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뚝.

귓가를 채우던 미세한 기계음마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인이어에서 흘러나와야 할 메트로놈의 박자음도, 반주의 도입부도 없었다. 오직 고막을 먹먹하게 짓누르는 무음의 지옥만이 펼쳐졌을 뿐이다.

스포트라이트의 뜨거운 열기가 정수리를 내리쬐었다. 관객석에서 낮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웅웅거리는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서하진의 손끝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마이크 스탠드를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무대 옆, 음향 콘솔 뒤에 앉은 음향 감독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비틀려 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볼륨 노브를 완벽히 차단한 손가락이 건들거리며 콘솔 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반주가 들리지 않는다면 시작 타이밍을 잡을 수 없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음정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만다. 노래를 부르는 이에게 인이어가 죽는다는 것은, 눈을 가린 채 벼랑 끝을 걷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

‘또 시작인가.’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셔츠 깃을 축축하게 적셨다. NHN 엔터테인먼트에서 쓰레기처럼 버려지던 날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성대가 망가진 놈은 소모품만도 못해.’ 차가운 목소리들, 비웃음, 가차 없이 닫히던 연습실 문.

하진의 어깨가 눈에 띄게 위축되려던 순간이었다.

쿵. 쿵. 쿵.

눈앞의 시야가 흐려지는 와중에, 저 멀리 관객석 맨 뒤, 어두운 음지 속에 서 있는 단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강태온.

그는 피하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오직 하진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태온의 오른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르며 일정한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정확한 4분의 4박자. 기계보다 더 정교하고 흔들림 없는 인간 메트로놈의 움직임이었다. 태온의 눈빛이 하진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찔러왔다.

‘나를 믿어라.’

그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상을 향한 지독한 강박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자신이 거둔 아이들에게만큼은 모든 리스크를 짊어지고서라도 길을 열어주겠다는 기획자의 굳건한 의지.

하진의 숨통이 탁 트였다. 가슴을 짓누르던 패닉의 안개가 태온의 손끝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흩어졌다.

‘그래. 대표님과 성산동 지하에서 보낸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지하 2층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하루 16시간 동안 피를 토하듯 음정을 맞추던 감각이 세포 하나하나에 되살아났다. 반주가 들리지 않는다면, 내 안에서 반주를 만들어내면 된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온몸의 뼈와 근육이 울리는 진동을 느끼면 된다.

하진이 마이크를 입술 가까이 가져다 댔다.

태온의 손끝이 아래로 툭 떨어지는 찰나.

“…….”

반주도 없이, 아무런 전주도 없이, 하진의 목소리가 텅 빈 무대 위로 날카롭게 갈라져 나갔다.

첫 소절은 아주 낮고 나지막한 읊조림이었다. 악기 소리가 전혀 섞이지 않은, 오직 한 인간의 호흡과 목소리만이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전달되었다.

웅성거리던 관객석이 순간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오, 반주가 안 나오는데?” “아카펠라야? 편곡을 이렇게 했다고?”

관객석 여기저기서 숨죽인 경탄이 흘러나왔다. 음향 사고를 초래한 음향 감독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서서히 지워졌다. 그가 당황하여 콘솔의 상태 표시등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하진은 반주라는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태온은 무대 뒤 어둠 속에서 하진의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 형태로 ‘흥행 경영 장부’의 반투명한 푸른 창이 떠올랐다.

[가수: 서하진] [현재 가창 싱크로율: 94%... 96%... 상승 중] [음정 정확도: 99.2% (오차 범위 극소)] [대중 흡입력 수치: S (실시간 급상승)]

하지만 그와 동시에 태온의 가슴팍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다. 우회 송출을 위해 미래의 스트리밍 데이터를 억지로 끌어다 쓴 인과율의 페널티였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무겁게 박동했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 정도 통증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태온은 턱끝을 꽉 깨물며 통증을 억눌렀다. 과거에 무력하게 아이들을 빼앗기고 업계에서 매장당했던 그 지옥 같은 무력감에 비하면, 육체적인 과부하 따위는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값싼 대가에 불과했다. 태온은 손끝의 박자를 멈추지 않았다. 하진의 눈동자가 태온의 손끝을 따라 정교하게 춤을 추었다.

곡이 중반부로 치달을수록, 하진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서정적이던 멜로디가 점차 가파른 계단을 오르듯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된 클라이맥스.

하진의 목덜미, 왼쪽 귀 아래쪽에 길게 새겨진 얇은 수술 흉터가 파르르 떨렸다.

과거 NHN 엔터 시절, 무리한 트레이닝으로 인한 성대 결절 수술의 흔적이었다. 업계의 의사들은 이 흉터를 가리키며 ‘고음역대에서의 공명이 불가능해진 사망 선고’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태온은 장부의 분석을 통해 그 흉터 이면에 숨겨진 ‘특이점’을 발견해 냈었다.

흉터 조직이 아물면서 후두 내부의 일부 근육이 비전형적으로 유착되었고, 이는 오히려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보통의 가수는 낼 수 없는 독특한 금속성 배음(Overtone)을 만들어내는 천혜의 악기로 변모해 있었다.

트라우마의 상징이었던 흉터가, 이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 내 목은 망가진 게 아니야.’

하진이 눈을 감았다. 태온과 함께 성산동 지하 연습실에서 목이 터져라 연습했던 그 감각만을 믿었다. 흉터 부위의 근육을 미세하게 조율하며 후두를 넓게 열었다.

스포트라이트가 그의 얼굴을 강렬하게 비추는 순간, 하진의 입술이 열렸다.

“아아아아――!”

무음의 공간을 찢고 고막을 관통하는 하이노트가 폭발했다.

단순한 고음이 아니었다. 거친 쇠소리와 깨끗하게 정제된 미성이 기묘하게 섞여 귓가를 때리는, 극도의 애절함이 담긴 고음이었다. 음향 장비의 한계를 시험하듯, 스피커가 찢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성량이 공연장 전체를 집어삼켰다.

“……!”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중견 프로듀서가 들고 있던 펜을 떨어뜨렸다. NHN의 사주를 받아 하진에게 최하점을 주기로 묵계가 되어 있던 심사위원들의 안색이 단숨에 흙빛으로 변했다.

이것은 기교로 흉내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반주가 꺼진 최악의 상황에서, 오직 목소리 하나만으로 수천 명의 관객을 압도하고 무대를 완전히 지배해 버리는 천재의 영역이었다.

동시에, 무대 우회 송출을 진행하던 모바일 스트리밍 화면의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 미친 거 아니야? 반주 없는 거 실화냐? - 인이어 뺀 거 봐라 ㄷㄷㄷ 진짜 라이브네 - 목소리 소름 돋았다... 귀에서 피 흘리는 중 - 이게 어떻게 성대 망가진 애임? NHN 눈은 삐었냐? - 현장인데 진짜 온몸에 소름 돋음. 대박이다 진짜...

동시 접속자 수가 40만 명을 돌파하고, 50만 명을 향해 수직으로 치솟았다.

태온의 눈앞에 있는 장부의 그래프가 푸른빛을 찬란하게 뿜어내며 폭발적인 경고음을 울렸다.

[실시간 트렌드 지수: 측정 불가 (최상위 한계 돌파)] [서하진 무대 최종 평가지수: SSS] [경고: 대상과의 정서적 신뢰 수치가 극대화되었습니다.] [인과율 페널티 상쇄율: 100%]

그 순간, 태온의 가슴을 옥죄던 묵직한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심장의 박동이 정상 궤도를 찾으며 서늘하고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흘러들어왔다. 아이와의 ‘진정성 어린 신뢰 수치’가 축적되면서, 시스템의 가혹한 제약마저 완벽하게 제어해 낸 것이다.

태온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끝내라, 하진아.”

태온의 나직한 혼잣말과 동시에, 하진의 마지막 음성이 허공에 길게 여운을 남기며 흩어졌다.

마지막 한 음까지 완벽하게 통제된 가창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마이크가 내려가는 순간까지, 무대 위에는 단 한 줌의 소음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찾아온 지독한 정적.

1초. 2초.

숨이 막힐 듯한 고요를 깨뜨린 것은 관객석 맨 앞줄에서 시작된 작은 박수 소리였다. 이내 그 소리는 벼락같은 함성과 함께 거대한 해일이 되어 공연장을 뒤흔들었다.

와아아아아아!

“서하진! 서하진! 서하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립박수였다. 방송사의 송출 차단도, 대기업의 야만적인 사보타주도, 날것의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는 한낱 우스운 장난질에 불과했다.

심사위원석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억지로 점수를 깎아내리기에는 현장의 열기가 너무나 뜨거웠고, 인터넷 생중계를 지켜보는 50만 명의 눈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여기서 억지 트집을 잡았다가는 자신들의 커리어 자체가 대중의 분노에 쓸려나갈 터였다.

결국, 메인 심사위원이 떨리는 손으로 채점기를 눌렀다.

[심사위원 점수: 100] [심사위원 점수: 100] [심사위원 점수: 99]

전례 없는 만점에 가까운 폭격. NHN의 보이지 않는 손이 구축해 놓았던 카르텔의 장벽에 거대한 균열이 가는 소리가 태온의 귀에는 똑똑히 들리는 듯했다.

“해냈구나.”

태온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무대 위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하진을 바라보았다. 하진은 무대 위에서 태온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었다. 기획자와 아티스트가 서로의 영혼을 믿고 완성해 낸 첫 번째 기적에 대한 경의였다.

무대 뒤 대기실로 돌아오는 복도는 소란스러웠다. 스태프들은 태온의 눈치를 보며 길을 비켜주었고, 아까까지 비아냥거리던 타 기획사 관계자들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대표님…….”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온 하진의 눈가가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태온은 묵묵히 서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잘했다. 네 목소리가 사방에 퍼졌어. 이제 누구도 널 함부로 대하지 못해.”

“감사합니다. 정말로…… 대표님이 수신호를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중간에 멈췄을 겁니다.”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네가 흘린 땀방울의 무게를 내가 아니까.”

태온의 차가운 강박증 이면에 숨겨진 뜨거운 진심이 하진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신뢰의 연대는 그 어떤 대기업의 자본보다도 단단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려한 무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태온의 시야에 떠올라 있던 흥행 경영 장부가 격렬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던 화면이 갑자기 붉은빛으로 물들며 가청 주파수를 넘어서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귓가를 때렸다.

삐익-!

[경고: 나비효과 수치 급상승!] [역사 왜곡으로 인한 대체 불가능한 변수 발생!] [특수 원석의 이탈 징후 감지 및 긴급 좌표 개설!]

태온의 미간이 좁아졌다. 단순한 오류 메시지가 아니었다. 장부의 화면에 거대한 지도가 펼쳐지더니, 마포구의 한 어두운 골목길을 가리키는 붉은 점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대상: 윤지훈 (잠재력: 댄스 퍼포먼스 SSS)] [현재 상태: 전속 계약 분쟁 및 신체적 위협 상황 노출] [잔여 골든타임: 45분]

“윤지훈……?”

미래의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댄스 제왕으로 군림했어야 할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장부가 가리키는 그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NHN의 수하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태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진아, 짐 챙겨라. 바로 이동한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