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제국 서부의 국경 지대인 카라칼은 최근 마력 반응이 요동치는 극도의 위험 지역이다! 그런 곳에 죄를 지은 영애를 영지 소유권까지 넘겨주며 추방하는 것은, 단순한 유배가 아니라 제국의 신성한 영토를 무단으로 외부에 유출하고 황실의 권리를 포기하는 이적 행위이다! 따라서 엘리샤의 카라칼 영지 추방령은 원천 무효이며, 그녀는 즉시 제국 중앙의 감옥에 수감되어야 한다!”

바이올렛 대공의 벼락같은 고함이 대회의장 천장을 두들겼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속으로 깊은 빡침을 삼켰다. 이마의 핏대가 실시간으로 팽창하는 기분이었다.

‘저 늙은 보라색 도라지가 지금 뭐라는 거야?’

내 눈앞에 아른거리던 완벽한 노후 대책, 따끈따끈한 카라칼 영지의 온돌방과 귤 상자가 저 늙은이의 주둥이 한 번에 날아가게 생겼다. 제국 중앙 감옥이라니? 미쳤나? 거긴 쥐새끼와 차가운 돌바닥밖에 없는 곳이다. 내 허리와 피부 미용을 망치고 식비마저 아끼려는 제국 법무부의 가성비 떨어지는 수용소에 발을 들일 생각은 0.0001%도 없었다.

대공은 내가 기가 질려 침묵하는 줄 알았는지, 턱을 치켜들며 기세등등하게 비웃었다.

“어떠냐, 네페르티의 사악한 영애여! 감히 대제국의 법도를 기만하고 도망치려 하다니. 네년의 얄팍한 잔머리도 여기까지……”

“어머, 대공님. 연세가 지긋하셔서 그런가 뇌세포도 같이 은퇴를 선언했나 봐요.”

내 입은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직의 장부 필터를 거쳐 광속으로 팩트 폭행 폭탄을 사출했다. 0.1초의 가식도 허용하지 않는 내 주둥아리의 정직함이 대회의장을 찢어발겼다.

“무슨, 무슨 망발이냐!”

“망발은 그쪽이 아침 식사로 드신 보라색 인삼 물이 뇌로 잘못 흘러 들어가서 뱉으시는 거고요. 제국의 신성한 영토 유출? 황실의 권리 포기? 어쩜 저렇게 제국 애국자 패치라도 한 것처럼 가증스럽게 침을 튀기실까. 진짜 이유는 지 조카 마리안이 저지른 짓거리가 뽀록나서 가문 통째로 단두대 구경 가게 생겼으니까, 물귀신 작전으로 저까지 중앙 감옥에 끌고 가려는 개수작이잖아요.”

“이, 이 년이……!”

대공의 안색이 순식간에 썩은 자두 빛깔로 변했다.

나는 품 안에서 벤이 챙겨준 녹슨 무쇠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겉보기엔 가문의 숨겨진 낡은 금고 열쇠라며 벤이 건네준 고철 덩어리였지만, 실상은 황실의 마도 장치마저 무력화시키는 일명 ‘만능 우회 마스터키’였다.

그리고 내 다른 손에는 카일이 연무장에서 날뛰다 부러뜨린 마검의 파편이 쥐여 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쓰레기를 벤에게 처분하라고 줬더니,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내 손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단상 앞으로 도도하게 걸어가 마검 파편을 대공의 코앞에 던졌다. 쨍그랑하는 금속음이 회의장을 서늘하게 울렸다.

“이게 뭔지 아시죠, 대공님? 아, 모르는 척하셔도 소용없어요. 지난번 연무장에서 마물을 유도하는 데 쓰인 마도 결계 훼손 도구의 잔해거든요. 근데 이 파편의 마력 파장과 문양이, 바이올렛 대공가에서 독점 소유한 광산의 특수 마석 문양과 완벽하게 일치하네요? 마리안이 머리가 나빠서 증거 인멸도 제대로 안 하고 흘린 걸 제가 친절히 수거해 뒀답니다.”

마리안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그녀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대공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대, 대공님…… 저, 저건 말도 안 돼요! 엘리샤가 절 모함하려고 조작한 게 분명해요!”

“조작? 어머, 마리안. 네 대가리 수준으로 남을 평가하지 마. 내가 왜 내 아까운 골드와 시간을 써서 그딴 조작극을 벌이니? 가성비 떨어지게.”

나는 코방귀를 뀌며, 주머니에서 녹슨 무쇠 열쇠를 꺼내 대공이 증거 가방이라며 들고 온 황실 특제 마도 보관함을 향해 겨누었다.

대공은 황실 법무부의 마도 인장이 찍힌 보관함에 자신의 더러운 비밀 장부들을 안전하게 숨겨두고 있었다. 황실 마도 장치로 잠긴 보관함은 황태자나 황제의 허가 없이는 절대 열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으리라.

“그 녹슨 고철 따위로 뭘 어쩌겠다는 거냐! 그건 황실의 최고위 마도 결계로 봉인된……”

*찰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마도 보관함의 붉은 봉인 마법이 파란 연기를 내뿜으며 맥없이 소멸했다.

대공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회의장에 있던 학자들과 사제들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 어떻게 황실의 결계를 일개 고철 열쇠로……!”

“세상에 공짜 비밀은 없답니다, 대공님.”

나는 보관함을 거침없이 열어젖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두꺼운 가죽 장부를 꺼내 들었다.

내 뇌 속의 ‘정직의 장부’ 시스템이 이 불법 장부를 인식하자마자, 내 목구멍을 강제로 열어젖히며 제국 사교계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현란한 아웃사이더 랩 수준의 독설 낭독회를 시작했다.

“자, 다들 귀 쫑긋 세우고 들으세요! 바이올렛 대공가의 눈물겨운 이중장부 대서사시를 읊어드릴 테니까! 제국력 842년, 서부 면세 구역을 통한 마석 밀수출로 탈루한 세금이 무려 금화 20만 닢! 게다가 겉으로는 자선 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뒤로는 황실 금지령을 어기고 불법 노예 상단과 손잡고 광산 노동력을 착취하셨네? 계약서 서명란에 대공가 직인 아주 선명하게 찍혀 있는 거 보이시죠? 이야, 세금 떼먹는 솜씨가 거의 예술의 경지시네요. 이 정도면 황실 재정부 장관 목을 따서 그 자리에 앉으셔도 되겠어요!”

내 목청은 대회의장 구석구석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가식적인 타협이나 하얀 거짓말을 시도했다면 뇌가 쪼그라드는 편두통과 함께 내 소중한 금화들이 증발했겠지만, 이렇게 남의 뼈를 때리는 100% 순도 높은 진실을 뱉어낼 때는 오히려 온몸에 카타르시스가 돋았다.

“이, 이익……! 저 미친년의 주둥이를 당장 닥치게 만들어라! 가신들은 무얼 하느냐! 저년의 목을 베어라!”

분노로 이성을 잃은 대공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등 뒤에 대기하고 있던 대공가의 정예 가신들이 검을 뽑아 들고 나를 향해 쇄도했다.

나는 순간 흠칫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아무리 독설 마스터라 해도 칼날 앞에서는 평범한 영애일 뿐이다. 내 아까운 목숨이 여기서 날아가면 갓수 라이프고 뭐고 시체 라이프가 된다.

하지만 그 칼날이 내 머리칼 하나에 닿기도 전에, 대회의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콰아아앙!*

공기를 찢는 파괴적인 검기와 함께, 대공의 가신들이 단체로 벽에 처박히며 피를 토했다.

“누구 마음대로 내 영혼의 구원자에게 칼을 들이대는 거지?”

낮게 가라앉은, 그러나 소름 끼칠 정도로 집착적인 목소리가 회의장을 지배했다.

황태자 카일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대검에는 푸른 검기가 흉포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나를 향한 광적인 소유욕과 집착이 85%를 넘어 폭주하고 있는 상태였다.

“엘리샤의 뼈 아픈 지적은 제국의 썩은 고름을 짜내는 신성한 회초리다. 그런 그녀의 진실을 무력으로 덮으려 하다니, 바이올렛 대공. 네놈들이 드디어 반역을 꾀하는구나.”

카일이 검을 느리게 끌며 대공을 향해 걸어갔다. 바닥이 긁히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회의장에 울렸다.

소유욕에 눈이 멀어 나를 감금하려던 피폐물 집착 남주가, 이제는 내 팩트 폭행에 완벽하게 조련당해 내 보디가드를 자처하고 있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성자 레이나르가 가식적인 성화(聖畵) 같은 미소를 싹 지워버린 채, 차가운 살기를 뿜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 가엾고 더러운 죄인들이여. 신의 이름으로 다스려지는 아카데미에서 이토록 추잡한 위선을 부리다니요. 엘리샤 영애의 손을 더럽힐 가치조차 없는 벌레들이 주둥이를 놀리는군요.”

레이나르가 가볍게 손을 까딱이자, 그의 등 뒤에 대기하던 신전 기사단이 대공의 남은 가신들을 순식간에 포위하고 제압했다.

그의 눈빛은 나를 향해 광적인 숭배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더러운 본질을 꿰뚫어 준 유일한 구원자인 나를 위해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히겠다는 순교적 광기였다.

“레이나르 님…… 황태자 전하…… 어찌 저런 악독하고 이기적인 년의 말만 믿으시고 제게 이러시는 겁니까!”

마리안이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처량하게 부르짖었다. 평소 같았으면 사교계 남성들의 가슴을 후벼 팠을 삼류 눈물 연기였다.

하지만 카일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차갑게 내뱉었다.

“더러운 입으로 엘리샤의 이름을 담지 마라. 네년의 그 가증스러운 눈물은 엘리샤의 정직함 앞에 한낱 쓰레기 오수에 불과하다.”

“아아…….”

마리안은 절망적인 신음을 흘리며 무너져 내렸다.

대공 역시 자신들의 모든 비리와 세금 탈루, 그리고 아카데미 내 마물 소환 음모의 증거(마검 파편)까지 완벽하게 폭로당하자, 더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깨닫고 하얗게 질려 주저앉았다.

아카데미 심사위원단과 학자들은 이미 대공가와 마리안에게 완벽하게 등을 돌린 상태였다.

“바이올렛 대공가와 마리안 드 바이올렛의 죄상은 명백하다!”

심사위원장이 엄숙하게 선언했다.

“제국법 및 아카데미 규율에 의거하여, 마리안 드 바이올렛을 즉각 아카데미에서 퇴학 조치하며, 사교계에서 영구 제명한다! 또한 바이올렛 대공가의 모든 작위와 기득권을 몰수하고, 황실 재판부로 이송하여 엄중한 처벌을 내릴 것을 선언한다!”

“안 돼! 안 돼요! 대공님! 전하! 살려주세요!”

마리안은 비명을 지르며 신전 기사단에 의해 비참하게 끌려 나갔다. 대공 역시 사지가 결박당한 채 질질 끌려 나갔다. 그들의 몰락은 순식간이었고, 철저했다. 위선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은 내 팩트 폭행과 남주들의 물리적 개입 한 방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후우, 드디어 방해꾼들이 다 꺼졌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내 인생 최대의 목표인 ‘카라칼 영지 추방’이었다.

나는 품 속에서 벤이 수집해 준 카라칼 영지의 낡은 지적도와 숨겨진 마석 광맥에 관한 초서 기록을 슬쩍 만지작거렸다. 겉으로는 마물이 날뛰는 척박하고 가치 없는 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마석 광맥이 묻혀 있는 노다지 땅.

그곳으로 추방당해 영유권을 획득하는 순간, 내 백수 라이프는 그 어떤 황족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나는 심사위원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한층 더 건방지고 이기적인 태도로 턱을 치켜들었다.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완벽하게 쫓겨나기 위함이었다.

“자, 귀찮은 쓰레기들도 청소됐는데 이제 제 판결을 마저 내리시죠? 전 아카데미의 고결한 규칙 따위 지킬 생각도 없고, 학우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은 더더욱 없거든요. 가성비 떨어지는 아카데미 수업 들을 시간에 저 멀리 척박하고 조용한 카라칼 영지로 유배나 보내주세요. 가문의 연금이나 축내면서 평생 무위도식할 테니까.”

내 뻔뻔하고 속물적인 요구에 회의장이 다시 한번 고요해졌다.

황태자 카일은 내 이기적인 독설에 오히려 볼을 붉히며 기묘한 희열을 느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레이나르는 내 탐욕스러운 본심마저 고결한 성찰의 결과물로 필터링해 착각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단상 위, 심사위원장이 덜덜 떠는 손으로 사상 유례없는 ‘긴급 추방 허가서’가 담긴 서류함을 열었다.

그의 손에 들린 제국 황실 인장이 찍힌 도장이 서류 위로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찍히기만 하면, 나는 마침내 그토록 갈망하던 카라칼 영지로의 합법적 추방과 완벽한 갓수 라이프를 손에 쥐게 된다.

대회의장 안에는 오직 심사위원장의 가쁜 숨소리와 도장이 서류에 닿기 직전의 팽팽한 정적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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