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빨간색 압류 딱지를 든 사내들이 지하 연습실의 가파른 계단을 밟고 내려온 것은, 지훈을 영입한 바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독한 락스 냄새와 문신 가득한 팔뚝을 드러낸 사내 셋이 철제 문을 거칠게 밀치고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법원의 가처분 통지서와 함께 시뻘건 압류 스티커 뭉치가 들려 있었다.

"블루프린트 기획사 대표가 누구야? 건물주가 바뀌었으니 당장 짐 싸서 나가라는데."

선두에 선 덩치가 이죽거리며 스티커를 벽에 붙이려 손을 뻗었다.

탁.

태온이 가볍게 사내의 손목을 낚아챘다.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뼈마디를 부술 듯이 움켜쥔 태온의 악력은 회귀 전 수많은 밑바닥 현장을 구르며 다진 실전의 힘이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8. 임차인의 차임연체액이 3기의 차임액에 달할 때에만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태온의 목소리는 얼음물처럼 차갑고 차분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월세를 밀린 적이 없고, 건물 매매 계약이 체결된 지는 고작 반나절이 지났을 뿐입니다. 법원 집행관도 없이 사설 용역을 동원해 무단 침입한 행위는 형법 제319조 주거침입죄에 해당합니다. 지금 제 손에 들린 스마트폰으로 이 모든 상황이 녹음 및 자동 백업되고 있습니다."

태온이 주머니에서 화면이 켜진 기기를 꺼내 보였다. 사내들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태온의 눈빛에는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벽처럼 단단하게 버티고 서서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돌아가서 최준형 부사장에게 전하십시오. 이런 유치한 수작 부릴 시간에 본인 회사 주주들이나 단속하라고. 이틀 뒤에 정식 법적 대리인을 대동하고 오면, 그때 얘기해 주겠다고 말입니다."

사내들이 침을 뱉으며 투덜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철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지하 연습실을 무겁게 울렸다.

태온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통증이 찌릿하게 올라왔다. 아직 완벽하게 상쇄되지 않은 골든필터의 대가, 패닉 아웃의 잔재였다. 하지만 태온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쓰러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다.

"방금 그 사람들…… 저 때문에 온 거죠?"

지훈이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이 온 이후로 연습실에 이런 험악한 일이 터지자, 죄책감이 소년의 가슴을 짓누르는 모양이었다.

"아니."

태온이 지훈의 어깨를 툭 쳤다.

"이건 나와 NHN의 싸움이다. 너희는 그저 무대만 생각하면 돼. 지훈아, 하진아. 거울 앞으로 서라."

연습실의 전면 거울 앞으로 두 소년 소녀가 섰다.

서하진. 주눅 든 눈빛 속에 날카로운 보컬의 송곳을 숨긴 아이. 윤지훈. 날것의 길거리 춤사위로 세상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아이.

두 사람의 에너지는 너무나도 달랐다. 물과 기름처럼 겉돌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태온은 믹서기 테이프를 눌렀다. 비트가 흘러나왔다.

쿵, 타, 쿵, 타.

지훈이 몸을 튕기며 그루브를 타기 시작했다. 거칠고 역동적인 스트리트 댄스의 동작이 좁은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하진의 목소리가 얹어지자마자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나를 붙잡아 줘, 이 어둠 속에서……."

하진의 보컬 템포가 지훈의 변칙적인 팝핀 비트와 어긋났다. 하진은 지훈의 위협적인 움직임에 위축되어 목소리를 끝까지 뻗지 못했고, 지훈은 하진의 처지는 템포 때문에 자신의 스텝이 꼬이자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 형님. 진짜 박자 안 맞는데요? 이 누나 노래 템포가 너무 뒤로 밀려요."

"너야말로 너무 빨라. 내가 숨 쉴 틈도 안 주고 몸을 흔들어 대니까 박자를 맞출 수가 없잖아!"

하진이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라면 기가 죽어 입을 다물었을 아이가, 음악 앞에서는 고집스럽게 맞서고 있었다.

태온은 음악을 껐다. 연습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너희 둘 다 서로를 믿지 않고 있어."

태온이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지훈이 너는 하진이의 목소리가 네 비트를 받쳐주지 못할까 봐 혼자서만 튀려고 하고 있고, 하진이 너는 지훈이의 거친 움직임에 겁을 먹고 네 목소리를 숨기고 있어. 이러면 아무것도 안 돼."

태온은 하진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목덜미, 머리카락에 살짝 가려진 미세한 수술 흉터를 가리켰다.

"하진아. 네 목에 남은 흉터. NHN에서는 이걸 성대 결절 치료 실패로 인한 영구적 손상이라고 불렀지?"

하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에게는 가장 아프고 숨기고 싶은 치부였다. 지훈 역시 뜻밖의 이야기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건 손상이 아니라, 네 성대의 아주 특별한 구조적 특이점이다."

태온이 하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의학적으로 아주 드문 '비대칭 성대 진동 구조'야. 일반적인 발성법으로는 고음을 낼 때 성대가 마찰하며 피가 나고 결절이 생길 수밖에 없지. 하지만 성대 하부 근육을 끌어올려 공간을 확보하는 특수 발성법을 쓰면, 그 어떤 보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중 공명 하이노트가 가능해져. 네 흉터는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네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의 열쇠다."

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의 목소리를 쓰레기 취급하며 버렸던 대형 기획사의 평가가 틀렸다는 것을, 태온은 과학적이고 냉철한 분석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훈이 너."

태온이 고개를 돌려 지훈을 보았다.

"너는 네 춤이 길거리 양아치들의 비급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백댄서로 착취당하면서 네 박자는 오직 남의 뒤를 맞춰주는 기계적인 템포에 갇혀 버렸어. 하지만 네가 가진 진짜 강점은 비트를 쪼개는 천재적인 리듬감이야. 하진이의 보컬이 머무는 그 빈 공간을 네 몸짓으로 채워 넣어야 해. 서로를 이기려 들지 말고, 서로의 상처를 메워주란 말이다."

태온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거짓도 없었다. 15년 동안 업계의 정점과 바닥을 경험하며 쌓아 올린 안목, 그리고 이 아이들을 반드시 세상의 중심에 세우겠다는 지독한 책임감이 섞여 있었다.

지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진의 목에 남은 흉터를 가만히 바라보던 지훈이, 이내 자신의 거친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요, 누나.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네. 다시 해봐요. 내가 누나 숨 쉬는 타이밍에 맞춰서 무릎 바운스 조절할 테니까."

하진이 떨리는 손으로 지훈의 손을 맞잡았다.

"나도…… 내 목소리, 안 피해 볼게. 끝까지 소리 내 볼게."

두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불신과 두려움으로 얼룩졌던 눈동자에, 서로를 향한 신뢰의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음악 다시 튼다."

태온의 선언과 함께, 지옥 같은 16시간의 밤샘 훈련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없었다. 연습실 안은 이들의 뜨거운 숨결과 땀방울로 가득 찼다. 거울은 이내 하얗게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쿵, 타, 쿵, 타!

지훈의 발이 바닥을 짓밟았다. 이전의 날카롭기만 하던 몸짓에 하진의 감성을 배려하는 부드러운 완급 조절이 더해졌다. 하진은 지훈의 어깨 움직임, 발끝의 방향을 눈으로 쫓으며 자신의 호흡을 얹었다.

"나를 붙잡아 줘, 이 어둠 속에서……!"

하진의 목소리가 연습실 천장을 뚫을 듯이 뻗어 나갔다. 특수 발성법을 적용해 성대 하부를 열자, 그녀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슴을 후벼 파는 애절하면서도 폭발적인 울림이었다.

지훈이 그 하이노트의 정점에서 몸을 허공으로 날렸다. 완벽한 백플립에 이은 칼 같은 착지. 하진의 고음이 잦아드는 타이밍에 맞춰 지훈의 거친 호흡이 리듬이 되어 흘렀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옷을 적시고, 발목과 목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고, 서로의 악보가 되어 하나의 완벽한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태온은 조용히 자신의 품에서 '흥행 경영 장부'를 꺼내 들었다.

붉은 가죽 표지의 장부를 펼치자, 허공에 푸른빛의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데뷔조 시너지 분석] - 서하진 (Vocal) X 윤지훈 (Dance) - 초기 조합 싱크로율: 20% (최악의 불협화음)

태온이 숨을 죽이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실시간으로 숫자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땀방울이 거울에 얼룩질 때마다, 서로의 눈빛이 마주칠 때마다 숫자는 무서운 속도로 치솟았다.

45%…… 60%…… 85%……!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이 마지막 안무의 대형을 맞추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하진이 완벽한 이중 공명 하이노트를 내지른 순간.

[조합 싱크로율: 98% (경이로운 조화율 달성!)] [알림: 대중의 무의식적 결핍을 저격하는 '독창적 하이브리드 트랙'의 기틀이 완성되었습니다.]

화면 중앙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골든 벨] 아이콘이 생성되며 사방으로 빛을 뿌렸다.

[골든 벨 효과 발동!] - 마켓 돌풍 지수: +150% 증가 - 대중 인지도 전파 속도: 극대화 - 'NHN 엔터테인먼트'가 구축한 유통 차단 장벽을 무력화할 수 있는 '독자적 바이럴 엔진'이 활성화됩니다.

"하아…… 하아……."

두 아이가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찬란한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형님…… 우리 방금 좀 쩔지 않았습니까?"

지훈이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씩 웃었다. 하진 역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방금 고음 낼 때, 목이 하나도 안 아팠어요. 정말로 대표님 말씀대로 소리가 뚫리는 기분이었어요."

태온은 말없이 수건을 던져주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억누르며, 그는 냉철한 기획자의 어조를 유지하려 애썼다.

"이게 너희들의 진짜 시작이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오직 너희만이 할 수 있는 무대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연습실 구석,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유선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따르릉! 따르릉!

이 새벽에 올 리가 없는 전화였다. 태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훈과 하진 역시 긴장한 눈빛으로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태온이 천천히 다가가 수화기를 들었다.

"블루프린트 강태온입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것은 차가운 기계음 섞인 비웃음이었다. 최준형 부사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훨씬 젊고, 오만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

- "아, 강태온 선배님? 오랜만이네. 나 '아레스'의 강현민인데."

NHN 엔터테인먼트의 간판이자, 현재 가요계의 독점적 1위를 달리고 있는 메가 히트 보이그룹 '아레스(Ares)'의 리더, 강현민이었다.

- "최 부사장님께 얘기 들었습니다. 밑바닥에서 쥐새끼처럼 애들 모아서 꼼지락대고 계신다고. 귀여운 짓 하시는 건 좋은데, 주제 파악은 하셔야죠?"

수화기 너머로 야릇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경고하겠는데, 우리 11월 컴백 일정 확정됐거든? 어디서 줏어온 쓰레기들 데리고 우리랑 같은 주에 음원 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만약 기어 나오면, 방송국이고 음원 사이트고 전부 손써서 가요계 역사상 가장 비참하게 매장해 버릴 테니까. 선배님 옛날에 우리한테 곡 구걸하던 시절 생각해서 베푸는 마지막 자비입니다."

강현민의 오만한 목소리가 연습실의 차가운 정적을 깨뜨렸다. 지훈의 눈에 핏발이 섰고, 하진의 주먹이 떨렸다.

태온은 수화기를 쥔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그의 눈동자에 NHN의 거대한 카르텔을 향한 분노와, 동시에 그것을 완전히 부숴버리겠다는 잔혹한 투지가 타올랐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