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이 무대 순서 되면 바로 서브 카메라로 전환해. 바스트 샷은커녕 풀 샷도 잡지 말고, 무대 조명 최대한 어둡게 깔아버려. 아예 얼굴이 안 보이게 말이야."
SBC 방송국 신관 3층, <넥스트 스타> 생방송 주조정실의 공기는 무겁다 못해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메인 연출자인 김 PD의 지시를 받은 부조정실 스태프들의 손가락이 콘솔 위에서 갈팡질팡했다. 최준형 대표의 은밀한 압박은 이미 방송국 윗선을 타고 내려와 현장 실무자들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있었다.
"하지만 피디님, 생방송인데 갑자기 중계 앵글을 그렇게 돌려버리면 시청자 게시판이 난리 날 텐데요? 낙인조 패자부활전이라도 서하진에 대한 기대감이 장난 아닙니다. 사전 투표 유입률도 제일 높고요."
"소리 키우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김 PD가 신경질적으로 서류철을 책상에 내리쳤다.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네가 언제부터 시청자 편익을 그렇게 챙겼어? 네트워크 송출 오류라고 자막 한 줄 내보내면 끝이야. 오디오도 메인 마이크 볼륨 반으로 줄이고 현장 앰비언스 마이크만 열어 둬. 목소리가 웅웅 울려서 가사 하나도 안 들리게 만들란 말이야."
그것은 완벽한 매장 시나리오였다. 화면에서 지워지고, 소리마저 뭉개진 가수는 무대 위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나 다름없다. 최준형이 설계한 덫은 이토록 촘촘하고 잔인했다. 대중에게 목소리를 들려줄 기회조차 태동 단계에서 거세하겠다는 대기업의 횡포였다.
* * *
같은 시각, 무대 뒤편 대기실 복도.
강태온은 벽에 기대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반투명한 푸른빛의 '흥행 경영 장부'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갱신하며 점멸 중이었다.
[경고: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서하진'의 방송 송출 확률이 8.4%로 급락합니다.] [잠재적 리스크: 방송 신호 강제 변조 및 화면 송출 중단 시도 감지.] [대응 루트 탐색 중…….]
태온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최준형, 역시 그 인간다운 비열한 수법이었다. 사람을 소모품으로 보고, 자신들의 카르텔에 균열을 내려는 존재는 싹부터 밟아 죽이려는 악랄함. 하지만 태온은 15년 차 프로듀서로서 가요계의 온갖 더러운 꼴을 다 보고 회귀한 몸이었다. 이 정도 방해 공작은 이미 그의 예측 범위 안에 있었다.
태온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에는 2014년 당시 서서히 태동하고 있던 모바일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의 관리자 페이지가 켜져 있었다.
"예주 씨, 준비는 끝났습니까?"
태온이 나직하게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크레센도 엔터테인먼트의 신임 본부장, 한예주의 차분하면서도 긴장감 서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강 프로듀서님이 제안하신 대로, 저희 쪽 홍보 대행사와 연계된 파워 블로거, 그리고 SNS 인플루언서 네트워크망에 링크 배포 대기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요? 방송 송출을 우회해서 유튜브랑 모바일 스트리밍으로 생중계를 때리다니…… 이건 SBC 방송국과의 전면전입니다.
"전면전은 저들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태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방송사가 플랫폼의 독점권을 무기로 원석을 묻어버리려 한다면, 우리는 그 플랫폼 자체를 갈아치우면 됩니다. 대중은 바보가 아닙니다. 공중파의 화려한 카메라 워크보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감동에 더 빠르게 반응하니까요. 지금부터 상암동 바닥을 뒤흔들어 놓을 겁니다."
- 좋습니다. 당신의 그 무모한 확신이 이번에도 통하는지 지켜보죠. 3분 뒤, SBC 본방송 신호가 하진 씨 차례에서 튀는 순간 바로 스트리밍 서버 오픈합니다.
전화를 끊은 태온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통증이 치밀었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 미래의 기술과 데이터를 억지로 끌어와 현실의 판도를 뒤흔들 때마다 찾아오는 패닉 아웃의 전조 증상이었다.
태온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흐려졌지만, 그는 벽을 짚고 버텨섰다. 이 정도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과거 자신을 배신하고 쓰레기처럼 버렸던 자들에게 복수하고, 진정한 음악을 세상에 내보일 수만 있다면 이 심장이 터져 나가도 상관없었다.
태온은 발걸음을 옮겨 하진이 대기하고 있는 대기실 문을 열었다.
* * *
"후우…… 후우……."
서하진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얇은 목덜미 위로 희미하게 남은 가느다란 흉터가 유독 붉게 도드라져 보였다. 과거 NHN에서 성대가 망가졌다는 낙인이 찍힌 채 버려졌던 날의 기억이, 그 거대한 절망이 다시금 해일처럼 밀려와 그의 숨통을 조였다.
손끝이 잘게 떨렸다. 마이크를 쥔 손바닥에는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하진아."
문을 열고 들어온 태온의 목소리에 하진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는 잔뜩 겁에 질린 어린 짐승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대표님…… 저, 갑자기 목이 꽉 막힌 것 같아요. 소리가 안 나올 것 같아요. 옛날에 그 지옥 같았던 연습실에서 최 대표님이 했던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돌아요. 너 같은 쓰레기는 평생 무대 위에서 소리 한 번 못 질러보고 썩을 거라고……."
하진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자책과 공포가 그의 여린 어깨를 아래로 짓누르고 있었다.
태온은 천천히 하진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진의 떨리는 양어깨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뜨거운 체온이 얇은 셔츠를 뚫고 하진에게 전달되었다.
"서하진, 내 눈 똑바로 봐."
태온의 목소리에는 단단한 쇠붙이 같은 힘이 실려 있었다. 하진은 홀린 듯이 태온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두려움도, 의심도 없었다. 오직 확신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저들은 네 목소리가 두려운 거다."
"예……?"
"네가 이 마이크를 잡고 세상에 소리를 지르는 순간, 자신들이 만든 가짜 음악의 성벽이 무너질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네 입을 막으려는 거야. 지금 저 방송국 놈들이 카메라를 돌리고 음향을 죽이려 모의하고 있다."
하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럼…… 저는 노래를 못 부르는 건가요?"
"아니."
태온이 하진의 손에 쥐어진 마이크를 더 세게 쥘 수 있도록 손을 포개어 잡았다.
"우리는 저들이 만든 무대 따위에 구걸하지 않는다. 네 목소리가 퍼져 나갈 길은 내가 뚫었어. 네가 할 일은 단 하나다. 네 목소리를 무시하고 짓밟았던 자들의 고막이 찢어지도록, 네 안의 모든 간절함을 담아 지르는 것뿐이다."
하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매번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버텨야 했던 고독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는 자신을 위해 세상 모든 장벽과 맞서 싸우는 기획자가 서 있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완벽한 신뢰의 감각이었다.
[알림: 데뷔조 '서하진'과의 신뢰 수치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신뢰도: 78% -> 85%] [시스템 페널티 완화: 태온의 패닉 아웃 증상이 60% 상쇄됩니다.]
태온의 가슴을 조이던 통증이 순식간에 씻겨 내려갔다. 호흡이 편안해지며 머리가 맑아졌다. 역시 장부의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과의 진정성 있는 교감만이 이 가혹한 회귀의 대가를 극복할 유일한 열쇠였다.
"준비됐지?"
태온의 물음에 하진은 마른침을 삼키고,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걷히고, 오직 마이크를 향한 집념만이 형형하게 살아나기 있었다.
"네, 대표님. 부숴버릴게요."
* * *
"자, 다음 참가자 서하진 씨 무대 준비해 주세요! 스탠바이!"
FD의 외침과 함께 생방송 무대의 암전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SBC 주조정실의 김 PD가 송출 콘솔을 향해 손짓했다.
"지금이야. 서하진 무대 진입하는 순간 메인 채널 송출 신호 노이즈 처리하고, 우회 광고 화면 띄워. 현장 오디오 레벨 최하로 낮추고!"
"예, 알겠습니다!"
방송국의 시스템이 일제히 작동했다. TV를 통해 생방송을 시청하던 수백만 명의 안방극장에 갑자기 화면이 지직거리며 '방송사 사정으로 인해 잠시 화면이 고르지 못합니다'라는 안내 자막과 함께 뚱딴지같은 공익 광고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 뭐야? 서하진 차례 되자마자 방송 사고임? - 대놓고 묻어버리네ㅋㅋㅋ NHN 물밑 작업 들어갔냐? - 아니, 예고편에서 그렇게 띄워놓고 정작 무대는 안 보여준다고? SBC 미쳤나 진짜.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바로 그 타이밍에, 인터넷 주요 포털 사이트와 SNS에 정체불명의 링크들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SBC 생방송 사고 실시간 우회 스트리밍! 무보정 현장 생중계 직캠 전송 중!]
"이게 뭐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시청자들이 홀린 듯이 링크를 클릭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방송국의 정형화된 카메라 워크가 아니었다. 무대 바로 앞, 가장 음향이 직관적으로 들리는 로열패밀리 석에 설치된 초고화질 모바일 중계 화면이었다. 방송사의 보정 필터나 인위적인 조명 왜곡 없이, 무대 위의 모든 디테일이 날것 그대로 송출되고 있었다.
태온이 미리 준비해 둔 '유튜브 생중계' 채널이었다.
"어? 나온다! 소리 엄청 잘 들려!" "오히려 방송국 화면보다 이게 더 현장감 대박인데?"
인터넷 스트리밍 채널의 동시 접속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1만 명. 5만 명. 15만 명.
태온의 눈앞에 떠오른 흥행 경영 장부의 그래프가 가파른 수직 곡선을 그리며 폭발했다.
[실시간 대중 인지도 전이율: 180% 돌파!] [인터넷 생태계 실시간 트렌드 1위 달성: '서하진 직캠'] [우회 송출 동시 접속자 수: 320,000명 돌파!]
"피디님! 큰일 났습니다!"
주조정실의 모니터 스태프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지금 본방송 시청률은 폭락하고 있는데, 모바일 스트리밍 사이트에 서하진 현장 직캠 채널이 개설돼서 접속자가 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서버가 터지기 직전이에요! 트위터랑 페이스북 실시간 트렌드도 전부 그쪽으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어떻게 그런 짓을……!"
김 PD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방송사가 송출을 끊어 가수를 매장하려던 계획이, 오히려 대중을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대거 이동시키는 도화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방송사의 독점적 권력이 인터넷 생태계의 거대한 파도에 힘없이 쓸려나가는 순간이었다.
* * *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중앙을 비추었다.
어두운 무대 위로 먼지가 빛 가루처럼 날리는 가운데, 서하진이 천천히 마이크 스탠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관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들었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무대 아래, 어둠 속에서 자신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단 한 사람, 강태온의 시선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보여주겠어.'
하진은 마이크를 힘차게 움켜쥐었다.
그가 반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무대 계단을 한 칸 더 밟고 올라서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틱-.
귀를 찌르는 듯한 미세한 이음과 함께, 하진의 귓속에 박혀 있던 인이어 모니터가 완전히 죽어버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반주 음원은커녕, 자신이 내뱉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지독한 무음의 세계가 그를 덮쳤다.
무대 옆 음향 콘솔 뒤에 앉은 음향 감독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하진의 인이어 볼륨 노브를 완벽한 '0'으로 고정해 둔 채 손을 떼고 있었다.
반주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박자를 맞출 수 없고,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음정이 완전히 이탈한다. 가수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음향 사보타주였다.
시작 부저음이 울리기 직전, 하진의 눈동자가 다시금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