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 강태온 선배님? 오랜만이네. 나 '아레스'의 강현민인데."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고막을 간지럽히듯 끈적하고 오만했다. 귓가를 때리는 수신음 사이로, 청담동 NHN 엔터테인먼트 최고급 개인 대기실의 백그라운드 소음이 희미하게 섞여 들었다. 대기업의 비호를 받으며 가요계의 정점에 선 자 특유의 여유, 그리고 밑바닥으로 추락한 선배를 향한 가차 없는 조롱이 그 짧은 음성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최 부사장님께 얘기 들었습니다. 밑바닥에서 쥐새끼처럼 애들 모아서 꼼지락대고 계신다고. 귀여운 짓 하시는 건 좋은데, 주제 파악은 하셔야죠?"

태온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화기를 쥔 손가락끝에 서서히 힘을 줄 뿐이었다. 그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강현민의 비웃음 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경고하겠는데, 우리 11월 컴백 일정 확정됐거든? 어디서 줏어온 쓰레기들 데리고 우리랑 같은 주에 음원 낼 생각은 꿈도 하지 마세요. 만약 기어 나오면, 방송국이고 음원 사이트고 전부 손써서 가요계 역사상 가장 비참하게 매장해 버릴 테니까. 선배님 옛날에 우리한테 곡 구걸하던 시절 생각해서 베푸는 마지막 자비입니다."

뚝.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수화기 너머로 단조로운 기계음만이 공허하게 울렸다.

연습실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무거워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윤지훈의 눈가에 핏발이 붉게 섰다. 굵은 주먹을 움켜쥔 그의 어깨가 분노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저 새끼가 진짜……."

지훈이 당장에라도 전화기를 부술 듯 발을 내딛자, 태온이 차분하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동요하지 마라. 짖는 개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더 크게 짖는 법이니까."

태온의 목소리는 얼음물처럼 차갑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구석에서 여전히 마른침을 삼키며 목을 가다듬고 있는 서하진을 바라보았다. 하진의 하얀 목덜미에는 과거 성대 수술의 흔적인 가느다란 흉터가 붉은 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진아."

"네, 네? 대표님."

"방금 고음 고음 구간을 지를 때, 정말로 통증이 전혀 없었나?"

하진은 자신의 목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 끝으로 흉터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소년의 눈동자에 기적을 마주한 듯한 경외감이 어렸다.

"네…… 원래는 이 주파수 대역으로 소리를 뽑으면, 목 안쪽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거든요. 그래서 항상 소리를 지르기 전에 턱에 힘이 들어가고 목구멍이 닫혔어요. 그런데 방금은…… 대표님이 짚어주신 호흡의 축을 유지하니까, 마치 상처 주위로 바람이 부드럽게 비껴가는 느낌이었어요. 전혀 아프지 않고, 오히려 소리가 머리끝까지 뚫려 나가는 것 같았어요."

태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머릿속에서 '흥행 경영 장부'의 반투명한 홀로그램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대상: 서하진] [특이 사항: 성대 결절 수술 부위의 미세한 섬유화 변형] [분석: 일반적인 발성법으로는 성대에 치명적인 마찰을 주나, 후두를 낮추고 영구 연골의 공간을 극대화하는 '변형 공명법' 적용 시, 상처받은 조직이 오히려 독특한 난기류를 형성함. 이는 기성 보컬리스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극강의 초고음 메탈릭 보이스(Metallic High-note)를 통증 없이 구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이점임.]

2화에서부터 태온이 하진의 목 흉터와 과거 의료 기록을 이 잡듯 뒤지며 찾아냈던 바로 그 '치료 기록의 특이점'이었다. 당시 의사는 수술이 절반의 실패라며 하진을 가창 불능으로 판정했지만, 그것은 대중적인 발성 기준에 맞춘 오진일 뿐이었다. 태온은 그 상처를 하진만의 독보적인 무기로 뒤바꿔 놓은 것이다.

"그게 네 성대의 비밀이다."

태온이 하진의 어깨를 묵직하게 짚었다.

"남들은 흉터라고 부르며 버린 그 상처가, 이제는 가요계에서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너만의 유일한 지문이 된 거야. 스스로를 의심하지 마라. 네 목소리는 완벽하니까."

하진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였다. NHN에서 쓰레기처럼 버림받고,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라 여겼던 기나긴 불면의 밤들이 태온의 한마디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하진은 고개를 깊게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 훈훈한 열기가 연습실을 채우기도 전, 태온의 눈앞에 붉은 경고등이 선명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경고: 외부 침입 및 지적 재산 유출 징후 감지] [블루프린트 연습실 주변 무선 네트워크 역추적 발생] [내용: 타이틀곡 안무 시연 영상 파일의 불법 복제 및 전송 완료] [유출 대상: NHN 엔터테인먼트 아레스 제작 TF팀]

태온의 미간이 좁혀졌다. 심장 부근이 뻐근하게 조여오는 패닉 아웃의 전조 증상이 미세하게 찾아왔다. 미래의 데이터를 인위적으로 건드리거나 변수를 감지할 때 따르는 규칙적인 과부하였다. 그는 턱끝을 굳게 다물고 호흡을 고르며 장부의 세부 데이터를 독해했다.

"지훈아."

"예, 대표님."

"최근에 네 전 소속 크루 멤버 중에 이 근처를 서성거린 놈이 있나?"

지훈이 흠칫 놀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 그러고 보니까, 어제저녁에 '블랙아웃' 크루에 있던 민우 형이 연습실 건물 1층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고요. 그냥 우연히 지나가는 길이라고 하길래 가볍게 음료수 하나 사주고 보냈는데…… 왜 그러십니까?"

"그 친구, 지금 NHN 아레스의 컴백 백댄서 팀으로 합류했지?"

지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예? 어…… 맞습니다. 아레스 이번 타이틀곡 안무 지원 들어갔다고 자랑하긴 했습니다. 설마……."

"네가 방금 하진이와 맞춘 그 새로운 장르의 안무, 그 친구가 창문 틈이나 열린 문틈으로 촬영해 갔을 확률이 98%다."

"이런 미친……!"

지훈이 거칠게 바닥을 걷어찼다.

"그 새끼가 감히 내 안무를? 대표님, 이건 제가 며칠 동안 밤새우면서 뼈를 깎아 만든 안무입니다! 스트리트 댄스 힙합 씬에서도 한 번도 시도 안 한, 하진이 고음에 맞춰서 박자 쪼개놓은 유일무이한 동선이라고요! 그걸 대기업 백댄서 새끼가 훔쳐 가요?"

분노로 가득 찬 지훈의 목소리가 지하 연습실 벽면에 부딪쳐 웅웅 울렸다. 대기업의 비열한 약탈 행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힘없는 신생 기획사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날름 베껴 자신들의 세련된 포장지로 감싸 안은 뒤, 마치 자신들이 오리지널인 양 행세하는 짓거리.

"대표님, 지금 당장 NHN에 뒤엎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그 새끼 멱살이라도 잡고 영상을 지우게 만들겠습니다!"

지훈이 이성을 잃고 문으로 향하려 하자, 태온이 그의 덜미를 강하게 낚아챘다.

"가서 어쩔 건데? 물증은? 그리고 그들이 이미 서버에 업로드했다면 메이저 기획사의 거대 로펌을 상대로 우리가 법정 싸움이라도 벌여야 하나? 소송이 끝날 때쯤이면 너희는 이미 서른 살이 되어 있을 거다."

"그럼…… 그냥 지켜만 보자는 겁니까? 저 개새끼들이 내 땀방울을 그대로 복사해서 지들 무대에 올리는 걸 보라니요!"

지훈의 눈에서 기어코 억울함의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지하 연습실의 눅눅한 냄새 속에서 밤마다 다리에 쥐가 나도록 바닥을 쓸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태온은 지훈의 젖은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강철과도 같았다.

"훔쳐 가게 놔둬라."

"예……?"

"대신, 우리는 그들의 속도보다 한 발짝 더 빠르게 판을 짠다."

태온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이미 블루프린트의 공식 유튜브 채널이 켜져 있었다.

"지훈아, 하진아. 대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아나?"

두 소년이 멍하니 태온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가짜'가 대중 앞에서 벌거벗겨지는 거다. 그들은 완벽하게 정제되고 장식된 무대를 보여주려 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가장 거칠고, 가장 날것의 진짜를 보여준다."

태온은 즉시 연습실 구석에 설치된 HD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뽑아 컴퓨터에 연결했다. 화면 속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 지훈과 하진이 피땀을 흘리며 안무를 맞추고, 하진이 목의 상처를 극복하며 고음을 터뜨리는 연습 전 과정이 고스란히 녹화되어 있었다.

어떤 보정도, 어떤 컷 편집도 없는 100% 리얼 다큐멘터리 영상이었다.

"지금부터 이 연습 영상을 무수정으로 유튜브에 기습 배포한다."

태온의 손가락이 자판을 두드렸다.

"제목은 [블루프린트 연습생 트레이닝 다큐멘터리: 땀의 기록 #3]. 타임스탬프와 녹화 날짜를 화면 우측 상단에 선명하게 노출시킨다. 우리가 이 안무와 곡을 먼저 창작하고 연습해 왔다는 지울 수 없는 시간적 증거를 대중의 눈앞에 선언하는 거다."

지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대표님…… 그러니까, 놈들이 우리 안무를 베낀 티저를 내놓는 순간……."

"대중이 먼저 알아차리겠지."

태온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누가 진짜이고, 누가 비열한 카피캣인지."

* * *

사흘 뒤. 가요계는 거대한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NHN 엔터테인먼트의 자랑이자 메가 히트 보이그룹 '아레스'의 새 타이틀곡 컴백 티저 영상이 공개된 직후였다. 수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화려한 세트와 CG로 도배된 영상이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와, 아레스 이번 안무 장난 아니다……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어? 나도! 그 삼일 전에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본 그 지하 연습실 애들 영상 있잖아.] [대박, 진짜 똑같네 ㅋㅋㅋㅋ 발끝 돌리면서 팝 핀 넣고 바로 로봇 댄스로 이어지는 동선, 이거 완전 복사 붙여넣기 수준 아님?] [블루프린트 다큐멘터리 영상 날짜 보니까 2주 전부터 연습하던데? 아레스는 컴백 티저 이틀 전에 찍은 거잖아 ㅋㅋㅋ] [헐…… 대기업이 중소 기획사 연습생 안무를 훔친 거야?]

인터넷 커뮤니티는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네티즌들은 블루프린트 공식 채널에 올라온 무수정 다큐 영상과 아레스의 티저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비교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포하기 시작했다. 화면 우측 상단에 찍힌 선명한 타임스탬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블루프린트의 아이들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 바닥을 구르며 완성해 낸 오리지널 안무. 반면 아레스는 오만한 표정으로 화려한 조명 아래서 그 동작을 기계적으로 시늉만 하고 있었다.

진정성의 차이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게 진짜 춤이지. 블루프린트 애들 몸 부서져라 추는 거 보다가 아레스 보니까 무슨 종이인형 흔들리는 것 같네." "서하진 고음 찌를 때 소름 돋았다. 저 목에 흉터 있는 애 NHN에서 방출당한 애 아니야? 대기업이 버린 천재와 그 천재의 안무를 훔친 대기업 아이돌의 대결이라니, 서사 미쳤다." "블루프린트 애들 진짜 눈빛이 살아있다. 저 좁고 눅눅한 지하실에서 저런 퀄리티를 뽑아내다니…… 응원하고 싶어진다."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아레스의 소속사 NHN 엔터테인먼트의 공식 홈페이지와 SNS는 표절 의혹을 해명하라는 팬들과 대중의 항의로 마비되었다. '싸구려 카피캣 아레스'라는 멸칭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장식했다.

그 시각, 청담동 NHN 엔터테인먼트 부사장실.

"쾅!"

두꺼운 대리석 책상이 부서질 듯한 소리와 함께 울렸다. 최준형 부사장의 얼굴은 분노로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의 앞에는 아레스의 리더 강현민이 고개를 숙인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이 쓸모없는 새끼들…… 안무를 베끼려면 흔적도 없이 세련되게 세공을 하든가! 어떻게 데뷔도 안 한 지하 바닥 쥐새끼들한테 덜미를 잡혀?"

"부, 부사장님…… 그게 아니라, 그쪽에서 먼저 영상을 올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원래 신생 기획사들은 곡이나 안무가 유출되면 컴백을 포기하거나 뒤로 미루는 게 상식이라……."

"상식?"

최준형이 이빨을 갈았다.

"강태온 그 인간이 상식적인 놈인 줄 알았어? 내 밑에서 10년을 기어 다니면서도 내 목덜미를 물 기회만 노리던 독사 새끼야! 그런 놈한테 이딴 허점을 보여?"

최준형은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블루프린트의 다큐멘터리 조회수는 이미 100만 회를 돌파하며 급상승하고 있었다.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소외된 약자들의 뜨거운 청춘 드라마. 대중이 가장 열광하고 몰입하는 서사를 강태온이 직접 손으로 빚어 대중의 입에 떠먹여 준 꼴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레스의 컴백은 물론, NHN 엔터테인먼트의 주가와 대외적 신뢰도까지 치명상을 입을 터였다.

최준형의 눈동자에 잔혹하고도 비열한 파괴욕이 서렸다. 당장 법적인 대응을 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을 도와주는 꼴이 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싹덩이가 흙을 뚫고 나오기 전에, 아예 태양빛을 차단해 말려 죽이는 것.

최준형은 책상 위에 놓인 보안 전용 전화를 들어 빠르게 단축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국내 최대의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자 가요계의 절대적인 지배자인 '사운드웨이브(SoundWave)'의 임 대표였다.

"어, 나 최준형이야."

최준형의 목소리에는 거대 권력자가 지닌 특유의 압도적인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 "아이고, 최 부사장님! 안 그래도 아레스 컴백 준비로 바쁘실 텐데 어쩐 일이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이번 주 일요일 자정부로 발매되는 블루프린트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들의 모든 음원 말인데."

최준형이 입꼬리를 잔인하게 비틀며 말했다.

"사운드웨이브 메인 화면의 신곡 배너, 최신 음악 추천 목록, 그리고 사용자 알고리즘 노출에서 영구적으로 제외시켜."

- "예? 하지만 부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신규 음원인데 노출 배너 자체를 차단하는 건 플랫폼 공정성 규정상……."

"공정성?"

최준형이 낮게 코방귀를 꼈다.

"다음 달에 예정된 우리 NHN 소속 전 아티스트들의 사운드웨이브 독점 음원 공급 계약, 그거 크레센도 쪽으로 넘겨도 괜찮겠나? 내년 초에 있을 사운드웨이브 주주총회에서 우리 지분 표정이 어떻게 움직일지, 임 대표 머리라면 충분히 계산이 설 텐데."

수화기 너머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무겁게 들려왔다. 최준형은 쐐기를 박듯 차갑게 선언했다.

"그 쥐새끼들이 차트의 흙바닥조차 밟지 못하게 해라. 검색창에 검색을 직접 치지 않는 한, 대중의 눈에 단 한 번도 노출되지 않도록 화면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란 말이다. 내 경고는 한 번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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