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형광등은 오래된 것이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빛이 심문실 테이블 위에 고여 있었다. 한도경은 그 떨림을 세지 않았다. 대신 맞은편 남자의 손을 봤다. 열 손가락이 테이블에 가지런했다. 떨림도, 힘도 없이. 이런 손을 15년간 몇 번 봤는지 세는 것을 그는 오래전에 그만뒀다. 그리고 곧, 이 남자의 진술에서 어긋난 한 구절이 그를 15년 전 강변으로 끌고 갈 것을, 그는 아직 몰랐다.

"그날 오후 여섯 시쯤 헤어졌습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요. 그 사람은 산책로 쪽으로 걸어갔고, 저는 반대편 버스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진술은 흠이 없었다. 문장의 이음새가 매끄러웠고, 시각과 장소가 필요한 만큼만 정확했다. 참고인 강여울은 스물아홉 살, 실종된 여성의 직장 동료였다. 마지막으로 피해자를 본 사람.

도경은 커피잔을 만지지 않았다. 식은 지 오래였다.

"그 사람이 산책로로 걸어가는 걸 봤다고요."

"네."

"뒷모습을?"

"네.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어요."

여기까지는 서늘하게 미끄러졌다. 거짓의 질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지나치게 정돈된 진술은 종종 거짓보다 위험하다. 준비된 것이기 때문에.

"헤어질 때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강여울의 눈꺼풀이 한 번 내려갔다 올라왔다. 그 속도는 자연스러웠다.

"별말 안 했어요. 주말에 보자고. 그 정도."

"주말에."

"네. 같이 전시 보러 가기로 했었거든요. 그래서 더……"

말끝이 삼켜졌다.

도경의 등줄기를 따라 온도가 지나갔다. 열이 아니었다. 그 반대의 것. 문장이 끊긴 자리에 감정의 열이 고여야 했다. 동료가 실종됐고, 함께 가기로 한 약속이 무산됐다면, '더'라는 단어 뒤에는 젖은 온기가 남는다. 그런데 그 자리가 서늘했다. 다림질된 천처럼 평평했다.

"더, 뭡니까."

"더 마음이 안 좋다고요."

강여울이 문장을 완성했다. 완성된 문장은 완벽했다. 그러나 도경이 붙잡은 것은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완성되기 직전 삼켜진 그 반 박자였다. 숨을 멈추는 방식. 말끝을 목 안쪽으로 당겨 넣었다가 다시 꺼내는 그 습관.

그는 손목시계를 만졌다. 유리 표면이 미지근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강여울이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문 앞에서 그가 돌아봤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목소리에 열이 없었다. 그 무열이 도경의 뒷목에 눌어붙었다.

문이 닫혔다.

도경은 혼자 남아 커피잔을 봤다. 규칙이었다. 심문 직후에는 읽은 것을 즉시 기록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진술 분석인지 자기 기억인지 구분되지 않으니까. 그는 수첩을 폈다. 펜을 들었다.

그런데 손이 멈췄다.

기록하려는 진술 대신, 그의 눈앞에 다른 장면이 겹쳐졌다. 강변이었다. 물이 굽어드는 자리. 낡은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불빛은 오렌지빛이 도는 흰색이었다. 벌레들이 그 빛 주위를 돌았다. 발밑에서 자갈이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그 강변에 간 적이 없었다.

지금 참고인이 말한 산책로는 이 도시 남쪽이고, 저 가로등은 다른 곳의 것이었다. 15년 전의 것. '4월의 강변'.

도경은 눈을 감았다 떴다. 장면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선명해졌다. 가로등 아래 벤치의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까지 보였다. 진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이렇게 또렷한 것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 앎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수첩에는 한 줄만 적혔다.

'말끝. 반 박자. 온도 어긋남 — 헤어질 때 대목.'

강변 얘기는 적지 않았다. 적으면 그것이 기록이 되고, 기록이 되면 나중에 진짜였던 것처럼 읽힐 테니까.

문이 노크 없이 열렸다.

"선생님."

서유하였다.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그는 도경의 규칙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 심문 직후에는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봉투가 급했던 모양이었다.

"기록 중이셨어요?"

"끝났어."

유하가 맞은편 의자, 조금 전까지 강여울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도경은 그 자리에 아직 남은 무열을 느꼈다. 유하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참고인 진술, 어떠셨어요? 저는 세 번 읽었는데 흠잡을 데가 없더라고요. 동선도 CCTV랑 일치하고, 통신 기록도 맞고. 알리바이가 완벽해요."

"완벽하지."

"근데 그 '완벽하지'가 그런 뜻은 아니시죠."

유하가 웃었다. 배운 것을 시험하는 학생의 웃음이었다. 그는 도경 밑에서 4년을 배웠고, 물증을 믿는 사람이었다. 검증되지 않는 감각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그 감각이 몇 번이나 물증보다 앞섰다는 것도 알았다.

"한 구절이 어긋났어."

"어디요?"

"주말에 전시 보러 가기로 했다는 대목. 거기서 온도가 서늘했어."

유하가 봉투를 테이블에 내려놨다. 펜을 꺼내려다 말고 도경을 봤다.

"그건…… 기록에 못 남기잖아요."

"못 남기지."

"그래서 여쭤보는 거예요. 선생님 계약, 다음 달이면 끝나요. 이번 자문이 마지막이고요. 저는 선생님 방법을 배우고 싶은데, 배울 수 있는 게 이런 거잖아요. 근데 이건…… 물증으로 안 넘어가요. 선생님 머릿속에서만 작동해요."

도경은 시계를 만졌다.

"그래서 위험한 거야."

"위험하니까 남기셔야죠. 선생님 나가시면, 이 방법은 아무도 못 써요. 저는 그게 사라지는 게 싫어요."

유하의 목소리에 열이 있었다. 진짜였다. 스승의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 도경은 그 열을 읽었고, 그것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이 오래 낯설었다.

"방법이 아니야, 유하야. 이건 대가가 있어."

"무슨 대가요."

도경은 답하지 않았다. 조금 전 강변의 가로등이 여전히 눈 안쪽에 켜져 있었다. 그것이 대가였다. 그러나 말하면 유하는 그 대가를 감각이 아니라 정보로 이해할 테고, 정보가 된 대가는 대가가 아니다.

"파일 하나 꺼내줘."

"네?"

"기록실에서. 15년 전 종결 사건. '4월의 강변'."

유하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왜……"

"참고인 진술 습관이 그때 것과 같아."

말해놓고 도경은 그 문장을 다시 들었다. '같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아는가. 기억으로. 그런데 그의 기억은 신뢰할 수 없었다.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가 가진 유일하게 정확한 것이었다.

"확인이 필요해. 나 혼자."

유하는 잠시 그를 봤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 눈에 저항이 스쳤다가 가라앉았다.

"제가 꺼내 올게요. 근데 선생님, 그 사건…… 선생님 대표 실적이잖아요. 명 팀장님이 좋아하실 리 없어요."

"명진섭한테는 말하지 마."

"……알겠습니다."

유하가 나갔다. 봉투는 테이블에 남았다. 도경은 그것을 열지 않았다.

기록실의 형광등은 심문실 것보다 밝았다. 도경은 캐비닛 세 번째 칸에서 회색 파일을 꺼냈다. 표지에 붙은 라벨은 바래 있었다. 사건번호 아래 그의 이름이 자문위원 항목에 적혀 있었다. 15년 전의 필체는 지금보다 각졌다.

그는 선 채로 첫 장을 넘겼다.

용의자 진술 요약. 윤태오, 당시 서른한 살. 피해자와 같은 아파트 단지 주민. 물증은 정황뿐이었다. 실종 당일 강변 근처에서 목격됐다는 진술, 피해자와 다툰 적이 있다는 이웃의 증언. 결정적인 것은 도경의 진술 분석이었다. 윤태오의 심문 온도가 특정 지점에서 어긋난다는 그의 판단.

도경은 그 지점을 기록에서 찾았다. 페이지 하단, 그의 메모. '피해자를 마지막으로 본 시각 진술에서 온도 균열. 은폐 정황 강함.'

그는 그 메모를 15년간 의심한 적이 없었다.

파일을 넘겼다. 심문 녹취록이 붙어 있었다. 활자가 된 진술은 온도를 갖지 않는다. 그래서 도경은 눈을 감았다. 활자 뒤에 있던 그날의 목소리를 불러왔다. 그것은 능력의 대가였다. 15년 전 심문실의 공기가, 윤태오의 호흡이, 그날의 조명까지 되살아났다.

윤태오는 짧게 답했다. 대부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답하는 대신 되물었다. 도경을 향해. '제가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침묵이, 그 되묻는 태도가, 그때는 은폐의 증거처럼 읽혔다.

가로등이 다시 켜졌다. 오렌지빛이 도는 흰색. 벌레들. 젖은 자갈. 도경은 눈을 뜨지 않은 채 그 장면 속에 서 있었다. 그는 이 강변에 온 적이 없었다. 기록상 그는 강변에 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발밑의 자갈이 이토록 선명했다.

지나치게 또렷한 기억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눈을 떴다. 손이 마지막 장을 향했다. 종결 결정문. 그의 서명. 명진섭의 서명. 사건이 닫힌 날짜.

그 아래 여백에, 15년 전 그가 남겼어야 할 심문 직후 기록. 그런데 그 페이지가—

도경은 손끝을 멈췄다.

넘기기 전, 그의 감각이 먼저 움직였다. 조금 전 되살린 윤태오의 목소리가 아직 귀 안쪽에 남아 있었다. 그 되묻는 침묵. '제가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문장의 온도가—

서늘하게 미끄러지지 않았다.

15년 전 그는 그것을 균열로 읽었다. 은폐의 열로 읽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오늘 강여울의 진술을 막 읽고 온 이 감각으로 다시 들으니, 윤태오의 그 침묵은 어긋나 있지 않았다. 균열도, 은폐의 열도 없었다. 그저 답을 되돌려주는 사람의, 텅 빈—

도경은 파일을 든 손이 시계 위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유리 표면이 차가웠다.

그는 균열을 읽었던 자리에서, 균열을 만들어냈던 것인지도 몰랐다.

기록실 문이 열렸다. 명진섭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도경아. 그 파일, 왜 지금 꺼냈어."

도경은 파일을 덮지 않았다. 덮는 동작이 대답이 될 것을 알았다. 그는 손끝을 종결 결정문 위에 그대로 둔 채, 등 뒤의 목소리를 향해 돌아서지 않았다.

"오래 앉아 있으면 자기가 뭘 서명했는지 잊거든. 그거 확인하러."

"자문위원이 종결 파일을 열람하려면 절차가 있어. 알잖아."

"열람 신청서 쓸까."

"……농담하지 마라."

명진섭이 들어왔다. 형광등 아래에서 그의 얼굴은 15년치 나이를 정확히 먹은 채였다. 관자놀이의 흰머리, 다림질이 잘 된 셔츠. 그는 문을 닫았다. 닫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문소리가 나지 않게. 도경은 그 조심스러움을 읽었다. 밖에 들리면 안 되는 대화를 시작하려는 사람의 손이었다.

"오늘 강여울 심문했다며."

"소식 빠르네."

"유하가 보고했어. 참고인 진술 특이사항 없음. 그렇게 올라왔더라." 명진섭이 캐비닛에 등을 기댔다. 팔짱을 꼈다. "근데 넌 지금 15년 전 파일을 꺼내 들고 있고."

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을 견디는 쪽은 언제나 도경이었다. 훈련된 것이었다. 상대가 먼저 공백을 메우게 하는 것. 그러나 명진섭도 그 방법을 옆에서 15년을 봐왔다.

"말해봐. 뭐가 걸렸어."

"온도가."

"뭐?"

"강여울 진술. 한 구절이 미끄러졌어. 실종된 여자를 마지막으로 본 시각. 거기서 말끝을 삼키더라." 도경은 파일에서 손을 뗐다. 시계로 갔다. 유리를 문질렀다. "삼키는 방식이 낯익었어. 어디서 들었는지 오늘은 몰랐는데."

"지금은 알고."

"윤태오였어."

명진섭의 팔짱이 풀렸다. 손이 셔츠 옆선을 한 번 쓸어내렸다. 주름 하나 없는 셔츠였는데도. 그는 캐비닛에서 등을 뗐다. 한 걸음 다가왔다가, 멈췄다. 도경은 그 멈춤의 폭을 쟀다. 다가오다 멈춘 거리는 사람이 자기 이해관계를 계산할 때 생기는 거리였다.

"도경아. 그건 이미 닫힌 사건이야."

"알아."

"닫힌 걸 다시 여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잖아. 그냥 서류 하나 다시 훑는 게 아니야." 명진섭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낮아질수록 문장은 매끄러웠다. 그런데 매끄러운 목소리와 달리, 캐비닛 손잡이를 짚은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도경은 그 손을 봤다. 명진섭은 도경의 시선을 따라가다 손을 거둬 주머니에 넣었다. "그 종결에 서명한 게 너 하나가 아니야. 나도 얹혀 있고, 그 위도 마찬가지야. 그날 이후로 우리 다 그 사건 위에 서 있었어. 지금 그걸 흔들면, 흔들리는 게 서류만은 아니라는 거지."

"진실이 뒤집히면 그 실적이 문제라는 거야, 진실이 문제라는 거야."

"둘을 왜 나눠." 명진섭이 웃었다. 웃음에 온기가 없었다. "넌 항상 진실만 있는 방에서 산다고 생각하지. 근데 그 방 밖에서 그 진실 치우는 게 나야. 15년 동안."

도경은 그를 봤다. 오랜 동료였다. 새벽 조사실에서 같이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던 얼굴. 그 얼굴이 지금은 문을 지키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열지 못하게 하는 사람.

"강여울 심문 조서, 재분석 신청할 거야."

"올려. 검토할게."

"검토가 아니라—"

"검토한다고 했어." 명진섭이 말을 잘랐다. 자르는 지점이 정확했다. 그는 도경의 다음 문장이 무엇일지 알고 있었다. "절차대로. 나 그런 거 안 붙잡는 사람이야. 알잖아."

도경은 안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검토'라는 단어가 그의 감각 위에 얹혔다. 매끄러운 단어였다. 지나치게 매끄러웠다. 심문실에서 이런 매끄러움을 만나면 그는 그 아래를 팠다. 그러나 지금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참고인이 아니라 15년을 함께 늙은 동료였고, 도경은 그 아래를 파는 대신 파일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복사 한 부 뜰게."

"도경아."

"원본은 여기 둬. 복사만."

명진섭이 한동안 그를 봤다. 형광등이 두 사람 사이에서 웅 소리를 냈다. 오래된 안정기의 떨림. 명진섭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

"복사기 토너 없어. 3층 거 써."

허락이었다. 허락의 형태를 한 지연이었다. 3층 복사기는 자문실에서 가장 멀었고, 가는 길에 명진섭의 사무실이 있었다. 도경은 그 배치를 읽었지만 읽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

3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도경은 자기 자문실로 돌아와 문을 잠갔다. 블라인드를 내렸다. 책상 스탠드만 켰다. 심문 직후 기록은 즉시 남겨야 한다. 그것이 규칙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진술 분석인지 자기 기억인지 구분되지 않으니까. 그는 15년간 그 규칙을 지켰다. 단 한 번을 빼고.

노트를 폈다. 오늘 강여울 심문 항목을 적었다.

'실종 당일 마지막 목격 시각 진술 — 온도 균열. 말끝 삼킴. 호흡 0.5초 지연 후 다음 문장. 은폐 정황 의심.'

펜이 멈췄다.

15년 전 노트의 문장과 거의 같았다. 단어 하나가 다를 뿐이었다. 그때 그는 '강함'이라 적었고 지금 그는 '의심'이라 적었다. 그 차이가 15년의 무게였다.

그는 오늘 감각에 눌어붙은 것을 마저 적어야 했다. 규칙이었다. 그는 펜을 다시 들었다.

'심문 후 잔상 — 강변. 가로등. 오렌지빛 도는 흰색. 젖은 자갈. 벌레.'

여기까지 쓰고 그는 손목을 멈췄다. 이 장면은 강여울 심문에서 왔는가, 아니면 조금 전 15년 전 파일을 되살릴 때 왔는가. 둘의 질감이 같았다.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규칙 위반의 신호였다. 잔상이 두 사건 사이를 넘나들기 시작했다는.

그는 노트 여백에 작게 적었다.

'선명하다. 지나치게.'

진짜 기억은 흐려진다. 오염된 기억은 선명해진다. 이 문장을 그는 후배들에게 강의로 가르쳐왔다. 서유하가 그 강의를 필기했었다. 이제 그 문장이 자기 노트 여백에서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노크가 났다. 두 번. 간격이 일정했다. 유하였다.

"선생님. 저예요."

문을 열자 유하가 파일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아까 도경이 열지 않고 놔둔 그 봉투였다.

"이거 두고 가셨어요. 은퇴 계약서요. 인사팀에서 오늘까지 서명 받으라고—" 유하가 도경의 얼굴을 보고 말을 줄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들어와."

유하가 들어와 봉투를 책상에 놓았다. 계약서 겉장이 스탠드 불빛을 받았다. 계약 만료일. 도경의 마지막 자문 기간. 두 달 뒤였다.

"선생님. 저 솔직히 말해도 돼요?"

"해."

"저 선생님 방법 배우고 싶어서 여기 지원한 거예요. 진술 온도, 침묵 읽는 거. 근데 그거 아무 데도 안 적혀 있잖아요. 매뉴얼도 없고 논문도 없고. 선생님 머릿속에만 있고." 유하는 파일 봉투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선생님 두 달 뒤에 나가시면, 그거 그냥 사라지는 거예요. 저는 그게—"

"그게 사라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유하가 도경을 봤다.

"검증이 안 되는 방법이야. 나조차 못 해." 도경은 노트를 덮었다. 여백의 '선명하다'가 활자 아래로 사라졌다. "네가 물증으로 검증하는 거, 그게 옳아. 나는 감각을 근거로 사람을 15년 가뒀을지도 몰라."

말이 방 안에 떨어졌다. 유하는 그 문장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나서는 숨을 삼켰다.

"……4월의 강변, 얘기하시는 거예요?"

"강여울 조서, 15년 전 윤태오 조서. 두 개 나란히 놓고 호흡 지연 구간만 뽑아줘. 물리적으로. 초 단위로. 네 방식대로."

"제 방식으로요?"

"내 감각 말고. 네 데이터로. 두 사람 진술 습관이 정말 같은지, 아니면 내가 같다고 느끼는 건지." 도경은 시계를 만졌다. "그 둘을 구분해줄 사람이 너밖에 없어."

유하는 대답 대신 봉투를 도경 쪽으로 밀었다. 계약서가 스탠드 불빛 안으로 들어왔다.

"이건 서명 미루세요. 두 달 안에 끝날 일 같지 않으니까."

유하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도경은 밀려온 봉투를 열지 않았다. 대신 겨드랑이에 끼워둔 것을 꺼냈다. 복사하지 않은 15년 전 원본이었다. 명진섭에게 두고 오겠다고 한 그 파일이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나왔다.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그는 마지막 장을 다시 폈다. 종결 결정문. 두 개의 서명. 그 아래 여백. 심문 직후 남겨야 할 기록의 자리.

그 페이지가 비어 있었다.

도경은 15년간 이 페이지를 봤을 것이다. 몇 번이나 이 파일을 실적으로 꺼내 봤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백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규칙은 단순했다. 심문 직후 즉시 기록. 그는 단 한 번 그것을 지키지 못한 사건이 있다고, 스스로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그게 어느 사건인지는 떠올린 적이 없었다.

이 사건이었다.

그는 윤태오 심문 직후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왜.

빈 페이지를 손끝으로 눌렀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올라왔다. 곰팡이 직전의, 마른 먼지 냄새. 그 냄새 위로 다시 그 목소리가 올라왔다. '제가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들으니, 그 침묵은 서늘하지 않았다. 평평했다. 은폐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답을 되돌려주는 사람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평평함 아래, 아주 얕게, 오늘 강여울에게서 읽은 그 미끄러짐이—

윤태오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도경은 파일을 넘겨 목격자 진술 목록으로 갔다. 실종 당일 강변 근처. 윤태오를 봤다고 진술한 이웃. 이름 옆의 나이. 당시 열여섯. 15년 전이라면 지금 서른하나.

그 이름을 도경은 오늘 다른 서류에서 봤다.

강여울.

블라인드 틈으로 복도 불빛이 한 줄 들어왔다. 오렌지빛이 도는 흰색이었다. 강변 가로등과 같은 색이었다. 도경은 자신이 그 색을 강변에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 색이 지금 이 방에 있다는 것을, 동시에 알았다.

책상 위 휴대폰이 울렸다. 명진섭이었다.

문자 한 줄.

'복사기 토너 얘기, 믿을 줄 알았냐. 복도 CCTV에 네가 다 찍혔어. 도경아 — 넌 늘 남의 거짓말만 잘 읽었지. 원본 지금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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