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사흘 뒤, 일요일 밤 11시 50분.

성산동 블루프린트 지하 연습실의 공기는 얼음물처럼 차갑고 무거웠다. 낡은 모니터의 푸른 광선이 세 사람의 얼굴을 어둡게 비추었다.

"나왔습니다. 자정 정각이에요."

마우스를 잡은 서하진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사운드웨이브'의 메인 페이지가 새로고침되었다. 배너에는 화려한 조명을 배경으로 한 NHN 엔터테인먼트의 대형 신인 그룹 '아레스'의 컴백 광고가 화면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블루프린트의 신곡, '드림 캐처(Dream Catcher)'의 흔적은 없었다.

최신 음악 목록을 아무리 아래로 내려도, 신규 발매 앨범 슬라이드를 끝까지 넘겨도 마찬가지였다. 검색창에 '서하진' 혹은 '드림 캐처'라는 정확한 단어를 직접 타이핑해 넣지 않는 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곡인 것처럼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었다.

거대 카르텔의 수장 최준형이 뻗친 보이지 않는 손이 플랫폼의 입구를 통째로 틀어막은 결과였다.

"진짜로 단 한 군데도 안 걸어줬네. 양아치 새끼들."

윤지훈이 마른침을 뱉으며 이를 갈았다. 주먹을 꽉 쥔 그의 손등에 핏줄이 돋아났다.

태온은 아무런 말 없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의 눈앞에 투명한 '흥행 경영 장부'의 홀로그램이 내려앉았다.

[ 경고: 인위적인 시장 왜곡 발생 ] [ 사운드웨이브 노출도: 0.00% ] [ 초기 진입 예상 순위: 차트 아웃 ]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미래의 흐름을 억지로 바꾸려 할 때마다 찾아오는 패닉 아웃의 전조 증상이었다. 태온은 셔츠 깃을 움켜쥐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흉벽을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어.'

태온은 어금니를 사려 물며 통증을 억누르고 고개를 들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진과 지훈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 뒤에는 어두웠던 과거의 상처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NHN에서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하진과, 거리에서 착취당하던 지훈.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다름 아닌 태온 자신이었다.

태온이 가쁘게 몰아쉬던 숨을 가다듬고 이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던 범위 안이다. 대기업 놈들이 부리는 얄팍한 꼼수에 일일이 흔들릴 필요 없어."

"하지만 대표님, 음원 사이트 메인에 노출도 안 되는데 대중이 우리 노래를 어떻게 알아요? 라디오나 TV 방송도 전부 막혔잖아요."

하진이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낡은 가죽 재킷을 걸쳤다.

"인터넷의 바다가 막혔다면, 우리가 직접 땅을 밟고 대중의 심장으로 걸어 들어가면 돼. 놈들이 막을 수 없는 진짜 '날것'의 무대로."

"예?"

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온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서울 서부권의 대표적인 독립 라디오 채널인 '경기FM'의 연출 피디와의 통화 내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오늘 밤 12시 30분, 신촌 창천교회 앞 광장에서 경기FM의 심야 오프닝 야외 생방송이 있어. 청취자 수는 적지만, 그곳은 대학생들과 밤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실시간으로 모이는 해방구지. 우리가 거기서 판을 뒤집는다."

"신촌 버스킹... 말입니까?"

"그래. 배너 광고 따위가 줄 수 없는 극상의 청각적 자극을 현장에서 때려 박는 거야. 준비해라. 너희의 무대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니까."

태온의 단호한 목소리에 하진과 지훈의 눈빛이 이내 단단하게 타올랐다.

***

새벽 12시 20분, 신촌 로터리의 차가운 밤공기는 젊은 열기로 미지근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광장 한구석에 설치된 경기FM의 간이 중계 부스 앞으로 듬성듬성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무심한 눈빛으로 무대를 쳐다보며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블루프린트 연습생 서하진, 그리고 댄서 윤지훈입니다. 준비되셨으면 바로 가죠."

라디오 피디의 신호가 떨어지자, 지훈이 먼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로 걸어 나갔다.

쿵, 쿵, 쾅-!

엠프를 통해 묵직한 힙합 비트와 함께 지훈의 거친 호흡이 섞인 비트박스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그의 몸이 중력을 거스르듯 유연하게 꺾이며 바닥을 쓸었다. 스트리트 댄서 특유의 날카롭고 역동적인 무브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나치던 대학생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와, 저 사람 춤 대박인데? 누구야?" "비트박스 하면서 저게 가능해?"

웅성거림이 커지는 순간, 지훈이 화려한 스핀을 돌며 하진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하진이 긴장 가득한 얼굴로 마이크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녀의 목덜미에 새겨진 하얗고 깊은 흉터가 가로등 조명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

성대 결절 수술의 흔적. NHN의 트레이너들이 '노래 생명이 끝난 폐급 성대'라며 차갑게 낙인찍었던 그 상처였다. 하지만 태온은 장부를 통해 그 상처의 진짜 비밀을 간파하고 있었다. 미세하게 어긋난 성대 접촉면이 만들어내는 독보적인 비음과, 한계를 돌파할 때 터져 나오는 기적 같은 초고음역대의 공명.

태온은 무대 뒤에서 하진과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진아. 네 성대의 상처는 저주가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만의 무기야. 자신을 믿어.'

태온의 무언의 신뢰가 하진의 심장에 와닿았다. 하진이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이내 목소리를 뿜어냈다.

-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 홀로 남겨진 나의 꿈을 찾아……."

반주도 없는 길거리의 찬 바람 속에서, 하진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신촌 광장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가녀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량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청량감이었다.

음향 장비조차 부실한 야외 무대였지만, 오히려 그 날것의 질감이 대중의 심장을 사정없이 헤집고 들어갔다.

지훈이 음악의 템포를 높이며 하진의 뒤에서 날렵한 팝핀을 섞었다. 두 사람의 호흡은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한 연주자들처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리고 곡의 클라이맥스.

하진이 고개를 젖히며 목의 흉터를 드러냈다. 그녀의 성대가 미세하게 떨리며, 일반적인 여가수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4단 고음이 밤하늘을 찢고 올라갔다.

- "아아아아-! 날개를 펼쳐, 저 하늘 끝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폭발적인 하이노트에 광장에 모인 수백 명의 시민들이 일제히 소름 돋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무음 속에서 오직 하진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무대가 가득 채워지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미친... 진짜 소름 돋았어!" "이거 라이브 맞아? 음원 재생한 거 아니야?"

시민들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다가, 이내 너나 할 것 없이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스마트폰의 플래시 불빛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흔들렸다.

태온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이미 현장의 수많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그들의 무대를 담아내고 있었다.

***

새벽 1시 30분. 무대가 끝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는 폭발하기 시작했다.

[제목: 오늘 자 신촌 버스킹 영상인데 이 여자 보컬 정체가 뭐냐?] - 영상 링크 첨부 - 댓글: ㄴ 와... 라이브 실력 미쳤다. 요즘 아이돌들 립싱크만 하는데 차원이 다르네. ㄴ 목에 흉터 있는 거 보니까 성대 수술한 거 같은데 고음 뚫리는 거 소름 돋음. ㄴ 옆에 춤추는 남자도 대박임. 둘이 무슨 조합이지? ㄴ 검색해보니까 '서하진'이래! 신곡 '드림 캐처' 오늘 자정에 나왔음!

[제목: 사운드웨이브 이 새끼들 또 음원 묻기 시전했네] - 서하진 신곡 검색 안 하면 메인에 아예 안 뜸. NHN 아레스 밀어주려고 은폐한 거 백퍼임. - 댓글: ㄴ 진짜네? 나도 검색해서 겨우 찾음. 노래 존나 좋은데 왜 추천 목록에 없냐? ㄴ 대기업 횡포 오지네 ㅋㅋㅋ 다들 가서 검색하고 스밍 돌리자!

입소문은 순식간에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사운드웨이브의 검색창에 '서하진', '드림 캐처'가 실시간 검색어 1위와 2위를 나란히 석권했다.

장벽을 세워 대중의 눈을 가리려 했던 최준형의 음모가, 오히려 대중의 반발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띡, 띡, 띡.

태온의 눈앞에 있는 흥행 경영 장부의 수치들이 미친듯이 요동치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 사운드웨이브 실시간 차트 진입: 98위 ] [ 실시간 차트 상승 중: 45위 ] [ 실시간 차트 상승 중: 12위 ]

그리고 새벽 3시 정각.

[ 사운드웨이브 실시간 차트: 3위 ]

배너 노출 하나 없이, 오직 대중의 자발적인 검색과 입소문만으로 NHN의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아레스'를 턱밑까지 추격하며 차트 3위를 뚫고 들어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해냈어... 우리가 해냈어요, 대표님!"

하진이 눈물을 흘리며 지훈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훈 역시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코를 훌쩍였다.

"거봐라. 진짜 실력과 진정성은 그 어떤 장벽으로도 가둘 수 없는 법이야."

태온이 두 사람의 어깨를 든든하게 감싸 안았다. 차가운 강박증으로 가득했던 그의 심장 한구석이 찌릿하게 울려왔다. 장부의 경고창 대신, 영입 멤버들과의 신뢰 수치가 상승했다는 문구가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 서하진과의 신뢰 수치: 85% ] [ 윤지훈과의 신뢰 수치: 80% ] [ 패닉 아웃 페널티 완화 적용 ]

가슴을 조이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며 맑은 기운이 전신을 감돌았다. 아이들과 함께 정상으로 향하는 이 뜨거운 여정이,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유일한 열쇠임을 태온은 비로소 깨달았다.

***

다음 날 오후, 청담동의 화려한 카페 테라스.

"역시 강태온 프로듀서님. 대기업의 목줄을 이렇게 보기 좋게 풀어헤치실 줄은 몰랐네요."

차가운 얼음이 담긴 아메리카노 잔을 만지작거리며, 크레센도 엔터테인먼트의 실세 한예주 본부장이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세련된 슈트 차림과 지적인 눈빛은 언제나처럼 보는 이를 압도하는 긴장감을 풍겼다.

"최준형 부사장이 사운드웨이브 플랫폼을 사주해서 음원을 묻으려 했다는 찌라시를 듣고 꽤 흥미진진하게 지켜봤거든요. 그런데 그걸 길거리 게릴라 무대와 모바일 직캠으로 정면 돌파하다니. 정말 무모하면서도 완벽한 계산이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한 본부장님. 대기업의 유통망 제재가 워낙 견고해서 틈새를 노린 것뿐입니다."

태온이 잔을 들며 덤덤하게 대꾸했다. 한예주는 상체를 조금 앞으로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최 부사장에게서 연락이 왔었어요. 크레센도도 함께 블루프린트의 오프라인 음반 유통과 방송 출연을 보이콧하는 데 동참하라고 압박하더군요."

태온의 눈빛이 예리하게 가라앉았다. 2대 기획사인 크레센도마저 NHN의 손을 잡는다면, 아무리 음원 차트에서 선전하고 있다 해도 향후 활동에 거대한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동참하시기로 했습니까?"

한예주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데이터와 효율성을 신봉하는 비즈니스 우먼이라는 걸 잊으셨나 보네요. 이미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블루프린트의 기세를 억지로 막는 건 오히려 크레센도의 이미지와 수익에 마이너스예요. 게다가 전 독점 카르텔의 하수인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요."

그녀가 가방에서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로 밀어 넣었다.

"크레센도가 보유한 독자적인 전국 오프라인 음반 유통망과 해외 채널입니다. 이걸 블루프린트에게 개방하죠. 수수료율은 업계 최저 수준으로 맞춰 드리겠습니다."

태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라이벌이면서도 자신을 도우려는 그녀의 속내가 궁금했다.

"조건이 뭡니까?"

"간단해요. 다음 번 크레센도 소속 메인 걸그룹의 타이틀곡 프로듀싱, 강태온 대표님이 직접 맡아 주시는 것. 그리고 앞으로 NHN을 무너뜨리는 판에서 우리 크레센도를 가장 매력적인 파트너로 대우해 줄 것. 어때요, 나쁘지 않은 제안이죠?"

한예주의 눈동자에 강한 소유욕과 도전적인 전율이 서려 있었다. 태온은 서류를 훑어본 뒤,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덮었다.

"좋습니다. 이 파트너십, 흔쾌히 받아들이죠."

두 사람의 손이 허공에서 단단하게 맞잡혔다. 거대 카르텔의 틈새를 찢고 들어갈 가장 강력한 우군이 확보되는 순간이었다.

***

같은 시각, 성산동 지하 연습실.

"땀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는구만. 여전히 쥐구멍 같은 데서 굴러먹고 있었냐, 윤지훈?"

연습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가죽 재킷을 걸친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중심에 서 있는 사내는 지훈이 가장 뼈저리게 기억하는 인물이었다. 지훈의 전 소속 댄스 크루 '몬스터즈'의 리더, 배강두였다.

지훈이 반사적으로 하진의 앞을 막아서며 이빨을 드러냈다.

"배강두... 네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어디긴 어디야. 내 돈 떼먹고 도망친 범죄자 새끼 잡으러 온 곳이지."

배강두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 지훈의 얼굴 앞으로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에는 붉은 직인이 찍힌 법적 문서의 양식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 고소장: 피고소인 윤지훈 — 미정산금 사기 및 전속계약 위반 혐의 ]

"이게... 무슨 개소리야! 계약은 이미 끝났고, 정산금은 네놈들이 착취해 간 거잖아!"

지훈이 소리를 질렀지만, 배강두는 콧방귀를 뀌며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였다.

"법대로 하자고, 법대로. 네가 우리 크루에 있을 때 행사 뛰면서 가불 받아 간 장부, 그리고 미정산 계약서 원본이 다 여기 있어. NHN 엔터 법무팀에서 아주 친절하게 검토해 주더라고."

최준형의 비열한 미소가 배강두의 등 뒤로 겹쳐 보이는 듯했다. 음원 차트가 뚫리자, 지훈의 과거 약점을 잡고 늘어져 블루프린트의 발목을 완전히 꺾어버리겠다는 악독한 사주였다.

"방송국 놈들도 다 연락받았어. 전속 계약 분쟁에 사기 혐의까지 걸린 범죄자 새끼를 어느 지상파 방송에서 무대에 세워 주겠냐? 너희 데뷔 무대는 이제 끝이야, 이 쓰레기들아."

배강두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눅눅한 연습실 벽면에 부딪혀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지훈의 주먹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고, 하진은 겁에 질린 채 그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겨우 찾아온 희망의 불씨 앞에, 대기업의 잔혹한 덫이 다시 한번 그들의 목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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