 정돈되어 있었다. 서류 한 장도 튀어나와 있지 않았고, 펜은 각도를 맞춰 놓여 있었다. 그의 옷깃도 그랬다. 도경이 들어서자 명진섭은 시계를 보고 다시 도경을 봤다. 재심 요청서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신호였다.

"윤태오 재심은 이미 상신했습니다."

"강여울입니다."

명진섭이 펜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도경, 우리가 아는 한 강여울은 체포되었고 자백했습니다.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 재심문을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피해자의 온도를 읽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문제입니다. 조직의 문제가 아닙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도경은 명진섭의 눈을 마주하지 않았다. 마주하는 대신 그의 손가락을 봤다. 펜을 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명진섭도 자신이 뭔가를 외면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손가락이 떨린다. 도경은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15년 전 조서 16페이지를 다시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공백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이 써야 할 소견이 공백이었습니다."

명진섭이 펜을 내려놓았다. 책상 위에 나지막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공백을 채우려고 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경, 조직은 공백을 채우는 조직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건을 종결시키는 조직입니다."

"종결이 진실입니까."

"종결은 책임의 끝입니다."

명진섭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도경보다 키가 작았지만 일어선 그는 거대해 보였다. 조직의 무게가 그의 어깨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여울과의 재심문은 승인할 수 없습니다. 이미 체포되어 있고, 이미 자백했으며, 이미 판사 앞에 설 겁니다. 거기서 그녀의 온도를 읽으십시오. 우리 자문실에서는 아닙니다."

도경이 돌아섰다. 명진섭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은퇴 계약서를 언제 사인하실 겁니까."

도경은 답하지 않았다.

자문실로 돌아온 도경은 유하가 이미 앉아 있는 것을 봤다. 그의 앞에는 노트북이 열려 있었고, 화면에는 음성 파형이 떠 있었다. 15년 전 피해자 조서의 녹취 원본. 파형은 산과 골짜기를 반복했다.

유하가 화면을 가리켰다.

"이 구간입니다. 피해자가 '그날 강변에서 본 것'을 진술하는 부분입니다."

파형이 급격하게 요동쳤다. 진폭이 컸다.

"도경님이 기억하시는 온도와 다릅니다."

유하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15년 전 목소리.

"—강변이었어요. 가로등이 하나 있었고... 물이..."

목소리가 끊겼다. 숨을 쉬는 음성이 들렸다. 길게. 불규칙하게.

"—저는 거기 있지 않았어요."

다시 침묵. 파형이 평탄해졌다가 급격히 요동쳤다.

"제가 기억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유하가 마우스로 커서를 움직였다.

"당신이 심문 기록에 남긴 것은 '피해자가 확신 있게 현장을 설명했다. 온도는 진실에 가까웠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파형은 다릅니다."

유하가 음성을 다시 재생했다. 같은 구간. 화면에 새로운 분석 그래프가 겹쳐졌다. 붉은 색 표시. 음성의 진폭, 주파수 변화, 호흡 간격을 추적한 것이었다.

"극도의 공포 상태입니다. 호흡 장애, 음성 진폭의 급격한 변화. 도경님이 읽은 것은 진실이 아니라 공포였습니다."

유하가 음성 합성 도구를 열었다. 피치를 조정하고, 속도를 조정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나타났다.

"피해자는 실제로 다른 누군가를 만났는데, 공포 때문에 그 사람을 윤태오라고 착각했습니다. 파형은 그 사이의 무언가를 보여줍니다."

유하의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움직였다.

"멈추십시오."

도경의 목소리가 자문실에 내려앉혔다. 유하의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지금 당신이 하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유하가 돌아봤다. 도경이 서 있었다. 손이 자연스럽게 내려와 있었다. 손목시계를 만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도경의 얼굴에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광대뼈 아래 근육이 실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피해자의 온도를 복원하려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지금 하려는 것은 공백을 채우는 것입니다. 15년 전 내가 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도경이 유하의 옆에 섰다. 노트북 화면을 내려다봤다. 파형이 요동치고 있었다. 음성 합성 도구는 여전히 열려 있었다.

"당신의 방법론이 무엇입니까."

유하가 천천히 답했다.

"공백은 공백으로 적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배운 것입니다. 내가 지키지 못했던 규칙입니다."

도경이 손을 뻗었다. 유하의 손을 누르고 음성 합성 도구를 닫았다. 파형이 사라졌다.

"피해자의 온도는 당신이 복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오독했던 것을 당신이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공백입니다. 그 공백을 채우는 순간,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이 됩니다."

유하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도경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아가고 있었다. 파형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자신의 해석은 이미 오염되어 있다는 것. 도경이 자신을 멈춘 이유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그것이 초래할 왜곡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도 그 왜곡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하가 노트북을 닫았다. 서서히. 화면이 검어졌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피해자는 여전히 진실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경이 자리에 앉았다.

"내가 당신에게 가르친 것이 있습니까."

유하가 답했다.

"진술을 읽는 방법입니다."

"아닙니다. 내가 당신에게 가르친 것은 진술을 읽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입니다."

도경이 손목을 들었다. 시계를 보지 않고 만지지도 않았다. 그냥 들었다. 그리고 내려놓았다.

"당신은 공백을 공백으로 적을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방법론입니다. 그것이 정직한 기록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그것만 요구합니다."

유하가 가방을 집어 들었다. 밤이 깊었다.

"도경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기록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유하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자동 잠금음이 딸깍 하고 났다. 도경은 혼자 남았다.

책상 위에는 15년 전 조서가 놓여 있었다. 16페이지. 심리 소견란. 공백. 도경은 그 페이지를 켜켜이 들여다봤다. 펜을 집어 들었다.

그는 처음으로 진실을 적기로 결정했다.

'심문 기록 검토 결과, 피해자의 진술 온도는 공포의 신호였습니다. 진실의 신호가 아닙니다. 당시 심문자의 판단은 오독이었습니다. 이 오독이 무고한 피의자 윤태오에 대한 지목으로 이어졌고, 15년의 시간을 빼앗았습니다. 피해자의 진정한 온도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습니다. 명확하지 않은 것은 명확하지 않음으로 기록됩니다.'

펜을 들었다.

도경이 이름을 쓸 차례였다. 하지만 펜을 종이에 대지 않았다. 펜이 공중에 떠 있었다. 종이 위 2센티미터 위에서.

그는 깨달았다. 서명하는 것도 형태의 일종이라는 것을. 이름을 쓰는 것도 진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진술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진실을 다시 지우는 것도 진술이었다. 공백에 이름을 적지 않는 것도 서명이었다.

도경은 펜을 내려놓았다. 종이에 닿지 않은 채로.

책상 위에는 윤태오가 남긴 쪽지가 놓여 있었다. 흰색 메모지에 검은색 볼펜으로 쓰인 글씨.

'피해자에게는 아직 아무도 정확한 진실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운 것을 다시 지우는 것도 진실은 아닙니다.'

도경이 읽었다. 다시 읽었다. 세 번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는 그가 해야 할 일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남은 것은 공백을 공백으로 내버려두는 것뿐이었다. 그 공백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15년 전 피해자의 진짜 온도도, 자신의 오독도, 무고하게 빼앗긴 시간도, 돌릴 수 없는 모든 것도.

강변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가로등이 서 있었고, 물이 굽어 흐르고 있었다. 도경이 본 적 없는 그곳. 도경이 기억하는 그곳. 도경이 만들어낸 그곳. 그리고 진짜 피해자가 본 그곳. 네 개의 강변이 한 곳에서 겹쳐 있었다.

은퇴 계약서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 서명란. 도경은 펜을 다시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엔 손목시계를 만지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만지는 것은 동요를 드러내는 것이었고, 동요를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더 이상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펜이 계약서 위에서 멈췄다. 이름을 쓸 차례. 하지만 그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대신 날짜를 썼다. 오늘 날짜. 그 옆에 한 줄 더.

'공백으로 기록됨.'

펜을 내려놨다. 종이에서 떨어졌다. 떨어지는 소리가 자문실에 울렸다.

명진섭이 다시 찾아온 것은 새벽 3시였다. 도경은 그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은퇴는 보류하기로 했어."

명진섭이 문을 닫으며 말했다. 손에는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편의점 커피. 자신의 것은 검은색, 도경을 위한 것은 연한 색. 15년을 함께한 습관이 남아 있었다.

도경은 받지 않았다.

"유하가 파형 분석을 마쳤어. 피해자 조서의."

명진섭이 책상 위에 커피를 놨다.

"뭔가 나왔나."

도경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나왔지. 도경이 기억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명진섭이 의자에 앉았다. 도경 맞은편.

"얼마나."

"완전히. 피해자가 진술할 때 보인 온도는 공포였어. 진실이 아니라 공포. 그 차이를 넌 읽지 못했어."

도경의 손가락이 책상을 누르고 있었다. 한 점에 계속.

"내가?"

"그래. 피해자가 말한 것들—그 남자와의 관계, 그 날의 일정—그 모든 게 진짜 기억이 아니라 공포로 왜곡된 기억이었어. 넌 그 왜곡을 진실로 읽었고, 그걸 근거로 윤태오를 지목했어."

"강여울의 자백은?"

"강여울은 피해자를 죽인 게 맞아. 하지만 피해자가 진술한 그 세부사항들—그 남자와의 만남, 그 시간들—그건 강여울의 것도, 윤태오의 것도 아니야. 피해자의 착각이었어. 공포가 만든 거야."

도경이 일어났다. 책상을 돌아 창가로 갔다. 블라인드는 여전히 내려져 있었다.

"그래서 뭐가 문제야. 강여울이 범인이잖아."

"문제는 너야. 15년을 내가 지웠다는 거지. 피해자가 말한 공포를 진실로 읽고, 그걸 서명하고, 그 서명으로 무고한 사람을 닫아뒀다는 거. 그리고 이제 그걸 알았어. 하지만 돌릴 수가 없어."

명진섭이 일어났다. 커피잔을 들고.

"유하가 너한테 보고하려고 했어. 근데 난 먼저 와야겠다고 생각했어. 왜냐면 넌 강여울을 다시 심문하고 싶을 거거든. 그리고 난 그걸 막아야 해."

"왜."

"규칙이잖아. 넌 자신의 규칙을 지켜야 해. 같은 대상을 세 번 이상 심문하면 잔상이 왜곡된다고."

도경이 명진섭을 바라봤다. 오래 바라봤다.

"이번엔 다르다."

"응?"

"이번엔 내가 이미 왜곡된 상태야. 세 번째 심문이 아니라 첫 번째 심문을 다시 하는 거야. 올바르게 하는 거야."

명진섭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위험해. 넌 이미 자기 기억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잖아. 그럼 세 번째 심문에서 넌 뭘 읽을 거야? 강여울의 온도? 아니면 넌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온도?"

도경이 대답하지 않았다.

"사건은 끝났어. 강여울은 체포됐어. 윤태오는 석방될 거고. 조직도 재심을 상신했어. 내가 승진자료를 내려놨고, 넌 조서에 오독을 기록했어. 더는 뭐가 필요해?"

"진짜 피해자의 온도."

명진섭이 웃음을 흘렸다. 웃음이 아니라 숨소리 같은 것. 낮고 긴 숨.

"그건 죽은 사람이야. 넌 죽은 사람의 온도를 읽을 수 없어."

"조서에 남아 있어."

"조서는 기록이지, 온도가 아니야."

도경이 책상으로 돌아왔다. 명진섭도 앉았다. 다시 마주 앉은 배치. 명진섭이 커피를 마셨다.

"유하가 뭐라고 했어? 파형 분석 결과."

"피해자의 진술 온도는 공포였다고. 도경이 기억하는 진실의 온도가 아니라, 공포로 왜곡된 온도. 그리고 그 공포 속에서 피해자가 만들어낸 거짓—그게 도경을 오도했어."

"거짓?"

"응. 피해자가 윤태오와 만났다고 말했던 그 시간들. 그건 거짓이었어. 피해자는 다른 누군가를 만났어. 그리고 그 누군가가 강여울이었어. 하지만 공포 때문에 피해자는 자신이 만난 사람이 윤태오라고 착각했어."

도경의 손가락이 책상을 누르고 있었다.

"그럼 피해자는... 강여울을 못 본 건가."

"못 본 게 아니라 다르게 봤어. 공포 속에서."

침묵이 다시 들어찼다. 명진섭이 커피를 다시 마셨다. 이번엔 도경의 커피를 집어 들었다.

"마."

"싫어."

"너 마. 너 좀 봐. 손가락 떨고 있잖아."

도경이 손을 들었다. 확인했다. 떨리지 않았다.

"안 떨려."

"그게 더 무섭지."

명진섭이 커피를 자신의 입에 가져갔다. 다시 마셨다.

"유하가 파형을 계속 분석하려고 했어. 더 깊이. 그런데 난 그걸 막았어. 왜냐면 이미 충분하거든. 이미 다 알 수 있거든. 더 파고들 필요가 없어. 넌 그것도 알아야 해."

"명진섭."

"응."

"강여울을 다시 심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직도?"

명진섭이 일어났다. 커피잔을 든 채로.

"응. 생각해. 그리고 그 생각이 넌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야 해. 그 생각이 너를 어디로 데려갈지."

도경이 대답하지 않았다. 명진섭이 문으로 갔다. 문을 열고서 멈췄다.

"윤태오가 뭐라고 했어? 그 쪽지에."

"피해자에게는 아직 아무도 정확한 진실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그래. 그게 전부야. 넌 그걸 받아들여야 해. 진실은 돌려줄 수 없다는 걸. 돌려주는 대신 할 수 있는 건 공백을 공백으로 놔두는 것뿐이라는 걸."

명진섭이 떠났다. 자동 잠금음. 딸깍.

도경은 혼자 남았다. 다시.

책상 위에는 여전히 유하가 남긴 파형 분석표가 놓여 있었다. 컬러 프린트.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표시된 파형. 도경이 기억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온도가 색깔로 표현되어 있었다.

도경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한 번 봤다. 두 번 봤다. 세 번 봤다.

파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파형은 감정을 왜곡하지 않는다. 파형은 공포와 진실을 구분한다.

그런데 도경은 그 파형을 읽을 수 없었다.

아니,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읽고 싶지 않았다. 읽으면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무너질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15년 동안 자신이 만들어낸 강변. 가로등. 물의 굽음.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세워진 자신의 확신.

그것이 무너질 거라는 걸.

도경이 유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3시 반. 그녀는 깨어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네."

전화를 받은 유하의 목소리는 피곤하지 않았다. 준비된 목소리였다.

"파형 분석. 더 파고들지 마."

침묵.

"스승님?"

"공백은 공백으로 적기. 넌 그렇게 했어. 그게 맞아."

"하지만 피해자의 정확한 온도를—"

"복원할 수 없어. 그건 이미 죽었어. 피해자도, 그 시간도. 돌려줄 수 없는 거야."

유하가 대답하지 않았다.

"방법론으로 만들지 마. 공백을. 공백은 공백일 뿐이야. 거기에 의미를 붙이는 순간 그것도 거짓이 돼."

"그럼... 피해자는?"

"남아있어. 조서에. 그리고 우리가 못 읽는 곳에."

도경이 전화를 끊었다. 유하가 뭐라고 말하려 했을 때.

새벽의 자문실은 조용했다. 에어컨이 도는 음. 그것뿐. 도경은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파형 분석표를 다시 봤다.

이번엔 읽지 않았다. 보기만 했다. 색깔만 봤다. 파란색과 빨간색. 공포와 왜곡. 그리고 그 사이의 무언가.

강여울을 다시 심문할 생각은 없었다. 명진섭의 말이 맞았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자신의 감각을 신뢰할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신뢰할 수 없는데, 더 신뢰할 수 없게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그 차이는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대신 도경은 은퇴 계약서를 펼쳤다. 마지막 페이지. 서명란. 그 위에 윤태오의 쪽지를 올려놨다.

'피해자에게는 아직 아무도 정확한 진실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운 것을 다시 지우는 것도 진실은 아닙니다.'

도경이 펜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만지지 않았다.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었다.

펜이 서명란을 향했다.

그리고 멈췄다.

이름을 쓸 차례. 하지만 그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썼다. 날짜. 오늘 날짜. 그 옆에 한 줄.

'공백으로 기록됨.'

펜을 내려놨다. 종이에서 떨어졌다. 떨어지는 소리가 자문실에 울렸다.

그 소리와 동시에 도경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경찰청 수사과. 강여울이 있는 곳에서 온 전화.

도경이 받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전화는 계속 울렸다.

마지막 벨소리가 울릴 때 도경은 자신이 언제 은퇴하게 될 건지 생각했다. 이 계약서에 이름을 쓸 때? 아니면 이름을 쓰지 않기로 결정할 때? 아니면 그 사이의 공백에서?

전화가 끝났다. 다시 울렸다.

도경이 받았다.

"네."

"한도경 자문위원입니까?"

낯선 목소리였다.

"네."

"강여울 피의자가 추가 진술을 요청했습니다."

도경의 호흡이 얕아졌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가락이 굳어갔다. 강여울을 다시 심문하고 싶은 욕망이 몸 전체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얼마나 닮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당신을 지정했습니다. 당신만의 심문을 원한다고요."

도경이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 너머의 침묵. 그리고 자신의 침묵. 두 침묵이 만나는 지점에서.

"한도경 자문위원?"

"거절합니다."

"상황이 있어서요. 당사자가—"

"거절합니다. 규칙입니다."

도경이 전화를 끊었다.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책상을 두드렸다. 톡톡톡. 명진섭처럼. 리듬이 없는 소리로.

그 소리가 계속될 때 도경은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았다. 그리고 뭘 할 수 없을지도 알았다.

강변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가로등이 서 있었고, 물이 굽어 흐르고 있었다. 도경이 본 적 없는 그곳. 도경이 기억하는 그곳. 도경이 만들어낸 그곳. 그리고 진짜 피해자가 본 그곳. 네 개의 강변이 한 곳에서 겹쳐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고, 동시에 사라지고, 동시에 남아 있었다.

도경은 펜을 다시 집어 들었다. 계약서의 서명란에. 하지만 이번엔 손을 멈췄다. 펜을 들고만 있었다. 종이에 대지 않은 채로.

그렇게 손을 멈춘 채 도경은 새벽을 기다렸다. 그리고 새벽이 왔을 때도 손을 멈춘 채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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